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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공부

논학문 제 9절

작성자심우기|작성시간26.06.22|조회수23 목록 댓글 0

 

논학문 제 9절

오도는 무위이화라...!

(경전)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으며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니라.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의 가르 침이 없으니 형식은 있으나 자취가 없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문이 없는지라, 도는 허무한데 가깝고 학은 한울님 위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다름이 없다고 하겠는가

(원문)

曰何爲其然也 曰吾道無爲而化矣 守其心正其氣 率其性受其敎 化出於自然之中也 西人 言無次第 書無皂白而 頓無爲天主之端 只祝自爲身之謀 身無氣化之神 學無天主之敎 有形無迹 如思無呪 道近虛無 學非天主 豈可謂無異者乎 

    하위기연야 왈오도무위이화의 수기심정기기 솔기성수기교 화출어자연지중야 서인 언무차제 서무조백이 돈무위천주지단 지축자위신지모 신무기화지신 학무천주지교 유형무적 여사무주 도근허무 학비천주 기가위무이자호

曰何爲其然也(왈 하위기연야)니까  曰吾道(왈 오도)는 無爲而化矣(무위이화의)라 守其心正其氣(수기심정기기)하고 率其性受其敎(솔기성수기교)하면 化出於自然之中也(화출어 자연지중야)요 西人(서인)은 言無次第 (언무차제)하고 書無皂白而(서무조백이) 頓無爲天主之端(돈 무위 천주지단)이요 只祝自爲身之謀(지 축 자위신지모)라 身無氣化之神(신무 기와지신)이요 學無天主之敎(학무 천주지교)하니 有形無迹(유형무적)이요 如思無呪(여사무주)라 道近虛無(도근허무)요 學非天主(학비천주)니 豈可謂無異者乎(기가위 무이자호)아 

(해의)

묻기를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우리 도는 무위이화라.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하고 한울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자연한 가운데 화해나는 것이요, 서양 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 글에 순서가 없으며 도무지 한울님을 위하는 단서가 없고 다만 제 몸만을 위하여 빌 따름이니라.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의 가르 침이 없으니 형식은 있으나 자취가 없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문이 없는지라, 도는 허무한데 가깝고 학은 한울님 위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다름이 없다고 하겠는가.」

 

왈(曰) 오도(吾道)는 무위이화(無爲而化) 의(矣)니라 수기심 정기기(守其心 定其氣)하고
대답하시기를 우리 도는 자연한 가운데 한울님이 이루어 주시는 것이라. 한울님의 마음을 지키고 한울님의 기운을 바르게 하고
*무위(無爲)
하는 것이 없다. 그렇게 되도록 추진하고 노력하는 자가 없다
화(化)..화해진다. 되어진자. 이루어진다.


무위이화(無爲而化)
함이 없이 화해진다. 그렇게 되도록 추진하고 노력하는 자가 없는데 자연히(저절로)되어지고 이루어진다. 사람이나 어느 누가 힘을 가하지도 않았고 가할 수도 없는데 자연한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자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한울님이 하시는 것이다. 한울님은 오직 하나의 무형의 이치기운으로서 모든 것을 간섭하고 명하여 이루어 놓으시는 것이니 예를 들면 천체가 운행되고 지구가 자전 공전을 하고 봄과 가을이 갈아들고(迭代:질대) 사시가 성쇠되는 것등이 자연히 되어지는 것 같으나 그 실은 자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한울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분은 부모님이시지만 내가 생겨나고 크는 것은 부모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연히 되어진 것이니, 이 자연히 되어진 것이 곧 한울님이 하신 것이며, 봄 동산에 풀이 저절로 자라는 것 같지만 이것 역시 한울님이 이치 기운작용으로 인해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으로는 이룰 수 없으나 한울님의 이치와 기운에 의해서 자연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무위이화라고 하는 것이니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무위이화로 되어지는 것이다.


오도는 무위이화(吾道 無爲而化)라고 하신 것은 우리 도는 한울님을 마음 속에 모시는 것이므로 수심정기(守心正氣)를 하고 성품을 거느리고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잘 행하면 도가 자연한 가운데 한울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이다.


대신사님께서 ‘오 역 기지일세(吾亦幾至一歲) 수이도지즉(修而道之則)
역 불무 자연지리(亦 不無 自然之理)‘라고 하신 자연지리(自然之理)도 대신사님께서 그대로 닦아 보시니까 도가 자연한 가운데 이루어지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니 대신사님 자신이 체험하신대로 우리 도는 무위이화로 자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수기심 정기기 솔기성 수기교(守其心 正其氣 率其性 受其敎)하지 않고 바라고 원하기만 한다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도를 이루려는 사람은 먼저 급한 마음을 다 버리고 수기심 정기기 솔기성 수기교를 하는데 총력을 경주해야 되는 것이다.


**수기심 정기기(守其心 正其氣)
한울님 마음을 지키고 한울님 기운을 바르게 한다 나를 이루어 놓으시고 내 몸에 통해 계시는 한울님의 마음을 잘 지키고 기운을 한울님의 뜻에 맞도록 바르게 쓴다.


**수심에는 守心과 修心이 있다.
守心은 마음을 지킨다는 것이며 修心은 마음을 닦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이의 마음(적자심赤子心)은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순수한 한울님 마음이니 이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물들지 않은 깨끗한 마음은 닦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차차 자라면서 자기 몸을 자기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생겨지게 되는 것이니 자연히 자기 몸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마음이 나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마음에 두가지 작용이 나와지게 되었으니 본래의 한울님 마음을 오심(吾心)이라 하신 것이고 육신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마음을 여심(汝心)이라 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본래의 마음(吾心)을 잊어버리고 육신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마음(여심)만으로 세상을 살다보니 마음이 여러 가지에 물들어 바르지 못하고 착하지 못하게 된 것이며 따라서 기운도 바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 먼저 해야 할 것은 여러 가지로 물든 마음을 닦아 맑고 깨끗한 마음, 즉 어린아이의 순수한 한울님 마음을 되찾도록 해야 되는 것이니 이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 마음을 닦는 것이 수심(修心)인 것이며
마음을 닦아 어린아이 때의 마음을 찾게되면 다시는 그 마음을 잊어버리거나 다시 물들지 않도록 굳게 지켜야 되는 것이니 이것이 수심(守心)인 것이다.

천심을 회복해서 그 마음을 잘 지키게 되면 자연히 기운도 바르게 되어 성품을 거느릴 수 있을 것이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대로 행할 수 있을 것이니 그대로 잘하기만 한다면 한울님이 감응하시어 도를 이루게 되니 자연한 가운데 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솔기성 수기교(率其性 受其敎)하여 화출어 자연지중(化出於 自然之中)야(也)요
한울님의 성품을 거느리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자연한 가운데 도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솔기성 수기교(率其性 受其敎)
내게 통해 있는 한울님 성품을 거느리고 내게 통해 있는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는다. 率性(솔성)은 천성과 같이 한다는 말이니 즉 성품을 따른다는 말이다.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행하지 않고 한울의 뜻에 따라 한울님과같이 행하는 것을 솔성이라 하는 것이며 한울님의 뜻대로 따라 행하려면 반드시 한울님께 묻고 그 가르침에 따라 행해야 되는 것이다.
화출어 자연지중(化出於 自然之中)
우리 도는 천도의 근본원리를 확실하게 알고 바르게 닦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바르게 닦기만 하면 한울님이 감응하시어 자연한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바르게 닦는 법이 무엇인가?
그 법이 곧 수기심 정기기 솔기성 수기교인 것이니 이것만 잘하게 되면 도가 자연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매고 거름만 주게 되면 가을에 가서 자연히 결실을 맺어 추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천도를 닦고자 하는 사람이 할 것은 수기심 정기기 솔기성 수기교인 것이니 이것만 잘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성덕립은 자연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인(西人)은 언무차제(言無次第)하고 서무조백이(書無皂白而) 돈무위천주지단(頓無爲天主之端)이요 지 축 자위신지모(只祝自爲身之謀)라
서양사람은 말에 차례가 없고(언무차제) 글에는 진리와 방편의 구별이 없으며
머리 숙여 천주를 위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 천주를 위하는 단서는 없고 다만 자기 한 몸에 구원받는 것만을 위하여 빌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도는 도를 닦는 차례가 있어 먼저 초학 주문을 외워 바르고 착한 마음이 되어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마음이 되게하고 강령주문을 외워 강령을 모시고 불망지사인 본주문을 외워 가르침을 받고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니 도닦는 차례를 분명하게 말해 주는데 서양사람은 그러한 차례가 없으니 차례를 말해 주지 못한다.

서무조백(書無皂白)...검을 조 흰 백
그들의 성경 책. 즉 성경 책에는 검은 것과 흰 것, 즉 진리와 방편의 확실한 구분이 없으며 신의 존재는 물론 진리를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다.

돈 무위천주지단(頓無爲天主之端)..머리숙일 돈 단서 단
지 축 자위신지모(只祝自爲身之謨)..다만 지 도모할 모
그들은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드린다고 하며 하느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참말로 한울님을 모시고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위하고 섬기는 단서가 없고 자기 자신이 잘되고 구원을 받는 것만을 위하여 빌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신 무 기화지신(身無氣化之神)하고 학무천주지교(學無天主之敎)하니


.신 무 기화지신(身無氣化之神)
몸에는 기운으로 화하는 신의 작용이 없다
.학 무 천주지교(學無天主之敎)
학문에는 한울님이 직접 가르쳐 주시는 것이 없다
우리 도에는 강령이 되고 강화가 되어 한울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고 있는데, 서양사람들은 신이 몸에 내리는 것(강령이 되는 것)이 없으며 또한 한울님이 천당에 있다고 생각하고 중보자 예수를 통해서 기원하니 한울님을 직접 모시는 것은 물론 한울님의 가르침도 직접 받지 못하는 것이다.


*유형무적(有形無迹)이요 여사무주(如思無呪)라 도근허무(道近虛無)요 학비천주(學非天主)니 기 가위무이자 호(豈可爲無異者 乎)아
유형무적(有形無迹)
몸에는 기운으로 화하여 나타나는 신의 작용이 없고 배우는데에는 한울님의 직접 가르치시는 것이 없으니 형상은 있는 것 같이 생각하나 자취로 나타나는 것이 없고 천주를 생각하는 것 같으나 천주를 위하는 주문이 없다. 그러므로 도는 허무한 것에 가깝고 배우는 것은 한울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니. 어찌 다른 것이 없다고 말하겠느냐?
서도에서는 하나님이 인격을 갖추고 어느 특정한 곳에 있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나타나는 자취는 없다.(경신년으로부터 약 35년이 지난 뒤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에서는 강령이 되고 가르침을 받는 종파도 있다. 그들은 성령충만이다 또는 방언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아직까지 되어지지 않는다)
우리 도는 무형유적이니 한울님은 형상이 없지만 나타나는 자취가 있어 강령이 되고 강화가 되며 그 밖에 많은 영적 기적이 나타난다.
*여사무주(如思無呪)
우리 도는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주문이 있는데 서도에서는 천주를 생각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 천주를 지극히 위하는 주문이 없다.
*도근허무(道近虛無)
도는 허무한데 가깝다. 옛날사람들은 천도의 근본을 알지 못하여 허무한 것을 근본으로하여 극락, 지옥을 말한 것과 같이 서도 역시 근본을 알지 못하여 천지창조설을 말한 것이나 천당 지옥설을 말하는 것이 옛날사람과 같다.
*학비천주(學非天主)
학에는 천주의 가르침이 없다. 우리 도는 한울님을 직접 모시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으며 나아가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 되어 한울님과 직접 통하지만 서도는 중보자를 통해서 기도하니 한울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지 못한다.
*기 가 위 무이자 호(豈可爲無異者乎)

어찌 가히 이를 다름이 없다고 하겠느냐
천도와 서도가 운이 같고 도가 같다하나 교리의 내용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크게 다르니 서도와 천도가 어찌 다른 것이 없겠느냐?

(풀이)
그러면 서양사람들이 하는 서도와 선생님께서 받으신 천도가 다른 것이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대신사님께서는 서로 다른 점을 말씀하셨으니 서도와 우리 도는 같은 것 같으나 서로 다르다.
우리 도는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주문이 있어서 주문을 외우면서 도를 닦고 기도를 드리는데 서양사람들이 하는 도는 주문이 없어 말로서 기도를 드리니 기본 도법부터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도는 한울님이 그 시대 그 지방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내신 것이므로 운으로 말하면 천도나 서도가 다 같이 같은 천운을 받고 나온 것이요 도로 말하면 천도와 서도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한울님이 내신 도이다. 그러나 천도와 서도가 나온 시대가 다르니 서도는 2천년 전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나온 종교이므로 그 시대 사람들 수준에 맞는 교리로서 가르쳤고 우리 도는 지금에 나와서 앞으로 오는 세상사람들을 가르칠 종교이므로 오늘날 시대와 앞으로 오는 시대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교리로 가르치게 되는 것이니 그 가르치는 교리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제8절에서 풀이한 부분 다시 올립니다)

묻기를 “그러면 천도와 서도의 교리가 어떻게 다르기에 그러합니까?”하고 물었다.
대신사님께서는 천도와 서도가 서로 다른 점을 비교해서 말씀하셨으니
우리 도는 한울님의 천성에 기인했으므로 누구든지 한울님 마음을 찾아 빼앗기지 않고 떠나지 않도록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여 바르게 행하고 천성대로 따라 천리에 어기지 않으며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릇되지 않고 바르게 행하면 자연한 가운데 도성덕립이 되어 도가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서도는 그렇지 아니하니 서도는 말에 차례와 조리가 없으며 글에는 진리와 방편이 한데 섞여 있어 구별이 없으며 엎드려서 기도를 드리고 있으나 한울님을 실재로 위하는 단서가 없어 중보자 예수를 통해서 기도를 드리며 그 기도를 드리는 내용도 자기의 한 몸 구원받는 것을 위주로 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뿐이다. 한울님을 모시고 부모 섬기는 것과 같이 섬기지도 않으며 몸에는 직접 접하여 강령이 되고 한울님의 기운으로 화하는 기화지신이 없고 배우는 것은 한울님께서 가르침을 내려 주어 한울님으로부터 직접 배우는 것이 없으니 천당에 하느님이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이 실재로 나타나는 자취가 없고 하느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재로 하느님을 위하는 주문이 없다.
결론적으로 서도는 한울님을 직접 모시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 것이 아니므로 천당, 지옥을 말하는 것이나 그 밖에 모든 것이 마치 옛날 사람들이 천도의 근본원리를 알지 못하여 허무한 것에 근본을 두어 극락 지옥 등을 말한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것이 우리 도와 서도가 크게 다른 점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서도를 하는 사람들도 개신교 일부 종파에서는 강령이 되고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한울님은 구하는 대로 나타나 주시는 것이므로 한울님이 나타나 주시기를 바라고 찾고 기원하므로 나타나 주시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 도에 비하면 강령이 되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니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강령이 되고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서 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가 이루어지게 하려면 대신사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먼저 한울님을 모시고 부모님 섬기는 것과 같이 섬기면서 마음을 닦고 그 닦은 마음(한울님의 마음)을 지키고 (수기심守其心) 한울님 기운을 바르게 하고(정기기正其氣) 한울님 성품을 따르고(솔기성率其性)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서(수기교受其敎) 그대로 행해야 되는 것이니 이것을 잘 행해야 도가 자연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인데 서도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모르니 비록 강령 강화가 된다고 하더라도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천도교인이라고 해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것을 잘 행해야 자연한 가운데 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도를 이루려는 사람은 깊이 생각해서 잘 실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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