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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효 이장번뇌에 대한 연구 (1/2)

작성자도문3|작성시간26.06.14|조회수9 목록 댓글 2

원효,二障煩惱에 對한 硏究-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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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障煩惱에 對한 硏究

- 元曉의 二障義와 起信論疏別記를 中心으로 -

金 秀 靜 (秀靜) 東國大學校 佛敎大學院

目 次

Ⅰ. 序 論

1.硏究 目的

2. 硏究 範圍와 方法

Ⅱ. 煩惱論의 基礎

1. 根本煩惱의 構造

2. 隨煩惱와 心所

3. 見惑과 迷理의 體性

4. 修惑과 迷事의 體性

Ⅲ. 二障煩惱의 體性

1. 煩惱障 所知障의 名義

2. 隱 · 顯雙照의 會通論理

3. 二障의 顯了的 體性

1) 煩惱의 屬性과 二障

2) 八識과 三性의 二障體性

(1) 煩惱障과 末那四惑

(2) 所知障과 八識法

3) 纏과 隨眠과의 二障관계

(1) 煩惱障의 纏과 隨眠

(2) 所知障의 性緣과 性分別

4) 二障의 正障과 習氣

5) 五法과 二障과의 關係

4. 二障의 隱密的 體性

1) 煩惱碍와 六種染心

2) 智碍와 根本無明

5. 顯了 · 隱密 二門의 住地煩惱

6. 二障義에 나타난 我空 法空

1) 二空展開의 意味

2) 二障義에 나타난 二空

Ⅳ. 二障治斷과 智慧

1. 二障과 菩提 涅槃

1) 二障과 涅槃

2) 二障과 菩提

2. 根本智와 後得智

 

3. 始覺과 本覺

1) 元曉의 如來藏思想과 二障

2) 始覺의 四位

(1) 始覺의 四相的 構造

(2) 始覺四位의 二障的 理解

3) 本覺의 二位

(1) 隨 染 本 覺

(2) 性 淨 本 覺

4) 二覺不二와 二障

4. 八識과 覺의 因果關係

1) 覺 · 不覺과 八識對應

2) 二障의 八識과 覺

Ⅴ. 結 論

參考文獻

SUMMARY

表 目 次

[표 1] 十根本煩惱

[표 2] 八十八使

[표 3] 三界九地의 81品의 修惑

[표 4] 欲界九品 修惑

[표 5] 見惑 · 修惑 128煩惱

[표 6] 護法과 安慧의 八識 法執에 대한 見解

[표 7] 二門의 住地煩惱

[표 8] 四種涅槃

[표 9] 一切智人

[표 10] 始覺四位와 九相次第

[표 11] 元曉의 始覺四位

[표 13] 性淨本覺

[표 14] 二空覺과 八識對應

Ⅰ. 序 論

1. 硏究 目的

석존의 성도의 例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불교의 수행은 번뇌병의 퇴치요법이고 불교의 목적은 煩惱魔를 단복해 覺智를 성취하는데 있다. 탐욕이나 瞋怒, 愚痴등의 번뇌는 인간을 맹목적 충동이나 본능적 욕망에 의해 그릇된 삶을 영위하게 하며, 실제로 인간은 이런 무지와 번뇌 때문에 여러 가지의 문제를 일으켜 크고 작은 苦病에 빠진다.

원효의 번뇌 治斷論의 대표작인 「二障義」는 그 서두에서 번뇌를 煩惱障과 所知障으로 크게 이분한다. 생사해탈의 我空覺인 表面覺的 열반을 장애하는 번뇌를 번뇌장이라 하고, 법공의 究竟覺인 一切智를 장애하는 무명을 소지장이라 했다. 번뇌장에 대해

「번뇌장은 貪 · 瞋 등의 惑이니 번뇌롭게 함을 속성으로 삼는다. 이 惑이 현행함을 따라 身心을 뇌란시키기 때문에 번뇌라 한다. 삼계의 윤회보(煩惱報)를 받으며, 중생을 逼迫하여 열반 · 적정을 여의게 함으로 번뇌라 한다」1)

고 하여 인생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번뇌에 의해 번뇌롭고 뇌란 당함을 보였다. 불교에 있어 번뇌는 인간을 傷害하는 독이며 죄악의 뿌리이고 악마이기도 하다. 이러한 번뇌의 魔障을 끊음으로 평안적정의 열반을 얻고 보리지혜를 깨달음으로 無知의 癡暗을 벗어나는 것이 불교이다.

그런데 번뇌를 끊는 것은 실제로 보리지혜를 얻음으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번뇌를 끊기 위해서 먼저 佛法을 배워서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지혜이고, 번뇌를 증장하는 행위를 금해야 하는데 이것이 계율이며, 번뇌의 雜染으로부터 벗어나 정신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禪定이다. 이 계 · 정 · 혜 三學을 大 · 小乘이 다 같이 번뇌를 끊고 보리를 이루기 위한 수행실천의 필수요건으로 중시해 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겠다.

초기불교에서는 번뇌를 끊고 열반적정의 경지를 실현한 수행자를 아라한이라고 했으며, 그 뜻은 應供 · 殺賊으로 번뇌의 불을 끈 열반의 완성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더욱 깊은 차원의 번뇌와 보리의 관계를 말한다. 특히 유식학에서는 아비달마불교에서 보이는 인간심리의 분석을 계승하면서 나아가 잠재적 심층의식인 아뢰야식을 세워 일체유심의 불교유심론을 확립했다. 이는 諸法의 실재를 주장하는 아비달마학설과 다른 바가 있다.2)

아비달마의 번뇌관은 貪 · 瞋 · 癡 · 慢 · 疑 · 見의 6번뇌와 忿 · 恨을 비롯한 24수번뇌등 일상의 표면심에 상응하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였다. 이에 대해 대승 특히 유식에서는 그 잠재적 영역을 아뢰야식으로 규정하고 이것이 번뇌를 발현하는 종자이며 현실생활을 전개하는 원인이라 했다.

여기서 前者를 번뇌장 後者를 소지장이라 하여, 번뇌장은 지말적이고 소지장은 본원·근본으로 보았으며, 전자는 人執에 의한 장애이고 후자는 法執에 의한 장애라 한다. 전자는 我空을 깨달아 열반을 성취함으로 제거되고, 후자는 法空을 깨달아 初地로부터 성불하는데 이르러 궁극적으로 滅塵한다고 했다.

본론은 불교의 핵심문제인 번뇌와 지혜, 특히 번뇌장과 소지장의 문제를 원효 사상(원효의 현존저술인 二障義와 起信論疏別記)에 의거하여 규명함을 목표로 한다.

2. 硏究 範圍와 方法

三法印 · 四諦와 더불어 불교의 근본 교리로 되어 있는 십이연기설도 無明 · 行 · 識으로부터 老 · 病 · 死 憂悲苦惱에 이르기까지 십이지 하나 하나가 다 번뇌임을 말해주고 있다.

석존께서 보리수 아래서 所謂 역순으로 십이연기가 苦임을 관한 것이 苦諦이고 그것의 滅을 관한 것이 滅聖諦인 것이다.3) 이와 같이 苦의 원인이 번뇌이고 集諦 · 滅諦(涅槃) · 道諦(修行法)를 말씀한 것이 교이며 그것을 바로 알면 慧學이요, 그것을 닦아서 깨달으면 지혜이다.

二乘의 견도는 四諦 십이인연을 깨달아 聖位에 듦을 가리키며 그 수도는 견도 후 사다함 · 아나함위에서 欲界修惑의 9품을 닦아 끊고 아라한과에 이르기까지 삼계구지 81품의 수혹을 끊는 것을 일컫는다.4) 견도위(수다원과)에서 견혹(疑 · 身見 · 邊見 · 我見 · 見取見 · 戒禁取見의 6번뇌)을 끊고, 수도위에서 수혹(貪 · 瞋 · 癡 · 慢의 81품)을 다 끊음으로서 아라한이 되면 이에 비로소 我空覺의 열반은 완전하게 성취된다는 것이 경론의 정견이다.5)

보살도에 있어서도 煩惱障 所知障의 二障을 어떻게 끊고 구경각의 極果(佛地)를 성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역시 대승불교 諸宗의 교학정립에 아주 중대한 관건사였다. 중국 남북조말 지론종의 대표적 교학자인 慧遠(523-592)은 <大乘義章>에서 「二障 · 三障 · · ·四取 · 五住· · ·」등의 분류를 하면서 상세한 검토를 한 바 최초의 권위 있는 二障分析으로 알려져 있다.6)

화엄교학에 있어서 이장번뇌론은 法藏의 「五敎章」 가운데 斷惑章에서 다루고 있다. 法藏의 이장설은 橫超慧日先生이 언급한 바와 같이7) 五敎判은 智嚴師의 그것을 계승했지만 불교의 핵심문제인 斷惑得果의 項에 이르러서는 원효의 이장의 제5문 明治斷의 치단계위 조를 전적으로 참조해 따르고 있다.8) 천태대사의 三惑說9) 또한 내용에 있어서 번뇌장 소지장의 二障과 다름이 없다.

본 논문은 이장번뇌를 다룸에 있어서 첫째 원효의 현존논술 가운데 몇 가지 Text에 의존하여 원효의 번뇌관, 그 治斷觀과 智慧觀을 考察하기로 했다.

둘째 「二障義」의 六門分別 가운데 第一門의 명칭에 따른 정의(名義), 第二門 二障의 내용을 여러 측면으로부터 분석 추출해 내는 出體相에 중점을 두고 이장에 관한 제설을 검토하려 했다. 특히 현료문과 은밀문으로 분석하고 회통하는 원효의 광대무변한 二障世界를 따라가 보았다,

셋째, 본 논문은 원효 사상의 입문이요, 관문이며 종료라고 할 수 있는 대승기신론소별기를 또한 중요한 Text로 의존했음을 밝힌다. 특히 생멸문 가운데 始覺 · 本覺 · 不覺 九相次第는 바로 번뇌와 覺 그 자체를 다룬 것인 만큼, 중요시했다.

이 밖에 유식의 논서와 현수의 기신론의기, 혜원의 대승의장, 소승불교의 수행 실천문 관계의 논서 등도 인접문헌으로 연구범위에 포함시켰다.

이상 논의한 바와 같은 번뇌와 깨달음에 관한 論究에 있어 제2장에서는 소승불교의 見惑 · 修惑을 근본번뇌와 수번뇌와의 상호관계 아래 대비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제3장에서는 대승불교의 번뇌론 · 수행실천 내지 智慧을 고찰함에 있어서 二障의 체성을 밝히는 가운데 我空 · 法空의 구체적 영역을 규명하게 될 것이다. 제4장에서는 二障과 보리 · 열반의 관계인 근본지와 후득지의 개념과 차이와 그 성취를 論하게 될 것이며, 대승기신론의 始覺 · 本覺의 題下에서는 斷惑의 과정과 覺의 次第등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특히 기신론이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양분되었으면서, 기신론소별기가 진여 그대로 거체적으로 動하여 생멸문이 된 것이라 했듯이,10) 또 論에서 불생불멸이 생멸과 화합해서 불일불이하다고 했듯이,11) 번뇌와 覺 兩者는 不一不異의 논리로 진여에 회귀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8식과 覺의 인과관계도 상충되는 諸家의 유식설, 기타의 학설이 등장하지만, 원효의 화쟁론법으로 볼 때, 그 모든 학설을 긍정적으로 볼 때는 다 옳고, 어느 一說에 偏執되었을 때는 모두 그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諸家의 학설을 중생심의 병을 치료하는 하나의 요법으로 볼 때, 환자의 상태 여하에 따라 그 치료법이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원효의 유식설을 護法은 거부하고 安慧를 따른 것처럼 규정하는 단순논법은 잘못이라 생각한다. 護法의 유식도 현료의 차원에서는 상당부분 옳고, 같은 논리로 安慧의 유식이 긍정돼야 할 경우가 있다는 것이 회통논법의 위대한 창의라 생각한다.

二障義에 대한 先學의 연구서는 최근에 일본 大谷大學所藏의 이장의 원본이 발견되고 나서부터이므로 극히 희소하다. 횡초회일선생이 다년간의 연구노력으로 略科 · 校註 및 경론의 인용문추적 및 논문 [원효の 이장의に ついて]를 엮은 이장의 연구편을(1940) 내놓은 것이 그 효시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오형근 교수의 [원효의 이장의에 대한 고찰](1992)등 몇 편의 논문이 있을 뿐이고,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인 이정희의 [이장 체성에 대한 연구]가 있으며 정영근의 정신문화연구원 석사학위논문인 [각의 두 가지 장애 <원효의 이장의를 중심으로>(1981)]가 있다.

橫超慧日선생은 원효의 二障義가 현수의 五敎章 斷惑分齊章등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 착안하여 강조했고, 오형근 교수는 인용서의 배경을 중심으로 이장의 특성을 조명했다. 그리고 두 석사 학위논문은 二障義 전문이 釋名義, 出體相, 辨功德, 攝諸門, 明治斷, 總決擇의 6門으로 구성되어 있는 가운데, 第1釋名義, 第2出體相 중심의 연구서 였다.

본 논문은 이장 체성과 더불어 二障義 제5장 二障治斷의 문제를 원효의 기신론소별기의 始覺 · 本覺과의 連結性 · 相依性의 논리로 풀어 보고자 한다. 또한 나아가 원효의 隱顯雙照的 이장분석법으로 여래장사상과 유식의 회통을 시도하려한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서 원효의 二障과 지혜를 규명하려 하지만, 그 목표와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 의구하지 않을 수 없다.

Ⅱ. 煩惱論의 基礎

1. 根本煩惱의 構造

번뇌는 곧 惡의 작용을 말한다. 번뇌는 항상 內心을 擾亂시키고 혼탁하게 하며 안정된 마음을 전도시켜 여러 有情들을 혼란하게 하고 흐리게 만든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안정된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고뇌하게 하며 지혜로운 마음을 덮어 버리고 障碍하는 기능을 한다고 해서 覆藏 또는 障碍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1)

근본번뇌라 함은 여러 가지 번뇌 중에 가장 근본적인 번뇌라는 의미로서 이에 관하여 俱舍論卷十九 初에, 謂貪 · 瞋 · 痴 · 亦慢 · 無明 · 見 · 及疑이라.2)라고 한 것이 그것으로서, 이 六種의 근본번뇌는 諸有 즉 欲 · 色 · 無色의 三有를 초래할 근본 動力因이 된다. 二障義 벽두에 煩惱障을 정의하는 가운데, 「貪 · 瞋등의 혹이 번뇌롭게 함을 속성으로 삼아서 신심을 뇌란하기 때문에 번뇌라 이름한다. · · · 三界안의 煩惱報를 받아 유정을 핍박하여 적정을 여의게 한다」3)고했으며 중생이 이 煩惱때문에 分段生死의 輪廻苦에 떨어져 二乘涅槃을 장애한다고 했다. 根本煩惱의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貪 : 貪慾을 말하며 만족할 줄 모르고 추구함이 끝이 없음을 貪이라 한다. 자신에 대한 탐심을 我執, 사물에 대한 탐심은 法執이라 하며, 이 둘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② 瞋 : 瞋怒를 말하며 성내는 것은 마음에 맞지 않으면 모두 瞋心의 대상이 된다. 瞋怒가 惡口 · 鬪毆 · 殺害등의 일을 일으킨다.

③ 痴 : 愚痴를 말한다. 가장 근본 되는 번뇌로서 緣起의 道理와 我空 · 法空의 진리에 迷한 무명.

④ 慢 : 타인을 輕慢하는 것이며 執我로부터 일어남으로 또한 我慢이라고 한다.

⑤ 疑 : 猶豫라고도 하며 출세간의 諦理를 懷疑하고 不信하는 것이다. 懷疑하면 닦을 수 없고 닦지 않으면 해탈할 수 없으므로 因果應報를 不信하여 출세간의 道를 장애한다.

十使 가운데에서 위의 貪 · 瞋 · 痴 · 慢 · 疑를 五鈍使라고 하는데 迷事의 惑에 해당되므로 思惑이라 한다. 使는 驅使의 의미이며 鈍은 그 성질이 우둔하여 끊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⑥ 五惡見 : 모든 진리에 대해 배격하고 착오된 마음으로 진리를 잘못 판단하는 染慧를 항상 야기하며 因果의 도리를 무시하고 동시에 善見을 障碍하는 迷理의 五見惑이다. 이 五見은 四諦의 진리를 미혹하여 일어나며 그 성질이 예리한 까닭에 五利使라하며, 利根의 修行人이 見道位 중에서 일시에 頓斷할 수 있다. 五種의 惡見은 有身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4)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세밀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有身見은 薩迦耶見을 번역한 말이다. 자기의 몸이 五蘊의 假合으로 幻滅에 돌아감을 알지 못하고 <나> 또는 <나의 것>이 있다고 집 착하는 所見, 즉 僞身見이라고도 한다.

㉡ 邊見은 현재의 <나>가 死後에도 있다는 常見과, 또는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斷見의 어느 한쪽에 치우친 소견.

㉢ 邪見은 因果의 道理를 무시하는 등 善惡의 윤리적 사상을 부정하는 邪된 소견이다.

㉣ 見取見은 자기의 옳지 않은 견해를 취하여, 가장 정확한 견해라 집착하고, 그릇된 소견을 옳다고 주장하는 소견이다.

㉤ 戒禁取見은 외도 등의 계율이나 수행법을 말한다. 특히 외도들이 生天을 목적으로 裸體로 있거나 머리를 뽑고 횟가루를 바르며 불 속이나 물 속에 투신하거나 人糞을 먹으면 生天할 수 있다는 등의 삿된 戒法을 경계하는 뜻이다.

2. 隨煩惱와 心所

근본번뇌에 부수하여 현기하는 모든 번뇌를 수번뇌, 또는 지말혹, 수혹 등으로 칭한다.5) 이 수번뇌에 대해서 구사론21권6)에 의하면 모든 근본번뇌도 역시 수번뇌라 이름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근본번뇌도 「모두 다 마음을 따라서 괴롭히거나 어지럽히는 일을 하기 때문」 이라고 한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한 수번뇌는 아니다. 진실한 수번뇌란 근본번뇌에 부수하여 생기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구사론21권7)에,

다시 이(根本煩惱) 외에 다른 여러 번뇌가 있으니 染汚心인 心所와 行蘊에 속한다. 번뇌를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또한 수번뇌라고 이름하며 번뇌라고 이름하지 않나니 근본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수번뇌에 대해 俱舍論에서는 19종을, 유식에서는 20수번뇌를 든다. 俱舍의 수번뇌는 大煩惱法의 5번뇌와 대불선지법에 2번뇌, 小煩惱地法에 10번뇌, 不定地法에 2번뇌가 그것이다.

(一) 大煩惱法이라고 하는 이 心所는 不善과 有覆無記의 번뇌가 일어날 때 반드시 周邊倂起하므로 大라고 한다. 대번뇌법에 5가지가 있다.

⑴ 放逸은 악한 일에 전념하여 모든 선함을 닦지 못하게 하는 의식.

⑵ 懈怠는 악한 일에 탐닉하여 善法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의식.

⑶ 惛沈은 신심이 침울하여 선법을 닦지 못하게 하는 의식작용.

⑷ 不信은 마음으로 하여금 澄淨하여지지 못하게 하는 의식작용.

⑸ 掉擧는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여 輕擧浮動하는 의식작용.

(二) 大不善地法은 일체의 악심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작용으로 이것은 오직 不善心에 通하여 일어나므로 大不善地法이라 하며 2가지가 있다.

⑴ 無慚은 자신이 지은 죄과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말한다.

⑵ 無愧는 賢聖과 善友를 보고도 자기가 지은 죄과를 뉘우칠 줄 모르는 의식작용.

(三) 小煩惱地法은 大煩惱地法에 비해 그 범위가 협소하므로 소번뇌라 이름한다. 이 小煩惱地法에 10가지가 있다.

⑴ 忿은 분한 생각 곧 易怒心이다.

⑵ 覆는 覆蔽이니, 罪科등을 隱密覆藏하는 의식작용이다.

⑶ 慳은 財와 法을 매우 아끼는 의식작용이다.

⑷ 嫉은 타인이 자기보다 우승한 것을 질투하는 의식작용이다.

⑸ 惱는 타인의 諫誨를 받지 않고 스스로 고민하는 의식작용이다.

⑹ 害는 타인에게 危害를 가하는 의식작용이다.

⑺ 恨은 이미 忿發한 것을 잊지 못하고 원수를 맺는 의식작용이다.

⑻ 諂은 자기의 본심을 나타내지 않고 순종을 가장하는 阿曲心이다.

⑼ 誑은 詐僞하는 마음이다.

⑽ 憍는 자기의 財位와 재학을 자부하여 타인을 凌下하는 의식작용이다.

(四) 不定地法은 위의 다섯 심소 가운데에 攝入할 수 없는 독자성을 가진 8가지의 心所이다.

⑴ 隨眠은 마음을 暗昧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⑵ 惡作은 과거에 이미 악한 일 혹은 착한 일을 짓지 않았음에 대하 여 追悔하는 의식작용이다. 여기에 尋 · 伺 · 貪 · 瞋 · 慢 · 疑 등이 있다.

唯識에서는 睡眠, 惡作을 빼고 失念, 散亂, 不正知를 더하여 俱舍의 19수번뇌에 대하여 20수번뇌를 세웠다. 수번뇌에 대해 二障義에서 이장의 체성을 밝히는 첫머리에 「人執을 바탕으로 하는 근본번뇌와 忿 · 恨 · 覆등 모든 수번뇌가 번뇌장의 자성이다」8)라고 하고, 이 수번뇌는 근본번뇌와 더불어 제7식, 제6식과 상응하는 표면적인 번뇌작용을 일으킬 뿐, 깊은 잠재의식인 아뢰야식과는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고 했다.9)

3. 見惑과 迷理의 體性

혹은 마음의 미혹 곧 번뇌의 별명이며, 이 번뇌의 속성 또는 그 끊어지는 분한에 따라 見惑 · 修惑으로 나눈다. 見惑은 見道에 의해 소멸되는 번뇌, 곧 見道所斷(見道斷 · 見所斷)의 번뇌이니 줄여서 견혹이라고 하며, 修惑(思惑)은 깨달은 뒤 수도에 의해 소멸되는 修道所斷(修道斷, 修所斷)의 번뇌이니 줄여서 수혹이라 한다.

구사종에서는 사제의 진리를 알지 못하므로 진리를 미한 혹을 見惑, 또한 현상적인 사물에 집착하는 迷事惑을 수혹이라 했으며, 유식에서는 私道의 이단자가 私敎등의 유도등에 의해, 또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 일으키는 후천적인 번뇌(分別起)를 見惑, 태어남과 함께 하는 선천적인 번뇌(俱生起)를 수혹이라 한다.

앞에서 말한 10가지 근본번뇌 가운데 惡見의 다섯 가지는 그 성질이 맹렬하고 예리하므로 이것을 五利使라하며 이에 대해 貪 · 瞋 · 痴 · 慢 · 疑는 그 성질이 지둔하므로 오둔사라 한다. 번뇌를 使라고 함은 중생의 마음을 이 번뇌가 驅使해서 生死六道에 유전하게 하기 때문인데 五利使는 그 작용이 예리하고 표면적이며 오둔사는 둔하고 완강하며 이면적이다.

미리혹 · 미사혹은 五利使 · 五鈍使인 10본혹이 일어나는 대상에 따른 분류이다. 곧 迷理惑의 理는 因果를 깨닫지 못한 도리이고 苦 · 集 · 滅 · 道 四諦의 理致이니 四諦는 곧 인생의 진실한 도리를 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체계이므로 이것에 迷한 것을 迷理惑이라 한 것이다.10) 이를 도표화하면 [표 1]11)과 같다.

[표 1] 十根本煩惱

迷理惑인 見惑은 그 성품이 맹리해서 한번 그 진실한 진리를 깨달아 達觀領會하면 끊기 쉬운 頓斷의 성질이 있고 이에 반해서 迷事惑의 事는 世間諸般의 사물에 대한 사물상, 현실상, 사상으로 예컨대 의식주에 대한 욕망 같은 것으로 事惑은 鈍濁, 頑强, 遲緩, 隱密하여 끊기 어려운 惑이다. 곧 누구의 가르침이나 또는 연구 고찰에 의해서 결정되는 후천적 分別的인 理惑이 아니라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四惑이기 때문에 俱生起를 수혹이라 한 것이다. 그 성질이 아주 鈍하고 느려서 한번 達觀하여 非理임을 깨달았더라도 결코 그것이 바로 斷除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끊임없는 지속적 수행에 의해서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漸斷이라 한다.

見惑 修惑에 10근본번뇌를 配對하는 경우 五利使는 무릇 斷理의 惑이므로 見惑임은 물론이지만 五鈍使 가운데 疑도 四諦觀에 대한 疑惑이므로 見道함과 동시에 끊어지는 見惑에 속한다. 그래서 이 六煩惱를 親緣의 惑이라고도 한다. 四諦의 理를 끊는 데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貪 · 瞋 · 慢의 셋은 迷事惑이긴 하지만 重緣의 惑이라 한다. 親緣의 惑을 緣으로 하여 일어났기 때문에 修惑이면서 동시에 見惑이기도 하다. 痴는 곧 무명을 가리키는데 痴 단독으로 일어나서 四諦를 不達 · 不解 · 不了하는 獨頭無明(不共無明)과 또 앞의 五見 또는 탐등 10근본번뇌와 함께 일어나는 俱起의 相應無明이 있다. 貪 · 瞋 · 慢과 함께 일어나는 相應無明은 重緣의 惑에 속하기 때문에 修惑인 동시에 見惑이기도 하다. 重緣이라 함은 貪 · 瞋 · 慢이 五利使의 번뇌에 대해서 그것을 정견이라고 깊이 애착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이것이 곧 탐이고 자기의 그러한 견해를 믿고 高擧(교만)를 일으키는 경우에는 이것이 慢이며 다시 貪과 慢에 의해서 다른 이를 미워함으로서 마침내 瞋心을 일으키는 것이 瞋이다.12)

구사종에 의하면 見惑 10근본번뇌를 각각 사제와 삼계에 배대하여 견혹 88使를 산출해 낸다.13) 이것을 도표로 보이면 [표 2]와 같다.

[표 2] 八十八使

도표에 보인 바와 같이 욕계고제 아래에서는 10근본번뇌를 다 닦는데, 집제에서는 신견 · 변견 · 계금취견의 3번뇌를 제외시킨 것은 집제는 欲界苦의 원인을 觀修하는 것인데 육신등은 苦報의 결과로서 받은 것이므로, 因相을 관하는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邊見 · 戒禁取見은 일단 육신의 報를 받고 난 뒤의 사항이므로 역시 제외된다.14)

멸제도 동일하며 다만 도제에서만은 戒禁取見(戒律)이 戒가 수행의 절대덕목이므로 추가된 것이다. 색계 무색계천에는 瞋心이 없어 닦을 수 없으므로 색계 26品, 무색계 26品의 斷惑 가운데에는 瞋惑이 다 제외된다.

4. 修惑과 迷事의 體性

佛法을 수행해서 성취하는데 세 가지 과정인 삼도가 있다. 곧 처음 見道位에서 진리를 깨달아 現觀(눈으로 사물을 보듯이 명료하게 깨달아 아는 것)하는 것이 見道位이며, 見道하기 이전의 수행은 결국 범부의 四善根位이고 見道 이후 더욱 수행하여 그 도를 완성하는 修道位가 그것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은(見道) 뒤에라야 비로소 성자라 한다.15)

수다원과에서 見道함으로 비록 무루지를 얻지만 수혹을 닦지 않은 이상 아직 일품의 修惑도 끊지 못한 것이다. 見道한 뒤에 다시 구체적 사상에 대해서 계속해서 수행하는 것을 修道라 한다. 修道를 통해서 사다함 아나함을 거쳐 아라한위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아라한이 되면 구경도인 최고위에 이른 것이므로 무학위, 무학과, 무학지라 한다. 이 아라한의 구경위, 무학도에 대해 見道, 修道의 位는 유학도라 한다. 아직 배우고 닦을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요컨대 修惑은 깨달은 뒤에 다시 더욱 닦아서 끊는 번뇌이다.

수혹은 깨달은 뒤에 닦아서 끊는 번뇌란 말이니 견도위에서 迷理見惑은 다 끊었으나 迷事修惑은 끊지 못하다가 見道한 수다원과로부터 아라한과에 이르기까지 계속 수습하여 삼계 81品의 惑을 끊는 것을 말한다.

修惑 81品은 곧 수도에 의해 없어질 근본번뇌로 五鈍使 가운데에 貪 · 瞋 · 痴 · 慢의 번뇌를 삼계에서 닦아 끊는 品數를 말한다. 修惑을 삼계에 配對할 때에는 욕계에서는 四惑을 닦지만 上二界에서는 瞋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貪 · 痴 · 慢의 三惑만을 닦게 된다. 따라서 修惑은 欲界四惑과 상이계의 6혹을 합한 10혹이지만, 이것들을 각각 일괄하여 구지에 配對하고, 다시 각각 번뇌의 강약에 따라 상상품에서 하하품까지의 구종으로 나누어 81品으로 한 것이다. 見惑의 88使와 修惑의 열 가지를 합하여 98수면이라고도 한다.16)

그러므로 81品의 수혹은 惑數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삼계구지의 수혹을 각각 구품에 配對하여 나누는 품수를 말한 것이다. 구지는 오취지 · 초선천 · 이선천 · 삼선천 · 사선천, 그리고 무색계의 공무변처지 · 식무변처지 · 무소유처지 · 비상비비상처지이다.17)

① 欲界의 五趣地는 지옥 · 방생 · 아귀 · 인 · 천을 말하며 이 地의 유정은 尋 · 伺 · 樂 · 憂 · 喜 · 入息 · 出息의 八動法이 있어서 마음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항상 산란하므로 散地라고 한다.

② 初禪天은 이생희락지이니 욕계의 악을 해탈하고 초선의 喜受 · 樂受를 생하는 경지이다.

③ 第二禪天은 정생희락지라고도 하며, 초선정의 修因에 의하여 초선천의 喜 · 樂 二受를 여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八動法 가운데 尋과 伺를 여읜다.

④ 第三禪天은 이희묘락지이니 제이선의 定因에 의하여 제이선의 喜受를 여이고 제삼선정묘의 樂受를 生하는 定地이다.

⑤ 第四禪天은 사념청정지라고 한다. 樂受 및 入息과 出息의 三法을 여읜 定地이다. 즉 八動法을 전부 이탈하고 捨受만 남는다. 일체의 思念이 청정하므로 捨念淸淨寂靜無動樂地라하고 寂靜無動이라 한다. 여기서 樂은 신심의 편안함을 표한 것으로 樂受의 뜻이 아니다.

⑥ 無色界의 四地 가운데에 空無邊處는 색을 싫어하고 無邊空의 無邊想을 짓는 정을 말한다.

⑦ 識無邊處는 空을 싫어하고 內識의 무한을 생각하여 식무변의 생각을 짓는 定地이다.

⑧ 無所有 天은 色도 識도 싫어하고 무소유를 생각하는 무소유의 定地이다.

⑨ 非想非非想處天은 下七地와 같은 麤想이 아니므로 비상이라 하고 또 무심도 아니기 때문에 비비상이라 하며 일종의 細心의 定地이다.

요컨대 상이계의 八地는 麤細의 차별은 있으나 모두 선정지이기 때문에 定地라고 한다. 이와 같이 수혹은 욕계의 一地와 색계의 四地와 무색계의 四地를 합하여 삼계구지를 닦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지에서 일어나는 혹을 상중하의 삼품으로 하고 이 삼품을 다시 각각 상중하의 삼품으로 나누어 상상품, 상중품, 상하품, 중상품, 중중품, 중하품, 하상품, 하중품, 하하품의 구품이 된다. 三界九地 81品의 수혹을 도표로 보이면 [표 3]과 같다.18)

[표 3] 三界九地의 81品의 修惑

수혹은 끊기 어려운 惑이므로 九地에 각각 九品을 두어 총합 81品으로 했지만 실제 수혹의 번뇌는 욕계의 四惑, 색계의 三惑, 무색계의 三惑을 합하여 총 십혹이 된다. 수혹81品 가운데에 욕계의 구품혹은 특별히 麤重하여 같은 貪 · 痴 · 慢이라도 그것을 끊는데 있어 색계 무색계 72品에 견주어 가장 장구한 시간을 요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다원과에서 이미 깨달아 見道한 성자가 아라한과를 얻기까지 極速者가 왕래 14생이 걸리는, 그 가운데에 13생 동안을 욕계구품 수혹을 닦아 끊고 나머지 일생에 上二界 八地72品의 수혹을 다 끊는다.

욕계구품을 끊는 실제를 보면 상상품의 혹을 끊는 데 2생, 상중품에서 일생, 상하품에서 일생 합해서 상품을 끊는 데 4생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다음 중상품에서 다시 일생, 중중품과 중하품에서 일생, 하상품 하중품 하하품에서 일생 합해서 7생 7왕래가 소요된다. 일왕래가 2생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죽어서 천상계에 났다가 다시 인간 세상에 오는 것이 일왕래이니 일왕래는 일생이 된다 하겠다.19) 도표를 보이면 [표 4]와 같다.

[표 4] 欲界九品 修惑

대승 유식종에서는 십혹 중 貪 · 瞋 · 痴 · 慢 · 身見 · 邊見 등 六惑은 견도와 수도를 통해서 끊는 것으로, 나머지 넷 곧 疑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만 오직 견도에서 끊는 것으로 규정한다.20) 또 견혹에 112종이 있어서, 구사의 88種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욕계의 四諦 아래 각각 열 가지 근본번뇌가 있어 합하여 四十惑이 되고, 색계와 무색계에 각각 四諦下에 진심을 뺀 9혹이 있으므로 합하여 72惑이 되어, 삼계를 합하면 112惑이 된다.

修惑에 있어서도 俱舍의 十惑과 달리 十六惑을 든다. 곧 欲界의 貪 · 瞋 · 慢 · 身見 · 邊見의 六惑, 色界 · 無色界에서 각각 瞋을 제한 五惑을 합하여 十惑이므로 三界를 총합하면 十六修惑이 된다. 그러므로 見惑 · 修惑을 합하여 128煩惱가 되는 데 이것을 도표로 보이면 [표 5]21)와 같다.

[표 5] 見惑 · 修惑 128煩惱

또 彰所知論 法道品에서는 수혹을 257품으로 산출해 낸 것을 볼 수 있다.22) 곧 삼계중 욕계의 수혹에 貪 · 瞋 · 痴 · 慢의 四惑이 있고 이를 그 강약에 따라 각각 구품으로 나누는 것은 다른데서와 같다. 그러나 四惑을 구품에 配對하여 36종의 惑을 내며 상이계에 각각 四地가 있고 이 四地에 각각 貪 · 痴 · 慢의 三惑이 있으며 이것을 그 강약에 따라 각각 구품으로 나누므로 各地마다 27품의 惑이 있게 되고 각계의 四地에 106품이 있으며 무색계 四地에도 또한 106품이 있어 上二界地를 합하면 모두 216품의 惑이 된다. 三界九地의 수혹을 모두 합하면 252춤이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二障義 제4장 제문상섭 가운데 견혹과 수혹을 합한 128번뇌, 104번뇌 98번뇌 등이 있음과 그 산출법에 있어 10근본번뇌를 삼계 四諦에 배대하는 기준여하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23)

또 제5장 治斷조에서도 삼승번뇌를 治斷하는 경우에 10근본번뇌를 바탕으로 하여 견혹과 수혹의 治斷을 통해 아공각의 해탈열반을 자주 설명하고 있다.24)

Ⅲ. 二障煩惱의 體性

무명에 대해서 세존은 「苦임을 알지 못하고 苦의 生起를 알지 못하고 苦의 消滅에 대해 알지 못하고 苦를 消滅하는 道를 알지 못하는 것, 그것을 무명이라고 한다」1)고했다. 覺은 결국 無明을 밝힌 정도에 따라 대소 · 광협 · 심천 · 명암의 차이가 있게 된다. 그래서 小乘의 覺과 大乘의 覺에 있어, 二乘을 自覺, 보살을 覺他, 佛을 覺行窮滿2)이라 하며 기신론에서는 不覺(十信) · 相似覺 · 隨分覺 · 究竟覺(佛)을 든다.3)

같은 논리로 覺을 장애하는 번뇌에도 그 내용에 따라 三障 · 二障說이 있다. 구사론등에서는 본래 業障 · 煩惱障 · 異熟障의 三障4)을 들고 또 구사론 대비바사론에서는 染汚無知와 不染汚無知를 말하는데5) 이는 곧 아라한도와 불도의 차이를 보인 것이다. 한편 대승의 유가계경론등에서 「煩惱障 · 所知障의 二障煩惱가 있다」6)고했다.

전자는 분단생사를 해탈하는 二乘의 我空覺을 장애하고, 후자는 무상보리를 성취하는 대승의 法空覺을 장애하는 번뇌를 가리킨다. 다음에 원효의 이장의에서 설해지고 있는 二障의 體相을 규명한다.

1. 煩惱障 所知障의 名義

煩惱障 所知障에 대해 확실히 언급한 최초의 경이 해심밀경이다. 원효는 二障義 벽두에서 第一釋名義의 정의를 통해

煩惱障이란 貪瞋等의 惑이 번거롭게 하고 수고롭게 하는 것을 속성으로 삼는데, 이 惑이 現行하는데 따라 일어나서 身과 心을 惱亂시키므로 煩惱라 이름하나니 이것(煩惱障)은 體(煩惱障을 일으킨 本體)가 功能을(번뇌장의 作用)을 따르는 것에 해당시켜서 세운 이름이다.7)

라고 했다.

貪 · 瞋 · 痴 · 慢 · 疑 · 身見 · 邊見등 10근본번뇌와 20수번뇌등은 중생을 뇌롭게 하고 번거롭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번뇌가 구체화되어 본격적으로 인간행위를 지배할 때에는 그와 때를 같이하여 그만큼 몸과 마음을 속박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이것을 번뇌라고 호칭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번뇌는 외면으로 표출된 하나의 동작이고 현상일 뿐이며 그 이면에는 번뇌의 뿌리라 할 수 있고 근저라 할 수 있는 인체가 隱伏해 있는 것을 所知障이라 한다. 이 이면의 所知障이 그 표면인 번뇌의 작용을 放任하는 정적인 입장인데 대해, 동적으로 작용을 현행하는 번뇌를 煩惱障이라 이름한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글 가운데 번뇌는 첫째 중생을 뇌롭게 하고 신심을 어지럽힌다는 것과 번뇌는 지엽적인 작용에 불과하고 그 이면에는 체에 해당하는 깊은 번뇌의 뿌리(所知障)가 隱伏해 있다는 요지가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원효는 이어 煩惱障의 名義를 이렇게도 풀이한다.

또 다시 三界內의 번뇌의 報를 감수하고 유정을 핍박 · 고뇌하게 함으로 유정으로 하여금 적정한 열반을 여의게 하나니, 이것은 因가운데 果를 설명한 것이다8)라고 하였으며, 성유식론권9에서는

煩惱障者는 謂執遍計所執實我의 살가야견을 상수로 하는 128의 근본번뇌와 및 等流의 모든 수번뇌니라 此皆憂惱有情身心하여 능히 열반을 장애할새 번뇌장이라고 하니라9)라고 하여 있다. 즉 번뇌장의 실체는 변계소집의 實我를 집착하는 살가야견을 상수로 하는 128의 근본번뇌와 및 等流의 모든 수번뇌라고 하여 二障義의 정의와 대동소이하다.

소지장에 대해 역시 원효의 二障義, 釋名義 조에 있는 해석은 다음과 같다.

所知라 함은 盡所有性과 如所有性의 두 가지 지혜로 비추기 때문에 所知라 한 것이니, 법집등의 惑이 지혜의 성품(智性)을 가리고 막아서 깨달음으로 볼 수(現觀) 없게 하고 경계의 성품(境性)을 덮고 가려서 관하는 마음을 드러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所知障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가려진 바(所蔽)가 작용에까지 미친(及) 것을 따른 이름이다.10)

盡所有性과 如所有性은 해심밀경 · 유가론 등에 보이는데 해심밀경에서는 보살이 了知해야할 十種相으로 1)盡所有性, 2)如所有性, 3)能取義, 4)所取義, 5)建立義, 6)受用義, 7)顚倒義, 8)無倒義, 9)雜染義, 10)淸淨義를 들고 있다.11)

그리고 이 가운데 盡所有性은 「諸雜染 諸淨法中 所有一切品別邊際是名此中 盡所有性」12)이라 했다. 원측은 자신의 해심밀경소에서, 알아야 할 所知의 法이 染法과 淨法을 벗어나지 않으니, 染淨法 가운데 있는 바 一切品類差別 萬有諸法을 껴안아 두루 다했기 때문에 盡所有性이라 한다.13)

고 盡所有性은 세속의 생사법(染法)과 출세간의 해탈법(淨) 모두를 뜻하는 것으로 했다. 또 해심밀경에서는 이어서 「五數蘊과 六數內處 六數外處 如是一切了」라 했으며, 원측은 그 주에서 「五蘊은 一切有爲法을 가리키는 말이며 六數의 內外處라 함은 일체의 有爲 · 無爲의 諸法을 總攝한 뜻으로 盡所有性이라 한다」14)고했다.

如所有性에 대해서 해심밀경은 「一切染法 가운데 있는 바 진여가 바로 如所有性」15)이라 했고, 원측은 그 疏에서 「染淨法 가운데 一味眞如의 平等法性을 如所有性이라 한 것이다」16)라고 했다. 이로써 보면 如所有性은 지상의 초지위에서 비로소 깨닫는 근본지를 가리키고盡所有性은 일체의 차별인과의 법을 아울러 두루 깨닫는 후득지니 初地로부터 十地까지의 사이에 성취하는 차별지, 속지라고도 하는 방편만족의 지혜임을 알 수 있다.17)

그런데 원측은 同註釋 가운데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 二性에 대해 여러 論師들의 種種異說이 있다. 顯揚聖敎論 第五卷등은 本經과 같은데, 大乘阿毘達磨集論과 大乘雜集論 같은 데서는 蘊界處의 三을 盡所有性이라 했고, 四聖諦 · 十六行相과 眞如四法, 곧 三解脫을 如所有性이라 했다. 集論에서는 「盡所有性은 蘊界處이고 如所有性은 四聖諦, 十六行相, 眞如, 일체행무상, 일체행고, 일체법무아, 열반적정 공무상을 일컫는다」고했다. 雜集釋에서는 저 分量邊際가 있을 뿐이니 그러므로 蘊界處 三을 建立해서 盡所有性이라 했고, 이러한 뜻의 차별문을 말미암은 알 바의 경계이기(了所知境)때문에 如所有性이라고 한다18)

고했다. 유가사지론제26권에서는, 色蘊 밖에 다시 다른 色이 없고 受想行識 밖에 다른 受想行識이 없으니, 일체의 有爲事가 五法에 속하는 바이며 일체제법이 界處에 속하는 바이다. 일체의 알 바 四聖諦에 攝함이 또한 이러하여 盡所有性이라 이름한다. 저 반연하는 바가 이 진여실성이니 이것이 眞如性이 四道理를 말미암아 도리의 성품을 갖춘다. 또한 이것은 상대의 도리(觀待道理), 인과의(作用)도리, 깨닫는(證成)도리, 본래 그런(法爾) 도리를 일컫는 것이다.

또 원효는 煩惱障의 因子인 인집등의 惑이 소지장의 본체(境智)를 아주 가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무상보리를 遮止하지는 못하며 인공은 깨달았지만 법공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已斷不得彼故)19) 소지장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20) 라 했다. 또 같은 원리로 法執등의 惑이 지극히 작은 부분적 의미에 있어서는 생사의 報를 아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所知障의 무명이 二乘의 생사해탈, 열반적정을 막지는 않는다. 一分의 법공을 깨닫지는 못했지만 生死 없는 아공의 眞如는 확실히 깨달았으므로 번뇌장이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21)라고 했다.

성유식론권9에 「所知障者는 謂執遍計所執實法의 薩迦耶見을 而爲上首한 見 · 疑 · 無明 · 愛 · 恚 · 慢등이다. 覆所知境과 無顚倒性하여 能障菩提를 名所知障이니라」22)라고 하여 즉 변계소집의 實法을 집착하는 살가야견을 上首로 하여 근본번뇌와 수번뇌가 능히 所知境과 전도가 없는 實相을 覆蔽하여 보리지혜를 장애하는 작용이라 했다.

예를 들면 五蘊의 法體가 집합하여 한 유정이 성립하는데, 탐번뇌가 애착을 일으킨다면 애착에는 두 가지의 迷想이 함축되어 있다. 五蘊의 如幻虛假한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요, 五蘊假和合의 작용인 유정들의 탐애업이 그 하나이다. 이 둘 가운데에 전자가 법집 · 법체에 미한 소지장이요, 후자가 人執 즉 법의 작용을 迷한 번뇌장이다. 五蘊의 法體가 如幻虛假한 것이라고 깨달으면 그 集合體의 작용인 유정상 애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집은 법집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요, 번뇌장은 소지장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체에 迷한 것(所知障)만으로서는 분별기든 구생기든 發業潤生의 작용을 나타내지 않는다. 법체의 작용에 迷한 惑(煩惱障)에 이르러 비로소 發業潤生의 작용을 하므로 生死流轉의 원인이 성립된다. 보리를 장애하는 것과 열반을 장애한다는 차별은 이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勝用에 約한 大體의 차별이요, 번뇌장이 보리를 장애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요, 또 소지장도 번뇌장의 體인 이상 전연 열반을 장애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2. 隱 · 顯雙照의 會通論理

이장의 體相을 파악함에 있어 원효는 현료문과 은밀문의 二門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현료문과 은밀문의 용어는 해심밀경23)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론으로서는 대지도론 · 유가론 등을 들 수 있다. 원측은 지도론에서는 「초전법륜적 성문과는 顯了의 果이고 보살의 무생법인은 은밀敎라고했다. 또 해심밀경에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三性은 현료설이고 相無性 · 生無性 · 勝義無性의 三無性은 은밀설이라」24)고했다. 원효의 해심밀경종요나 疏는 산실하여 이 부분의 해설은 알 수 없고, 현존 무량수경종요나 이장의 등의 단편적인 설명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원효는 무량수경종요의 第二明淨土因에서 현료의와 은밀의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 言語 안에는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顯了의 뜻이고 하나는 隱密의 뜻이다. 隱密의 뜻은 순전히 청정한 第三의 淨土果로서 下輩의 十念功德을 말한다. . . .이러한 것을 隱密義의 十念이라고 한다. 顯了의 義는 十念의 상태를 말하며 또한 第四의 淨土에 대해서 말한다. 이러한 것을 顯了의 十念相이라고 한다.25)

이와 같이 현료와 은밀의 뜻을 하나의 언어에서도 찾고 염불하는 내용에서도 찾는다. 금강경삼매경론권중에 「隱이라는 것은 종자가 토지 밑에 있는 것과 같고, 顯이라는 것은 싹과 줄기가 땅위로 출현한 것과 같다」26)라고 하였다.

오형근 박사는 「위에서 이장의에 나타난 현료문과 은밀문에 대해서 살펴본 결과 第二의 出體相이라는 항목에서는 현료문은 유가종의 학설로 설명하고 있고, 은밀문은 기신론의 학설로 설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7)라고 하고, 그러나 이상과 같은 근거에 의하여 현료문은 유가론이고 은밀문은 기신론이라고 하는 학설은 옳지 않다고 했다.28)

이렇게 볼 때 어떤 내용이 表象化된 것을 顯了라하고 또 隱匿되어 드러나지 않는 것을 隱密이라 한다. 이러한 隱顯이 없는 것을 無相이라 하고 또한 寂滅이라 한다. 이상과 같은 뜻에 의하여 元曉는 일체의 번뇌를 근본을 표현하는 二障의 뜻에 담아 그 본래 表裏의 관계를 일차적으로 규명하고, 이것을 다시 本體論 現象論 차원에서 顯了門과 隱密門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顯了門과 隱密門이라는 언어는 二障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원효가 즐겨 쓰던 언어이고 설명 방법임을 알 수 있다.29) 원효는 이장의 체성에 대해서도 은밀문과 현료문으로 나누어 心識의 세계를 절묘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장의 가운데 第二 出體相에 나타난 二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현료문은 다시 1)자성으로 體相을 나타내는 것 2)八識과 三性 3)纏과 隨眠 4)習氣와 二障 5)五法과 二障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그 다음 은밀문은 1)육종염심을 煩惱碍體로 하고 2)근본무명을 智碍體로 하는 二種의 번뇌를 설명하고 있다.

3. 二障의 顯了的 體性

1) 煩惱의 屬性과 二障

번뇌의 屬性(自性), 또는 그 작용의 내용(相)에 따라서 번뇌장과 소지장의 두 가지 구별이 있다. 「번뇌장은 아집을 으뜸으로 하는 근본번뇌와 忿 · 恨 · 覆등 여러 隨煩惱의 일반 번뇌를 말한다. 광의로는 人執과 관련하여 상응하는 법, 또는 인집에 의해 발생된 업, 그리고 그 결과로서 감수하는 과보까지도 번뇌장체에 속한다」고 번뇌장을 설명하였고, 「소지장은 법집으로 일으킨 망상분별과 法愛 · 法慢 · 無明등 심층번뇌이며, 그것의 助伴者는 법집과 관련된 일체 법과 법집에 의해 取해진 相이다」30)라고 소지장을 설명하였다.

아집을 정점으로 한 근본번뇌가 번뇌장체라고 한 것은 원효설과 성유식설은 같다. 그것은 원효가 말하는 근본번뇌와 성유식의 128근본번뇌가 같은 성질의 번뇌이기 때문이다. 근본번뇌는 無明 · 恚 · 慢 · 疑 · 惡見등 여섯 가지를 가리키며 이 가운데 惡見을 다시 我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의 다섯 가지로 나눈 것이 열 가지 근본번뇌이고 이 10근본번뇌를 수혹의 5번뇌와 함께 四諦 및 삼계에로 전개시킨 것이 128근본번뇌이다. 결국 육종 근본번뇌가 확대된 것이 128번뇌이며 이것을 축소시키면 육종 근본번뇌가 된다. 곧 일체현행번뇌 그 자체를 번뇌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번뇌장 소지장의 기본적 정의를 하는 의미의 「當自性出體相」이므로 원효의 경우와 호법 · 현장의 경우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성유식론제9권31)에서 이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煩惱障者 謂遍計所執 實我薩迦耶見 而爲上首 128根本煩惱 及彼等流 諸隨煩惱 此皆優惱有情身心 能障涅槃名煩惱障 所知障者 謂執遍計所執實法薩迦耶見 而爲上首 見 · 疑 · 無明 · 愛 · 恚 · 慢等 覆所知境 無顚倒性能障菩堤 名所知障

二障은 기본적으로 다같이 十種의 본혹과 20종의 수혹으로 이루어진 공통성이 있다. 성유식론에서 번뇌장은 변계소집의 實我를 집착하는 薩迦耶見을 (身見 · 我見) 상수로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원효가 「人執을 上首로 한다」는 것과 같다.

또 성유식론에서 「소지장은 변계소집의 實法(虛僞의 존재를 실다운 존재로 잘못 認識한 것)을 上首로 하는 見 · 疑 · 無明...」이라 했는데, 원효는 「法執을 上首로 하는 망상분별과 法愛 · 法慢 · 無明등」이라 한 것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법집」이 바로 변계소집의 그릇된 우주관에 의한 허망한 집착이고 그것을 진리로 알기 때문에 <法我>라고도 하는 것이며 원효가 말한 법집에 의한 망상분별이나 호법이 주장하는 변계소집의 實法 살가야견에 의한 見 · 疑는 결국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소지장에 대한 원효의 정의와 호법의 개념 사이에 처음부터 차이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양자의 차이는 다음에 8식과 三性등에 의해 좀더 구체적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경우에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원효는 단순한 흑백논리로 호법은 그르고 난타와 안혜는 옳다라는 판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A는 <가>의 관점에서 볼 때는 옳고, B는 <나>의 관점에서 볼 때 옳았다고 인정하면서 자기 것은 可하고 타의 것은 불가하다는 집착이 있으면 다 그른 것으로 회통하는, 融攝의 논리를 전개한다.

예를 들면 소지장체가 染汚性인가 不染汚性인가의 문제에 대해서 성유식론은 소지장을 不善無記와 상응하는 染汚性으로 보지만 유가론은 不染汚의 분별로 해석한다. 성유식론은 法執을 染汚性으로 보고 제8식을 無覆無記로 보기 때문에 染汚인 법집이 無覆無記인 아뢰야식에는 현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효는 소지장체와 번뇌장체는 麤細의 차별은 있지만 같은 근본번뇌이므로 근본적으로 양설의 입장이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八妄想을 第三決定心 이전단계라고 해석함으로서 법집을 不染汚의 분별로 보는 유가론에 대하여 원효는 所知障과 법집의 심층을 놓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했으며 推求性 執着性 染汚性으로 보는 성유식론(護法)의 관점에 대해서도 원효는 현행적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한 것으로 하여 양의성 양가성을 관철시키고 있다.

2) 八識과 三性의 二障體性

(1) 煩惱障과 末那四惑

먼저 8식과 번뇌장체와의 관계, 三性과 번뇌장의 관계를 살피고 다음 소지장의 관계를 살피기로 한다. 번뇌장은 소지장에 의해 발생하는 麤煩惱이기 때문에 아뢰야식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유가계의 일치된 견해이다. 원효 또한 이 점 유가설과 다르지 않다. 곧 번뇌장의 體는 아뢰야식과 상응하지 않고 오직 칠전식과 함께 일어날 뿐이다.32)

라고 정했음이 그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아뢰야식을 제외한 七種識과 번뇌장체인 10근본번뇌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탐애와 무명은 칠종식에 통하고, 慢은 제6 · 7 二識에 통하고, 瞋은 오직 제칠말나식에는 통하지 않으며, 疑와 四見은 오직 의식에만 있으면서, 薩迦耶은 意(제7식)와 의식(제6식)에 있다.33)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煩惱障에 있어서 10근본번뇌의 七轉識과의 상응관계를 밝히는 것은 10근본번뇌의 성격을 규명하는데도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표층의식과 관계되는 번뇌는 麤煩惱로서 끊기가 쉽지만, 심층의식과 관계되는 번뇌는 행상이 미세하여 무기성에 속하면서 단멸이 극히 어려운 번뇌임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원효가 주장하는 번뇌장체의 상응관계는 아뢰야식과 밀착되어 있어 성유식설과 근본적으로 같으면서도 상이한 바가 있고 분류의 기준을 달리하고 있다. 성유식론에서 보는 번뇌장체와 팔식과의 상응은 다음과 같다.

이 10번뇌는 어떤 식과 상응하는가 藏識(第八阿賴耶識)에는 전혀 없고, 말나(第七識)에는 四(我愛 · 我見 · 我痴 · 我慢), 6의식에는 十(貪 · 瞋 · 痴 · 慢 · 疑 · 我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 전5식에는 三(貪 · 瞋 · 痴)이 있는데 이것(前五識)은 분별이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유식은 8식의 병렬관계에서 번뇌의 구조를 분류하는 횡적인 번뇌관이며, 원효는 무명을 정점으로 그 본말관계를 설명하는 종적인 번뇌관으로 볼 수 있다.34)

번뇌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아집이다. 나<我>이며 나의 것<我所>이라고 생각하는 아견은 제칠말나식이 그 근본으로서 제8식을 대상으로 하여 나<我>라고 집착하게 된다.35) 식이 인식작용을 일으킬 때 能緣인 주관작용과 所緣인 객관대상으로 분리되어 인식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 유식의 식분설이다. 이러한 주관작용을 見分이라 하고 객관대상을 相分이라고 한다. 이때 제7식은 아뢰야식의 見相二分을 ‘我와 我所로 삼게 된다. 그러나 제7식의 대상이 견분이냐 상분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아뢰야식의 사분설과 관계되고, 유식의 제가마다 견해를 달리한다.

호법은 「견분만을 我와 我所로 삼음이 옳다」고 하고, 「일심 가운데 我와 我所의 분리가 불가하다」고 규기등 중국 유식학자들이 주장하지만, 일심으로부터 무명 · 여래장 · 아뢰야식이 전개되고 그래서 一은 곧 非一이니, 「견분을 我와 我所」로 할 수도 있고 제8식을 我로 하고 종자를 我所로 할 수도 있다.

원효는 호법과 현장의 四分說을 논파하고 진나의 三分說을 재정립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호법의 유식을 모두 다 거부하는 것은 아니고 은밀문, 현료문 가운데 현료문의 원리로 수용하여 회통했다. 더욱 현상적 연기적으로 현료문의 원리에 입각해 관찰, 분석하면 오분설 칠분설도 될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본원에 환귀하는 성종문 · 은밀문으로 일심에 바탕하여 보면 二分說도 많게 되기 때문이다.36)

이러한 원효의 주장은 아뢰야식의 종자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인데, 팔식종자의 원리에 입각해서 四家의 諸說은 회통되는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의 논증으로 알 수 있다.

薩迦耶見의 我行과 我所行은 意 · 意識(六 · 七識)에 통한다. 末那識과 상응하는 두 가지 활동의 모습은 아뢰야식의 자체를 반연해서 「나」라고 하는 활동 <我行>을 하는 것이고 또 아뢰야식체의 諸相을 반연해서 나의 것이라는 집착을 일으킨 것이다. 제상이라고 함은 식과 상응하는 다섯 가지 心法(8心王法 · 51心所有法 · 11色法 · 24不相應法 · 6無爲法)과 모든 十八界의 모습이다. 이것은 식의 종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37)라고 하여 일체 현상을 아뢰야식에 함장된 종자의 변현으로 파악하는 유가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원효는 제8식의 종자인 제상을 我所라고 보는 과정을 거울의 비유로 설명한다.

이렇게 볼 때 일체법은 아뢰야식의 투영이고 아뢰야식은 결국 마음의 소작이므로 「일체유심조」 인 것이다.

다음은 三性과 번뇌장체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善 · 不善 · 無記의 三性說은 종교적 윤리적 범주로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이다. 구사론권5에 의하면 可愛의 異熟果를 招感하는 安穩業 또는 열반을 얻게 하는 것을 선이라 하고, 非可愛의 異熟果를 招感하는 不安穩業을 악이라 하며, 可愛의 果도 非可愛의 果도 招感할 능력이 없는 것을 無記라고 한다.38) 唯識에서는 善이란 正理에 따라서 자타를 이롭게 하는 것이고, 또 현재와 미래를 순익케 하는 것이며, 불선은 그 반대이다. 愛도 善도 惡도 아닌 것을 무기39)라고 정의하고 있다. 三性 가운데 무기는 업을 일으킬 힘은 없지만 성도를 장애하는 유부무기와 聖道를 장애하지 않는 행 · 주 · 좌 · 와 같은 무부무기의 두 종류가 있다.

원효는 三性에 의거하여 번뇌장체를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먼저 自性門에 의지해서 말하면,

⑴ 색계 · 무색계의 모든 번뇌와 욕계 가운데의 말나사혹은 有覆無記性에 속한다.

⑵ 욕계의 전5식에서 일어난 貪 · 恚 · 癡는 不善性에 속한다. 이는 不善한 의식에서 야기되는 업보이기 때문이다」40)

⑶ 욕계의식 중에 분별기의 일체번뇌는 다 불선이며, 임운기의 身見 · 邊見은 無記性이다.

⑷ 구생의 살가야견은 오직 무기성이다. 분별기 살가야견(身見)이라면 견고하게 집착하므로 不善性이다.

⑸ 愛 · 慢 · 無明등 수도위에서 단멸할 수 있는 不善業은 不善性이다.

⑹ 生을 맺을 때에 미세하게 현행하는 것(愛 · 慢 · 無明)은 無記性이다.

⑺ 아홉 가지 命終心41)은 有覆無記性이다.

⑻ 瞋恚는 不善性이지만 不善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성을 내는 경우는 선심을 겸한다.

⑼ 수번뇌 중에 尋 · 伺 · 惡作 · 隨眠은 三性에 통하지만, 예컨대 꿈속에서 무루도를 닦았다면 이때에 수면의 작용은 수번뇌가 아니다.

⑽ 8大煩惱인 放逸 · 掉擧 · 惛沈 · 不信 · 懈怠 · 邪念 · 散亂 · 不正知와 慾 · 勝解 · 誑 · 諂 · 憍는 오직 不善과 無覆無記에만 통할뿐이다.

⑾ 忿 · 恨 · 覆 · 惱 · 慳 · 嫉 · 害 · 無慚 · 無愧등 아홉 가지 번뇌는 不善性이다.

이상에서 번뇌장체인 10번뇌와 등류인 수번뇌의 8식과 三性의 관계를 원효의 설명에 따라 고찰하였다. 소수번뇌와 중수번뇌 대수번뇌설이 성유식론과 유가설이 서로 다른 것이 있는데, 원효는 주로 연기적 관찰에 입각해 본체적 관찰인 여래장 思考가 결여된 호법의 유식론 보다는 유가론 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2) 所知障과 八識法執

먼저 8식과 소지장에 대해 호법의 견해를 본다.

법집 무명은 오직 제6의식과 제7말나식에만 있다. . . 추구성이기 때문이다. 8식과 5식은 추구성이 아니다.

라고 했다.42) <섭대승론>에서 「의식의 일체는 아뢰야식에 통하지 않는다」함과 같고, <유가설>에서 「아뢰야식은 번뇌와 상응하지 않는다」함과 같은 뜻이다. 또 만약 8식에 법집이 있다면 훈습을 받는 곳이 없게 되며 응당 생각들이 찰나 찰나 遺失되어 대치함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니 그것은 곧 큰 허물을 이룰 것이다.43)

또 법집이 8식에 있다면 법공관이 처음 현전할 때에 이 8식은 응당 단멸하게 됨으로 유루종자가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수행공덕의 훈습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법집이 8식에 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44)

다음은 三性과 소지장에 대한 호법의 견해이다. 법집은 불선과 무부무기에만 있다. 이승의 성도는 染汚하지 않지만 보살의 도를 덮어 染汚하기 때문에 染汚의 성질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有覆(보살의 도를 장애)라 하기도 하고 또한 無覆(二乘의 我空 聖道는 장애하지 않는다.)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또한 법집은 반드시 無癡의 善根(선악을 簡擇取捨하는 혜력은 없으나 자연히 愚痴를 대치하는 作善爲業의 힘)과 함께 한다.45)

원효는 호법설의 당위성을 만약 법공관이 초지 이전 三賢位 가운데 법집이 있다고 하면 곧 인공관(須陀洹果) 전의 사선근에도 응당 아집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법공을 깨닫고 나서)에 그런 일(법집이 남아 있는 일)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저(아뢰야식) 가운데에 법집이 없음을 알 수 있다.46)고했다. 법공을 처음 증득한 初地에서 이미 법집은 떨어진다. 그러나 아뢰야식이 아직 남아 있어 대원경지는 얻지 못했으니, 이로부터 법집의 차원이 아니라 아뢰야식 대치만이 있을 뿐이라는 요지였다.

원효의 결론은 호법의 8식 無執說을 긍정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와 반대 입장에 있는 안혜의 八識法執說의 타당성을 또한 강조하여 양설의 회통을 보여 주고 있다. 從來 이른바 「五八無執護法宗 五八法執安慧宗」47)이라 하여 안혜의 경우에는 前五識과 第八識에도 法執이 있다는 것이다.

호법은 번뇌장과 소지장의 이장은 前七識 모두에 통하고 我執 法執의 二執은 오직 第六 · 七識에만 상응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안혜설은 소지장과 法執은 제8 · 5 · 6식에 통하고 我執은 오직 제7 · 6식에만 상응하며, 번뇌장은 前7에 다 통하고 法執은 제8 · 6 · 5식과 상응한다고 한다.

古人들이 암송해온 다음의 게송은 이 뜻을 잘 보여 주고 있다.

二障相應前七轉 二執相應唯六七 五八無執護法宗 所知法執五六八 法執相應唯六七 煩惱相應前七轉 五八法執安慧宗49)

法執이 八識에 두루 통한다는 첫째의 論據로 安慧는 「阿賴耶識은 法空을 了達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고 取相分別이 있기 때문임」50)을 든다.

원효는 그 聖言量의 증거로 해심밀경소에서 「八地 이상에서는 일체번뇌가 끊어져 없지만, 미세한 隨眠이 있어 소지장이 의지를 삼는다」51)한 것을 들어, 이로써 「아뢰야식에 미세한 소지장이 현행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유가설에서 일체의 번뇌장이 없기 때문에 번뇌와 상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뿐이며 소지장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았다52)고 하면서, 원효는 아뢰야식에 妄想이 있는 만큼 그것의 分識이라고 할 수 있는 五識에도 法執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논증을 한다.

<열반경>에 「五識은 비록 순수한 정신활동(一念)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는 유루이며 이는 전도해서 모든 번뇌를 增益하기 때문에 정신적 유루이다. 그리고 體性은 진실하지 못하여 허위적인 相에 집착하기 때문에 전도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5식에도 전도의 집착이 있음을 말한 것인데, 그러나 5식은 단지 五塵에만 執着할뿐이며 두루 思考(計度)하지 못하고 名言에도 취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루 思考하고 헤아리는 것은 오직 意識에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글에 의하여 5식 가운데에 法執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면 어떻게 法執이 없다는 뜻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五識에 法執이 없다는 聖言量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53)

이상은 안혜의 五八法執說을 적극 긍정한 원효의 논증이다. 앞에서 이미 호법의 五八無執說의 타당성을 술회한 바 있으므로 원효의 이 兩說의 양가적 양면적 입장은 다음의 회통을 위한 대전제라 하겠다.

다음은 三性이 소지장에 통한다는 안혜의 설이다.

(1) 二乘이 깨닫는 인공의 무루로는 法執의 분별을 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見道하여 인공진여를 깨달아 비록 名言에 취착하지 않지만 괴로운 일에 대하여 苦라는 相을 취하게 된다. 이는 법공진여를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法我의 常 · 樂 · 我 · 淨등 덕성에 대해서 전도하게 되기 때문이다.54)

(2) <보성론>에는 「이 四種顚倒를 대치한 까닭에 四種 非顚倒法이 있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물질계 같은 무상한 사물에 대해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四種顚倒의 대치를 말한다. 그러나 만약 대승의 법신에 기준 한다면 또한 顚倒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비록 人空을 증득한 까닭에 전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法空에는 미혹해서 顚倒가 이루어짐을 나타낸 것이다.

또 法空觀 전의 방편도 가운데에도 法執이 있다. 그러나 오직 미세한 하나의 智(慧)의 작용이 解를 나타내기도 하고 집착하기도 할뿐 한결같이 미혹하고 뇌란케 하는 다른 무명등의 집착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法空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는 無癡善根이 癡心所 등과 함께 일어나는 과실은 없다.55)

(3) <대법론>에 이르기를 「미혹하고 뇌란하는 것은 집착하는 주관과 그 객관의 대상이 있음을 말하며, 迷亂하지 않는 것은 이런 것들을 초월한 出世智와 後所得迷亂을 말한다. 곧 不迷亂이란 출세간의 聞惠等 선근에 수순해서 法空의 所知境을 분별하는 것이며, 무분별지의 수순이다」라고 하였다.56)

迷亂은 곧 法執으로서 法眞觀에 들기 전에 一切心 가운데에는 망상이 있고 모두 迷亂이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迷亂과 망상이 어찌 法執이 아니겠는가? 호법설 대로 人空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 無人執이므로 法空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도 無法執이라면 我觀前의 방편도 가운데에 我를 취하지 않을 것이니 無相前의 방편도 가운데에도 不取相이다, 이것이 옳지 않으므로 호법설도 옳지 않다.

제삼설은 원효가 본 8식과 三性에 대한 소지장의 견해이다.

호법설은 別門麤相道理에 맞으며, 안혜의 설은 通門巨細道理에 맞는다. 이러한 두 가지 진리의 문이 있기 때문에 모든 글이 서로 어긋나지만 모두 잘 통한다. 그러나 別相의 법집무명이 8식과 三性에 모두 통한다고 하거나, 通相의 法執無明이 제6 · 7식에 국한되어 있으며 善에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면 저 兩說은 도리에 맞지 않으며 또한 성인의 말씀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호법과 안혜의 설은 通門과 別門에 의해 올바르게 밝혀진 도리이므로 양설 모두 도리가 있는 정설이라 하겠다.57) 이상을 모두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第一護法說 : 法執은 第六 · 七識에만 통하며, 三性 가운데 不善과 有覆無記이다.

第二安慧說 : 모든 식에 二執이 있으며 三性 모두에 통한다. 즉 전5식 제8식은 法執에 통하고, 제7식은 我執만 통하며, 제6식은 我執 法執 모두에 통한다

第三元曉說 : 번뇌장은 七轉識에만 통하나, 8식에 연계돼 있으며, 소지장은 8식 모두에 통한다. 그리고 안혜설과 호법설이 모두 도리가 있다고 하였다.

꠆ꠏꠏ巨細通門道理(安慧說) : 8식에 모두 執이 있다는 설로서, 다시 제5 ꠐ 식 제8에는 法執 제6 · 7식에는 我執이 있음을 別門으로 ꠐ 설명했다.

ꠌꠏꠏ別門麤相道理(護法說) : 제8식에는 執이 없고, 제6 · 7식에만 執이 있다는 別門으로 설명한다.

원효는 이러한 학파간의 문제점들을 第三師(원효)의 설을 제시하여 유가유식이라는 하나의 물줄기를 흐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원효의 유식에 대한 화쟁의 입장은 어느 일정한 학파에 편향되지 않고 유식의 핵심에 접근하려는 유식에 대한 이해방식이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소지장을 제8식의 종자로 해석하므로 제8식에도 法執이 있다는 설을 취하고 있다.58) 이 때문에 학자들은 원효가 안혜설인 通門道理를 방법론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3) 纏과 隨眠과의 二障관계

세 번째로 원효는 纏과 隨眠으로 二障의 체성을 밝힌다. 먼저 이장의에서 말한 번뇌장의 纏과 隨眠과의 관계를 간단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1) 煩惱障의 纏과 隨眠

본혹과 수혹등 二惑이 現起할 때 계박하는 染汚心으로, 유정을 속박하는 현행번뇌를 纏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隨眠은 현행번뇌가 훈습하여 발생한 종자의 유가 엉키고 수축되여 깊이 잠복해 있는 不覺狀態를 가리킨다. 隨眠은 번뇌의 異名으로 끊임없이 유정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마치 잠자는 상태와 같게 하므로 隨眠이라고 한다. 이는 끊임없이 상속하고 훈습하여 생사류전의 근본원인이 되는 종자번뇌이다. 纏<煩惱>의 熏發함을 따라 종자와 麤重의 2종 隨眠이 和合生하여 장애를 능작하므로, 종자수면과 추중수면이 모두 장애의 체성이 된다. 번뇌장체에 대하여 <유가설>에

本隨二惑은 대체로 纏과 隨眠의 二緣으로 유정을 染惱하게 한다. 첫째 纏에 연유하고 둘째 隨眠에 연유함이 그것이다. 현행의 깨어 있는 마음으로 번뇌를 現起하는 것을 纏이라 하고, 隨眠(혹은 麤重)은 그 종자가 未斷未害이며 不覺位(깨어있지 않은 잠재의식의 상태)에 있다.59 고 하였다.

隨眠에 종자와 추중의 두 가지가 있으니 같은 하나의 전번뇌의 훈습을 따라서 이 둘이 발생한다. 隨眠은 染汚心이 훈습하여 발생하는데 조유성이 없고 堪能性이 없으며, 異熟識에 있어서 현행번뇌의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不調柔性을 추중이라고 한다.

<유가론>에서는 無所堪能 不調柔相을 麤重相이라 하였고 이것을 現重相 · 剛强相 · 障碍相 · 怯劣相 · 不自在相의 五種으로 설명한다. 전변하지만 아직 독자적 堪能相이 없어 雜染品을 수순함으로 淸淨品에는 어긋나는 것이 추중한 隨眠이고, 깊은 自體 가운데에 있는 自類性 相續性으로 말할 때는 종자인 것이다.

그런데 이 종자를 번뇌품의 편에서 말할 때는 추중 또는 隨眠이라 이름하지만, 만약 이숙품이나 무기품에 所攝시켜 말할 때는 오직 추중이라고만 하게 된다. 이는 종자와 隨眠도 추중의 뜻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또 「世間의 靜慮禪은 다만 그 品類의 추중만을 점점 버릴 뿐이고 種子는 除去하지 못한다. 無漏靜慮(出世間禪)는 추중과 종자를 함께 단절해 버린다」고하였다.60)

이로써 보면 추중은 그 치단이 종자의 그것보다 쉬움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이숙식 가운데 있는 染汚心이 그 染汚의 속성인 스스로의 체성을 이루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행을 能生할 수 있는 힘을 8식 가운데 藏在하고 있는 것을 종자라고 한다. 따라서 또 종자에는 본성종자와 습성종자가 있는데 이 둘이 화합하여 現纏(煩惱)을 能生함으로 모두 장체를 이룬다.

종자가 제8식 중에 攝在해 있다고 하지만 종자의 존재가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인 것인가에 대해서 본래 유식 三師의 이론이 있다.

호월은 선천적 本有라 하여 本有種을 훈습 증장양성하는 것일 뿐 새로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61) 文證으로 「契經(無盡意經)에 일체유정이 無始來로 갖가지 세계에 태어나서 사는 것이 akṣa나무더미(惡叉聚)가 본래 그렇게 존재하는 것과 같나니, 세계는 곧 種子의 差別에 의한 명칭일 따름이기 때문이니라.」62)라고 했고 또 「모든 種子의 본 바탕은 無始時來로 그 성품은 본래 있지만 染淨의 훈습함을 말미암아 일으킨 것이다」63)라고 한 것을 든다.

난타는 종자는 후천적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경론에 能熏 · 所熏이 無始로 具有하여 무시로 熏習한 종자가 있으므로 本有라고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성유식론의 「契經(多界經:中阿含經卷46)에 모든 有情의 마음이 染淨의 모든 법으로 熏習된 바이기 대문에 無量한 種子의 쌓아 모은 바(積集) 이다. 그래서 論에 설하되, “內的 種子(아뢰야식)는 결정코 熏習함이 있고, 외적종자(穀類種子)는 熏習함이 혹 있기도 하고 혹 없기도 하며, 또 名言등 세 가지 熏習이 一切의 有漏法의 종자를 총섭한다. · · · 無漏法의 종자가 생하는 것도 또한 熏習을 말미암나니 聞熏習은 聞淨法界와 같은 흐름인正法을 들음으로 훈습해서 일으키는 것이다”라고 설했기 때문이다.」64)라고 한 것과 瑜伽論의 「만일 所知障이 있고 煩惱障은 없으면 聲聞種性 獨覺種性이며 二障의 종자가 아주 없으면 如來種性이니」65) 등을 문증으로 든다.

이에 대해 호법은 「종자에는 本有와 新有의 二類가 있는데 그 어느 것도 無始」라 하여 호월과 난타의 설을 종합한 지론을 폈다. 호법은 곧 제8식 가운데 無始以來 저절로 諸法을 生하는 功能을 具有하고 있으니 이것이 本有種子라고 하는 한편 호법은 無始以來로 현행한 현재의 세력에 의해서 자주자주 쉬지 않고 熏習한 生果의 功能이 제8식 가운데 攝在해 있으니, 이 것을 新熏種子라 한다고 했음이 그것이다.

원효는 「종자에는 本性界(本有種子)와 習性種子가 있다」66)고 하여 種子說의 일차적 정의에 있어서는 원효와 호법과 현장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원효는 이 두 가지 종자가 驅逐하여 展開한 정신세계가 특히 숙세의 惡業(惡說法 非道德)이 일으킨 후천적(分別起) 我見 · 身見(正報:몸과 정신)이 依支할 바 세계(依報:客觀)곧 금세의 세계인 것이며, 이 正報와 依報의 증상하는 힘으로 말미암아 선천적(俱生)我見 · 身見이 거룩한 법과 계율에 대해 능히 현재의 後有的 장애를 일으켜 현행시킨다.67)고 하여 本有 · 後有의 諸說을 회통했다.

(2) 所知障의 性緣과 性分別

원효는 소지장에도 번뇌장의 纏과 隨眠에 대응되는 性緣과 性分別이 있다고 했다.68) 纏과 隨眠이 구체적이고 형이하학적이며 지엽적인데 대해 性(본체적)에 의한 緣과 分別은 근원적이고 미세하며 형이상적인 정신의 이면세계임을 뜻한다. 소지장의 性緣과 性分別에 대해 현양론의 二種自體分別인 隨緣覺과69) 隨眠(數習)의 습기를 든다.

원효는 현양론에서 의타기의 자체 가운데 두 가지 변계소집의 自體分別이 있음을 들었는데 이것을 은밀문의 二種 소지장이라 하고 그리고 그것이 隨緣覺과 隨眠數習 · 習氣隨眠이라고 했다. 미세하고 深奧한 자체의 분별이며 그 분별이 자주 반복됨으로 생기는 더욱 미세한 習氣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원효는 대승장엄경론의 有覺分別相 無覺分別相 相因分別相의 三種分別相70)을 들어 所知障의 심층에 좀더 접근시킨다. 곧 有覺分別相은 번뇌장에 속하는 纏과 隨眠의 範疇에 속하며, 無覺分別相은 소지장의 경계이고, 셋째로 相因分別相은 저 번뇌장의 纏 · 隨眠과 소지장의 깊은 무명이 상호연관관계에 있는 상호작용을 보인 것으로 纏 · 隨眠의 번뇌도 그 종자의 영역을 추구하면 분별이면서 동시에 소지장으로 연결된다71)는 요지이다.

그러므로 원효는 이것을 결론하여 「이런 등의 글에 의지하여 마땅히 알라 현행(煩惱)의 종자가 다 분별이고 소지장의 체가 되는 바이다」72)라고 했다.

4) 二障의 正障과 習氣

네 번째 正障과 이 正障에 의한 習氣를 가지고 二障을 규명한다. 이상 설명한 번뇌장과 소지장은 출세의 聖道를 장애하므로 正障이라 하고, 이에 대해 正障의 번뇌가 滅한 뒤에도 그와 유사한 기운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을 習氣라 한다73)고 원효는 정의하였다.

이 습기는 뉴톤의 제일법칙인 물리학의 타성, 또는 관성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다. 정지하고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하려 하고,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등속도의 운동을 쉬지 않으려 하는 성질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습기가 바로 관성의 원리와 다를 바 없다. 대지도론에 의하면

이 習氣는 眞煩惱가 아니니 어떤 사람이 일체의 번뇌를 비록 끊었더라도 身 · 口에 또한 煩惱相이 남아 있다. 범부들이 이(모습)를 보고 不淸淨心을 일으킨다고 한다. 비유컨대 옛날에 蜜婆私咤阿羅漢이 五百世동안 원숭이 몸을 받은바 있어 今世에 비록 아라한이 되었지만 나무를 아주 잘 탔기 때문에 어리석은 비구들이 보고 저 비구는 원숭이와 같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 阿羅漢의 마음에는 번뇌가 없었으며 저 本習이 있을 뿐이다74)

한 것과 같다. 원효는 習氣를 다시 別習氣와 通習氣로 나누고, 이것으로 번뇌장 소지장과의 관계를 조명한다. 곧 別習氣는 번뇌장에만 국한한 것이고, 通習氣는 이장 모두에 殘餘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장의는 먼저 別習氣에 대해 설하고 있다. 수도하여 聖果를 얻음으로 교만한 번뇌를 일으키는 종자는 단절하더라도 取相分別의 종자는 단절하지 못한다. 옛날 노비를 만나면, 문득 「 ○○야」 하고 부르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을 慢使習氣라고 하는데, 이런 번뇌장의 습기는 번뇌장 가운데 포섭되지 않는다. 이승의 도를 장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取相分別習氣는 法空의 진리에 미혹된 것이므로 소지장의 체성이 된다.75)

通習氣에 대해 원효는 이장 모두에 남아 있는 習氣라고 한다. 무루도가 生하여 번뇌의 종자가 끊어져서 煩惱品의 麤重(習氣)이 경미하게 되면 이것은 이미 異熟識品(所知障)의 麤重인 것이다. 또 이 麤重은 染의 遺氣이고 이미 번뇌(染)자체는 아니니 마치 아들의 몸이 아버지의 遺氣이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이은 몸이기는 하지만 바로 아버지가 아님과 같다고 했다.

또 麤重에 染麤重과 有染麤重이 있어서 染麤重은 아라한들이 번뇌를 斷滅할 때에 모두 다 길이 斷滅한다. · · · 有染麤重은 煩惱習氣라고도 하는데, 阿羅한과 독각이 斷滅하지 못하며 오직 여래만이 구경에 斷滅할 수 있다. 煩惱장의 습기와 소지장의 습기는 이장에 통한다76)고 했다. <유가론>의 이 글에는 번뇌장은 이승이 끊지만 그 習氣는 소지장섭이므로 지상보살이 끊는 것처럼, 소지장의 종자는 지상보살이 끊지만, 소지장의 습기는 여래가 끊는다는 등식의 성립을 계시하는 의미가 있다.

<대법론>에서는 「여래는 영원히 일체의 번뇌장과 소지장과 그 습기를 斷滅한다」77)라고 하였고 <보성론>에서는 「不淨者는 일체 범부니 번뇌장이 있기 때문이며, 有垢者는 모든 성문 · 벽지불등의 知障이 있기 때문이며, 有黠者는 모든 보살마하살등이니 二種習氣障에 의지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78)는 등의 글을 들어 원효는 번뇌의 궁극적 斷滅은 습기장을 제거하는데 이르러 비로소 다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다시 해심밀경에서 「여래지에서 극미세 · 최극미세한 번뇌장과 소지장을 대치한다」79)고 하여 제삼의 習氣障의 설정으로 해석했다.

이상과 같이 二障만을 말했다고 하는 <유가>에도 자세히 보면 그 습기장을 언급했고 해심밀경에서 ‘여래지에서 비로소 끊는다’고 하는 최극미세한 이장도 그 뜻으로 보면 역시 習氣인 만큼 이장밖에 習氣障이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은 원효의 독자적 고찰은 그 근거가 확실하다.

5) 五法과 二障과의 關係

오법80)은 심법 · 심소유법 · 색법 · 심불상응행법 · 무위법이다. 心法은 識의 自相이고 심소유법은 6근과 6식등 8식이 상응하여 일어나는 심작용이며, 色法은 물질계의 법칙이다. 유식에서는 물질 또한 심법과 심소유법의 변현으로 규정하며, 불상응법은 거짓 심법 · 심소법 · 색법등의 분위에 의한 가설이고 무위법은 識의 實性으로 절대진여의 법이다.

二障과 五法 곧 일체법의 유식적 인과관계를 분석함에 있어, 원효는 1)二障의 現行, 2)現行이 아닌 隨眠과 種子, 3)前生習氣, 4)麤重隨眠과 無間生習氣의 사법을 먼저 오법에 대응시킨다.

(1) 이장의 현행은 심소유법에 속하며, 심법 색법 불상응행법이다.

(2) 種子隨眠과 그 현행은 심법과 심소유법에 포섭되며 非現行의 심층심이지만 자성을 반연하는 분별심이기 때문이다.

(3) 前生習氣(二障種子를 다 끊지 못한 別習氣)의 현행과 종자는 심왕과 심소유법에 속한다.

(4) 麤重隨眠과 無間生習氣(通習氣)는 性(心心所)相應이 아니므로, 불상응법 가운데 異生性81)에 속한다. 異生에 麤와 細가 있다.

첫째 麤異生은 見道하여 끊는 번뇌를 끊지 못한 중생이니 그야말로 諸聖法에 대해 전혀 堪能性이 없다.

또 異生은 본래 삼계의 견혹을 끊지 못한 위이니, 수행인이 초지 또는 수다원과에서 깨달음으로 무루지가 현전하면 성자라하고, 그 이전은 범부 · 이생이라 한다. 따라서 범부는 업으로 얼마동안 그렇게 상속할 뿐,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色心의 法體가 실제로 있지 않은 非色非心의 法이면서 假立한 것에 불과하므로 이생을 命根 · 得등과 함께 24不相應法 가운데 포함된다. 그런데 無間生習氣는 二障種子를 끊고 나서야 있는 것이어서 범부가 감당할 수 없으므로 곧 중생에게 無間生習氣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효는 「중생에도 麤異生이 있고 細異生이 있는데 불각의 중생은 다 麤異生이고 이장을 깨달았더라도 금강유정 이전 覺者의 一切麤重이 다 異生이다」라고 하여, 성불하기 이전의 覺 곧 지상보살에게만 있는 無間生習氣 임을 밝혔다. 따라서 麤衆生의 不相應行法攝의 내용은 麤重隨眠의 경우라고 보게 된다. 동시에 麤重隨眠은 心法도 아니고 色法도 아닌 불분명하고 미정의 位이기 때문에 不相應行法의 所攝으로 원효는 규정한다.

이상 원효가 크게 분류한 현료와 은밀 二門 가운데 현료문 이장의 다섯 가지 내용을 살펴보았다. 아집을 爲首로 하는 번뇌장과 법집을 근본으로 하는 소지장의 근본적 파악은 호법과 현장의 경우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8식과 삼성과의 간별문제 특히 8식의 법집에 있어서 종종의 이견 가운데, 호법과 난타의 상반한 지견에 대해 그 관점 여하에 따라 別門麤相道理 · 通門巨細道理의 각각의 타당성을 인정하여 회통 화쟁 했다.

隨眠과 種子에 관해서도 여러 설이 있으나 원효는 纏과 隨眠을 번뇌장, 本性界(本有種子) · 習性種子(新熏種子)를 소지장으로 관통정리 했으며, 二障 밖에 習氣障을 세우는 등의 초월적 탁견을 보였다.

4. 二障의 隱密的 體性

원효의 사상은 어디까지나 본체론과 현상론을 관통하는 것이고 本末不二의 초월적 차원인 것이며, 中觀的 性空眞如와 유식적 일체유심조의 隨緣을 總括的으로 會通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본 이장의에서 현료와 은밀의 二門으로 이장체성을 거듭해서 관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할 것이다.

1) 煩惱碍와 六種染心

현료문에서는 제8식의 無明業이 소지장이였지만, 본체론 적인 은밀문에 와서는 제8식의 경계를 지말적인 6 · 7식과 함께 번뇌애로 규정되는 것은 양문구도의 논리상 당연한 귀결이다. 은밀문 서두에서 육종염심이 煩惱碍의 體이고 근본무명이 智碍의 體라 한 것이다.82) 六種染心은 ①執相應染 ②不斷相應染 ③分別智相應染 ④現色不相應染 ⑤能見心不相應染 ⑥根本業不相應染이다. 이 가운데에,

① 執相應染은 제6의식에 속한 見 · 愛의 번뇌가 증장시킨 추번뇌 이며, 이승이 아라한위에서 견혹과 수혹의 번뇌를 다 여읜다.

② 不斷相應染은 상속식이니 법집과 상응하는 번뇌이며, 초지보살이 三無性을 증득하므로 다 여읜다.

③ 分別智相應染은 智識에 상응하는 染이며, 제7지의 무상방편지에서 여읜다.

④ 現色不相應染은 현식이니 맑은 거울에 색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8지의 色自在地에서 정토자재를 얻음으로 여읜다.

⑤ 能見心不相應染은 제2전식이니 動心에 의하여 능견을 이룬 것이다. 제9지의 心自在地에서 四無碍智를 얻어 여읜다.

⑥ 根本業不相應染은 五種意 가운데에 第一業識이니 무명의 힘에 의하여 不覺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83) 보살지가 다 끝나는 第十地位이다.

六種染識 가운데에 ①執相應染과 ②不斷相應染은 제6의식에 속하고, ③分別智相應染은 제7식이며 ④現色不相應染과 ⑤能見心不相應染과 ⑥ 根本業不相應染은 제8식에 속하는 것으로 원효는 규정한다. 이에 대해 법장은 現色 能見心 근본업의 三染 三細를 제8식으로 하는 것은 원효를 따랐으면서, 분별지를 제7식으로 하는 것은 원효설을 따르지 않고 分別智染 · 不斷染(相續識) · 執相應染의 三染六麤를 다 합하여 제6식으로 하고 있다. 요컨대 현료문에서는 소지장이였던 8식과 삼세가 은밀문에서는 번뇌장으로 취급된다는 것은 비유컨대 무명이나 삼베옷이 서민에게는 귀중한 옷감이지만 부귀한 집안에서는 도리어 하찮은 옷감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장의 처음 釋名義 말미에서 소지장을 정의하는 가운데 「六種染心이 생각을 움직여 상을 취함으로 평등한 성품이 상을 여이어 움직임이 없는 도리를 등지고 적정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번뇌애라 이름한다」84)라고 했다

三細 곧 제8식은 현료문의 입장에서는 심층의 잠재의식이어서 비록 무명의 생각을 움직임이 있지만 극히 미세해서 능소(主客) 이전의 상태이므로 소지장으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은밀문은 아주 깊은 최극미세한 최초의 근저 곧 근본무명의 경지이므로 저 삼세 제8식이 도리어 麤念相으로 번뇌애가 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반적으로는 원자가 물질구조의 마지막 단위이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존재이지만 電子 微粒子의 세계에서는 큰 물질일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隱密門에서 소지장을 정의하면서 「住地煩惱는 현료문 가운데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오직 은밀문의 智碍에 포섭된다」85)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隱密門의 소지장은 현료문에서는 소지장 가운데 깊이 잠들어 隱伏해 있을 뿐이라 하겠다.

 

2) 智碍와 根本無明

起信論에서 「無明이란 智碍를 말하니 世間自然業智를 障碍하기 때문이다」86)라고 했는데, 元曉 疏에서는 현료문에서는 이장이라 하고, 은밀문에서는 二碍라 한다. 이 뜻은 二障章에 자세히 설했다. 이 글은 은밀문에 해당한다. 無明의 뜻은 근본무명이고 世間業智라 함은 후득지이다. 무명이 昏迷하여. . . 세간의 분별지를 어기기 때문에 智碍라 한다87)

고했다. 이 근본무명이 바로 六種染心이 의지하는 근본이며, 世間自然業智를 障碍하는 가장 미세한 冥闇 不覺相이다. 근본무명은 혼미한 최초의 불각 상태로서 여량지의 밝게 깨어 살피는 작용을 가로막기 때문에 智碍라고 한다. 안으로 자성의 일여평등을 迷했지만, 밖으로 차별상(因果法)을 취하지는 않으므로 能取所取의 다름이 없어 眞明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眞明과 가장 위배된다. 마치 낮은 사미와 (높은)화상의 자리가 가까운 것과 같다.88)

이 무명보다 앞선 미망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무시무명이라 한다. 이에 대해 二障義89)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生死 가운데에 무명보다 더 미세한 것은 없다. 무명이 원래부터 홀연히 일어나기 때문에 무시무명이라 한다. 本業經에90) 「이 住地 以前에 어떤 법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無始無明住地라 한다」라고 하였다. 기신론에91) 「一法界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心不相應이며, 홀연히 念을 일으키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고하였다. 이전이 없고 홀연히 일어난다는 것은 시절전후가 아닌, 횡적인 麤細緣起에 따른 것이다.92)

무시에 대해 원효는 소에서 「이 무명이 최극미세하여 能所主客의 차별이 있기 전이므로 心不相應이라 했으니, 오직 이것이 근본이 되고 다른 染法이 없으며 이것 보다 더 미세한 染法이 그 이전에 있지 않았으므로 홀연히 일어났다고 했다.

저 본업경에서 「사주지전에는 다시 어떤 법도 일어난 것이 없기 때문에 무시무명주지라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것이 근본이므로 無始라 했고 여기서 말한 홀연의 뜻도 이와 같으니 細와 麤가 상의하고 있는 원리에 따라 앞이 없다」(無始)고 말하고 또한 「홀연기라 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시간의 의미로 말한 홀연이 아니다」93)라고 했다.

현수의기는 위의 원효소 그대로에 한 두 자를 추가한 정도로 동일하다. 그 抄(圭峰 · 子璿 중 一人의 것)에서 다음의 세 가지 뜻으로 요약해 풀이했다.94)

첫째, 앞이 없다는 뜻으로 홀연이라 했고 有始의 홀연이 아니다. 둘째, 無前이라 함은 무명이 최극미세하여 이 보다 앞에 있는 법이 없음을 가리킨다. 셋째, 始起한 근본이 없기 때문에 忽然이라고 했다고 하여 이 또한 기신론소별기를 바탕으로 한 설명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또 당시에는 기신론소에 관한 원효의 다른 주석서(大記 · 宗要 · 私記등 다수)가 많이 유행하고 있어 抄에서는 그것을 참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의 賢首義記도 원효의 기신론소별기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표절된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장의는 이와 같은 은밀문의 智碍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역시 아뢰야식의 개념을 통해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말한다. 곧 이 근본무명인 智碍가 그대로 이숙식 아뢰야식은 아니지만, 아뢰야식에 의지해서 근본무명인 최초의 불각을 설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무명은 종자가 아니므로 이숙식과 상응하지 않지만, 이숙식과 화합하여 不離하므로 이숙식에 의지하여 무명상을 설할 수 있고, 그래서 아뢰야식위에 둔다는 것이다. 기신론95)에 「아뢰야식에 의지하므로 무명불각이 일어나는 것을 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음이 그것이다.

이상 이장의 體性에 관해 원효의 현료와 은밀의 이중논법에 의한 입체적 고찰을 모두 마쳤다.

5. 顯了 · 隱密 二門의 住地煩惱

주지번뇌와 기번뇌의 이종번뇌는 본래는 본업경과 승만경에 따른 번뇌설이다. 일체 초목과 종자가 대지에 의해 싹이 트고 자라듯이 住地煩惱에 의해 起煩惱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효는 기번뇌는 현료문의 번뇌장과 소지장으로 말하며, 모든 心相應의 纏과 隨眠을 일컫는 것으로 하고 주지번뇌에서 다시 四住地를 生起하기 때문에 起惑이라 한다고 했다.96)

주지번뇌에 오주지번뇌가 있다. 오주지번뇌란 중생을 三界九地의 생사에 집착케 하는 惑에 다섯 가지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주지번뇌는 이 오주지번뇌를 가리킨다.

① 見一處住地는 一切見住地라고도 한다. 견은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見惑을 말한다. 이것은 지적인 미혹으로서 見道位에서 四諦를 관할 때 일시에 끊어지기 때문에 見一處라 이름한다. 住地는 이 번뇌(見惑)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가 일어나므로 주지라고 한다. 대승의장 제5권에서 혜원은 이것을 해석하여 見을 五利使煩惱, 즉 身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이며 추구성이라 하였다. 또한 견도에 들어감과 동시에 一處에 이것을 幷斷함으로 견일처라고 한다.

② 欲愛住地는 欲은 欲界의 번뇌를 가리키며 愛는 貪愛 곧 四惑이다. 四惑은 貪 · 瞋 · 痴 · 慢의 四에 통하거니와 貪愛는 다음 生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貪愛로써 四惑을 나타냈다. 즉 십근본번뇌 가운데에 무명과 五見을 제외한 그 밖의 五欲에 대해 집착하는 번뇌이다. 이것은 見道할 때 見惑은 끊었으나 修惑은 一品도 끊지 못했으므로 욕계의 九品修惑부터 닦아서 끊어야 하는데 욕애주지는 곧 욕계의 수혹이다.

③ 色愛住地는 색은 색계, 愛와 住地는 위와 같다. 色界의 四惑이며 다시 말하면 색계의 번뇌로서 무명과 五利見을 제외한 그 밖의 오욕을 버렸는데 色有(欲界의 果報)에 대해 執着하는 번뇌는 아직 남아 있는 것을 가리킨다. 곧 색계천의 修惑이다.

④ 有愛住地는 有는 무색계이며, 곧 무색계에 있는 번뇌를 가리키는데 무명과 見을 제외한 색탐을 버렸지만 자기 몸에 대한 애착하는 번뇌를 일컫는다. 곧 무색계의 수혹이다.

⑤ 無明住地는 無明은 우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이며, 온갖 번뇌의 근본인 것이다. 또한 무명주지는 모든 染法을 내는 근본이며, 모든 生滅을 일으키는 因이다. 왜냐하면 모든 染法은 불각상이기 때문이다. 勝鬘經에는 아라한 · 벽지불등은 第四有愛住地까지만 끊을 뿐 無明住地는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고 한다.

<本業經>에서는 四住地前에는 다시 법이 일어남이 없기 때문에 無始의 無明住地라 이름한다고 하였다.97)

그리고 무명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染汚無明과 不染汚無明이다. 染汚란 斷理無明을 말하고 事에 대해 無知인 斷事無明이 不染汚無明이라고 한다. 유식종에서는 앞의 넷을 번뇌장의 종자로 보고 뒤의 하나 <無明住地>를 소지장의 종자라고 했다 또 처음의 <見一處住地>는 見惑으로 見道所斷이고 다음의 셋은 修惑으로 修道所斷이라 했으며, 뒤의 하나는 三界一切의 무명으로, 心體의 慧明을 덮은 치암이니 一切惑의 근본임을 뜻한다.

또 天台宗에서는 제일은 견혹, 二 · 三 · 四는 삼계의 思惑(修惑)이니, 이상의 넷을 묶어서 界內 見思惑이라 이름하며, 이승이 이것을 닦아서 三界를 뛰어 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제5의 무명주지는 곧 界外의 惑으로 여기에 四十二品이 있어 이것을 斷盡하고 二種生死(衆生의 分段生死, 二乘의 變易生死)를 여의고 마침내 대열반을 성취한다고 했다.98)

 

원효가 이장의에서 세운 이종번뇌 가운데 住地煩惱의 四住地는 위에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곧 위의 오주지는 현료문의 起煩惱일 뿐이고 여기서의 四住地는 은밀문의 주지번뇌로 이것을 혜원이 승만경 등에 의해 정립한 五住地煩惱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은밀문의 이 무시무명주지는 다시 生得住地와 作得住地로 二分하는데 作得住地는 生得住地에 의지해서 이차적으로 전개된 무명주지이므로 생득주지는 더욱 근원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생득주지는 견일처주지라고도 하는데, 그러나 은밀문의 견일처주지는 현료문의 견일처주지와는 전적으로 그 의미가 다르다. 앞에서의 견일처주지는 四諦를 사무쳐 見惑을 治斷함으로 我空을 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근본무명을 깨닫는 은밀문의 법공각이기 때문이다. 먼저 현료와 은밀 두 문의 오주지번뇌를 도표로 보이면 [표 7]99)과 같다.

[출처] 원효 이장번뇌에 대한 연구|작성자 임기영 불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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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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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효암(孝菴) 박규택(公認 大法師) | 작성시간 26.06.14 佛ㆍ法ㆍ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You are welcome to the Buddha, the Dharma, and the Three Seasons.

    I pray with the utmost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hide and mercy shine. Thank you.

    attain Buddhahood

    Amitabha Buddha, Avalokiteshvara Bodhisattva()()()


    = 朴圭澤 華谷·孝菴 公認 大法師(佛敎學 碩士課程 2學年 在學中)의 좋은글 中에서(Among the good articles of Park Gyu-Taek HwagokㆍDharma-Bhānaka and Hyoam's official Daebosa(I'm in my second year of a master's course in Buddhist studies) =
  • 작성자즉비시명(명적) | 작성시간 26.06.15 마하반야바라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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