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in 남쪽에 Ronda 라는 절벽위에 도시다. " The village of the Rock " copied at Pinterst.
오늘 갔던 치과에서 늘 친절한 박기사님은 나를 보고 잇몸이랑 이들(치아)을 나이에 비해 잘 간수하고
있다고 칭찬을 했다. 이 청소를 하면서 피가 안 나왔다고 하고 잇몸이 전혀 염증 반응이 없다고 했다.
최근에 한쪽에서 과민반응이 있었다. 찬물이나 단것들에 예민해졌고 치과에 가기 전날밤에는 약간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드려다 보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치료실 방에는 스페인 남쪽 Ronda 라는 작은 산꼭대기 도시의 멋진 사진이 있다.
우리도 그 절벽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치과의 이 박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갔던 Seville를 생각했다.
이제는 다시 못갈거다. 아니다 갈수도 있다. 서울대 치대를 나온 여의사는 오늘은 기분이 좋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스페인 이야기도 하고 아랫니가 약간 흔들린다고 해서 아마 최근에 넘어져서 그럴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상처난 내 이마를 보여줬다.
조심해야 한다면서 주위 친구들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가 치과 병원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한 것도 처음이다.
집에 오면서 생각하니 어머님이 나를 불러서 무릅에 앉히고 이를 딱아 주시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
아마 두살 , 세살이었겠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전까지 였을까 ?)
울면서 입을 다물면 입 벌리라고 하시면서 손가락으로 소금을 이빨에 세게 문지르셨다.
요즈음 젊은 엄마가 애들 이를 잘 닦아주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가 대학 다닐 때까지 충치가 없었고 이때까지 잇발에 큰 문제가 없어서 오늘 박기사님이
이 나이에 치아를 이렇게 잘 보존 한 사람이 드물다고 했을 때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 거다.
우리 어머니 ! 과수원에 놀러가면 할머니가 이리 오라고 방으로 불러 집이야기를 묻곤 했는데
신나게 말하다가 엄마가 나를 때렸다고 했는데 뭐라고 하시면서 당장 일어나 우리집으로 가시는
걸 보고 겁이 잔뜩나서 대문에서 서성거렸던 일이 기억난다.
어리석게 고자질을 하다니. 그때 어머니 맘은 어떠셨을까 ?
다 잊으셨을 텐데 (?) 오늘은 유난히 어머님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