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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공부

수덕문 3절

작성자심우기|작성시간26.06.22|조회수25 목록 댓글 0

 

수덕문

제3절

아버지 근암공은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덕을 닦아 훌륭한 분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버지 근암공께서도 때를 만나셨다면 큰 일을 하셨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여 아무 일도 못하시고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신 것이다.

(경전원문)

噫 學士之平生 光陰之春夢 年至四十 工知笆籬之邊物 心無靑雲之大道 一以作歸去來之辭 一以詠覺非是之句 携笻理履怳若處士之行 山高水長 莫非先生之風 龜尾之奇峯怪石 月城金鰲之北 龍湫之淸潭寶溪 古都馬龍之西 園中桃花 恐知漁子之舟 屋前滄波 意在太公之釣 檻臨池塘 無違濂溪之志 亭號龍潭 豈非慕葛之心 

 

슬프다. 학사의 평생은 세월이 봄 꿈과 같이 흘러가서 나이 사십에 이름에, 공부한 것은 울타리 가에 버린 물건으로 아시고 마음에는 벼슬할 뜻이 없었노라. 한편으로는 귀거래사를 지으시고 한편으로는 각비시의 글귀를 읊으시니라.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은 것은 마치 처사의 행색 같고, 산이 높고 물이 긴 것은 선생의 풍도와 다름이 없 더라. 구미산의 기이한 봉우리와 괴이한 돌은 월성 금오산 북쪽이요, 용추의 맑은 못과 보배로운 시내는 옛 도읍 마룡의 서쪽이라. 동산 가운데 복숭아꽃은 고기잡이 배가 알까 두려워 함이요, 집 앞에 푸른 물은 뜻이 강태공의 낚시에 있었더라. 난간이 못가에 다다름은 주렴계의 뜻과 다름이 없고, 정자 이름을 용담이라 함은 제갈량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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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噫) 학사지평생(學士之平生) 광음지춘몽(光陰之春夢)이라

연지사십(年至四十)에 공지 파리지변물(工至籬之邊物)이요 심무청운지대도(心無靑雲之大道) 일이작 귀거래지사(一以作 歸去來之辭)하고 일이영 각비시지구(一以詠 覺非是之句)라

 

희(噫) 학사지평생(學士之平生) 광음지춘몽(光陰之春夢)이라

슬프다. 학사의 평생은 세월이 봄꿈과 같이 흘러가서

슬픈 일이다. 아버지의 한평생은 세월을 봄꿈과 같이 덧없이 보내셨으니

*광음(光陰)...光은 해, 陰은 달을 뜻한 것으로서 광음은 세월을 말한 것이며 춘몽은 봄꿈과 같이 덧없이 다 지나갔다는 것.

 

연지사십(年至四十)에 공지파리지변물(工知笆籬之邊物)이요

나이 사십에 이름에 공부한 것은 울타리가에 버린 물건으로 아시고

연세가 사십에 이르시어 공부하신 것은 파촉 울타리가에 내버려둔 쓸모없는 물건으로 아시고

*파촉籬...파촉꽃을 심어 놓은 울타리

*공지 파리지변물(工知笆籬之邊物)

공부하신 것은 화초를 심어 놓은 울타리 가에 내버린 쓸모없는 물건 같이 알았다. 당시 사회에서 과거를 보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나이 40이 되셔서도 벼슬에 뜻이 없으시므로 공부한 것이 쓸모없이 되었다는 말.

*심무청운지대도(心無靑雲之大道)

마음에는 벼슬할 뜻이 없었노라

마음에 벼슬을 하고자 하는  큰 뜻 없었으니

.청운지 대도(靑雲之大道)... 청운은 벼슬, 마음에 벼슬을 하고자 하는 큰 뜻이 없다.

*일이작 귀거래지사(一以作 歸去來之辭)하고 일이영 각비시지구

(一以詠 覺非是之句)라

한편으로는 귀거래사를 지으시고 한편으로는 각비시의 글귀를 읊으시니라.    영(詠)...읊을 영

→한편으로는 귀거래사와 같은 글을 지으시고 한편으로는 귀거래사의 󰡒이제가 옳고 어제가 글렀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귀를 읊으시니라.

옛날 중국 진(晋)나라 때에 도연명이라는 사람이 팽택령이라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전원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귀거래사󰡑라는 글을 지었는데 근암공께서도 귀거래사와 같은 글을 지으셨다는 말로서

*각비시지구(覺非是之句)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 속에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이제가 옳고 어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라는 말이 있는데 근암공께서 이 시를 즐겨 읊으셨다는 말. 이것은 근암공이 벼슬을 하실 뜻이 없으신 것이 도연명과 같으셨다고 하신 말씀이다.

 

휴공이리(携?理履)는 황약 처사지행(怳若 處士之行)이요 산고수장(山高水長)은 막비 선생지풍(莫非 先生之風)이라 구미지기봉괴석(龜尾之奇峯怪石)은 월성금오지북(月城金鰲之北)이요 용추지청담보계(龍湫之 淸潭寶溪)는 고도마룡지서(古都 馬龍之西)라. 원중도화(園中桃花)는 공지어자지주(恐知漁子之舟)요 옥전창파(屋前滄波)는 의재태공지조(意在太公之釣)라.

함림지당(檻臨池塘)은 무위염계지지(無違濂溪之志)요 정호용담(亭號龍潭)은 기비모갈지심(豈非慕葛之心)가.

 

*휴공이리(携?理履)는 황약 처사지행(若 處士之行)이요

산고 수장(山高水長)은 막비 선생지 풍(莫非 先生之風)이라

지팡이를 짚고 짚신을 신은 것은 마치 처사의 행색 같고

산이 높고 물이 긴 것은 선생의 풍도와 다름이 없더라

대지팡이를 짚고 가죽신을 신으신 것은 마치 처사의 행색 같고

산이 높고 물이 긴 것은 선생의 모양과 다른 것이 없더라

.휴공이리(携笻理履)...이끌 휴, 대지팡이 공, 정리할 리, 가죽신 리

.황약(怳若)...거의 같다.

.처사지 행(處士之行)...벼슬을 버리고 숨어사는 처사들의 행색

 

휴공이리(携笻理履) 황약처사지행(怳若處士之行)

근암공께서 대 지팡이를 짚고 가죽신을 신고 다니신 행색이 마치 벼슬을 버리고 숨어사는 처사의 행동과 같다.

 

*산고수장(山高水長)은 막비선생지풍(莫非 先生之風)이라

중국 漢나라 때 엄자릉(嚴子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광무제

(光武帝)와 어렸을 때 친구였다. 광무제가 임금이 된 후 어렸을 때 친구인 엄자릉을 불러 간의대부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동강 칠리탄이라는 곳에 가서 낚시질을 하고 자연을 벗삼아 여생을 마쳤다. 후세 사람들이 “엄자릉의 풍상은 산이 높고 물이 긴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근암공께서 벼슬을 안하시고 시골에 묻혀 사시는 것이 엄자릉의 기풍과 같다고 하신 말씀이다.

*구미지기봉괴석(龜尾之奇峯怪石) 월성금오지북(月城金鰲之北)이요 용추지청담보계(龍湫之淸潭寶溪) 고도마룡지서(古都 馬龍之西).

구미산의 기이한 봉우리와 괴이한 돌은 월성 금오산 북쪽이요, 용추의 맑은 못과 보배로운 시내는 옛 도읍 마룡의 서쪽이라

구미산의 기묘하게 생긴 봉우리와 괴상하게 생긴 돌은 월성군 금오산 북쪽에 있고 용추의 맑은 못과 보배같은 시내는 옛 도읍 터인 마룡 땅 서쪽에 있다.

.용추(龍湫)...구미산에서 용담정 앞으로 흐르는 물의 작은 폭포이름.

.청담(淸潭)....맑은 못,  보계(寶溪)...보배같이 맑게 흐르는 시내   ...시내  계

*고도마룡지서(古都 馬龍之西)

고도는 옛날 도읍 터인 경주를 말하며 마룡은 구미산 아래 가정리에 있는 골 이름. 마용동, 마룡동에 있는 못을 마용 못이라고 했다.

 

원중도화(園中桃花) 공지어자지주(恐 知 漁子之舟) 옥전창파(屋前滄波) 의재태공지조(意在太公之釣).

동산 가운데 복숭아 꽃은 고기잡이 배가 알까 두려워 함이요,  집 앞에 푸른 물은 뜻이 강 태공의 낚시에 있었더라

동산 가운데 붉게 핀 복숭아꽃은 마치 무릉도원 같으니 고기잡이 배가 꽃잎을 따라 찾아 들어올까 두려워하는 것 같고 집 앞에 푸른 물결은 마치 강태공이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것과 같더라.

 

*원중도화(園中桃花) 공지어자지주(恐知漁子之舟)

고기잡이 배가 알까 두렵다.

이 말은 중국 진(秦)나라 때 진시황의 학정을 피하여 주씨(朱氏)와 진씨(陣氏)가 무릉이라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살면서 복숭아 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그 후 한(漢)나라때 어떤 어부가 복숭아 꽃이 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발견하고(복숭아 꽃은 인가 근처에 있는 것이므로) 인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꽃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니 한 곳에 복숭아 꽃이 만발한 별천지가 있어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주씨와 진씨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며칠을 묵다가 나와서 처자를 데리고 다시 그 아름다운 별천지를 찾아 가다가 길을 잃어 찾지 못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부터 주씨와 진씨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시끄럽게 할까 봐 봄이 되면 그물로 복숭아 꽃을 건져서 복숭아 꽃이 떠내려가지 못하게 했다고 전하여 온다. 뒤에 사람들이 이 곳을 󰡐별천지󰡑라 󰡐무릉도원󰡑이라 󰡐선원(仙園)󰡑이라고 했다.

이 말씀을 인용해서 근암공께서 당시 사회 정치가 뜻에 맞지 않으므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숨어사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의재태공지조(意在太公之釣).

뜻이 강태공의 낚시에 있다.

강태공이라는 사람은 옛날 중국 주(周)나라 때 사람으로서 큰 뜻을 품고 때를 기다리기 위하여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문왕(文王)을 만나서 국사가 되었으며 문왕의 아들 무왕(武王)을 도와서 천하를 얻게 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을 학정에서 구하여 편하게 살게 하였다. 이 말씀은 근암공께서 아무 뜻이 없이 숨어사시는 것이 아니라 장차 세상을 건져 보겠다는 큰 뜻을 품으시고 때를 기다리면서 계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함림지당(檻臨池塘) 무위염계지지(無違濂溪之志) 정호용담(亭號龍潭) 기비모갈지심(豈非慕葛之心).

난간이 못가에 다다름은 주렴계의 뜻과 다름이 없고  정자 이름을 용담이라 함은 제강량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난간이 못 가에까지 이른 것은 주렴계의 뜻과 다름이 없고 정자 이름을 용담이라고 한 것은 어찌 제갈량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함림지당(檻臨池塘)...난간 함 임할 임  지 못 당

못 옆에 지어 놓은 누각의 난간이 못가에까지 이르었다.

.무위염계지지(無違濂溪之志)

렴계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 없다.

옛날 중국 송(宋)나라 때 󰡐주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명한 유학자로서 진리를 연구하여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지어 유교발전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호남성 염계에서 살았다.

지방관으로서 행정을 잘하였으며 청렴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여산 연화봉 아래로 이사하여 그 곳 시냇물을 다시 염계라고 불렀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그를 󰡐염계󰡑라고 불렀으며 그는 연꽃을 좋아하여 연을 많이 재배하고 정자를 짓고 난간에 의지하여 연꽃을 보며 즐겼다고 한다. 이 말씀은  근암공께서 아무 뜻없이 숨어 사시는 것이 아니라 주렴계와 같이 새로운 진리를 연구하시면서 사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호용담(亭號龍潭) 기비모갈지심(豈非慕葛之心)

.정호 용담(亭號龍潭)...정자 이름이 용담이라는 말

.어찌  아닐 비 칡  어조사 지 마음 심

 

제갈량(제갈공명)은 옛날 중국 한나라 말엽 삼국시대 때 사람으로서 남양땅  초가집에 살면서 호(號)를 와룡(臥龍)이라고 하였다.  늘 나라 걱정을 하고 백성을 걱정하면서 살았다. 유비가 그 가 비범하다는 말을 듣고 세 번씩이나 그의 집으로 찾아가 도와주기를 간청하여 (삼고초려) 유비를 도와  촉한을 세우게 했다. 근암공께서 정자의 이름을 제강량의 호인 와룡이라는 龍자를 써서 용담이라고 이름하신 곳만을 보아도 제갈량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제갈량이 유비를 만나기 전에 초야에 묻혀 살던 것과 같이 근암공께서 초야에 살면서 나라를 걱정하시고 백성들을 생각하시면서 큰 뜻을 품으시고 계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풀이

슬픈 일이다.

아버지의 한 평생은 봄꿈과 같이 덧없이 세월이 지나갔다. 연세가 40이 되시니 힘써 공부하신 것은 울타리 밑에 내버려둔 쓸모 없는 물건같이 생각하시고 벼슬을 하시려는 큰 뜻이 없으셨으니, 마치 옛날 진(晉)나라 때 팽택령이라는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으면서 󰡐귀거래사󰡑라는 시를 짓고 그 시속에 있는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지금 농사를 짓는 것이 옳은 일이고 지난 날 팽택령이라는

 

벼슬을 할 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글귀를 읊은 도연명과 같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늘 대나무 지팡이를 짚으시고 가죽신을 신고 다니셨는데 그 모습은 마치 옛날 처사들이 벼슬을 버리고 숨어사는 모습과 같았고 산은 높고 물이 긴 것은 한나라 때 엄자릉의  고결한 기풍 같으셨다. 아버님께서 즐거워하시던 기묘하게 생긴 봉우리와 괴상하게 생긴 돌이 많은 구미산은 월성군 금오산 북쪽에 있고 아버님께서 좋아하시던 용추폭포는 고도 마룡동 서쪽에 있다.

아버님께서 동산에 복숭아꽃을 많이 심어셨는데 그 꽃이 필 때는 마치 진나라 때 진시황의 학정을 피하여 주씨와 진씨가 숨어살던 무릉도원같고 집 앞에 푸른 물결은 마치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것과 같으니라.

난간을 못가에 까지 만들어 놓으신 것은 마치 송나라 때 주렴계의 뜻과 어김이 없는 것이며 정자 이름을 용담이라고 하신 것은 삼국시대 때 유비를 도와 촉한을 세우게 했던 제갈량을 사모한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하시어 아버지께서는 벼슬하실 마음이 없어 숨어사시는 처사들의 행색같지만 큰 뜻을 품으시고 제세안민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연구하시며 나라를 근심하시고 백성들을 걱정하시면서 사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절에서 대신사님께서 제세안민(濟世安民)을 하시기 위하여 도를 구하게 된 동기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선조 때부터 덕을 쌓았고 근암공께서는 이미 그러한 생각과 행동을 하셨으므로 대신사님께서는 천황씨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셨고 어려서부터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되셨으며 드디어 구도에 전력하시어 마침내 새로운 진리를 각득(覺得)하시게 되신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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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절에서 왜 수운대신사님께서 수덕문을 지으셔서 우리 후학들에게 전해주셨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신사님의 생각과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가, 만천하 창생들이 잘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내가 존재하는 것은 한울님이 낳아주시고 스승님이 가르쳐 주시고 선조부모님의 공덕으로 이렇게 사람으로, 천도교 동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인 것 같지만 선조부모님의 정성과 나의 정성이 합쳐져서오늘의 내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는 당연히 나의 정성이 한울님께 도달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뜻하는 바가 이루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의 터전을 마련하며 행복해 하며 살아가는 것도, 마음과 행동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바르고 밝고 착하고 의로운 한울사람이 되도록 모신 한울님께 심고드리고, 심고드린대로 행하며, 즐거운 천도의 삶을 영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세상은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보는 대로 존재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문외우시는 정성이 한울님 스승님께 닿으면 무위이화로 다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귀한 동덕님들은 물론이고. 만천하 창생들이 조화로운 천도의 삶을 이루어나가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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