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발표작

[2026여름 시와 산문] 이상한 이별 외1편/심우기

작성자심우기|작성시간26.06.15|조회수15 목록 댓글 0

 

이상한 이별

 

                                심우기

 

나는 길고 긴 우울입니다. 낮에 버려지고 밤에만 살아나는 이름입니다. 나는 오래전에 접었다 펴다 찢어진 달력이고, 우체통 속에서 주소를 잃은 엽서입니다. 당신의 주머니 속에서 잊힌 지폐처럼, 아무 데도 쓰이지 못한 채 구겨져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웃음 다음에 남아 있는 적막입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걸어간다면, 우리는 어제의 길을 다시 밟지 않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없을 테니까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닫고 나온 문은, 아침이 되어도 다시 열리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다가 문득 멈추고, 그 자리에 놓인 빈 컵을 오래 바라보겠지요. 당신이 아닌데도, 자꾸만 당신을 닮은 것들을 찾게 될 겁니다. 식탁 위 식지 않은 숟가락, 베개 위에 남은 머리카락, 현관에 조용히 엎드려 있는 신발 한 켤레 같은 것들.

 

그들은 알면서도 모를 겁니다. 남아 있는 것은 물건이고 떠난 것은 당신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더 오래 방을 정리하지 못하겠지요. 먼지를 닦으면 당신의 흔적도 지워질까 봐, 문손잡이를 잡다가도 손을 거두겠지요. 나는 그 옆에 서서 조용히 지켜보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으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무게로.

 

이별은 소리 내 울지 않습니다. 천천히 젖어드는 것입니다. 비가 그친 뒤에도 젖은 발자국이 한동안 남아 있는 것처럼. 창문 유리에 이슬이 맺혔다 사라지듯이,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을 하고 당신을 지나쳐 갑니다. 그때 사람들은 알게 될 겁니다. 끝난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남겨 두는 일이라는 것을

 

괜찮다면, 나는 오늘 밤 당신의 등 뒤에 서 있겠습니다.
말을 줄이고, 손도 내밀지 않은 채, 다정한 체념의 얼굴로.
당신이 돌아보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오래 헤어졌으니까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