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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

[스크랩] 인상파 / 기혁

작성자시강|작성시간11.12.02|조회수30 목록 댓글 0

인상파

 

   기 혁

 

 

 

세상의 빛을 모두 섞으면

환해진다.

빨강은 파랑에게 파랑은 초록에게

서로를 양보하고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때문.

 

무수한 빛깔들,

이를테면 아이를 잃은 여인의 눈물은

보랏빛을 더욱 연하게 만들고

배신당한 악공의 기타는

초록을 연둣빛으로 바꿔놓는다.

 

보이는 것보다

들려온 빛깔들이 점점 많아지면,

자신에게서 가장 먼 것들의 이름부터

차례로

속을 내비칠 수 있었을 텐데.

맹인의 검은 동자가

미래를 예언하던 시절에도

우리의 구원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선 매번

어두운 주변이 필요하고,

손전등을 비추다 맞닥뜨린 진실은

노상강도를 닮아가는 법.

 

모든 것을 빼앗긴 끝에

목숨만을 부지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만

희미해진다.

 

주황이 남색을 양보하듯이

남색이 노랑을 양보하듯이

색약의 윤리는 모조리,

캔버스 위 사인 속에 감춰 두고서.

 

 

 

                         —《詩로 여는 세상》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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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혁 / 1979년 경남 진주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재학. 2010년 《시인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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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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