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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감상

허홍구 〈그대 자유로 가라〉 외 9편 / 《한강문학》 43호 허홍구 시인의 '말꽃 묶음'

작성자이혜경|작성시간26.06.18|조회수22 목록 댓글 0

 

 

 

그대 자유로 가라
   - 유명 인사들의 자살을 보고

                              허 홍 구


죽은 생명도
싱싱하게 살아온다는 이 봄날
저만 혼자 떠나야 하는
그 아픈 사연이 무엇인가

목숨을 함부로 한 죗값은
내 따질 일이 아니나
부디 이승에서 그대를 옭아맨
그 끄나풀을 풀고 가시라

봄날의 이 따사로운 햇살처럼 가시라.





그때는


어둠 걷히고

묶인 사슬 풀리는 날
나 바람으로 가리라
산과 들과 바다로

설혹 그때 그대가
이승의 밖에 있다 해도
기어이 그대 곁으로 가리라
거침없이 거침이 없이

내 그렇게 하여
또 한 생을 시작하리라.





그대. 1


손을 아니 잡아도


팔이 저려옵니다.
 
 
 
 
그대. 2


차마 꺾지 못하는


내 맘속에

마지막 꽃 한 송이.
 
 
 
그대. 3


밥이다

에너지다

끝이 있는 길을
끝없이 살게 하는.
 
 
 
 
그대. 4


다시 시작할 것이다

똑바로 걸어갈 것이다
땅에서 하늘까지

눈 감고 손 놓아도
같은 걸음으로 갈 것이다
이승에서 저승까지.
  
  

   
거울 앞에 서서



치장하고 모양을 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기 저 거울 속에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놈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언제 등 뒤에서 나타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도둑놈 얼굴의 나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내가 무섭다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
  
  
  

   
그게 뭔지 알았으니


어미 되고 아비 되면 다 아는 것

넘어지고 배고파 보면 다 아는 것
늙고 병들어 보면 다 아는 것

더는 가질 것도 잃을 것도 없을 때
저승사자가 와도 무서울 것 없을 때
나 바람처럼 햇살처럼 오고 갈 것이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여기 머물 때까지는

혼자서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면서-
천번 만번 고마워하면서-
가진 것 나누어가면서-
눈물 나게 사랑하면서-
빙그레 미소를 남기고자 하는 것이지요.

  
  
  

길상화吉祥花 보살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은 (김영한)이고

16세에 진향이라는 이름을 받아 기생이 되었다
백석 시인으로부터는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고
〈백석,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란 책이 있다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운영하였으나
생애의 높고 아름다운 회향廻向을 위하여
당시 시가 10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법정스님을 통해 1995년도에 무상 보시하였다

요정 〈대원각〉이 부처님 도량으로 바뀌는 날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만 받았다
전 재산을 보시하고 아깝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것은 사랑하는 백석 시인의 詩 한 줄보다 못한 것이라 했다
그가 머물던 자리에는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허 홍 구

hhg1946@hanmail.net
시집: 《사랑 하나에 지옥 하나》, 《그 사람을 읽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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