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蘇東坡)의 悟道頌
溪聲便是長廣舌 [계성변시장광설]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개]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계곡 물소리는 모두가 부처님 법
산천초목은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아닌가?
하룻밤 사이에 팔만사천법 깨달았는데
다른 날 이도리를 어떻게 일러 주겠는가
- 소동파 오도송 -
당송팔대가로 유명한 북송의 문장가인 동파거사 소식(蘇軾)은
아버지인 소순(蘇洵), 동생인 소철(蘇轍)과
더불어 3부자가 당송팔대문장에 들어있다.
동파거사가 우쭐하는
마음에 이웃 옥천사에 주석하는 승호대사를 찾아갔다,
거만스런 표정으로 스님을 찾으니
승호대사가 객은 뉘시오 하고 물었다.
동파거사왈 - 칭秤가 올시다 하니
승호스님이 거시기 무신 성이 칭가가 다 있소? 하니
내 칭가는 저울 秤자로
선사들의 道力을 달아 보는 칭가요 하였다,
그러자 승호대사가 이놈 가짢은 놈이라 속으로 생각이 들어
동파거사 면상에다 대고 - 으악 하고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소리를 질렀다.
동파거사 놀라 자빠질 정도로후다닥 놀란다,
그러고 나서 승호대사가 동파거사를 조용히 불러 세운 뒤
"여보시오, 칭거사,
방금 내가 지른 으악은 도대체 몇근이나 나가오?"
하고 물으니 동파거사는 입만 벌린 체
정신없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다,
그길로 소동파는 자기의 경솔함과 기고만장한 문장이
쓸대없는 짓이라 생각되어 불문에 들어와
이웃 절에 있는 상총선사를 찾는다,
선사를 찾은 소동파는 다짜고짜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싶다고 청하니
스님은 동파거사에게
"그대는 무정설법은 듣지못하고,
유정설법만 들으려 하는고 --- " 하면서
무정설법을 들으라 권한다. 그길로 동파거사는
무정설법이라는 화두를 들고 말을 탄 채 길을 가다
어느 깊은 계곡을 지나가다 폭포를 만났다.
폭포소리에 소동파는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귀가열렸다,
그야말로 활연대오豁然大悟한 것이다,
그자리에서 소동파는
위와 같은 유명한 오도송 한 수를 남겼다.
▣ 소동파(蘇東坡 1037~1101) ▣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산문작가·예술가·정치가.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송나라 때 저명한 문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순(蘇洵)이었고,
그 아우도 소철(蘇轍)로 유명한 문인이다.
아우 철에 대해서 대소(大蘇)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정치가·유학자·시인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불교에도 조예가 깊어
견성의 경지를 얻었다고 하며, 당시의 고승들과 선문답도 나누고
오도송도 남겼다. 그는 전생이 선승이었다는 일화도 있고,
재능이 많아 시문서화(詩文書畵)에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시는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세 부자를
사람들은 삼소(三蘇)라고 불렀는데, 모두 당송팔대가로 손꼽혔다.
당송8대가의 하나인 구양수 문하에서 배웠으며,
22세에 과거에 급제 일찌감치 문재를 알렸다.
당시 북송(北宋)은 왕안석 등이 주창한 신법을 둘러싸고
당쟁이 확산될 시기였는데, 소동파는 신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이를 구법당이라 하며, 구법당의 영수는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이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인 부침을 거듭했다. 말년에 신법당이 득세하면서
해남도까지 귀양을 갔으며, 신법당을 지지했던 철종이 죽고 복권되었으나,
귀양길에서 돌아오는 도중 6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2번 결혼하여 슬하에 네 아들을 두었다.
항저우, 밀주, 서주, 호주 등에서 벼슬을 지냈다.
『가장행복한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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