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문 제4절 ..
대신사님께서 도를 받으시기 전(기미년 10월까지)에 어려웠던 시절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신 바 크다. 냉철히 자기가 처해진 현실을 돌아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재사심정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원문)
難禁歲月之如流 哀臨一日之化仙 孤我一命 年至二八 何以知之 無異童子 先考平生之事業 無痕於火中 子孫不肖之餘恨 落心於世間 豈不痛哉 豈不惜哉
난금세월지여류 애림일일지화선 고아일명 연지이팔 하이지지 무이동자 선고평생지사업 무흔어화중 자손불초지여한 낙심어세간 기불통재 기불석재
세월의 흘러감을 막을 길이 없어 하루 아침에 신선되는 슬픔을 당하니 외로운 나의 한 목숨이 나이 겨우 열여섯에 무엇을 알았으리오. 어린 아이나 다름이 없었더라. 아버지의 평생 사업은 불 속에서 자취마저 없어지고 자손의 불초한 여한은 세상에서 낙심하게 되었노라. 어찌 슬프지 아니하며 어찌 애석치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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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금세월지여류(難禁歲月之如流)하여 애림일일지화선(哀臨一日之化仙)하니 고아일명(孤我一命)이 연지이팔(年至二八)에 하이지지(何以知之)리오 무이동자(無異童子)러라 선고평생지사업(先考平生之事業)은 무흔어화중(無痕於火中)이요 자손불초지여한(子孫不肖之餘恨)은 낙심어세간(落心於世間)이라 기불통재(豈不痛哉)며 기불석재(豈不惜在)아
세월의 흘러감을 막을 길이 없어 하루아침에 신선되는 슬픔을 당하니 외로운 나의 한 목숨이 나이 겨우 열여섯에 무엇을 알았으리오. 어린아이나 다름이 없었더라. 아버지의 평생사업은 불 속에서 자취마저 없어지고 자손의 불초한 여한은 세상에서 낙심하게 되었노라. 어찌 슬프지 아니하며 어찌 애석치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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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금세월지여류(難禁歲月之如流)하여 애림일일지화선(哀臨一日之化仙)하니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없어 하루아침에 돌아가시는 슬픔을 당하게 되니
*난금....금하기 어렵다.
*여 류(如流)...세월이 물 흐르듯이 흘러간다.
난금세월지여류(難禁歲月之如流)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이 빨리 흘러가는 것을 한탄하신 것이니, 세월이 빨리 흘러 아버지께서 빨리 돌아가신 것을 한탄하신 것이다.
*애림(哀臨)...슬픔을 당했다. [슬플 애 임할 임]
*화선(化仙)...돌아가신 것을 뜻한다.
애림일일지화선(哀臨一日之化仙)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당했다.
고아 일 명(孤我一命)이 년지이팔(年至二八)에 하이지지(何以知之)리오
무이동자(無異童子)러라
→외로운 나의 한 생명이 나이 겨우 열여섯이 되었더라. 무엇을 알았으리오. 어린아이와 다름이 없었더라.
*년지이팔(年至二八)..나이가 이팔(2×8=16)에 이르렀다.대신사님께서 16세되시던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나이는 비록 16세가 되었으나 어린아이와 같아서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선고평생지사업(先考平生之事業)은 무흔어화중(無痕於火中)이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한 평생동안 하시던 사업은 불 속에서 흔적조차 없어졌고
先考(선고)..돌아가신 아버지
무흔어화중(無痕於火中)..불에 타버려서 흔적조차 없게 되었다.痕(흔).. 흔적 흔
.자손불초지여한(子孫不肖之餘恨)은 낙심어세간(落心於世間)이라 기불 통재(豈不痛哉)며 기불석재(豈不惜在)아
→자손으로서 착하지 못하여 잘하지 못한 여한은 세상에서 낙심만 하게 되었더라.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으며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손 불초지 여한(子孫不肖之餘恨) 낙심어세간(落心於世間)
아버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 효도를 잘 받들지 못했고 돌아가신 뒤에도 잘하지 못해서 아버님께서 하시던 일들도 모두 다 태워 버리게 되었으니 자식으로서 낙심을 하게 되었다고 하신 말씀이다.
심유가정지업(心有家庭之業)이나 안지가색지역(安知稼穡之役)이며
서무공과지독(書無工課之篤)하니 의추청운지지(意墜靑雲之地)라
가산(家産)이 점쇠(漸衰)하니 미지말초지여하(未知末稍之如何)요
년광(年光)이 점익(漸益)하니 가탄신세지장졸(可歎身勢之將拙)이라
요난팔자(料難八字)하니 우유한기지려(又有寒飢之慮)요 염래사십(念來四十)하니 기무불성지탄(豈無不成之歎)가 소혈(巢穴)을 미정(未定)하니 수 운천지지광대(誰云天地之廣大)며 소업(所業)이 교위(交違)하니 자련일신지난장(自憐一身之難藏)이라
마음으로는 가정을 돌볼 생각이 있지마는 어찌 심고 거두는 일을 알며 글공부를 독실히 하지 못하였으니 벼슬할 생각이 없어졌노라. 살림이 점점 어려워지니 나중에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고 나이 차차 많아가니 신세가 장차 궁졸해 질 것을 걱정하였노라. 팔자를 헤아려보니 춥고 굶주릴 염려가 있고 나이 사십이 된 것을 생각하니 어찌 아무런 일도 해 놓은 것이 없음을 탄식하지 않으랴. 몸담을 곳을 정하지 못하였으니 누가 천지가 넓고 크다고 하겠으며 하는 일마다 서로 어긋나니 스스로 한 몸 간직하기가 어려움을 가엾게 여겼노라.
*심유가정지업(心有家庭之業)이나 안지가색지역(安知稼穡之役)이며
마음은 가정을 잘 돌보려고 생각하고 있으나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을 할 줄 모르며
*安知(안지)..어찌 알겠느냐
*稼穡之役(가색지역)..심을 가 거둘 색 어조사 지 역사 역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
마음은 집안 살림을 잘 돌보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진리만을 찾으시다 보니 농사일을 배우지 못하여 할 줄 모르니 돌볼 수도 없다.
서무공과지독(書無工課之篤)하니 의추청운지지(意墜靑雲之地)라
글공부도 과거 고우를 독실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벼슬을 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니라.
篤(독)..돈독할 독 墜(추)..떨어질 추
靑雲(청운)..벼슬
청운지지(意墜靑雲之地)..뜻이 청운의 곳에 떨어지다.
과거공부를 독실하게 하지 않았으니 벼슬하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가산(家産)이 점쇠(漸衰)하니 미지말초지여하(未知末稍之如何)요
집안 살림살이가 점점 더 어려워지니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末稍(말초)..끝 如何(여하)...어떠하다
미지 말초지 여하(未知末稍之如何)
앞으로 나이가 많아진 뒤에 가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년광(年光)이 점익(漸益)하니 가탄신세지장졸(可歎身勢之將拙)이라
나이가 점점 더 많아지니 신세가 장차 궁졸해 질 것을 탄식하노라
將 拙(장졸)..장차 궁졸해진다. 장래 장, 소졸(못날) 졸
년광(年光)..나이
요난팔자(料難八字)..어려운 팔자를 헤아려보니
料(료)..헤아릴 요
팔자라는 것은 태어난 생년월일 생일 생시의 간지 여덟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옛날 사람들은 태어날 때 모든 것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스승님께서는 자신의 운명을 말씀하신 것이니 어려운 팔자라는 것은 3살에 어머니를 여위시고 16세 때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집에는 불이 나서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게 되었고 농사일도 할 줄 모르고 과거공부도 독실하게 공부하지 못해서 과거 볼 생각조차 못하고 집안 살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모든 일은 잘 안되고 나이는 점점 더 많아지고 거처할 집조차 변변치 못하고 게다가 배고프고 추위에 살아갈 걱정 등 모든 것이 어려운 처지이므로 어려운 팔자라고 하신 것이다.
우유한기지려(又有寒飢之慮)요
또한 춥고 굶주릴 염려가 있고
又 有(우 유)..또 있다.
한기지려(寒飢之慮)...춥고 배고픈 근심.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도 많고 생각할 일도 많은데 게다가 또 얼어죽고 굶어 죽지 않겠는가 하는 것까지 염려해야 된다.
염래사십(念來四十)하니 기무불성지탄(豈無不成之歎)가
나이가 40이 된 것을 생각하니 어찌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음을 탄식하지 않겠는가.
대신사님께서는 진리를 탐구하신다고 했지만 나이 40이 거의 다 될 때까지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 놓으신 것이 없으니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고 탄식하셨다는 말씀이다.
소혈(巢穴)을 미정(未定)하니 수운천지지광대(誰云天地之廣大)며 소업(所業)이 교위(交違)하니 자련일신지난장(自憐一身之難藏)이라
거처할 방도 한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으니 누가 천지가 넓고 크다고 말하겠으며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고 어그러지니 한 몸 간직하기도 어렵게 된 것을 스스로 가련하게 생각하노라.
소혈(巢穴)..둥우리 소 구멍 혈
소는 새들이 나무위에서 둥우리를 틀고 사는 것이고
혈은 짐승들이 땅에 굴을 파고 사는 것을 말함.
誰(수)...누구 수
소혈(巢穴) 미정(未定) 수운천지지 광대(誰云天地之廣大)
날아다니는 새들도 둥우리를 틀고 살며 뛰어 다니는 짐승들도 굴을 파고 사는데 수운 스승님은 40이 거의 다 되도록 거처할 집도 제대로 장만하지 못하였으니 누가 천지가 넓고 크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어 가난한 신세를 말씀하신 것.
소업(所業)교위(交違) 자련일신지난장(自憐一身之難藏)
소업(所業).. 하는 일
교위(交違)..서로 어긋나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련(自憐)..스스로 자기 자신을 불쌍하게 여긴다. 불쌍할 련
난장(難藏)..간직하기 어렵다.
대신사님께서는 집안 살림을 도우시려고 이 일 저 일 여러 가지 일을 해 보셨지만 하는 일마다 모두 다 어그러지고 안되니 스스로 자기 한 몸 간직하기 어렵게 된 처지가 불쌍하게 느껴진다고 하신 것이다.
[풀이]
세월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아버지께서 하루아침에 돌아가시는 슬픔을 당하게 되니 외로운 나의 나이 겨우 16세이었다. 철모르는 어린아이와 다른 것이 없었으니 무엇을 알았으리요. 집에는 불이 나서 아버지께서 평생동안 하시던 사업은 책이고 세간이고 모두 다 불에 타 버렸다. 사람이 자식된 자로서 살아 계실 때에는 효도로 섬기지 못했고 돌아가신 뒤에는 하시던 사업도 지키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으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마음은 집안을 잘 돌보고 살림도 잘 해보려고 생각하지만 인심 풍속을 살피고 제세안민할 수 있는 길를 찾기 위해서 주유천하를 하다 보니 농사일을 배우지 못하여 농사일을 할 줄도 모르며 진리만을 찾다보니 과거공부도 독실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과거를 볼 생각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집안 살림살이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가니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며 나이는 점점 더 많아지니 내 신세가 장차 궁졸하게 될 것을 탄식하게 된다. 어려운 내 팔자를 헤아려 보니 얼어죽고 게다가 굶어 죽지 않겠는가 하는 근심이 있고 나이는 벌써 40이 가까워진 것을 생각하니 아무 것도 해 놓은 것이 없음을 탄식하게 된다. 날아다니는 새들도 다 둥우리를 틀고 살며 뛰어다니는 짐승들도 모두 굴을 뚫어 잘 사는데 하물며 사람으로서 거처할 방 한 간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천지가 넓고 크다고 할 수 있겠으며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장차 이 몸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한 몸을 간직하기도 어렵게 된 것을 생각하니 스스로 내 신세가 불쌍하게 느껴진다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은 그 당시 대신사님의 심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당시 대신사님의 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해서 그 당시 대신사님의 주위환경과 여건등을 경암선생님의 자료를 참고로하여 대충 살펴보기로 한다.
대신사님의 가정은 대대로 덕을 닦아 온 집안으로서 7대조 할아버지인 최진립은 선조27년(1594)에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당시 정유 재침때 많은 공을 세워 선무공신이 되었으며 병자호란때에는 공주 영장으로 있으면서 남한산성이 포위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와서 싸우다가 용인 험천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용산 서원을 세워 주었다. 그 뒤로 내려오면서 계속해서 덕을 쌓아왔다. 아버지 근암공께서는 도덕 문장이 뛰어나 경상도 일원에서는 모르는 선비가 없었다. 이와 같이 덕을 닦아 온 훌륭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대신사님께서는 자연히 성인의 기질을 가지시고 태어나셨으니,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셨고 사물을 관찰하시고 생각하시는 것이 보통이 아니셨다.
10세가 되시니 인심풍속이 괴이한 것을 한탄하시고 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를 주소간(晝宵間)탄식하게 되시니 요순시대 백성들은 다 요순같이 착했다고 하는데 이 세상인심은 왜 이렇게 각박하여 모든 사람들이 각자위심하여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것일까? 지금의 사정으로 봐서 앞으로는 더 심할 것이니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필경 나라가 망하고 이 세상은 망하게 될 것이고 모든 인류가 멸망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해야 나라를 보전하고 망해가는 세상을 건지며 죽음에 처해 있는 인류를 구하여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고 모든 인류가 다 같이 서로서로 위하고 도우면서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시게 되셨으니 울울한 그 회포를 가슴에 가득하되 풀 길이 없으셨다. 그러던 중 16세 때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니 비통한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당시 사회제도가 적서의 차별이 심하였으므로 비록 서자가 아닌 후취처의 소생으로서 상주노릇도 제대로 못하셨을 것이고 차별도 받으셨을 것이다. 이에 인심풍속이 괴이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시게 되셨다. 새로운 진리를 찾아야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시고 초상을 치른 후에 방에 들어앉아 집에 쌓여 있는 많은 책들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의 서적을 아무리 살펴봐도 거기에는 사회제도를 바로잡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주고 정신을 개벽해 줄 수 있는 진리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불경을 구하여 연구하셨으나 거기에도 역시 새로운 진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3년상을 마치게 되었다.
3년 상을 치른 지 얼마 안되어 집에 불이 나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은 세간이고 책이고 가보등이 모두 다 불에 타버렸다. 집이 타 버리니 거처할 곳도 없다. 집을 다시 짓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 먹을 식량도 없으며 진리를 찾겠다는 생각 때문에 집을 다시 지으려는 마음도 생기지 않으셨다. 며칠동안 깊은 생각을 하시다가 부인과 아이들을 울산 처가댁에 데려다 주시고 이 세상 어딘가에 혹시 인심풍속이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그러한 진리를 찾아보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굳히시고 분연히 고향을 떠나 주유천하(周遊天下)의 길에 오르신 것이다.
가는 곳마다 인심풍속을 살피시고 학자나 선비들을 찾아 진리를 물어보시고 토론을 하셨으며 그 지방의 전설이나 숨겨져 있는 일,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일들도 물어 보시고 살펴보셨으며 새로 발견되는 책이 있으면 비록 변변치 못한 학자나 선비들이 써 놓은 시문(詩文)이나 문집(文集)까지도 밤잠을 주무시지 않으시고 검토해 보셨고 깊은 산에 들어가 도승(道僧)이나 도인(道人)들을 만나면 불교의 교리나 도에 대한 이론도 물어보셨고 정감록 파들을 만나면 정감록에 대해서도 물어 보시고 천주교인을 만나면 천주교 교리도 물어보시고 그 밖에 무슨 도를 하는 사람이든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찾아가 대화를 나누시고 진리를 아는가 물어 보시고, 음양, 복술, 점치는 책, 풍수, 지리 등 모든 것을 다 연구 검토해 보셨고 그밖에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연구하고 검토해 보셨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 봐도 인심풍속은 거의 다 같고 진리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망해 가는 이 세상을 건지고 모든 인류를 다 같이 잘 살게 할 수 있는 진리는 찾으래야 찾을 수 없으셨다.
어느 듯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기간의 고행은 말할 수 없었으니 장사를 하시기는 한다고 하셨지만 장사에 듯이 없었으므로 장사가 잘 될 리 없었다. 때로는 걸인 취급을 당하셨고 문전 박대도 받으셨고 추녀 밑에서 잠을 자기는 고사하고 풀밭 바위굴에서 잠을 자고 며칠씩 굶고 나무 껍질 풀뿌리로 연명하신 적도 많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모진 고통을 겪으시면서 새로운 진리를 찾으셨으나 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새로운 진리는 찾을 수 없으니 제세안민 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는 내가 연구하여 찾아낼 수밖에 없다고 굳게 결심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던 것이다.
처가의 도움과 친지들의 도움으로 울산 유곡 여시바위 골에 자그마하게 집을 짓고 새로이 살림살이를 시작하셨다. 집안 식구를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나 주유천하를 하면서 진리만을 탐구했을 뿐이요 아무것도 모르니 할 수가 없다. 일을 할 줄도 모르고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니 농사도 지을 수 없고 품팔이도 할 수가 없다. 장사를 해 보려 했고 이것저것 해 보았으나 모든 일이 하나같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셨다. 하는 수 없이 모든 일을 부인에게 맡기시고 진리를 탐구하시고 깊은 사색을 하시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집안 살림살이는 점점 어려워 가고 있으니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며 앞날을 생각해보니 굶어 죽고 얼어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는 것이다. 기미년 가을에 가서는 지붕은 뚫어져 비가 새고 벽은 떨어져 바람이 들어오며 게다가 흉년이 들어 사모님께서 품팔이도 제대로 못하셨고 처가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도저히 겨울을 지낼 수가 없었다. 진리를 찾아 내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으니 이제 고향에 돌아가서 마지막으로 진리를 한 번 더 연구해 보고 죽겠다는 생각을 가지시고 처자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그 강시 대신사님의 주위환경이 이러 했으므로 한 몸 간직하기도 어렵게 된 자신이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된다고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