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의 영성

작성자유테레사|작성시간12.03.10|조회수74 목록 댓글 0

성공회의 영성
성공회는 영국교회의 종교개혁 이후에 그 정신을 같이 하는 세계적인 공동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영국교회의 종교개혁은 성공회의 영성 형성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국교회의 영성은 켈틱 영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헨리 8세가 종교개혁(1534)을 단행하기 전부터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작업이 진행되어 영국교회의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영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토머스 크랜머가 에드워드 6세 때 작성한 공동기도문(공도문)을 영국교회 표준 예식서로 채택하여, 영국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기도 생활(영성 생활)을 특징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교회의 영성은 중용, 곧 중도라는 차원과 관용의 차원을 강조한다. 성공회는 영국교회가 지니고 있는 전통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상황적(contextual) 해석을 게을리 하지 않는 영성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성공회는 각각의 시대적·지역적 정황에서 전통적 신앙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생활화된 영성을 추구한다.
성공회의 예배와 기도는 공도문에 의한 예배와 기도이다. 공동문의 영성은 전인적인 영성, 성육신 영성과 나눔의 영성, 공동체적 영성, 온전함을 향한 영성, 참회하는 영성, 기억의 회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성공회 영성 생활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전인적 균형을 개발하는 삶(기도, 학습, 노동)과 일상 생활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룬 삶(정화, 조명, 일치)이다. 이를 위해 성무일과와 성찬례, 렉시오 디비나, 영적 지도가 행해지고 있다. 성공회의 영성 생활은 생활 영성, 교회의 사회 활동과 봉사 생활 등으로 나뉜다.

여는 글

영성 생활의 목적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되는 삶을 사는 일이다. 최근의 많은 영성가들은 영성에 대하여 언급할 때 영성은 종교를 생활화하는 근거라고 말하고 있다. 기도와 예배, 그리고 훈련이 한 사람의 삶 전체에 녹아들어 그 사람의 신심과 신앙을 형성한다.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개개인의 영성이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가진 특유한 공동체적 인격체의 영성이다. 성공회의 기도와 예배, 그리고 신앙 훈련, 신앙 생활은 각자 개인의 삶 속에 녹아들어 개인의 영성뿐 아니라 공동체적 인격 형성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성공회는 이러한 영성의 방향이 그 교단의 독특한 교리적·신학적 지향을 갖는 대신 공동체가 처한 삶의 문제와 다양한 현실을 끌어안는 영성으로 녹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성공회 영성은 교파적·교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각 시대적·지역적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교회와 성공회 영성의 형성
성공회(Anglican Communion)는 영국교회의 종교개혁 이후에 그 정신을 같이 하는 세계적인 공동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영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의 종교개혁은 성공회의 영성 형성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에도 영국교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전에는 로마 가톨릭의 일부로 영국에 있는 교회(The Church in England)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영국교회는 이미 영국의 지역적 풍토와 독특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다른 유럽교회(서방교회)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 뿌리를 말한다면 켈틱 영성이 중심이라 할 것이다. 켈틱 영성은 영국 땅에 로마교회가 최초의 주교인 어거스틴(Augustin of Canterbury?-604?)을 파견하기 전부터 공동체적 기독교 생활을 영위하던 전통인데 그들의 독특한 민속적인 전통일 뿐 아니라 영성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적 뿌리이다. 그러므로 영국교회의 영성이 형성되는데 켈틱의 민속적인 영성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국교회는 헨리 8세가 종교개혁(1534)을 단행하기 전부터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운동을 했으며 그 후 틴데일(Tyndale: 1494∼1539)이 필생의 작업으로 이룩한 영어성경 번역은 비록 그가 이단으로 처형되어 그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그 후 『대성경』으로 발간(1539)되어 영국교회의 성경을 중심으로 한 영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영국교회의 종교개혁은 헨리 8세의 정치적 개혁으로 시작되었다. 그의 이혼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와중에서 왕실의 강화와 교황권의 견제라는 정치적 선택에서 등장한 사건이었다.
헨리 8세의 정치, 종교개혁은 “영국의 왕은 영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가 있는 영토 안에서 유일한 최고의 수장”이라는 선언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선언문에서는 영국교회가 로마교회로부터 독립한다는 뜻이었지만 “결코 영국교회는 그리스도교의 공번된 신앙을 거절하거나 변화할 어떤 의도도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그 후 토마스 크랜머(1489∼1556)가 1549년 헨리 8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6세 때 공동기도문(Book of Common Prayer, 공도문)을 작성하여 영국교회의 표준 예식서로 채택한 것은 영국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기도 생활(영성 생활)을 특징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공도문은 영국 그리스도인들이 모국어로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그들의 일상 생활에 기도 생활을 강력하게 결합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 공도문의 기본 정신은 유럽 대륙의 종교개혁정신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는데 그 후 영국교회의 역사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국교회 간에 공도문을 놓고 치열한 투쟁이 전개된 것은 그 만큼 공도문이 차지하는 영성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영국교회의 그 후 역사는 정치적 영역에서의 영성적 선택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국교회는 성경과 전통을 각각의 시대적 삶의 영역에서 이성을 가지고 해석함으로써 신앙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의 폭은 로마 가톨릭에서부터 최근의 오순절 은사운동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다양성을 보여 주지만 그러면서도 면면히 흐르는 고유의 영성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옛 영국의 성인 베다의 언어를 빌어 중용(Via Media)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용이란 중도(中道)라는 차원과 함께 관용(寬容)의 차원을 동시에 갖는다. 따라서 영국교회 영성의 특징을 이 중용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영국교회 영성의 폭이 넓고 또 그것의 중심을 잡으려는 현실적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성공회는 영국교회가 지니고 있는 전통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상황적(contextual) 해석을 게을리 하지 않는 영성이 성공회 정신이다.
세계 성공회는 전 세계 각국의 상황적 주제(Contextual Issues)를 신앙의 중요한 문제로 노력하는 교회이다. 그래서 성공회는 각각의 시대적·지역적 정황에서 전통적 신앙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생활화된 영성을 추구한다.

성공회의 예배와 기도
공도문(公禱文)에 의한 예배 및 기도
토마스 크랜머의 공도문 작업은 당대에 실제적으로 아주 새로운 것이었고, 참으로 거대한 작업이었다. 그의 작업은 이미 오래 전에 당시 교회가 저버린 고대의 귀중한 종교적 실천을 회복하는 일이었으며 동시에 특히 첫 세기부터 초대교회가 실천하고 중단 없이 계속 이어온 전통을 다시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그것은 부패된 중세기의 예배를 완전히 재검토하고, 교회의 기도 및 예배의 실천을 철저히 중세기의 영향으로부터 정화함으로써 새로운 성공회의 공동기도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크랜머가 사용한 방법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전통과 권위를 찾는 데 있었다. 그는 첫 5세기에 걸친 교회의 기도와 예배의 실천과 그에 따른 교리와 권위를 존중하였다. 그 5세기 동안 4회에 걸친 세계공의회의 권위와 교리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느님의 백성이 어떠한 사회 계급을 막론하고 사제나 평신도가 모국어로 성경의 말씀을 듣고 다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동 기도는 모든 사람들이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친교하며 교회의 일치를 가져올 것을 목적으로 했다. 교회는 초창기부터 발전해 온 교회력에 따라 기도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강림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잃어버릴 수 없는 산 체험이었기 때문에 사순절과 부활절로 시작한 교회력의 발전은 기독교 영성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교회력에 따른 축일이나 절기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구원의 역사에서 보여 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항상 기억하고, 우리 신앙의 선조인 성인들의 생애를 경축함으로써 그들의 신심을 배우고 끓임 없는 하느님의 은총의 체험에 감사하는 기반을 세워 주었다.
교회의 교부들에 관하여 읽고 연구한 결과 크랜머 대주교는 초대교회의 성무일과(聖務日課)는 전체 성경을 읽는 데 근거했다는 것을 결론짓고, 비성서적인 문장을 제거하고 교회력을 사회의 월력에 맞추었으며 그에 따라 성서정과(Lectionary)를 결정했다. 조도(早禱)와 만도(晩禱)를 합하여 일년에 신약성서(묵시록을 제외한) 전체를 3회 통독할 수 있도록 하고, 구약은 1회 통독하도록 했으며, 시편 전체를 매달 완전히 낭송할 수 있도록 성서정과를 만들었던 것이다. 성무일과는 사제만이 아니라 이 기도를 평신도와 함께 공기도로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 공도문은 성공회와 함께 미 대륙과 대영국 연방국인 아일랜드, 남아프리카, 인도 등에 퍼져 나갔으며 19세기에는 호주, 뉴질랜드,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까지 이르렀다. 1970년대에 세계 성공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들의 공도문을 새로 제정하거나 개정해 나갔다. 급격한 사회 환경의 변화, 사회 정의에의 관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대 용어의 사용 등 특수한 공동체의 사목적·선교적·영적 욕구에 대응하여 공도문에 대한 대대적인 개정 사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세계성공회는 1958년 Lambeth 회의(세계 성공회 주교의 공의회)에서 공도문 개정의 원칙을 세웠으며 1549년에 작성된 공도문의 원칙을 존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원칙은 크게 네 가지로, 첫째 공도문은 성서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초대교회의 예식과 전통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 셋째 교파를 초월하여 교회를 하나로 일치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 넷째 신자를 교육하고 영성을 형성하는 데 공헌하기 위한 것이다.

공도문의 영성
초대교회는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 고정된 형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 형식 안에서 모든 것이 실천되었으므로 그러한 실천은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의 권위를 가졌다. 즉흥적이지 않고 미리 합의된 내용으로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은 성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마 19:18-19 참조). 기도와 예배의 고정된 형식은 신자들을 전인적으로 교육하는 효과를 가지며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영성 형성에 더욱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도와 예배의 고정된 형식을 담고 있는 이 공도문은 성공회 영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도문을 통하여 신자들은 하나로 통일되었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으며 그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림으로써 기도하고 예배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전인적인 영성 - 이 공도문은 인간성의 본질을 전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내적, 외적 면에서 모두 그 자체가 표현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의 인격은 사회적 차원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해 낼 수 없는 존재임을 공도문은 나타내 보이고 있다. 17세기의 성공회 신학자 Hooker는 기도의 원천을 이와 같은 인간성의 본질 안에서 발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피조물로서의 인간 생애의 목적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우리 인간은 자신을 초월하여 하느님과 교제하려는 동경을 갖도록 창조된 존재인 것이다. 예배와 기도는 인간 본연의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공도문에 의하여 예배드리는 것은 설교와 교리의 요소들, 그리고 기도와 성사의 요소들을 합하여 하나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곧 기도와 예배는 하느님이 몸소 우리에게 은혜 주셨음에 감사하는 우리 인간의 보답인 통일된 하나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행한 우리 인간의 활동은 전인적 인격체의 활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몸 전체 또는 모든 감각이 동원되며 한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 그리고 의지까지 모두 함께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성육신 영성과 나눔의 영성 - 공도문의 영성은 기도와 예배드리는 자 스스로가 성육하신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임을 체험하는 영성이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몸소 인간의 몸을 취하셨고 우리 인간과 함께 사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것은 성자의 성육신의 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성”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우리 인간에게 나누어주신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하느님께 돌아가는 신비의 체험을 갖게 한다. 이 신비야말로 우리 인간의 전 존재가 갈구하고 열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 안에 존재한다는 하느님의 임재에 대한 신앙과 기도의 오랜 전통을 이 공도문은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의 현존하시는 영적 세상과 지상의 것이 구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공도문의 기도와 예배, 특별히 성만찬의 성사는 우주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공도문에 의한 기도와 예배에 있어서 하느님의 현존과 임재의 체험은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당대의 F. D Maurice와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운동가들에게 이 성사는 모든 인류의 나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 ‘나눔의 영성’ 은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운동의 기반을 세워 준 것이다. 성사에서 얻은 이 나눔의 체험은 당대의 비인간적인 노동 착취를 심판하는 데 있어서 심오한 기적을 나타내 보였다.

공동체적 영성 - “우리는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께 고백하며 당신께 감사하오니” 하고 우리는 매일 같이 기도하고 예배한다. 여기에서 공동 기도와 예배는 개인적 영성보다는 공동체적 영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나보다 우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동체적 영성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개인의 신심이나 신앙의 집합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의 신심, 신앙 그리고 영성이 서로 함께 드리는 기도와 예배 속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에 융해되어 하나의 어떤 다른 인격체로서의 공동체적 영성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이 기도와 예배를 매일 익혀 감으로써 각 개인의 영성이 성공회 공동체의 영성을 형성하는데 아주 강력하고 폭넓게 그러면서도 권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기억하고, 배우고, 마음속으로 깨닫게 하시며 주의 거룩하신 말씀으로 인내와 안위를 얻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영원한 생명의 복된 소망을 굳게 간직하게 하소서.” 성공회 주일 예배의 본 기도문 중의 하나이다. 성공회 영성의 형성 과정을 이 기도로서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온전함을 향한 영성 - 공도문이 추구하는 바는 ‘온전함과 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기도와 영성은 공동체의 기도와 영성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는 바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개인의 영성은 종교적 환상에 빠지게 하거나 광신자를 만들어 낸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이 공도문에 있는 고정된 예배 예식과 기도에 참여하고 생활화됨으로써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동 예배와 기도는 우리의 관심을 모든 인류의 공동선을 위하여 퍼져 나가는 영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반면에 개인의 기도와 성경공부 없이는 공동체적 영성 체험에 제한을 받게 된다. 우리 인간은 각자 중심에 있는 하느님의 임재와 신비의 높이와 깊이를 추구하는 데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참 자아를 발견하다. 각 사람 하나 하나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체험이 없다면 공동으로 예배하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 자매됨을 체험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성공회의 영성은 개인과 공동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이 교회와 세상도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개인의 기도와 명상을 통한 내면적이고 영적인 생활과 예배의식을 통한 감사와 찬양의 외형적 표현의 실천은 이 세상에서의 섬기는 도리(diakonia)를 실천하는 것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참회하는 영성 - 1552년 공동문에는 “일반고백”(General Confession)이 삽입되었다. 이것은 조도와 만도 전에 사제가 신자들에게 죄의 고백을 권고하고 사죄를 선언하는 것이다. 교회의 참회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설교하고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왔고, 이러한 참회는 성공회 영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종교개혁 이후 고상 십자가가 어떤 교회에서는 제거되기도 했지만, 16세기의 성공회 신자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죄와 죽음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 깊이 새롭게 간직했던 것이다. 아침과 저녁의 참회를 통하여 우리는 또 한번 헛된 욕망과 죄스러운 계획에서, 그리고 자기 중심적 삶에서 돌아섬으로써 하느님을 향하는 것이다. 이 참회는 바로 삶의 전환으로서 우리 자신이 우리의 운명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 됨의 가슴 가득한 기쁨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값진 사람으로 만드시고, 당신을 향한 희생적 사랑을 우리 안에서 끌어내심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이 몸소 만드시고 구원하신 이 세상을 향하여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의 깊은 구렁에서 울리는 소리를 거절하고, 주위의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과 가엾게 울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침/저녁 기도하는 사람은 참회하는 사람이 되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도 열린 마음을 지니게 된다. 진정한 봉사(diakonia)는 하느님의 백성의 의무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한 죄를 참회를 통하여 용서받고,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기쁘고 성실하게 그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끝으로 예배와 기도에 담겨진 또 하나의 성공회 영성은 기억의 회복(anamnesia)이라고 할 수 있다. 곧 구약과 신약의 중대한 사건을 기억하여 경축함으로써 지금 이 곳에서 그 사건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기억의 회복은 어떤 공동체에 속한 사람의 정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과거에 그 사건이 현재에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오 때로 그 일로 나는 떨려 떨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라고 노래함으로써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권능과 현존을 체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 살았던 우리 신앙의 종부들의 신심, 신앙, 영성에서 나오는 소리에도 우리는 귀를 기울인다.
이 기억의 회복을 통하여 우리가 누구에게 속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알게 되고, 또한 우리 생애의 공동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이 정체성의 회복으로 종교의식이 단순한 기념행사이기보다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곧 화해와 속죄의 희생양인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되어 우리 자신이 희생적·중보적 봉사의 산 제물이 되기를 바라는 신심을 내포하는 것이다 .


성공회의 영성 훈련
성공회 신학자 존 맥퀄리는 ‘영성은 완전한 의미에서 한 인간이 되는 것(becoming a person)과 관계된 것’이라고 하였고, 성공회 영성가인 에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 1875∼1941)은 영성 생활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전인적 균형을 개발하는 삶(기도, 학습, 노동)과 일상 생활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룬 삶(淨化 ,照明, 一致)으로 정의하였다. 두 사람의 견해를 종합하면 영성 훈련의 목적은 완전한 의미에서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며, 온전한 인간이란 전인적 균형을 갖춘 인간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하여 일상을 기도와 학습과 노동을 균형 있게 살아가는 동시에 정화와 조명과 일치의 과정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스어로 훈련이라는 “아스케시스”(askesis)는 “삶의 형태”라는 뜻으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훈련의 유형은 삶의 스타일을 규정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성과 훈련과 사람됨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성공회 영성은 훈련과 밀접한 관련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교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성공회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의 영성 훈련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성이 내적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 인물은 다른 사람과 다르며, 어느 사람에게 유익을 준 훈련은 다른 기질의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예배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의식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예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스타일과 관계된 모든 것에 적용된다. 따라서 성공회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어떤 단일한 훈련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회 영성의 특징은 오히려 차이들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전체가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성 훈련은 무엇보다 내적인 인격적 훈련이다. 그것은 외적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에게 이끌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에 관계된 삶에 적합한 언어로 체험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회 전통에서 중요하게 실천되어 온 영성 훈련 방법을 앞서 에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이 정리한 기도와 학습과 노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도로서 성찬예배(Eucharist)와 성무일과, 학습으로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생활과 노동(일)에 관련하여 영적 지도(靈的指導)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성무일과와 성찬례
성공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직 후보자들의 훈련 과정에 공동 생활과 함께 성무일과와 성찬례를 가장 중요한 훈련 과정으로 지켜오고 있다. 더욱이 이 예배와 기도는 단지 신학생만이 아니라 많은 교회들이 가장 전통적으로 신자들의 훈련을 위한 기도와 훈련의 방법으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었다. 에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은 영성 생활에서 종교적 체험을 심오한 안정감과 평온함, 하느님과의 상호적인 교제, 참된 생명력에 접근하도록 돕는 성령의 체험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종교가 이야기하는 평안함은 질서(order)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수도회에 입회한 사람의 생활은 곧 질서에 사로잡히게 되며, 여기서 질서는 신뢰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질서가 있어야 편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앙은 물질적인 자연이나 인간 사회의 질서를 초월한 질서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기도시간의 배정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신적 질서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하는 방법인데, 그 의식은 신뢰할 만한 우주 속에서 평안함의 느낌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으며, 동시에 그것은 우리 앞에 초월적이고 도덕적인 표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성무일과와 예배는 성공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성 훈련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회 종교개혁 과정에서 크랜머 대주교가 관심 가졌던 것은 세상에서 자기의 직업으로 자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질서를 어떤 형태로든 권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종교적인 삶은 세속적인 삶보다 결코 더 어려운 것도 아니며 더욱 가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각자의 삶의 양태는 그 자체의 문제와 시련을 안고 있다. 일상적인 삶의 긴장과 압박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문제는 질서와 자유를 어떻게 결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본 훼퍼는 삶의 다중음(多重音)에 관하여 말하였다. 맥퀄리는 성무일과를 가리켜 다중음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선률(定旋律)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정선률은 음악에 조화와 지속성을 주며, 음악의 바탕이 되는 반복되는 운율의 양식이다. 종교적인 용어로 번역하자면 그것은 마치 영성적 삶의 지배적인 장치를 제공해 주는 기도와 하느님과의 교제라는 반복되는 순환(circle)이다.

렉시오 디비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란 번역이 어려울 만큼 풍부한 내용을 지니고 있어 영어권에서도 그냥 ‘렉시오 디비나’라고 한다. 렉시오 디비나는 명사 lectio(독서)와 형용사 divina(신적, 神的)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divina는 ‘하느님의 말씀’, 즉 성서를 뜻한다. 렉시오 디비나는 보통 베네딕트 수도회적 전통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초기 수도승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베네딕트 규칙서에 수도승은 매일 적어도 두 시간 이상 독서하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독서란 렉시오 디비나를 뜻한다. 12세기의 귀고 2세 아빠스는 렉시오 디비나를 네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그것은 독서, 묵상, 기도, 관상의 단계이다. 첫째 단계는 성서를 읽는 독서의 단계로서 여기서 독서란 그저 눈으로 성서를 읽는 것을 넘어서 말씀(성서)을 손으로 만지고(들고, 촉각), 입술로 소리내어 읽어 듣고(청각), 마음에 새기어 온몸으로 읽는 행위를 말한다. 둘째 묵상의 단계는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마치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마음에 담고, 되씹어 소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말씀이 마음에 깊이 스며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묵상은 셋째 단계인 기도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에서 시작되는 기도는 나의 능동적인 의식과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하는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가 깊어지면 하느님과 일치하는 마지막 단계인 관상(觀相)으로 발전한다.
최초의 회수도회 규칙성인 파코미우스 규칙서에 의하면 수도자들은 성무일과에서 바친 성서 구절을 성당에서 나오면서 또는 노동을 하면서 계속 되뇌었다고 한다. 렉시오 디비나가 성공회 영성 훈련 전통에 자리잡게 된 것은 베네딕트 전통이 강한 영국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성무일과를 통한 영성 훈련 전통에서 기인한다. 성공회는 교회력에 맞추어 성찬 예배와 조만도에서 읽도록 짜여진 성서 독서를 듣고, 일상을 통하여 묵상하도록 하는 렉시오 디비나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이는 성무일과와 함께 가장 중심된 전통적인 영성 훈련 방법이다. 요사이는 천주교회에서는 매일묵상의 형태로, 개신교에서는 QT(quiet time)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렉시오 디비나는 매일묵상이나 QT와는 구별되는 방법이다.

영적 지도
성공회에서 영적 지도는 특별히 고해성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련되어 발전되었다. 영적 지도는 상담이나 심리치료와 구별된다. 상담이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영적 지도는 생활 전체에 관심을 기울이며,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상담에는 통계와 자료가 필요하지만 지도에는 생활이 기초가 되며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공동으로 식별해 나가는 과정이다. 영적 지도와 상담치료와의 차이는 상담치료가 치료사와 치료를 받는 사람의 관계라면 영적 지도는 상호간의 순결과 성화(聖化)로 향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영적 지도는 그런 점에서 관계에 있어 동반자 관계이며 친구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영적 지도가 상담이나 치료와 구분되는 점은 상호관계가 아니라 하느님과 관계되는 삼자관계라는 점과 하느님의 주도성에 따르는 관계라는 점이다. 또한 영적 지도는 상담과 치료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예언적 차원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비전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저명한 성공회 영성신학자 케네스 리치에 의하면 영적 지도의 내용은 체험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넓은 영성의 전통에 관조하므로 새로운(깊은) 이해로 이끌어 줌으로써 새로운 통찰과 요구를 발견하게 한다. 그것은 체험-반성, 성찰, 관조-체험에 대한 새로운 이해-새로운 행동으로 이어지고 순환되며 사회 정치적 행위를 관상적 차원에서 지도하고 양육되어 감으로써 명상에 의해 새로워지도록 돕는다. 케네스 리치는 현대 영성의 우려되는 경향을 첫째, 종교 종파의 범람과 개인적 신앙과 금욕적 훈련의 강조, 그리고 사회 기피와 같은 경향, 둘째, 근본주의 신학의 부흥으로 상징되는 단순하고 비지성적이며 편견으로 가득 차고 협소한 비전의 경향, 셋째로 자기 성장 혹은 인격 개발 중심의 인본주의적 경향,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적인 반(反)물질주의 같은 영지주의, 이원론 등으로 구분하면서 현대 시대를 하느님 뜻에 대한 분별이 각별히 필요한 시대라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 시대는 여러 영성의 범람 속에서 올바른 영성 생활의 분별 필요성이 어느 시대보다 필요한 시대라고 하였다.


성공회의 영성 생활
생활 영성
오늘날 교회와 신자들은 진정한 명상이 하나의 사치이거나 인기 있는 엘리트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를 변혁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선교와 예배가 상호의존적이며 분리되면 의미를 상실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일생을 독방에서 은둔생활로 하느님과 함께 하였던 14세기 영국의 영성가 노리위치 줄리안이 지냈던 방에도 세상과 접촉하는 세 개의 창이 있었다. 첫째 창은 축성된 성체를 바라볼 수 있고, 성체와 보혈을 영입할 수 있는 제단으로 통하는 창이었다. 둘째 창은 길가에 걸어다니는 사람을 볼 수 있고, 그들이 원하면 그들을 위한 상담이나 기도를 할 수 있는, 세상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창문이다. 셋째 창은 그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음식을 받고 생필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창이었다. 이 세 개 창은 영성과 생활의 관계를 상징하는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회 영성과 생활의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세계 성공회 일치의 중요한 상징이 되는 공도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성공회의 사목신학자인 로저 루이드는 성공회 공도문의 특징을 말하면서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분리하지 않고 두 생활을 통합하려는 관심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세례예식이라고 말한다. 세례문답에서 거절하여야 할 것은 마귀와 악령의 일, 피조물을 부패시키고 파괴하는 사회악,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는 모든 권세(죄)에 대한 거절이다. 이 세 가지 거절이 성공회 신앙생활의 출발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의 시작은 동시에 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삶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둘째, 철저히 공동체적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은 개인의 영성을 강조하는 개신교적 경향과 구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렉시오 디비나와 개인기도는 공동체적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개개인의 인격적 성장과 공동체적 성장의 균형을 이루게 한다. 이처럼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관계를 분리할 수 없다는 관점이 성공회 영성 생활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회중 또는 지역교회에 대한 강조이다. 이는 사제서품, 부제서품, 세례예식에서 분명히 표현되고 있는데, 사제와 부제와 신자들의 지역 선교에 대한 의무를 명확히 하고 있다. 넷째는 선교적 책임과 의무에는 사제와 신자의 한계가 없고, 교회간의 경계선도 없고, 교회와 사회의 경계선도 없다는 것이다.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이 철저한 파트너십이다.

교회의 사회 활동과 봉사 생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켄터베리 대주교를 역임한 윌리암 템플(1881∼1944) 주교는 그리스도교 사회의 원칙인 자유, 사회적 동료애, 봉사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이러한 원칙은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느님과의 영원한 동료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갈 운명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템플 대주교가 이야기하는 첫째 원칙인 자유란 그리스도교인들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온전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앙과 관계된다. 그런데 온전한 믿음이란 하느님 사랑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응답이다. 인간의 양심, 마음, 의지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만이 인간을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 둘째 원칙인 사회적 동료애에서 중요한 점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를 지양하는 인격성과 연대성이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개인주의 아니면 전체주의만이 있는 듯이 중간 단체들을 용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주의도 전체주의도 인간이나 삶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올바른 이해와는 합치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의 민주주의는 개인들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격체들의 민주주의라야 한다. 또한 인격체들의 자유의 표현과 활동의 장이 되는 소규모 공동체들을 용납할 뿐만 아니라 격려하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봉사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봉사는 사회생활의 원칙이 되는 자유와 동료애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 결합은 봉사의 의무를 발생시킨다. 봉사의 원칙은 개인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나는데 여가를 통한 봉사와 직업을 통한 봉사가 그것이다. 이 같은 원칙은 성공회가 세상에 대해서 갖는 사회적 책임과 봉사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맺는 글
성공회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의 일반적 특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고 성공회 교단만의 독특한 특성을 따로 보유하거나 강조하지도 않는다. 다만 옥스퍼드 운동의 구호처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정신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있다. 현실은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할 것인가? 그것은 계속 재해석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성공회의 영성은 성공회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 성공회는 다른 교단과 다른 성공회만의 독특한 특징을 정체성으로 삼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용과 관용이라는 성공회 전통에 서서 이제까지 내려오는 전통의 뼈대, 즉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보편적인 영성의 핵심을 찾아서 지금의 우리에게 적용하려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그러므로 성공회 영성의 핵심은 과거에만 있지도 않고 또 지금의 상황에서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성공회 영성은 현재를 만들어 온 전통적 영성의 뿌리 - 그 뿌리가 무엇인지는 다른 문제이다 - 를 통해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려고 하는 진지한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김장호·김홍일·오동균
김장호 신부는 구미 요한선교센터에서, 김홍일 신부는 노원 나눔의집에서, 오동균 신부는 광혜원교회에서 섬기고 있다.


글쓴이 / 김장호 김홍일 오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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