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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와 문 학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작성자般若船|작성시간05.12.01|조회수576 목록 댓글 4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작품 감상

제1장
海東(해동) 六龍(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天福(천복)이시니. 古聖(고성)이 同符(동부)하시니
[우리 나라에 여섯 성인이 웅비하시어, 하시는 일마다 모두 하늘이 주신 복이시니, 이는 중국의 옛 성군들과 똑 같으십니다.]
⇒유구한 조선왕업의 기초
[배경고사]
전절: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무왕(武王)때 이루어졌지만, 그 제업의 기초는 시조 후직의 12대손 고공단보가 빈곡에서 조상의 업적을 이어받고 덕을 쌓아 국인(國人)이 다 추대했을 때부터이다.
후절: 목조가 전주에서 살다가 삼척을 거쳐 함경도 덕원부로 옮기니, 170여 호의 백성이 그를 따랐다. 그 후 원나라에 귀화하여 경흥 동쪽으로 이사하였는데, 거기에서 원나라로부터 벼슬을 받아 우리 나라 동북면의 민심이 목조께로 돌아가니 조선 왕업의 기초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제2장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가 깊은 마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립니다.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 끊이지 아니하므로, 시내를 이루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조선의 영원한 발전 기원



제3장
周國大王(주국대왕)이 빈谷(빈곡)애 사라샤 帝業(제업)을 여르시니.
우리 始祖(시조)ㅣ 慶興(경흥)에 사라샤 王業(왕업)을 여르시니.
[주나라의 대왕이신 고공단보께서 빈곡에 사시면서 제업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우리 시조이신 목조께서 경흥에 사시면서 왕업의 기초를 닦으셨습니다.]
⇒유구한 조선 왕업의 기초
[배경고사]
전절: 周(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것은 武王(무왕)때 이루어졌지만, 그 제업의 기초는 시조 후직의 12세손 고공단보가 빈곡에서 조상의 업적을 이어받고 덕을 쌓아 國人(국인)이 다 추대했을 때부터이다.
후절: 목조가 전주에서 살다가 삼척을 거쳐 함경도 덕원부로 옮기니, 170여호의 백성이 그를 따랐다. 그 후 원나라에 귀화하여 경흥 동쪽으로 이사하였는데, 거기에서 원나라로부터 벼슬을 받아 우리 나라 동북면의 민심이 목조께로 돌아가니 조선 왕업의 기초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제4장
狄人(적인)ㅅ 서리예 가샤 狄人(적인)이 갈외어늘, 岐山(기산) 올마샴도 하낧 뜨디시니.
野人(야인)ㅅ 서리예 가샤 野人(야인)이 갈외어늘, 德源(덕원) 올마샴도 하낧 뜨디시니.
[(고공단보께서) 빈곡에 사시는데 북쪽 오랑캐가 침범하므로 기산으로 옮기신 것도 하늘의 뜻입니다. (익조께서) 경흥에 사시는데 여진족들이 침범하므로 덕원으로 옮기신 것도 하늘의 뜻이십니다.]
⇒조선 건국의 천명성
[배경고사]
전절: 주나라 시조 후직의 3대손 공류가 빈곡에 터전을 닦고 그의 9대손 고공단보가 그 업을 이었으나, 북쪽 오랑캐의 침범이 심하여 기산으로 옮겼는데, 빈곡 사람들이 그 덕을 사모하여 모두 그를 따라갔다.
후절: 목조가 경흥에서 원나라의 벼슬을 받고 그의 아들 익조가 이를 계승하여 위덕이 날로 성하다, 여진족이 익조를 시기하여 죽이려 하므로 덕원으로 옮기니 경흥 백성들이 대부분 그를 따라갔다.



제7장
불근 새 그를 므러 寢室(침실) 이페 안자니 聖子(성자) 革命(혁명)에 帝祜(제호)랄 뵈사바니.
바야미 가칠 므러 즘겟 가재 연자니 聖孫(성손) 將興(장흥)에 嘉祥(가상)이 몬졔시니.
[붉은 새가 글을 물고 와서 (주 문왕의) 침실 문에 앉으니, 이는 그의 아들인 무왕이 혁명을 일으키는데 대해 하늘이 내리시는 복을 보이신 것입니다. 뱀이 까치를 물어다가 큰 나뭇가지에 얹으니, 이는 이 태조가 장차 흥하는 데 대해 아름다운 징조를 먼저 보이신 것입니다.]
⇒조선 건국에 대한 하늘의 계시
[배경고사]
전절: 주나라 무왕이 즉위할 무렵, 문왕의 침실 출입문에 붉은 새가 날아와 丹書(단서)를 놓고 갔는데, 거기에는 '부지런한 사람은 길하고 게으른 사람은 망한다.(중략) 仁(인)으로써 얻고 仁(인)으로써 다스린다면 백 세를 누릴 것이고, 不仁(불인)으로써 다스린다면 백세를 누릴 것이고, 不仁(불인)으로써 얻고 不仁(불인)으로써 다스린다면 當世(당세)를 마치지 못할 것이라.'라고 쓰여 있었다.
후절: 도조가 야영하고 있을 때 까치 두 마리가 營中(영중)의 나무에 앉았다. 도조가 그것을 쏘고자 하니 사람들이 모두 "몇백 보나 되는 먼 곳이니 맞히지 못할 것입니다."하였다. 하지만 도조가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기니 두 마리의 까치가 모두 떨어졌는데, 마침 그 때 큰 뱀이 나타나 그것을 물어다가 나무 위에 얹어놓고 먹지 않았다.



제8장
太子(태자)랄 하날히 갈해샤 兄(형)ㄱ 뜨디 일어시날 聖孫(성손)을 내시니이다.
世子(세자)랄 하날히 갈해샤 帝命(제명)이 나리어시날 聖子(성자)랄 내시니이다.
[태자(계력)를 하늘이 가리시어 그 형(태백)의 뜻이 이루어지시매, 그의 손자 무왕을 내신 것입니다. 세자(환조)를 하늘이 가리시어 원나라 황제의 명령이 내리시매, 이 태조를 내신 것입니다.]
⇒천명에 의한 이 태조의 탄생
[배경고사]
전절: 고공단보에게 태백, 중옹, 계력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고공단보가 당나라를 치려하였으나 맏아들 태백이 이를 좇지 아니하였다. 이에 계력에게 位(위)를 물려주자 태백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중옹과 더불어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계력의 손자인 무왕이 位(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후절: 도조가 죽은 후 맏아들 자흥이 계승하였으나, 이내 죽으니, 그 아들은 아직 어리므로 동생인 환조가 元帝(원제)의 명령으로 원의 천호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인 이 태조가 位(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제13장
말싸말 살바리 하대 天命(천명)을 疑心(의심)하실쌔, 꾸므로 뵈아시니.
놀애를 브르리 하대 天命(천명)을 모라실쌔, 꾸므로 알외시니.
[말씀을 (무왕께) 아뢰는 사람이 많지마는 천명을 의심하시므로 하늘이 꿈으로 재촉하셨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많았지마는 천명을 모르시므로 하늘이 꿈으로 알리셨습니다]
⇒천명을 꿈으로 알림, 하늘의 계시
[배경고사]
전절: 주나라 무왕이 觀兵(관병)하여 맹진에 이르렀을 때, 그 자리에 모인 8백여 명의 제후들의 주왕을 쳐야 한다고 아뢰었다. 하지만 무왕은 결단을 미루고 있었는데 후에 꿈과 점괴로써 자신에게 天意(천의)가 있음을 믿게 되었다.
후절: 이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후, 軍中(군중)에서는 '木子得國(목자득국;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이라는 노래가 떠돌았을 뿐만 아니라 휘하 사람들이 왕위에 오르기를 간정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꿈에 神人(신인)이 나타나 그에게 金尺(금척)을 주면서 "公(공)은 稟資(품자)로서 문무를 겸했고, 또한 백성들이 따르니 이 나라를 바로잡을 이가 공밖에 누가 있으리요?"하였으므로 드디어 마음을 결정하게 되었다.



제20장
四海(사해)랄 년글 주리여, 가라매 배 업거늘, 얼우시고 또 노기시니.
三韓(삼한)알 나말 주리여, 바라매 배 업서늘, 녀토시고 또 기피시니.
[중국 천하를 남에게 주겠는가. 강에 배가 없으므로 하늘이 강을 얼게 하시고 또 녹게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를 남에게 주겠는가. 바다에 배가 없거늘 바다를 얕게 하시고 쪼 깊게 하셨습니다.]
⇒天佑神助(천우신조)
[배경고사]
전절: 漢(한)나라 광무제 劉秀(유수)가 왕랑에게 쫓기어 호타하라는 강에 이르렀을 때, 녹았던 얼음이 다시 얼어붙어 유수의 일행이 건너간 후 다시 녹았다.
후절: 익조가 여진족에게 쫓겨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깊었던 물이 갑자기 빠지므로 그 틈을 타서 孫夫人(손부인)과 함께 말을 타고 바다를 건너 무사히 赤島(적도)에 다다랐다. 그 뒤에 바로 바다가 다시 깊어져서 적들은 더 이상 뒤쫓지 못했다.



제30장
뒤헤는 모딘 도작, 알패난 어드븐 길헤, 업던 번게를 하날히 발기시니.
뒤헤는 모딘 즁생 알패난 기픈 모새, 열븐 어르믈 하날히 구티시니.
[뒤에는 사나운 도적이 있고 앞에는 어두운 길인데, 없던 번개를 하늘이 밝히시어 길을 찾게 하셨습니다. 뒤에는 사나운 짐승(표범)이 있고, 앞에는 깊은 연못인데, 엷은 얼음을 하늘이 굳게 하시어 화를 면하게 하셨습니다.]
⇒天佑神助(천우신조)
[배경고사]
전절: 후당 태조 이극용이 군사를 이끌고 변주에 이르니, 변주 절도사 주전충이 그를 초정하여 술에 취하게 한후 공격하였다. 이에 이극용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마침 큰 비가 내리면서 번갯불이 비치어 이극용의 앞길을 인도했기 때문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후절: 이 태조가 들에서 사냥할 때 갑자기 큰 표범이 뛰쳐나와 그를 덮쳤다. 이에 몹시 급하게 된 이 태조가 말을 채찍질해 달아나는데 앞에 깊은 못이 가로막았다. 이 태조가 얼떨결에 연못 위로 말을 달리니 하늘이 연못을 얼게 해서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제34장
믈 깊고 배 업건마란 하날히 命(명)하실쌔 말톤자히 건너시니이다.
城(성) 높고 다리 업건마란 하날히 도바실쌔 말톤자히 나리시니이다.
[물이 깊고 배가 없건마는 하늘이 명하시므로 (금나라 태조가) 말을 탄 채로 (흑룡강을) 건너시었습니다. 성이 높고 사닥다리도 없건마는 하늘이 도우시므로 (이 태조가) 말을 탄 채로 (성 위에서) 뛰어내리셨습니다.]
⇒天佑神助(천우신조)
[배경고사]
전절: 金(금)나라 태조가 遼(요)아라 황룡부를 공격할 때, 흑룡강에 다다라 배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금나라 태조가 채찍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강을 건너니 물이 말의 배를 적실 정도였다. 그런데 강을 건너고 난 후에 그 건넌 자리의 깊이를 재게하니 깊어서 그 밑이 닿지를 못하였다.
후절: 이 태조가 홍건적과 송도에서 싸울 때, 날이 어두워져 매우 혼란스러운 순간에 갑자기 적이 뒤에서 창으로 이 태조의 귀를 찔렀다. 이에 사세가 몹시 다급해진 이 태조가 앞을 막는 7,8명의 적군을 베고 말을 달려 성을 뛰어넘었으나, 조금도 다친 데가 없었다.



제35장
셔븘 긔벼를 알쌔, 하바사 나사가샤, 모딘 도자갈 믈리시니이다.
스가밠 軍馬(군마)랄 이길쌔 하바사 믈리조치샤, 모딘 도자갈 자바시니이다.
[(돌궐족이) 당나라 서울의 소식을 알고 쳐들어오므로, (당 태종이) 혼자 나가시어, 사나운 도적(돌궐족)을 물리치셨습니다. (나하추가) 우리 나라 동붓면의 시골 군사들을 이기고 (서울로) 쳐들어오므로, (이 태조가) 혼자 나아가시어 거짓 쫓기어 도망하는 척하여 사나운 도적을 잡으셨습니다.]
⇒이 태조의 지략과 용맹
[배경고사]
전절: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그 형제인 건성과 원길을 죽이고 즉위하자, 돌궐족이 당나라 서울이 내분으로 허약해진 줄 알고 쳐들어왔다. 이에 당 태종이 單騎(단기)로 나아가 위세를 보이니 돌궐족이 화의를 청하였다.
후절: 공민왕때 원나라 승상 나하추가 동북면에 침입하여 시골 군사들을 괴롭혔다. 이에 이 태조가 동북면 병마사로 출전하여 단기로 돌진하였다가 거짓 패주하니 적장이 급히 쫓아오는지라, 오른편으로 슬쩍 피하니 적장이 멈추지 못하고 앞질러 달렸다. 이 때 이 태조가 뒤에서 활로 적장 3명을 쏘아 죽였다.



제48장
굴허에 마랄 디내샤 도자기 다 도라가니 半(반) 길 노팬달 년기 디나리잇가
石壁(석벽)에 마랄 올이샤 도자갈 다 자바시니 현 번 ??운달 나미 오라리잇가
[(금 태조가) 구렁에서 말을 지나가게 하시어 뒤쫓던 도적이 다 돌아가 버리니, 반 길 높이라고 한들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 태조가) 절벽위로 말을 올라가게 하시어 도적을 다 잡으시니, 몇 번을 뛰어오르게 한들 다른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이 태조의 초인적 용맹
[배경고사]
전절: 금나라 태조가 적과 싸울 때, 적이 많은 군사로써 뒤를 쫓았다. 태조가 혼자 좁은 구렁에서 쫓기고 있는데 눈앞에 높은 언덕이 나타났다. 태조가 말을 채찍질하여 그 언덕을 뛰어넘으니, 뒤쫓던 적들은 감히 넘을 엄두를 못내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후절: 이 태조가 왜구와 싸울 때, 패한 적들이 산 위로 올라가 절벽 위에서 저항했다. 이에 태조가 비장과 태종을 보내 보았으나, 도무지 올라갈 수 없다 하므로, 자신이 직접 말을 채찍질하여 단숨에 절벽 위로 오르니, 군사들이 따라 올라와서 적을 섬멸할 수 있었다.



제53장
四海(사해)랄 平定(평정)하샤 길 우희 糧食(양식) 니저니 塞外北狄(새외북적)인달 아니 오리잇가.
四境(사경)을 開拓(개척)하샤 셤 안해 도작 니저니 요外南蠻(요외남만)인달 아니 오리잇가
[(당 태종이) 천하를 평안하게 하시어 길가는 사람이 양식 걱정을 잊고 다니니, 북쪽 오랑캐인들 찾아와 항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태조가) 사방의 국경 지역을 개척하시니, 남쪽의 오랑캐인들 찾아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태조의 善政(선정)
[배경고사]
전절: 당 태종이 중국 천하를 평정하매 풍년이 들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돌궐족이 와서 항복했다.
후절: 이 태조가 나라를 세운 후 敎化(교화)가 멀리 미쳐서 북쪽의 백성들이 편히 살게 되었고, 또 왜인들이 통상을 청하매 왜구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던 남해의 섬에 사는 백성들도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유구국 임금도 사신을 보내어 臣(신)이라 일컬었으며, 섬라국(태국의 옛 국토) 임금도 사신을 보내어 그 나라의 특산물을 바쳤다.



제67장
가람 가새 자거늘 밀므리 사아리로대 나거사 자마니이다
셤 안해 자싫 제 한비 사아리로대 뷔어사 자마니이다.
[(원나라 승상 백안의 군사가) 전당강 가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밀물이 사흘이나 들어왔지만 잠기지 않다가, 군사가 철수한 뒤에야 잠겼습니다. (이 태조가)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시켰을 때 큰 비가 사흘이나 내렸건만 잠기지 않다가, 군사가 나온 뒤에야 잠겼습니다.]
⇒이 태조에게 내린 천우신조
[배경고사]
전절: 원나라 승상 백안이 송나라를 공격할 때 전당강 가에 진을 치니, 항주 사람들이 이를 보고 곧 조수가 밀려와서 군영이 잠길 것이라 하여 몹시 기뻐하였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 일 없다가 군사가 떠난 뒤에야 물에 잠겼다.
후절: 이 태조가 위화도에 군사를 주둔시켰을 때 장마비가 며칠이나 내렸지만, 물이 불지 않더니 회군한 뒤에야 온 섬이 물에 잠겨 버렸다.



제68장
가?? 갓 아니 말이샤 므를 마가시니, 하날히 부러 나말 뵈시니.
한비랄 아니 그치샤 날므를 외오시니, 하날히 부러 우릴 뵈시니.
[강가에 진을 치는 것을 말리지 않으시고 물을 막으셨으니, 이는 하늘이 일부러 남에게 (그 기적을)보이신 것입니다. 큰비를 그치게 하지 않으시고 홍수를 딴 데로 돌리셨으니, 이는 하늘이 일부러 우리에게 (기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天佑神助(천우신조)
[배경고사]
전절: 원나라 승상 백안이 전당강 가에 진을 치는 것을 하늘이 말리지 않으시고, 대신 밀물이 밀려오는 것을 막으신 것은 천명이 원나라에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후절: 이 태조가 위화도에 주둔하였을 때, 하늘이 큰비를 내리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대신 홍수를 딴 데롤 돌리신 것은, 이 태조가 천명을 받았음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제83장
君位(군위)를 보배라 할쌔 큰 命(명)을 알외요리라 바?? 우희 金塔(금탑)이 소사니.
자하로 制度(제도)ㅣ 날쌔 仁政(인정)을 맛됴리라 하날 우흿 金尺(금척)이 나리시니.
[임금의 자리를 보배라고 여기기 때문에 (하늘이) 천명을 알리려고 (왕건의 꿈속에서)바다 위에 금탑이 솟았습니다. 자로써 제도가 나오므로 (하늘이 이 태조에게) 어진 정치를 맡기려고 (꿈 속에서) 하늘에 있는 금척을 내리셨습니다]
⇒하늘의 계시
[배경고사]
전절: 고려 왕건이 아직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 꿈에 9층금탑이 바다 가운데 서 있고, 자신이 그 위에 올라가 있는 꿈을 꾸었다.
후절: 이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무렵, 이씨가 나라를 얻을 것이라는 내용의 노래들이 떠돌아다니자, 모든 휘하 사람들이 이 태조에게 왕위에 오르기를 청하였으나 천명을 몰라 망설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태조의 꿈에 神人(신인)이 나타나 金尺(금척)을 주면서 "공이 문무를 겸하여 民望(민망)이 높으니 이것으로써 나라를 바로 잡으라."하였으므로 드디어 마음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제91장
아바님 이받자밣 제 어마님 그리신 ??므를 左右(좌우)ㅣ 하사바 아바님 怒(노)하시니.
아바님 뵈사바싫 제 어마님 여희신 ??므를 左右(좌우)ㅣ 슬싸바 아바님 일카라시니.
[(당 태종이) 잔치를 베풀어 아버님(당 고조)을 대접할 때,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신 것을 좌우의 총희들이 참소하여 아버님이 노하셨습니다. (이 태종이) 아버님(이 태조)을 뵈올 때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니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으므로 아버님이 아들의 효성을 칭찬하셨습니다.]
⇒태종의 효심
[배경고사]
전절: 당 태종이 궁중에서 아버지인 고조를 위하여 잔치를 마련했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자, 고조 주위에 있는 寵姬(총희)들이 저희들을 미워하여 우는 것이라고 참소하여 고조가 크게 노하였다.
후절: 태종이 어머니(신의 왕후) 喪事(상사)를 당하여 능 앞에서 여막을 짓고 侍墓(시묘)하였는데, 태조가 왔다가 서울로 돌아갈 때 길 위에서 울기를 마지않았으며 저택에 와서도 문득 생각날 때마다 통곡하였으므로 태조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으므로 태조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으며, 태조도 아들의 효성을 항상 칭찬하였다.



제102장
시름 마삼 업스샤대 이 지븨 자려 하시니 하날히 마사말 뮈우시니.
모맷 病(병) 업스샤대 뎌 지븨 가려 하시니 하날히 病(병)을 나리오시니.
[근심하는 마음이 없으시므로 이 집에 자려하시니, 하늘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몸에 병이 없으셨는데, 저 집에 가려하시니 하늘이 병을 내리셨습니다.]
⇒天佑神助(천우신조)
[배경고사]
전절: 한 고조 유방이 평성에서 적에게 포위되었던 일로 조왕 장오를 핍박하자, 조나라 재상 관고와 조오 등이 노하여 고조를 해치려 하였다. 그런데 고조가 적을 파하고 조나라 고을인 柏人(백인)에서 묵으려다가 지명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柏人(백인)은 '사람에게 핍박을 받는다'는 뜻인 '迫人(박인)'과 음이 유사함> 그 곳을 떠났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후절: 제 1차 왕자의 난 후의 논공 행상에 불평을 품은 박포가 태종의 형인 방간을 충동질하여 태종을 제거하려 하였다. 이에 방간이 태종을 자기 집에 초청하여 해치려 하였는데, 태종이 갑자기 병이 나서 가지 모했으므로 화를 면하였다.



제109장
마리 病(병)이 기퍼 山脊(산척)에 몯 오라거늘, 君子(군자)랄 그리샤 金뢰(금뢰)ㄹ 부수려 하시니.
마리 사랄 마자 馬廐(마구)에 드러오나날, 聖宗(성종)알 뫼셔 九泉(구천)에 가려 하시니.
[말이 병이 깊어서 산마루에 못 오르므로 남편을 그리워하시며 금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시름을 잊으려 하셨습니다. 말이 화살을 맞아 마구간에 들어오거늘, 남편(태종)을 뫼시고 함께 죽어 황천에 가려 하셨습니다.]
⇒원경황후의 덕행
[배경고사]
전절: 주 문왕의 후비가 남편을 따라가고 싶었으나, 말이 병이 나서 갈 수가 없었으므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저 산에 저 언덕에 올라보려 하나/ 내 말이 이미 병들었도다./ 금잔에 술이나 가득 부어서/ 길이 이 시름 잊어볼까 하노라"
후절: 방간의 난 때 군사들이 타고 나갔던, 태종 저택의 말이 화살을 맞은 채 돌아오므로, 원경왕후는 태종이 싸움에 패한 것으로 알고 전장에 나가서 태종과 같이 죽으려 하였다. 이에 여러사람이 말려도 듣지 않고 나아가다가 승전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돌아왔다.



제110장
四祖(사조)ㅣ 便安(편안)히 몯 겨샤 현 고달 올마시뇨 몃 間(간)ㄷ 지븨 사라시리잇고.
九重(구중)에 드르샤 太平(태평)을 누리싫 데 이뜨들 닛지 마라쇼셔.
[사조께서 편안히 계시지 못하고 몇 고을 옮겨 다니셨으며, 몇간 집에 사시었겠습니까? 구중궁궐에 드시어 태평성대를 누리실 때 부디 선조의 고생한 뜻을 잊지 마십시오.]
⇒잊지 말아야 할 조상의 노고
[참고] 110장부터 124장까지는 제 4구 내용이 모두 이 뜨들 닛디 마라쇼셔'로서 후대 왕들에 대한 勸戒(권계)를 담고 있으므로, 이를 '勿忘章(물망장)' 또는 '毋忘章(무망장)'이라 한다.



제116장
道上(도상)애 강尸(강시)랄 보샤 寢食(침식)을 그치시니, 旻天之心(민천지심)에 그 아니 쯘디시리.
民막(민막)알 모라시면 하날히 바리시나니, 이 뜨들 닛디 마라쇼셔.
[길위에서 얼어죽은 시체를 보시고 침식을 잊으셨으니,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으로 어찌 그들을 돌보지 않으시리. 백성의 고충을 모르시면 하늘이 버리시나니, 이 뜻을 잊지 마소서.]
⇒명심해야할 愛民情神(애민정신)
[참고] 우왕 때에 倭船(왜선) 500여 隻(척)이 충청도 鎭浦(진포)에 머무르면서 경상, 충청, 전라도로 침범하여 그 피해가 막심했다. 그 때 이 태조가 순찰사로 왜적을 막으러 나아가니, 백성들의 시체가 山野(산야)에 가득한지라, 그 모양이 너무나 불쌍하여 침식을 잊고 상심했다.



제125장
千世(천세) 우희 미리 定(정)하샨 漢水(한수) 北(북)에, 累仁開國(누인개국)하샤 卜年(복년)이 갓업스시니.
聖神(성신)이 니사샤도 敬天勤民(경천근민)하샤사 더욱 구드리시이다.
님금하 아라쇼셔 洛水(낙수)에 山行(산행)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잇가.
[먼 옛날에 미리 도읍지로 정하신 한양에 어진 덕을 쌓아 나라를 열으시니, 점지해서 받으신 왕조의 운수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왕손이 이으셔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부지런히 보살피셔야, (국권이) 더욱 견고하실 것입니다. 후대 임금님이시여, 아십시오. (하나라 태강왕이) 낙수에 사냥가서 100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드디어 폐위 당했으니, 그는 할아버지(우왕)의 덕망을 믿었습니까?]
⇒후왕에의 권계
[배경고사]
전절: 신라 말의 승려 道詵(도선)의 비결서에는 삼각산 남쪽, 곧 한양에 都城(도성)을 세우면 나라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후절: 夏(하)나라 禹王(우왕)의 손자 태강왕이 놀음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아서 덕을 잃었다. 하루는 洛水(낙수)라는 곳으로 사냥을 나가 十旬(십순: 백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아니하므로, 유궁후 예(예)가 그를 하북에서 막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폐위시켜 버렸다.


핵심 정리

연대 : 완성 - 세종 27년(1445년)
주해 및 간행 - 세종 31년(1449년)
갈래 : 악장, 서사시
형식 : 2절 4구의 대구형식(1. 125장 예외)
구성 : '서사 - 본사 - 결사'의 3단 구성
제1∼2장: 開國頌(개국송)
제3∼109장: 事蹟讚(사적찬)
제110∼125장: 戒王訓(계왕훈)
성격 : 송축가(頌祝歌)
체재 : 전 10권 5책. 125장의 연장체
의의 : 한글로 된 최초의 장편 서사시
15세기 중세 국어의 귀중한 자료
창작 동기 : 외적 동기-훈민정음 시험과 국자(國字)의 권위 부여
내적 동기 : 조선 건국의 정당성 천명과 조선 왕조의 원대한 포부 표출 및 후대왕에 대한 권계


이해와 감상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작품으로 조선건국에 대한 송축가이며 일종의 영웅서사시이다. 전체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2장은 序歌(서가)로서, 조선 왕조의 창업이 천복이며 필연적이라는 것과 왕조의 영원한 번창을 송축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제3-109장은 本歌(본가)로서 穆祖(목조), 翼祖(익조), 度祖(도조), 桓祖(환조), 太祖(태조), 太宗(태종) 등 육조의 사적을 찬양하고 있으며, 제110-125장은 結歌(결가)로서 후대왕에 대하여 勸戒(권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의 창작 동기는 첫째, 易姓革命(역성혁명)이 천명임을 밝혀 민심을 귀순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둘째는 후대 왕에 대한 권계의 목적, 그리고 셋째는 훈민정음의 실용성에 대한 시험과 우리글에 대해 존엄성 및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 125장 중 제1장과 제125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2절 4구로 되어있는데, 제3장-제109장까지는 전절은 중국 역대 제왕의 사적을, 후절은 조선 왕조 六祖(육조)의 사적을 찬양하는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악장 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며 세종 당시의 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장편 서사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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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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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참마음 | 작성시간 05.12.01 용비어천가를 배운것 같은데 생소하게 느껴지고 어렵습니다 ^^ 아고 어쩌스까~ 훈민정음으로 쓰어진 용비어천가 보고 갑니다^^
  • 작성자深 潭 | 작성시간 05.12.03 원 세상에 이 내용을 아직도 아시고 계시다니 대단하십니다.
  • 작성자무주향로산인 | 작성시간 21.10.01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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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효암(孝菴) 박규택(公認 大法師) | 작성시간 24.01.31 佛法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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