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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기가 만난 시

물결무늬 짐승/연명지

작성자심우기|작성시간26.06.10|조회수15 목록 댓글 0

물결무늬 짐승

 

                      연명지

 

상도동 살 때의 일이다

닦아놓은 방과 마루에
물결무늬 짐승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진흙탕을 지나온 듯
건기를 피해 우기를 찾아온 듯

갈피를 못 잡는 발자국으로 보아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희귀종이거나 멸종 위기의 짐승이 분명했다

손잡이를 구별한 걸로 보아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는 유인원

옷가지를 흩트려놓은 것으로 보아
주둥이를 쓰는 짐승

순서와 경우와 예의가 없는
불법의 짐승

 

물 한 방울 없는
물결무늬 발자국은 가벼웠다

가벼웠다는 건 빈손의 상징이지만
배후엔 또 배고픈 짐승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

물결무늬 발자국이 흔들리는 것은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열한 시의 종소리였을까

모든 원인에는 배후가 있으므로
모든 행위에 대해 분노를 유예했던 일

그리고 며칠 뒤, 구석에서 떨고 있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발자국 하나가 떨고 있던 일

상도동 살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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