方便品 第二
8.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오시다 (1)
그래서 비로소
내가 이 땅에 왜 왔는가? 이것을 여기서 스스로 부처님 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제목에서 보았듯이 일대사인연,
오직 하나 뿐이고 그리고 가장 큰 일,
그런 가장 큰 일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미묘한 법은 모든 부처님 여래가 항상 때가 되어야 말씀하느니라.
때가 되어야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때가 되어야 말을 합니다.
말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그렇습니다.
농부들이 짓는 농사일이 그렇고, 우리가 하나하나 익혀가는 불교적인 공부가 그렇고.
세상의 기술이 모두가 그렇고 심지어 밥을 짓는 일 까지도 그렇지요.
때가 되어야 된다는 거지요.
마치 우담바라꽃이 때가 되어야 한 번 피는 것과 같으니라.
때도 아닌데 이상한 그런 물 잠자리 알인가 그것을 실어 놓은 것을 가지고,
우담바라 라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지요.
그런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그렇지, 모든 것이 수요가 있으니까 공급이 있는 거예요.
그런 엉터리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주는 사람이 먹혀드니까 통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불교 수준이 그렇다고 하면 그것을 들어줄만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가 먹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가르치는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듣는 사람의 수준도 문제가 있지요.
그것이 먹혀들지 아니하면 처음부터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사람의 수준도 중요하고 듣는 사람의 수준도 중요하다.
이런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부처님이 설한 법을 믿어라.
말이 결코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들이 마땅한 대로 법을 말하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우니라.
‘마땅한 대로 법을 말하는 그 뜻을,’
편의에 따라서, 말하자면은 어떤 상황에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말하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 우니라.
왜냐하면 내가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말로써 법을 설하느니라.
그렇지요. 팔만대장경 아닙니까?
거기다 또 조사스님 들의 어떤 논이라든지 어록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합해져 가지고 얼마나 불교의 많은 성전들이 있습니까?
그야말로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말로써 법을 설하느니라.
이 법은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느니라.'
우리 승가에서 걸핏하면 언어도단하고 ‘심행처멸’ 이라 그랬지요.
다 이렇게 법화경에서도 일찍이 표현을 했습니다.
'언어도단하고 심행처멸 이라.'
이 법은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느니라.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으로 지어서 헤아리고,
사량 분별하고 사변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그런 것은,
여기에서 해당될 수 없다 하는 것입니다.
오직 부처님들만 능히 아시느니라.
깨달은 사람만이 능히 통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목표를 높이 설정해 놓았습니다.
이 대승경전인 법화경을 이렇게 까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곧, 승가에서 깨달음을 중요시 여기는 그런 입장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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