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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공부

수덕문 9절

작성자심우기|작성시간26.06.22|조회수12 목록 댓글 0

제9절..도성덕립은 바르게 닦아 나아가야만 이루어지는 것인데 바르게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음을 걱정하시고 수덕문을 쓰게 된 심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원문)

雖然 道成德立 在誠在人 或聞流言而修之 或聞流呪而誦焉 豈不非哉 敢不憫然 憧憧我思 靡日不切 彬彬聖德 或恐有誤 是亦不面之致也 多數之故也 遠方照應而 亦不堪相思之懷 近欲敍情而必不無指目之嫌 故 作此章 布以示之 賢我諸君 愼聽吾言

 

수연(雖然)이나 도성덕립(道成德立)은 재성재인(在誠在人)이라 혹문유언이수지(或聞流言而修之)하고 혹문유주이송언(或聞流呪而誦焉)하니 기불비재(豈不非哉)며 감불민연(敢不憫然)가 동동아사(憧憧我思)는 미일부절(靡日不切)이요 빈빈성덕(彬彬聖德)을 혹공유오(或恐有誤)라 시역불면지치야(是亦不面之致也)요 다수지고야(多數之故也)라

원방조응이(遠方照應而) 역불감상사지회(亦不堪相思之懷)요 근욕서정이필불무지목지혐(近欲敍情而必不無指目之嫌)이라 고(故)로 작차장(作此章)하여 포이시지(布以示之)하니 현아제군(賢我諸君)은 신청오언(愼聽吾言)하라.

 

비록 그러나 도성덕립이 되는 것은 정성에 있고 사람에 달렸느니라. 혹은 떠도는 말을 듣고 닦으며 혹은 떠도는 주문을 듣고 외우니,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며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안타까운 나의 심정은 날로 간절치 않은 날이 없고, 빛나는 거룩한 덕을 혹 그르칠 까 두려워하노라. 이것은 또한 직접 만나지 못한 탓이요, 사람이 많은 까닭이라. 먼 곳에서도 서로 마음과 마음은 비치어 응하지만 또한 그리운 회포를 이기지 못하겠고, 가까이 만나서 정회를 펴고자 하나 반드시 지목 받을 혐의가 없지 아니하므로 이 글을 지어 펴서 보이니, 어진 그대들은 삼가 나의 말을 들을지어다

 

*수연(雖然)이나 도성덕립(道成德立)은 재성재인(在誠在人)이라

비록 그러나 도성덕립이 되는 것은 정성에 있고 사람에 달렸느니라.

▶비록 그러나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서는 것은 본인의 정성에 있고 지도하는 사람에 있느니라.

*도성덕립(道成德立) 재성재인(在誠在人)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서게 하는 것은 지극한 정성을 드려야 하고 지극한 정성을 드리되 바른 지도자를 만나서 바른 지도를 받고 바르게 닦고 바르게 정성을 드려야 되는 것이다.

 

교훈가에서는 "도성입덕하는 법은 한가지는 정성이요, 한가지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수덕문에서는 도 닦는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바른 지도자를 만나서 바르게 알고 바르게 닦아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며

 

교훈가에서는 대신사님이 자질(아들들과 조카들)들에게 직접 가르치시면서 그대로 따라 행하라고 강조하신 말씀이니 내 말대로 따라 행하여 지극한 정성을 드리는 사람만이 도성입덕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혹문유언이수지(或聞流言而修之)하고 혹문유주이송언(或聞流呪而誦焉)하니

혹은 떠도는 말을 듣고 닦으며 혹은 떠도는 주문을 듣고 외우니

▶어떤 사람들은 흘러 다니는 말을 듣고 도를 닦는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흘러 다니는 주문 소리를 듣고 외우니

혹 문유언이수지(或聞流言而修之) 혹 문유주이송언(或聞流呪而誦焉)

도를 닦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닦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남들이 도를 닦는다는 말을 듣고 도 닦는 법도 모르면서 무조건 도를 닦는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흘러 다니는 주문소리를 듣고 무슨 주문을 어떻게 외우는 것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기불비재(豈不非哉)며 감불민연(敢不憫然)가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며 어찌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찌 잘 못되지 않겠으며 참말로 민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도를 닦는 사람들은 대신사님의 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말을 듣고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도를 닦는다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입도식도 하지 않고 한울님을 위하는 방법도 모르고 도 닦는 절차도 모르며 주문이 무엇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면서 주문을 외우게 되면 영적, 기적 등이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 무조건 외우니 대신사님께서는 혹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하시고 염려하신 것이다.

 

*동동아사(憧憧我思)는 미일부절(靡日不切)이요

안타까운 나의 심정은 날로 간절치 않은 날이 없고

▶안타까워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답답한 나의 생각은 날마다 간절하지 않을 때가 없고

*동동(憧憧)..뜻을 못정할 동

*동동아사(憧憧我思)..뜻을 정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내 생각

*미일부절(靡日不切)..없을 미. 간절할 절

날마다 간절하지 않은 때가 없다. 날마다 간절하게 생각한다. 간절하게 염려 한다.

 

*빈빈성덕(彬彬聖德)을 혹공유오(或恐有誤)라

빛나는 거룩한 덕을 혹 그르칠 까 두려워하노라

▶빛나고 빛나는 거룩한 덕을 혹 그릇되게 하는 것이 있을 까 두렵게 생각되니라.

*혹 공 유오(或恐有誤)..혹 그릇되게 할까 두렵다. 잘못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 동동아사(憧憧我思)미일부절(靡日不切)빈빈성덕(彬彬聖德) 혹 공 유오(或恐有誤)

도를 바르게 닦지 못하면 그릇된 방향으로 흐르게 되므로 대신사님께서는 만에 하나라도 혹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근심하신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다.

 

*시역 불면지치야(是亦不面之致也)요 다수지고야(多數之故也)라

이것은 또한 직접 만나지 못한 탓이요, 사람이 많은 까닭이라.

▶이러한 것은 또한 내가 직접 만나서 가르치지 못하여 생기는 것이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라.

*是亦(시역)..이 또한 (도를 잘못 닦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또한)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직접 바르게 지도해 줘야 될 것인데, 사람 수가 많아서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가르치지 못함으로 바르게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것이다.

 

*원방조응이(遠方照應而) 역불감상사지회(亦不堪相思之懷)요

먼 곳에서도 서로 마음과 마음은 비치어 응하지만 또한 그리운 회포를 이기지 못하겠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생각만을 할 뿐이니, 서로 만나고 싶은 회포를 견디지 못하고

*원방(遠方)..먼 곳.

*조응(照應)..비추어 응한다. 서로 생각한다.

*불감(不堪)..감당하지 못한다. 견딜 

*상사지회(相思之懷)..서로 만나고 싶은 회포

대신사님께서 일일이 찾아다니시면서 바르게 지도해 주시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하셨으니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거리 관계로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다닐 수가 없으니 마음으로 애타게 생각만 할 뿐이다.

 

*근욕서정이 필불무지목지혐(近欲敍情而必不無指目之嫌)이라

가까이 만나서 정회를 펴고자 하나 반드시 지목 받을 혐의가 없지 아니하므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직접 만나서 정다운 말을 나누고자 하나 반드시 지목의 혐의가 있어,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서정(敍情)..뜻을 펴다. 펼  뜻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찾아다니면서 바르게 가르쳐 줄 수가 있지마는 관의 지목이 혐의가 있으니 일일이 찾아다니며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이 수덕문을 지어서 돌려주니 이 수덕문을 보고 바르게 잘 닦으라고 하신 말씀이다.

 

*고(故)로 작차장(作此章)하여 포이시지(布以示之)하니 현아제군(賢我諸君)은 신청오언(愼聽吾言)하라.

이 글을 지어 펴서 보이니, 어진 그대들은 삼가 나의 말을 들을지어다

▶그러므로 이 수덕문을 지어서 널리 펴 보이니 나를 따르는 제군들은 삼가 나의 말을 들으라.

*작 차장(作此章)..수덕문을 짓다.

*포이시지(布以示之)..펴서 보인다.

*현아제군(賢我諸君)..나를 따르는 동학을 하는 제군들은

*신청오언(愼聽吾言)..조심해서 내 말을 잘 들으라. 이 수덕문에서 가르쳐 준 말을 어기지 말고 그대로 믿고 닦아 나아가라.

 

(풀이)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영적 기적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영적 기적등은 누구든지 굳게 믿고 지극한 정성을 드리기만 하면 나타나지는 것이다.

 

수도의 목적은 도성덕립이 되는데 있다. 도성덕립이 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극한 정성을 드리는 것이요 하나는 바른 지도를 받는데 있는 것이니, 먼저 지극한 정성을 드려야 하고 지극한 정성을 드리되 도를 바르게 아는 선생을 만나서 바르게 지도를 받고 바르게 닦아야만 도성덕립이 되는 것이다.

만일 지극한 정성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선생을 만나지 못하여 올바른 지도를 받지 못한다면 바르게 닦지 못함으로 도성덕립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도를 닦으면 많은 기적이 나타난다는 말만을 듣고 도 닦는 법이나 절차 등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정성을 드리는 사람도 있고 주문이 무엇 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주문을 자꾸 외우면 영적, 기적이 나타나고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 된다는 말만을 듣고 남들이 외우는 주문소리를 듣고 무조건 따라 외우니, 이 어찌 옳은 일이라고 하겠는가? 이러한 사람들은 도성덕립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좋지 못한 일들이 생길 것이 분명한 사실이니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사님께서는 날마다 염려하시지 않을 때가 없으신 것이니, 아름답고 거룩한 덕을 혹 잘못 닦을까 염려하고 두려운 생각이 드시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바르게 닦지 못하여 혹 잘못되어진다면 그 것은 그 사람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도 발전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고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므로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한 두 사람이 아니고 수가 많기 때문에 먼 곳에 있는 많은 사람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가 없음으로 인하여 생겨지는 것이다.

멀리 있는 사람들은 일일이 찾아가지 못하고 서로 생각만을 할 뿐이니 서로 만나고 싶은 회포를 금할 수 없고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가르쳐 줄 수가 있지만 관가의 지목 때문에 그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덕문을 지어서 도를 닦는 사람들에게 널리 펴 보이는 것이니, 나의 도를 닦는 사람들은 이 수덕문에서 가르친 말대로 바르게 닦기를 부탁하시면서 수덕문을 쓰시게 된 동기를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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