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길 사거리에서 신호에 걸려 차를 멈춰 세웠다. 아직 유월의 한복판인데도 바깥 공기는 이미 34도를 넘어 있었다. 습도까지 짙게 깔려 있어, 건물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몇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차 안의 쾌적함이 그 기억을 지우고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도로 옆 자전거길로 한 청년이 전동 스쿠터를 타고 지나간다. 이곳 대학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인 듯하다. 등에는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배낭이 매달려 있다. 혼자 달리는 전동 스쿠터라서일까, 그는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린 채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더위에 짓눌린 바깥 공기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뜻밖의 맑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무더위조차 그를 완전히 덮지 못한 듯, 그 장면은 숲속에서 마주한 작은 꽃잎처럼 싱그럽게 빛났다.
그 학생의 나이쯤, 우리 역시 낯선 땅 미국에 첫 발을 디뎠다. 넉넉하지 않은 유학 생활이었지만,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한 교수 덕분에 우리는 삶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환영회에서 교수는 남편들에게 말했다. 유학 기간 학업에 몰두하는 것만큼이나 가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그는 그 대학에서 가장 뛰어난 강의자로 선정된 인물이었고, 유명 출판사의 의뢰로 전공서를 집필하던 학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예외 없이 연구실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연구는 집에서도 이어졌지만, 그의 시간의 중심은 언제나 아내와 아이들에게 있었다.
그는 말했다. 가정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라고. 많은 유학생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 “학위를 마치고 나면”, “좋은 직장을 얻으면 그때 더 잘하겠다”라고 약속하지만, 지금 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중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단호한 믿음이었다. 오늘의 남편으로서, 오늘의 아버지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은 결코 미래로 미뤄질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 이후 우리는 그 교수의 가정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교류할 수 있는 귀한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부부의 균형과 자녀 교육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가르침에 따라 남편은 주말이면 반드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지키려 애썼다.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외식하러 나갔다. 그 시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패스트푸드 식당뿐이었지만, 1.99달러짜리 해피밀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던 딸아이와 함께 한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더없이 큰 행복을 누렸다.
또한 “부부싸움은 하루를 넘기지 말라”는 그의 말을 따라, 때로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던 시간도 있었다. 그의 사고방식이 나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에게 다가가려 했다.
우리의 이런 사소한 노력은 웃음과 눈물 속에서, 때로는 원망과 사랑의 결 사이에서 뒤섞이며 삶의 결을 단단히 엮어 갔다. 삶이 넉넉할 때도, 궁핍할 때도, 아이들이 우리의 바람대로 자라날 때도, 그리고 그 울타리를 넘어 각자의 세계로 걸어 나갈 때도, 그것은 변함없이 우리 마음을 온유한 자리로 이끌어 조용히 지켜 주었다.
신호가 바뀌고 액셀을 밟는다. 잠시 멈춰 있던 동안에도 성실히 앞으로 달려가던 그 학생이 다시 시야에 들어온다. 여전히 두 팔을 벌린 채 스쿠터 위에 서 있는 그는, 도시의 더위를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묘하게 자유로워 보인다. 그의 얼굴이 다시 한번 보고 싶어 고개를 돌린다. 땀으로 젖은 얼굴 위로 그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다. 저 청년도 우리처럼 가슴속에 무언가를 품고 살아가고 있겠지. 더위와 불안, 그 어떤 삶의 무게조차도 그 안에 있는 방향성을 쉽게 꺾지는 못할 그 무엇을.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백미러로 오래 바라본다. 그의 내일이 오늘의 단단함 위에서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