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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의 산문

[새들이숲으로]함부로 괴로움을 호소하였다

작성자이향아李鄕莪|작성시간26.06.12|조회수24 목록 댓글 0

함부로 괴로움을 호소하였다

 

너무 쉽게 그리고 가볍게 괴로움을 호소하며 살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목숨을 부지한 일도 없고,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못할 일을 저지른 일도, 절망의 수렁에 빠져 자살을 시도한 적도 없으며, 감옥에 갇혀서 고문을 당해본 일도 없다. 나는 그동안 별일 없이 잔잔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함부로 괴로움을 호소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살아난 사람 앞에서 절망을 함부로 표현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다. 음지에서 어깨를 움츠리며 일어서는 사람 앞에서 함부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건방진 일일 것이다.

어제 작고한 지 60년도 넘는 사람, 이름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시인이요 평론가였K라는 작가의 문학 전집을 받았다. 어떻게 이 책이 내게까지 오게 되었을까나는 한참 궁리하다가 전 5권의 전집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C 씨와 연관된 책이라는 것. 친구 C와 문학 전집의 주인공 K가 부부간이었다는 것, 결혼 후 일 년을 살다가 K가 세상을 떴다는 것, K의 딸이 훌륭하게 자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집을 냈다는 것을 나는 책을 읽으면서야 알았다친구 C는 그 후 좋은 사람을 만나 재혼을 했고 무난하게 살았는데 그 남편과도 얼마 전 사별했다. 나는 그동안 C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엉뚱한 말이나 했을 것이다. 그가 하고 싶은 속말이 따로 있었을 텐데 자질구레한 일을 부풀려 쓸데없이 엄살이나 떨었던 건 아닐까. C가 온후하고 속이 깊다는 것, 참을성이 많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다는 것을 다시 생각했다.

전 남편 K에게서 받은 편지를 50년 넘게 간직해왔다는 사실은 큰 감동이다. 그 편지들이 모두 전집에 실려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남다른 인생을 살아온 C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나는 그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까워질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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