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학문 제16절
닦는 사람은 헛된 것 같지만 실지가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실지가 있는 것 같지만 헛된 것이니라.
(경전)
묻기를 「도를 훼방하는 자는 어째서입니까.」
대답하기를 「혹 그럴 수도 있느니라.」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옛적에도 듣지 못하던 일이요, 지금도 비교하지 못하고 옛적에도 비교하지 못하는 법이라. 닦는 사람은 헛된 것 같지만 실지가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실지가 있는 것 같지만 헛된 것이니라.」
(원문)
曰毁道者何也 曰猶或可也 曰何以可也 曰吾道今不聞古不聞之事 今不比古不比之法也 修者如虛而有實 聞者如實而有虛也
왈훼도자하야 왈유혹가야 왈하이가야 왈오도금불문고불문지사 금불비고불비지법야 수자여허이유실 문자여실이유허야
曰(왈)毁道者(훼도자)는何也(하야)니까 曰(왈)猶或可也(유 혹 가야)니라 曰(왈)何以可也(하이가야)니까
曰(왈)吾道(오도)는 今不聞古不聞之事(금불문 고불문지사)요 今不比古不比之法也(금불비 고불비지법야)라 修者(수자)는 如虛而有實(여허이 유실)하고 聞者(뭊자)는 如實而有虛也(여실이 유허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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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묻기를 「도를 훼방하는 자는 어째서입니까.」
대답하기를 「혹 그럴 수도 있느니라.」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지금도 듣지 못하고 옛적에도 듣지 못하던 일이요, 지금도 비교하지 못하고 옛적에도 비교하지 못하는 법이라. 닦는 사람은 헛된 것 같지만 실지가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은 실지가 있는 것 같지만 헛된 것이니라.」
▶ 묻기를 도를 훼방하는 것은 어째 그렇습니까. 대답하시기를 혹 그럴 수도 있느니라.
대답하시기를 나의 도는 지금도 들어보지 못하고 옛날에도 들어보지 못한 사리요. 지금도 비할 데 없고 옛날에도 비할 때 없는 도법이니라. 닦는 이는 헛된 것 같지만 알참이 있고 듣기만 하는 이는 알찬 것 같지만 헛된 일이 된다.
*훼도자(毁道者)..도를 헐뜯는 사람.
*훼도자 하 야(毁道者何也)..한울님을 공경하는 것은 고사하고 도를 헐뜯는 사람도 있는 데 왜 도를 헐뜯는 것입니까? 하고 물은 말
*유 혹 가야(猶 或 可也)..어떤 사람들은 헐 뜯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이가야(何以可也)..어찌해서 헐 뜯을 수도 있습니까?
*금불문고불문(今不聞古不聞)..오늘날에도 듣지 못했고 옛날에도 듣지 못했다.
*오도금불문고불문(吾道今不聞古不聞)지 사(之事)
우리 도는 후천 개벽을 맞이하여 후천시대에 살아가는 인류를 구하고 가르치고 이끌고 나아갈 새로운 도이므로 우리 도에서 말하는 한울님을 모시는 신앙방법이나 도 닦는 법, 진리, 후천 운수등 모든 것은 지금 세상에서도 들어 볼 수 없고 옛날에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일이다. 처음 있는 일이다.
*금불비 고불비지법(今不比 古不比之法)
우리 도에서 하는 법(도법, 수도법 등)은 지금세상에서도 비교해 볼 수도 없고 옛날에도 비교해 볼 수 없는 새로운 법이다. 처음 있는 법이다.
*여허이 유실(如虛而 有實)
헛된 것 같으나 실제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
*수자 여허이 유실(修者 如虛而 有實)
천도교를 잘 믿게되면 강령이 된다, 가르침을 받는다, 모든 병이 다 낫는다, 만사지가 된다, 만사여의가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두다 빈 말 같고 헛된 말 같지만 실제로 믿고 도를 닦는 사람들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져서 얻어지는 것이 있다.
*문자(聞者)....천도를 말로만 듣고 실제로 닦지 않는 사람
*여실이 유허(如實而 有虛)
실지가 있는 것 같지만 실지로 나타나는 것이 없어 헛된 것이다.
**문자(聞者)여실이 유허(如實而 有虛)
우리 도는 말만을 듣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고 닦아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들을 때에는 그럴 듯하고 되어질 것 같지만 말을 듣고 닦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되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고 말만 듣고 닦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되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고 나타나지는 것도 역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만 듣고 닦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는 비방하고 헐뜯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 가운데는 한울님을 공경하기는커녕 도리어 헐뜯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러한 사람들은 왜 헐뜯고 비방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대신사님께서는 혹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어찌해서 그럴 수가 있냐고 물으니, 우리 도는 그 내용이 옛 날에도 들어보지 못했고 지금에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도요, 옛날에도 비교해 볼 수 없고 지금에도 비교해 볼 수 없는 새로운 법이라 그 새로운 교리내용과 새로운 도법을 듣고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에게는 실지로 나타나는 것이 있지만 말로만 듣고 닦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것 같으면서도 실지로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비방을 하게 되는 것이고 헐뜯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생각하고 생활하던 것 이외에 새로운 말을 듣게 되면 거의가 다 이치는 헤아려보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지식으로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니, 새로운 진리의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 있고 틀렸다고 비방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게 된 것이고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것이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그 때까지 오면서 명이 한울에 달려 있다는 말 (명내재천命乃在天)과 한울이 모든 백성을 냈다(천생만민天生萬民)는 말만을 들어왔고 다신관념(多神觀念)에 젖어 있었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진리는 새로운 진리로서 옛날에도 이러한 진리는 없었고 지금 세상에도 이러한 진리는 또 없으며 한울님을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모시고 섬기는 도법(道法)은 옛날에도 비교해 볼 수 없고 지금에도 비교해 볼 수 없는 새로운 도법인 것이다. 이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도법은 처음으로 들어보는 진리요 도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종교관념에 젖은 사람들이 쉽게 따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비방하는 사람도 있고 헐뜯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방하고 헐뜯는 사람들은 대개가 실지로 닦지 않고 말만을 들은 사람들이니 실지로 닦고 수련을 해 본 사람들은 강령이 되고 가르침을 받으며 무엇인가 실지로 나타나는 것이 있으므로 아무 말 없이 잘 닦지만 닦지는 않고 말로만 들은 사람들은 실지로 나타나지는 것이 없으므로 헐뜯는 사람도 있고 비방하는 사람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한울님을 믿고 공경하게 하려면 먼저 진리를 밝히고 한울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이치를 밝혀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어야 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수련(修煉)을 하도록 해서 한울님을 모시고 강령이 되고 가르침을 받도록 가르쳐야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