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원_ 왕보리수
나무 외 1편
곽재구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모르는 이들은
만행 중인 바람이
나무의 심연을 헤적인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무는 제 앞에 선 인간에게
더덕 꽃향기 짙은 제 몸의 음악을
고요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무는 춤을 출 때
잎사귀 하나하나
다른 춤의 스텝을 밟는다
인간인 당신이 나뭇잎 속으로 들어와 춤을 출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다가 홀연 당신 또한
온몸에 푸른 실핏줄이 퍼져 나간 은빛 이파리가 된다
인간이 아닌 나무가
인간인 내게
시를 읽어 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땅에 누우면
당신도 나란히 나무 곁에 누워
눈보라가 되거나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된다
먹기와집 마당을 뒤덮는 채송화 꽃밭이 된다
부겐빌레아
꽃이 필 때 아무 소리가 없었고
꽃이 질 때 아무 소리가 없었다
맨발인 내가
수북이 쌓인 꽃잎 위를 걸어갈 때
꽃잎들 사이에서 고요한 소리가 들렸다
오래전
내가 아직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그 소리를 만난 적 있다
세월이 가고
눈물과 눈물 사이로 난
헐벗은 강을
당신과 내가 손잡고 건널 때에도
고요한 그 소리는 들릴 것이다
- 『ASIA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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