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손종호
부드럽고 푸른 뱀이다.
움켜쥐는 법이 없다.
그가 움켜쥐는 것은 앞으로 나가기 위한 전도의 포석,
그의 보폭은 좁고 그의 손은 연약하나 끈질기다.
깊은 밤에 움직이며 새벽이면 이미 목을 조른다.
뿌리조차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줄기가 닿는 곳이 뿌리요 또 하나의 거점이다.
홀로 기립할 수 없으니 모두가 표적이며 건강한 슬픔의 목발인 셈이다.
빛의 배후에 어둠이 있다면
직선 곁에 곡선, 평안 곁에 불안, 바위 곁에 풀잎
모든 것들은 제 홀로 아름답다.
오늘도 한 걸음씩의 모략으로 절망의 등을 타고 오르는 자여.
지평 저 너머 바람의 보행을 보라.
바로 서 있는 것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의 머리 위가 비어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시와 표현》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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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호 / 1949년 대전 출생. 1979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시 「안개」당선. 계간 《문학마당》주간. 충남대 국문과 교수. 시집 『새들의 현관』『투명한 사랑』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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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시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