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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기신론

지운스님 강의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5. 생멸문(生滅門) - 심생멸(心生滅) - 제36강 시각(始覺)의 네 가지 모습을 풀이함 (3)

작성자虛 堂|작성시간13.12.21|조회수616 목록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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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생멸문(生滅門) - 심생멸(心生滅) 제36강 시각(始覺)의 네 가지 모습을 풀이함 (3)
      지난 시간에 시각(始覺)의 네 가지 모습, 범부의 깨달음[凡夫覺]부터 상사각(相似覺), 수분각(隨分覺), 구경각(究竟覺)까지 했는데, 거기에 마음이 생멸하는 모습, 생(生), 주(住), 이(異), 멸(滅)에 배대를 쳐서 공부를 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얘기해야 될 부분이 마음 작용에 대한 얘기인데, 그것은 수행하고 관계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마음작용이 있는데 그 마음에 대해서 소상(所相), 능상(能相)이라는 말을 씁니다. 《소(疏)》 169p를 보십시오. 소상, 능상이라는 용어가 조금 어려운데, 일단 본문을 읽어보고 여기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도록 하죠.
       《소(疏) - 22 – 1》 
      
      
      又 所相之心은 一心而來이고 能相之相은 無明所起니라. 
      所起之相은 隨其所至에 其用이 有差別하고 
      取塵別相을 名爲數法이니 良由로 其根本無明이니 違平等性故也니라. 
      其所相心이 隨所至處에 每作總主일새 了塵通相을 說名心王이라 하니 
      由其本一心이 是諸法之總源故也니라. 
      
      또 소상(所相)의 마음은 한마음에서 오고 
      능상(能相)의 모습은 무명이 일으킨다.
      무명에 따라 일어난 모습은 네 가지 모습에 따라 그 쓰임에 차별이 있으며 
      그 경계에서 다른 모습을 취한 것을 마음의 작용이라고 하니, 
      참으로 근본 무명이 평등한 성품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 소상(所相)의 마음은 이르는 곳마다 번번이 모든 것을 한데 묶는 주인이 되어 
      경계에 전체적인 모습을 알기에 이 마음을 마음의 왕이라고 하니,
      이는 본디 한마음이 모든 법을 통틀어 그 근원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왕을 심왕(心王)이라 그러거든요. 이 심왕(心王)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마음 작용을 심소(心所)라 그럽니다. 신하에 비유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심왕의 심소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수행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잘 알면, 왜 수행을 해야 되는지, 또 수행의 경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아리야식에는 각(覺)과 불각(不覺), 두 가지 뜻이 있다 했죠. 그리고 각(覺)은 다시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으로 나눠지고 또 시각(始覺)에도 네 단계로 나눴죠. 범부의 깨달음[凡夫覺], 성문(聲聞), 연각(緣覺), 초지보살(初地菩薩)의 깨달음[相似覺], 이지보살(二地菩薩)에서 칠지보살(七地菩薩)의 깨달음[隨分覺], 이 분들은 일부분이라도 법신을 체득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경각(究竟覺)이죠. 여기에 하나하나 심식을 배대하면, 구경각은 최초 생기는 모습[生], 수분각은 마음이 머무르는 모습[住], 상사각은 마음이 순간순간 달라지는 모습[異], 범부각은 마음이 소멸해 버리는 모습[滅], 이렇게 공부를 했습니다. 오늘 공부할 심왕과 심소가 ‘최초 생기는 모습[生]’과 관련이 있는데,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으면 제일 처음에 아리야식의 모습을 띱니다. 이 아리야식에는 세 가지 모습이 있다는 거 잘 아시죠. 첫 번째는 주관과 객관이 나눠지지 않은[未分] 업의 모습[業相]이고, 두 번째, 주관의 모습을 띤 전상(轉相)이고, 세 번째는 객관의 모습을 띤 현상(現相)입니다. 이것은 지난 시간에 다 공부한 내용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으면 아리야식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으면 말나식으로 바뀌고, 또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서 의식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또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모습을 띠게 되는 거죠. 여기에서 소상(所相)의 마음이라는 게 뭔가 하면, ①아리야식, ②말나식, ③의식, ④시각, ⑤청각, ⑥후각, ⑦미각, ⑧촉각, 이 여덟 개가 심왕(心王)이라 그럽니다.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서 바뀐 모습들이 심왕인데, 이 심왕의 역할은 부분을 인식하는 게 아니고 전체 모습을 인식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하면, 그 업무를 볼 때 세세한 부분까지 얘기하는 게 아니고 아웃라인만 지적을 해 주는 거죠. 그러면 밑에 장관들이 그것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정책 추진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①아리야식, ②말나식, ③의식, ④시각, ⑤청각, ⑥후각, ⑦미각, ⑧촉각, 이렇게 심왕(心王)이 여덟 개가 된다는 거죠. 여기서 신하 역할 하는 게 심소(心所)라 그러는데, 이게 심리입니다. 그러니까 심왕에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인거죠. 마음의 작용이 심소(心所), 심소유법(心所有法)입니다. 심왕과 심소는 같이 생겼다가 같이 소멸하고, 인식 대상도 같고 토대도 같습니다. 그런데 작용하는 게 다르다는 겁니다. 인식할 때 심왕은 대상의 전체를 보고 심소는 대상의 전체도 보지만 부분을 봅니다. 예를 들어서 얘기를 해보죠. 아리야식은 우리가 모르는 불가지(不可知)의 세계고, 말나식도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안 나타나고, 그래서 의식을 가지고 얘기를 해보죠. 의식이라는 심왕은 이 컵을 볼 때 전체를 봅니다. 그리고 무늬라든지 색깔이라든지 세세하게 보는 것은 심소가 하는 겁니다. 이 심소의 종류가 52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탐욕이라는 심리가 일어나면 의식[심왕]은 전체를 보지만 심소는 모양이나 색깔의 조건이 갖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거예요. 의식은 그게 없는데 의식에 수반되어 있는 탐욕은 그것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심리에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는데, 좋은 심리는 이것을 남에게 줘야 되겠다, 이런 거겠죠. 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찻잔과 연계되는 사건이 연상이 되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마음도 소상(所相)과 능상(能相)이 있습니다. 아리야식이나 말나식, 의식은 수동적인 모습[所相]이고, 능동적인 모습[能相]은 심리인데, 욕심을 부린다든지 화를 낸다든지 이런 게 일어나는 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하면, 무명의 영향으로 능동적인 모습을 띤다는 거죠. 그렇지만 이 마음은 일심(一心)에서 왔기 때문에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서 아리야식, 말나식, 의식의 모습을 띠고 있기는 있지만 일심(一心)이라는 자리는 주관과 객관이 없는 자리잖아요. 그런데 인연을 만나서 모습이 바뀌었지만 전체를 보는 마음은 안 바뀌고 있는 거예요. 아리야식, 말나식, 의식은 전체를 보고, 세세하게 보는 것은 심리가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상(所相 : 아리야식, 말나식, 의식)은 전체를 보는 마음이고 능상(能相 : 심리)은 부분적인 것을 보는 마음이라는 겁니다. 《소(疏)》에 이어서 보면 원효스님께서 「중변론」을 인용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 
      
      
      如中邊論 云에 
      唯塵智를 名心이라 하고 差別을 名心法이라 하며 
      長行에 釋云하되 若了塵通相을 名心이라 하면 
      取塵別相을 名爲心法이라.
      
      이는 「중변론」의 게송에서 
      “오직 경계를 아는 지혜를 마음이라고 하고,
      거기서 차별된 모습을 마음의 법이라고 한다.”고 하며,
      이를 다시 풀이하여 “경계의 전체 모습을 아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면 
      경계에서 따로 모습을 취한 것을 마음의 작용이라 한다.”고 말한 내용과 같다. 
      이게 마음의 작용인 심소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수행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겁니다. 범부각(凡夫覺)은 멸(滅)이라 했죠. 생각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 행위(行爲)가 일어납니다. 범부가 칠지악업을 깨닫고 반성해서 생각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생각이 나쁜 생각이라면 못 일어나게[行爲]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도둑질이라는 생각이 일어났을 때 이게 나쁘다는 것을 자기가 반성을 하고 그 다음에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도 못하게 자제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짐으로 해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에 의해서 부수적으로 행위가 있는데, 그것이 차단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상사각(相似覺)의 이(異) 마음이 탐진치만의견(貪瞋癡慢疑見)이죠. 여기에는 수많은 심리가 있는데, 수행[觀]을 통해서 범부각을 이루고 상사각을 이루면 이런 심리가 하나하나 제거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부분으로 보는 것[심리]이 제거가 되면 전체를 보는 마음이 생기죠. 그 다음에 다르게 표현하면, 부분으로 보던 집착하는 마음, 모양을 보던 마음이 관계성의 흐름을 보기 시작하면 심리가 없어져 가는 거죠. 제가 ‘알아차림’이라는 말을 했죠. 대상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거죠. 변화는 무상(無常)입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려 가면, 대상은 고정 된 모양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러면 자기의 감정과 생각도 붙이지 않게 되기 때문에 심리가 점점 약해져서 제거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점점 고요해지고 시야는 점점 넓어지죠. 그 다음에 상사각(相似覺)에서 수분각(隨分覺)의 경계로 들어가면, 의식상의 거친 번뇌는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마음의 작용이 번뇌인데, 이런 번뇌가 관찰을 통해서 다 떨쳐 나가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잠재되어 있는 속에는 ‘내’라는 게 남아 있는 거죠. 여기서 하나 알아둬야 될 게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1찰나에 900번을 생멸합니다. 그리고 대상을 보고 대상의 정보를 받아서 내 마음에 저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7찰나에요. 이것을 초로 환산하면 0.2초정도 됩니다. 0.2초 동안에 대상을 보고 마음에 저장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생멸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계속 반복하는데, 그냥 혼자 마음이 생멸 할까요? 아닙니다. 대상이 있습니다. 대상이 없으면 생멸이 안 일어나는 거예요. 아리야식의 세 가지 모습이 첫 번째가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미분(未分)의 상태고[業相], 두 번째 전상(轉相)은 주관의 모습이고, 세 번째 현상(現相)은 객관의 모습이죠. 그래서 아리야식의 제일 첫 번째가 주객이 나눠지기 이전의 모습이에요. 그러면 구경각(究竟覺)에서 최초의 생(生)이 뭐냐 하면, 업상(業相), 주관과 객관이 나눠지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 업의 모습에는 최초에 한 생각을 했다 이거죠. 그래서 생(生)한 걸로 보는 겁니다. 이 생(生)을 깨치는 게 구경각(究竟覺)입니다. 그러니 수분각이나 상사각이나 범부각에는 일어나는 심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수행[알아차림]을 통해서 대상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보니까 심리가 떨어져 나가고 마음이 동요가 없어지면서 마음 작용이 점점 멈춰가는 겁니다. 그렇게 멈춰가니까 상사각에서 수분각에 가면 자아관념이라는 게 끊어져 버리는 겁니다. 그 만큼 심리가 줄고 ‘내’라는 관념이 없어지고 조용해지는 거죠. 그 다음에 구경각에 가면, 관찰을 통해서 제일 처음에 객관의 모습[現相]이 없어지고 그 다음에 주관의 모습[轉相]도 사라지고, 주관과 객관이 미분[未分]인 한 생각 일어나는 것[業相]을 탁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만나게 될 때 각심초기(覺心初起) 심무초상(心無初相)이라 그랬어요. 최초 한 생각 탁 깨달으니까 마음에 최초의 모습이 없다 이거죠. 마음이 생멸하는 게 얼마나 빠르냐 하면, 10에 23승이라고 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데 그런 게 수행해서 거쳐 오면서 착, 착, 착 제거 되어가지고 마음이 점점 고요해지면서 마지막에 최초의 한 생각에 깨달아버리니까 구경각인 거예요. 그래서 『능가경』에 부처님께서 수승한 모습이 뭐냐, 마음이 고요한 모습이 수승한 모습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예요. 원효스님께서 심왕과 심소를 얘기하는 것도 수행을 통해서 봤을 때 이런 과정을 아마 예상을 하고 얘기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결국 수행을 하면서 이렇게 쭈욱 가다보면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마음이 구경각에 가서는 생멸하는 게 없는 겁니다. 그래서 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없다, 각즉부동(覺則不動)이에요. 깨달으면 움직임이 없어요. 범부각은 범부의 깨달음 만큼 움직임이 적어지고 상사각은 조금 더 고요해지고 수분각은 그 만큼 더 고요해지고 구경각에 완전히 고요해지면서 최초의 한 생각을 깨트려 버리면 아리야식이 깨져버리면서 진여로 들어가는 겁니다. 진여는 공의 모습이고 주객이 없는 자리잖아요. 그게 구경각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간 것[범부각부터 구경각 까지]은 시각(始覺)이죠. 시각에서 마지막이 구경각입니다. 이 구경각이 본각(本覺)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공부하시는 분들은 이 정도는 알아야 안 되겠나 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심리작용이라는 것이 번뇌인데, 이것이 어떻게 해서 생겼고, 어떻게 해서 사라져 가는가, 이것을 우리가 알았을 때 정체를 파악하기 쉽고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번뇌를 조율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얘기를 했습니다. 그 내용이 심리라는 것은 대상의 부분을 보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알아차림을 통해서, 관(觀)을 통해서, 꿰뚫어가는 앎을 통해서 제거해 갔을 때 우리는 구경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마치겠습니다. 다음카페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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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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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종랑 | 작성시간 15.01.19 허당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무심도 | 작성시간 15.01.21 감사합니다~~_()()()_
  • 작성자수부띠(道光) | 작성시간 17.11.19 제가 btn 홈페이지에 2004년~2006년 대승기신론을 지운스님 동영상으로 강의할때 공부했었습니다. 그때 공부한 것이 가장행복한 공부 카페에서 그대로 문자화에 그 노고에 감사드리며, 양해를 얻어 모셔(아비라불교 밴드) 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지전 | 작성시간 18.03.03 _()_
  • 작성자greenworld | 작성시간 19.03.14 감사드립니다_()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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