깃발이 펄럭이지 않는다고 누가 오늘을 바람 없는 날
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햇살 눈부신 곳에 우리가 마음
빼앗겨 있을때, 바람은 안 보이는 마음의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걷는 생각들을 무심코 뒤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문득, 안쓰럽게 말라가는 잡풀더미를 한번 쓰
다듬고 은사시나무 잎들을 재빠르게 뒤집고 간다. 아무
도 그 바람을 보았다고 말하는 이 없는데
긴 모퉁이를 돌아오는 바람은 무수한 겹침과 떨림으
로 창을 넘어와 그 속에서 모든 걸 흔들리게 한다. 넘기
다 만 책장과 흐린 알전구, 전등갓 주위로 몰려드는 어
둠까지 흔들린다. 가만히 보라, 이 삶의 멀미.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는가, 때로는 우리가 사는 이 별까지
임안에 넣고 사탕처럼 굴리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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