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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

[스크랩] [아시아 2011 겨울] 나무 외 1편/ 곽재구

작성자시강|작성시간11.12.18|조회수15 목록 댓글 0

 * 박정원_ 왕보리수

 

 

 

 

나무 외 1편

 

        곽재구

 

 

인간인 내가

인간이 아닌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모르는 이들은

만행 중인 바람이

나무의 심연을 헤적인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무는 제 앞에 선 인간에게

더덕 꽃향기 짙은 제 몸의 음악을

고요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무는 춤을 출 때

잎사귀 하나하나

다른 춤의 스텝을 밟는다

인간인 당신이 나뭇잎 속으로 들어와 춤을 출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다가 홀연 당신 또한

온몸에 푸른 실핏줄이 퍼져 나간 은빛 이파리가 된다

 

인간이 아닌 나무가

인간인 내게

시를 읽어 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땅에 누우면

당신도 나란히 나무 곁에 누워

눈보라가 되거나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된다

먹기와집 마당을 뒤덮는 채송화 꽃밭이 된다

 

 

 

 

 

 

 

 

부겐빌레아

 

 

꽃이 필 때 아무 소리가 없었고

꽃이 질 때 아무 소리가 없었다

 

맨발인 내가

수북이 쌓인 꽃잎 위를 걸어갈 때

꽃잎들 사이에서 고요한 소리가 들렸다

 

오래전

내가 아직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그 소리를 만난 적 있다

 

세월이 가고

눈물과 눈물 사이로 난

헐벗은 강을

당신과 내가 손잡고 건널 때에도

고요한 그 소리는 들릴 것이다

 

 

 

- 『ASIA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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