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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기가 만난 시

단 한 권의 生/고영서

작성자심우기|작성시간14.12.11|조회수20 목록 댓글 0

단 한 권의 生

 

고영서

 

달 비친 사창(沙窓)에 한이 많아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라나*

해동조선국 승지 조원의 처 이옥봉은

온몸에 시를 감고 죽은 여인

여염의 아낙이 되어

지아비 얼굴을 깎아내리는 일 따위,

시 따위 쓰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는

천형을 앓다

산지기의 누명을 벗기는

시 한 수로 내쳐졌으니

파도에 밀려 이 포구,

저 포구를 떠돌다

겹겹의 종이로 떠올랐으니

하나 같이 빼어난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명나라 원로대신의 서가에

그렇게나 소중히 꽂혀 있었던 것

시퍼런 언어의 작두를 타다

뼈째 썰리는 고통으로

내림굿이 되는 시

씻김굿이 되는 시

* 이옥봉의 시 「몽혼」.

 

—고영서 시집 『우는 화살』(애지, 2014)

 

고영서

전남 장성 출생.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기린 울음』, 『우는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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