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이야기 외 1편
이효성
왼쪽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옮기기만 해도
긴 머리를 짧게 치거나
짧은 머리를 젤 발라 세우기만 해도
이미지가 달라지는 게 미용계의 정설인데
가발은 게서
두 차원은 높이 뛴다
약속장소에 걸어온 친구가
나와 문을 마주치고도 무심히 지나치는 일
어허,
사모관대 갖춘 나를 몰라보다니! 나무라니
너무 놀라 내 등짝을 한 대 후려치는 일
못 믿을 현실인 듯 낯설 뿐
다른 사람을 만난 듯 날 쳐다볼 뿐
또 다른 날 찾는 변신일 뿐
거슬러 받은 잔돈일까
저축한 몫돈일까
한여름에 털모자를 둘러쓴 이 안쓰러움
집에 오자마자 마네킹에 씌워준다
기다렸다는 듯 관을 쓰고 흐뭇한 미소
제도 자기 스타일이 있는지
가불일까
환불일까
경계
타일과 타일 사이에 155마일
비무장지대가 있다
견고하게 기획된 로마네스크 문양 위로
집게벌레 활보하고 방심하면
검은 곰팡이가 스크럼을 짜거나
초파리도 가끔 출몰해서 경계 근무에 임할 때
비행기는
바다 위를 날아 제 길을 가지만
엔진소리 윙윙 들리는 창가 42J에서
하늘과 바다는 경계도 없는
수채화 한 폭
금쪽같이 벽을 사수하는 주님의 날
중요한 비지니스 골프 부킹이 일요일에
그만,
벽도 밀면 길이 된다는 말을 따른다
한 끗 차이로 갈린 군사분계선도
제주의 정낭도
붉은 고추, 숯과 청솔 가지를 새끼줄에 꼬아 내건 금줄도
내 이마 평수 감안해 어디까지가 얼굴인지 아는 사람 나와보라는
그의 너스레를 당하지 못한다
넘나들기 위해 경계가 있다
―《시문작가》 2026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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