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천학 《현대문학》으로 등단, 진단시 동인으로 활동. 《여원》에 단편 〈모래성〉, 드라마 〈끊임없이 도는 풍차〉, 〈저녁노을 붉은 꽃〉, 〈끈〉이 KBS, TBS에 당선, 한국전자문학도서관 웹진 《블루노트》(2000~2006)를 발행, 2008년 캐나다로 이주, 2 010년 단편 〈오이소박이〉로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2015년 국제작가네트워크(WIN)의 Distinguished Poet Award를 수상,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국제PEN클럽, 한국시협, 캐나다문협, 세계시조시인포럼 회원으로 활동 중, 저서: 《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 외 시집 12권, 영한시집 《2H₂ +O₂ =2H₂O》, 일어시집 《空っぽの都市の胸に電話をかける》(빈도시의 가슴에 전화를 걸다) 등이 있다. |
| 1. 문학이 안겨준 달나라의 꿈 우주를 향한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르테미스 2호(Artemis II)를 실은 우주선 ‘오리온 호’의 발사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슴이 또다시 용솟음쳤다. 나의 종교는 과학이라고 말할 만큼 과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용솟음치는 기분과는 달리 또 다른 생각들이 새끼를 치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완전히 사라져가는- 달나라의 동화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였다. 그 염려는 오래전부터 달을 가슴에 품어온 인간적인 동화를, 가슴에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끌었다. 이 생각은 과학이 발전하여 달라지는 상황에 대하여 경외감을 갖추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 우리나라 전설 속에, 달나라에는 선녀 항아姮娥와 계수나무 아래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가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가 있다. 호랑이에게 쫓겨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늘에 올린 남매의 기도 응답이 바로 ‘해’와 ‘달’이었다. 오빠는 해가 되고 여동생은 달이 되었다. 해가 된 오빠가 낮 동안 떠올라서 그리운 여동생을 기다리지만, 해가 질 무렵 여동생이 된 달이 떠오른다. 오누이의 만남과 헤어짐은, 우리의 낮과 밤을 지키는 조화와 균형이다. 그리스 신화를 통한 서양 전설은 사이사이에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이 끼어있고, 갈라져 가며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내지만, 굵은 줄거리만 이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아르테미스(Artemis)’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Zeus)와 레토(Leto)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다. 오빠 이름은 ‘아폴로’(Apollo, 그리스어 표기로는 ‘아폴론’Apollon)이고, 여동생의 이름은 아르테미스이다.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인 동시에 사냥의 수호신, 처녀의 상징이기도 하다. ▲‘언스플래쉬’ 제공 쌍둥이 오빠인 아폴론은 태양신이 되어 빛과 힘의 상징인 낮을 관장하고, 여동생인 아르테미스는 온화함과 자연의 상징으로 밤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둘은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우리의 ‘남매 전설’과 비슷한 구조이다. 낮과 밤, 해와 달, 남과 여, 양과 음의 분류로 보면 동양과 서양의 신화와 전설이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신화, 전설 또는 역사의 진행을 공부할 때, 동서양을 막론해서 인간의 상상력이나 호기심은 비슷하다는 결론에 이르러, 인간은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는 생각으로 귀결되면서, 긍정적으로 끄덕이게 했다. 따라서 오늘의 사회적, 국가적, 민족적 분열, 차별, 편견들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달나라에 대한 동경憧憬,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빚어낸 동화童話와 전설은 문학文學의 영역이고, 자꾸만 파헤쳐지는 달의 비밀을 가슴에 품어두는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야 한다. 달나라에 탐사선을 날려 보낸 것이 54년 전의 일이지만, 달나라에 대한 우리의 동화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온 이야기다. 지금 달을 향해 하늘을 날아가는 우주탐사선의 이야기는 과학의 영역이다. 그러기 위해서 54년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 본다. 달나라에 첫발을 내딛던 탐사선의 이름을 ‘아폴로’라고 명명한 것, 그리고 이어서 ‘아르테미스’로 명명한 나사(NASA)의 의도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한국의 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를 한 번쯤 새겨둠직 하지 않은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떡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어머니를 협박하던 호랑이는 떡을 받아먹고도 어머니를 잡아먹은 후 어머니로 변장하여 집으로 찾아가 아이들에게도 술수를 쓴다.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남매는 뒷문으로 도망치고 호랑이가 그들을 뒤쫓는다. 다급해진 남매는 수수밭에 이르러 수숫대를 타고 하늘로 오르고자 간절히 기도한다. “하늘님, 저희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려면 굵은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려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십시오!” 하늘에서 굵은 동아줄이 내려온다. 남매는 그 줄을 타고 가까스로 하늘에 오른다. 뒤쫓아온 호랑이가 남매의 기도를 흉내 낸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다. 그 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오르다가 줄이 끊어져 수수밭으로 떨어지고 만다. 썩은 동아줄이었던 것이다. 하늘에 오른 남매, 오빠는 해가 되고 여동생은 달이 되어 오늘도 우리의 밤과 낮을 지켜준다. 어린 시절, 가끔 핏빛으로 물든 수숫대를 가리켜, 그때 수수밭에 떨어져 죽은 호랑이의 피라고 들려준 어른들의 말을 믿었었다. 누구나 다 아는 동화童話! 그러나 가슴에 심어진 이야기, 이것이 곧 ‘문학의 힘’이라는 것까지 생각하는 독자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2. 과학이 전해온 달나라 통신 - 아르테미스 2호 한밤중, 창문을 통하여 둥실 떠 있는 달을 보았다. 유난히도 꽉 찬 보름달이었다. 지금 잘하고 있지 아르테미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달에게 말을 걸었는지, 달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는지, 나의 혼잣말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아르테미스의 은마차가 막 도착했다. 활과 화살을 메고 있었다. 춤판이 벌어졌다. 님프들과 함께 숲을 누비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슴과 곰, 개 그리고 사이프러스와 월계수가 우거진 그늘 아래에서 였다. 달나라의 춤판과는 달리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지구는 출렁이고 있다. 날마다 가스 값이 출렁이고, 증권시장이 출렁이고, 정치가 출렁이고, 경제가 출렁이고... 지금쯤 달의 뒷면 어디쯤을 날고 있을 오리온(Orion)호, 아르테미스 2호의 행로를 눈으로 더듬으며, 오늘은 달 탐사선 아르테미르 2호의 과학영역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달을 향한 인류의 꿈은 1969년이 첫 시작이었다. 그해 7월 20일, 유인有人 우주선 ‘이글’(Eagle)호는 아폴로 11호(Apollo 11)를 싣고 달을 향하여 날았다. 달에 도착,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과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디뎠다. 3년 후인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는 사령관인 유진 서넌(Eugene Cernan)과 뒤이어 조종사인 해리슨 슈미트(Harrison Schmitt)가 달을 밟았다. 달은 그때의 발자국들을 간직하고 있을까?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이번의 탐사 여행이다. 이번의 아르테미스 2호는 당초 2월 발사로 예정되었다가 기술적 문제와 날씨 관계로 미뤄진 후, 4월 1일에 발사되었다. ▲지난 6일, 아르테미스 2호 선내에서 우주비행사들이 찍은 풍경. 달 지평선으로 지구가 지고 있다.(NASA) 이번엔 달에 착륙하는 것이 아니라 달의 뒷면(이면裏面, far side) 즉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뒤쪽을 근접 비행(fly by)으로 돌아보는 10일 정도의 여정旅程이다. 목적은 달 주변에 물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 얼음으로 덮여있다고 알려져 온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만약 얼음이 있다면 녹여서 물을 만들고 그 물을 수소로 분해해서 화성까지 가는 연료를 만드는 일, 즉 달을 우주의 주유소로 만들겠다는 큰 목표를 갖고 있다. 아르테미스 2호에 탑승한 우주인은 4명이다. 사령관인 미국인 리드 와이즈먼(Reid Wiseman), 흑인 우주인 빅터 글로버(Victor Glover), 캐나다 우주국(CSA) 소속인 제레미 한센(Jeremy Hansen), 그리고 여자 우주인 크리스티나 코크(Christina Koch)이다. 간혹 최초의 흑인 우주인, 또는 여성 우주인, 그리고 캐나다 우주인이라는 점을 화제로 삼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인 나, 그리고 우리로서는 그런 것보다는 더 눈여겨 봄직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한국의 순수기술로 만든 라드큐브(K-Rad Cube)가 업무수행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라드큐브는 ‘우주 방사선 측정 큐브 셋(우주 방사선 측정 큐브 위성)’으로, 방사선 배출량이 가장 많다는 밴 에일런대(Van Allen Belts)을 가로지르며 직접 방사선량을 측정, 수집한다. 그곳에서 사람이 생존하려면 어떤 장비와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수집한 데이터를 한국통신으로 전송한다. 그 맡은 바 업무를 마치면, 지구로 복귀하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로 사라진다. 감정적으로 매우 애석하지만, 과학이고 기계이지... 하고, 의식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진정한다. 다만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라는 인류 공동목표에 실질적인 기술 파트너로 한국이 참여했다는 점은 한국 우주과학기술에 대한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됐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며 애석한 마음을 거푸 누른다. 달의 표면온도는 위치와 조건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50℃도라고 알려져 있다. 햇빛을 받는 곳은 100℃ 이상이고, 그늘이나 밤이면 –170℃ ∼ –190℃ 라고 한다. 그토록 온도 차가 크고 낮은 것은 대기가 거의 없고, 열을 분산시키거나 유지할 공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나는 지금 아르테미스 2호(Artemis II)가 보내온 첫 번째 지구 사진을 응시한다. 칼 세이건(Carl Sagan), 그도 그렇게 말을 했었지. 그의 통찰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오래 전에 쓴 나의 《우주시편》들이 떠 오른다. 〈까불지 마라〉, 〈또 하나의 우주〉, 〈그대 나의 명왕성〉... 나의 가슴도 두근거렸었다. 발사 이후 겨우 하루가 지났지만, 장대한 시간의 역사가 흘러간 기분이다.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달의 이면裏面, 그곳을 지나고 있을 아르테미스 2호, 거기에 탑재된 한국산韓國産 ‘K-라드큐브’, 아무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업무수행을 완수하기를 거듭 기원한다. 3. 그녀 페니, Peny! 그녀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가끔 들어왔다. 뉴스를 통해서다. 하이파크 근처 어디에 그녀가 나타났다거나, 또 어느 주택가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일 년에 한두 번? 그녀의 소문은 심심찮게 떠돌았고, 그때마다 늘 심상찮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럴 때마다 살짝 궁금증을 갖기는 했지만, 그냥저냥 잊어버리곤 했다. 지난달 어느 날, 예년보다 큰 폭설이 내린 후였다. 우리 집은 물론 이웃의 앞뒤 뜰에 엄청 많은 눈이 쌓였고, 토론토 시내의 길과 주택가의 지붕이 눈에 덮여, 명화名畫 속의 한 장면 같았다. 그날 오후, 나는 양편에 눈이 쌓여 조붓해진 도심의 길들을 지나 피지오테라비(Physiotherapy)를 마치고 돌아왔다. 2층에 있는 나의 방에서 굼뜬 동작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늘 하던 대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하여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는 일은 나에게 소소하지만 즐거운 습관이다. 그날도 그랬다. 무심히 내려다본 집 앞의 뜰과 이어진 길, 나뭇가지들 사이로 어룽어룽, 뭔가의 움직이는 동작이 감지되었다. 왼쪽 방향이었다. 언제나처럼 누군가 걷고 있으려니, 생각하며 잠시 바라보았다. 나무 사이를 벗어나 나의 시야 중심으로 드러낸 모습은 네발 달린 짐승이었다. 개였다. 그것 역시 자주 있는 일, 새로운 광경은 아니었다. 허스키와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 개는 걸음을 재촉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와 동반하지도 않고, 혼자, 느긋했다. 지나온 뒤쪽(왼쪽)과 가고 있는 앞쪽(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보며, 길 양편으로 걷다가 길 중앙으로 가기도 하면서 유유했다. 곧바로 앞을 향해 가는 것도 아니고, 앞뒤 좌우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듯 살피며 느린 걸음으로 걷는 품이 느긋했다. 그 행동거지가 영락없이 함께 산책 나온 주인을 잃고 찾거나, 친구를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몸집은 회갈색이었고 중 톳 개 크기였는데, 다이어트 중인 것처럼 야위어 보이는 몸매였다. 꼬리가 뭉툭했다. 내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몸을 기울였다.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일은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지만, 주인 없이 혼자? 좌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뒤따라오거나 동행한 사람이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느린 행보로 우리 집 앞, 시선의 중앙을 막 지날 무렵이었다. 어슬렁거리며 건너편 갓길 쪽으로 방향을 트는 듯하던 바로 그 순간, 번개처럼 움직였다. 대각선, 집 앞의 뜰에 쌓인 눈밭으로 뛰어드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그 집 뜰 가운데 몸통으로 서 있는 나무의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검은 선線 한줄기가 동시에 포착되었다가 사라졌다. 이내 조용해졌다. ▲‘언스플래쉬’ 제공 개의 행방을 찾으려고 허리를 약간 굽혀가며 창가로 다가서서 시선을 모았다. 10초도 채 안 될 만큼 짧은 정적이 지나갔다. 그 나무의 검은 밑둥 주변에서 잠시 눈보라가 이는 듯했다. 초점을 모은 나의 시선 안에 밑둥의 뒤편에서 검은 걸레 조각을 입에 물고 있는 그 짐승의 모습이 나타났다. 청설모였다. 나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잠깐 주변을 살피는 듯하더니, 밑둥 아래 눈밭에서 자리 잡고 앉아 걸레 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목숨을 발기기 시작했다. 굶주린 배를 채우는 피의 파티였다. 한 목숨이 사라지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 왼쪽에서 키 큰 남자가 어린 개를 끌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애견과 함께 산책하는 낯이 익은 광경이었다. 유유자적하게 다가오던 그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어룽어룽 비치는 그림자 영역으로 들어갔다. 나무 아래에 오줌도 누이고 똥도 누이면서 느긋했다. 순간 나는 그 애완견이 위태롭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통유리인 유리창이라 열 수도 없었다. 옆의 조붓한 방충망 창이 있지만 그 문을 열고 큰 소리로 말하면, 지금 피의 파티에 열중하고 있는 짐승도 알아들을 것 같았다. 통유리 문을 두드렸다. 전혀 올려다볼 기색이 없었다. 통통통통... 여기요! 여기요! 소리를 죽여 가며 몇 차례 두드리자 낌새를 느낀 그 남자가 올려다보았다. 나는 손가락 언어와 시늉을 적극적으로 보냈다. 그 남자가 나의 손가락 지시를 따라 파티 현장을 바라보더니, 얼른 개의 목줄을 당겨 품에 안고 우리 집으로 피신해 들어왔다. 그 남자는 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개가 아니라 ‘카이오티’(코요테, coyote)라고 했다. 뭉툭하게 잘린 꼬리가 특색이고 가끔 우리 마을에 나타나서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페니’(Peny)라고 부른다고 했다. 봄이나 가을철에 가끔 주택가로 내려오는데, 특히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이 되면 더 자주 눈에 띈다고 했다. 나는 그날 그렇게 그녀를 처음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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