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발심(發心)
제94강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한다
오늘부터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할 차례입니다.
319p보면 ‘4장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한다’ 이렇게 되어 있죠.
도표를 그려봤습니다.
지금까지 해석분(解釋分) 중에서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
그러니까 삼종발심[信成就發心, 解行發心, 證發心],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지난 시간까지 공부를 했고요,
이제 깨달아야 되겠다는 보리심을 일으켰으면 실제 수행해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여기 수행신심분, 믿는 마음을 닦아 들어가는 부분입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수행을 어떻게 하느냐,
수행하는 방법, 수행 현상, 또 현상 중에서 주의해야 될 것,
이것을 오늘 공부할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지도 보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는 실제로 지도 한 장 들고 목적지를 가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지도 한 장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사실 우리 마음의 문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지도가 따로 있어야 돼요.
우리는 지금까지 본연의 마음자리로 들어가는 지도 공부를 했고,
오늘 부터는 실제로 본연의 마음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공부하겠습니다.
본문에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한다’, 이랬는데,
들어가기 전에 제가 할 얘기가 있습니다.
‘수행은 왜 해야 되는가’, 이것을 얘기하고 본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이 얘기는 제가 아는 스님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겠다면서 한 얘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해서 많은 중생들이 기뻐하고 좋아 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든지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도는 바라문(승려, 제사장), 크샤트리아(왕족, 무사), 바이샤(평민),
수드라(천민), 이렇게 네 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바라문 계급의 덕망 높은 분이 부처님 찾아와서 얘기를 합니다.
“당신은 히말라야 산을 황금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시고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데
왜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들을 구제하지 않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주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제가 이 얘기를 조금 각색해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옳다.
그러나 당신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인간의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산을 금으로 만들어 퍼줘도 그 욕망을 다 채울 수 없다.
병든 사람 치료도 좋지만 결국 다시 죽게 된다.
나는 근본적으로 생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을 가르칠 뿐이다.” 그러셨어요.
쉽게 얘기하면, 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라는 얘기가 있죠.
부처님께서 욕망을 채워주려고 하지 말고
욕망을 없애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게 좋지,
당장 어려우니까 약을 먹여서 병을 낫게 하는 정도로는
완전한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얘기죠.
그래서 부처님은 찾아오는 사람마다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을 시켰다는 말이죠.
명상 시킨 이유, 수행을 하게끔 한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 일화는 제가 많이 각색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얘기한 것이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 일화에서 우리가 왜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 이유가 나옵니다.
돈 100만원 생기면 200만원 더 갖고 싶고,
200만원 생기면 300, 500, 1000만원 갖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에요.
그러니 히말라야 산을 금으로 만들서 그 욕망을 채워준다 하드라도
다 채워지질 않는 겁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욕망이란 본래 마음에서 비롯된 줄 알고
그것을 꿰뚫어 들어가는 게 좋겠죠.
우리가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의해서 생로병사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생로병사가 일어나는 근원을 제대로 꿰뚫어 볼 때
본래 우리 마음자리에는 생로병사가 없고
욕망이라든지 성냄, 어리석음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꿰뚫어 봤을 때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우리 눈에 보이고 들리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입니다.
고정된 모양이 있고 고정된 색깔이 있고,
또 분리되어 있게 보이는 이 세계는
전부다 마음이 만들어서 보는 겁니다.
탐욕과 성냄이 강한 사람일수록 밖으로 보이는 이 세계가
마치 실제로 있는 것 같이 보인다는 사실이죠.
그러나 우리는 수행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밖으로 찾는 것이 아니고 안으로 돌이켜서 자신의 내면을 지켜봄으로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오늘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한다’,
수행신심분을 공부한다는 얘기죠.
그러면 본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장의 대의를 드러냄
(논 - 71)
已說 解釋分하고 次說 修行信心分이라.
是中에 依未入正定衆生故로 說修行信心하니라.
이미 ‘법(法)과 의(義)를 자세히 풀이하는 부분’을 설명했고,
다음은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하는 부분’을 말하겠다.
여기서는 반드시 도를 이루게 할 길로 아직 들어가지 못한 중생을 위하여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하는 것’을 설명한다. |
아주 짤막하게 얘기를 했는데,
사람에게 종성(種性)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종성이 결정 안 된 분들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종성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성향, 될 수 있는 바탕, 이런 겁니다.
성문과 연각의 길로 갈 수 있는 바탕의 사람도 있고,
외도의 길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승 중에서 보살의 길로 갈 수 있는 종성이 있고,
또 부처로 가는 종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도, 성문연각, 보살, 부처, 이 네 가지 종성이 있어요.
그런 성향이 있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자기 혼자의 깨우침에 만족하는 것은
소승이라고 할 수 있는 성문연각이고,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대승의 성향을 갖고 있는 보살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에요.
누구나 차별 없이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부처의 길로 가는 사람이 있거든요.
이게 일불승(一佛乘)을 얘기합니다.
그런가 하면 소승도 대승도 아닌 외도도 있습니다.
외도(外道)라는 것은 내 밖에서 따로 도를 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안에서 진리를 구하는 이는 내도(內道)라 하고 , 불교는 내도에 속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부처의 성품은 깨달은 성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 갖고 있다는 거죠.
범부도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나 보살이나 깨달은 모든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부처의 성품과
자기가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이 똑같은 겁니다.
똑같은 불성이기 때문에 굳이 성인에게 불성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자기 내면을 보고 자기 안에서 찾으면 된다는 얘기죠.
이것을 내도(內道)라 그럽니다.
그리고 외도, 성문연각, 보살, 부처,
이 외에 부정종성, 부정성(不定性)이 있습니다.
부정종성(不定種性)은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수행신심분에서 공부할 것은
이렇게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믿음과 다섯 가지 수행을 제시하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에
‘반드시 도를 이루게 할 길로 아직 들어가지 못한 중생을 위하여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하는 것’을 설명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미 진리를 깨치고자 보리심을 일으킨 분들은 수승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에 바로 수행해 들어갈 수가 있는데,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분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수행신심분에서 이렇게 믿음을 얘기하게 되는 거죠.
수행을 해가면서 믿음이 생기고 증장해 가는 겁니다.
수행에도 두 부류로 나눠서 설명할 수가 있는 겁니다.
이게 원효스님께서 하신 얘기입니다.
하나는 뛰어난 사람이 있고
또 하나는 뛰어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뛰어난 사람들은 한 번 듣고 바로 믿음이 견고해져서
수행해 들어가는 사람들이고
뛰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의심이 많기 때문에
수행해 가면서 믿음이 자리 잡고 가는 거죠.
이 얘기는 옛날에 제가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출가한 스님의 얘기인데, 물론 저도 들은 얘기입니다.
이분은 몸이 아주 허약하게 태어나서
10대 때는 늘 방안에 누워있는 횟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20대에 와서 결혼을 했지만
역시 몸이 성치 못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몸이 병약하니까 삶이 고통스럽고 너무 힘이 드는 거예요.
그런 어느 날, 그 날도 괴로워 하다가
문득 아버님께서 예전에 『금강경』 독송한 모습이 떠올라서
금강경을 가져와서 읽었다는 거죠.
그런데 글자 한 자 한 자가 그대로 가슴에 와 닿을 뿐만 아니라
의심 한 점 없이 바로 믿게 되더라는 거죠.
그 『금강경』을 읽어 내려가면서 믿음이 확고해지는 순간
몸에서 일대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리 몸엔 두 종류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소주천 대주천 하는 외적으로 도는 에너지와
쿤달리니 라는 내적 에너지가 있습니다.
이 분은 경전 독송을 하면서 바로 그 내용의 진리의 세계로 쑥 들어가면서
내적 에너지가 생긴 겁니다.
그러자 내적 에너지가 돈발되는 순간
보이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고 마음이 청정해지면서
부처님 가르침 그대로 그 경지에 가는 거예요.
이런 체험을 하고 난 뒤에 몸에 기혈이 다 열리면서 건강해지고
또 자기가 전생에 스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바로 출가했다는 얘기에요.
이런 분은 경전을 보고 바로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수행체험이 바로 와버린 거죠.
그전에 금강경 독송이나 수행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분인데
한 번이 그냥 된 거죠.
이런 분은 아주 수승하신 분이에요.
늘 법문 듣고 수행한다 해도
마음이 왔다 갔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분들은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대부분 사실 그렇거든요.
저를 비롯해서 아마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이 수행신심분은 수승하신 분들이 아니고
아직까지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이 가르침을 폈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이 가르침대로 믿음을 닦아 나가서
확고하게 믿음이 증장이 되면
마음 바탕이 바뀌어서 아주 수승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뛰어난 사람과 똑 같이 가는 겁니다.
《소(疏)》 320p에 중간에 보면,
《소(疏) - 71》
爲其劣者故로 說修信하니
所謂四種信心 五門行等은 爲彼劣人 信不退故也니라.
若此劣人이 修信成就者라면 還依發趣分中 三種發心進趣니라.
뒤떨어진 이들을 위하기에 믿음을 수행할 것을 말하니,
이른바 네 가지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들은
뒤떨어진 이들에게 도에 대한 믿음에서 물러나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다.
뒤떨어진 이들이 믿음을 수행하여 이룩하면,
다시 ‘도 닦을 마음을 내어 공부해 나가는 내용’ 가운데의
‘세 가지 도 닦을 마음을 낸 것’에 따라 공부해 나가는 것이다. |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면
뛰어난 이들과 똑 같이 길을 나갈 수 있다는 거죠.
중근기가 바로 상근기로 바뀌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근기가 딱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되어 있지만
언제든 하근기도 중근기나 상근기로 뛰어 오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뀌어 간다는 얘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처음 입문하시는 분들에는
‘많이 베풀어라, 그러면 인간 세상이나 천상에 태어난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십니다.
그러다가 근기가 조금 성숙해지면 사성제(四聖諦) 얘기하고
팔정도(八正道) 얘기하고 오온(五蘊)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고,
그러면서 근기 성숙함에 따라서 법문을 하시는 거죠.
그것을 응병여약(應病與藥), 병에 응해서 약을 처방한다는 겁니다.
‘세 가지 도 닦을 마음’은 지난 시간에 배웠죠.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 믿음을 성취해 가는 발심,
해행발심(解行發心), 알고 행해가면서 보리심이 일어나는 것,
증발심(證發心), 진여를 증득했을 때
완전한 부처를 증득하기 위한 발심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
是故로 二分 所爲가 有異이나 而其所趣道理는 無別也이니라.
이 때문에 ‘도 닦을 마음을 내어 공부해 나가는 부분’과
‘믿음과 다섯 가지 방편을 수행하는 부분’에서 하는 일들은 다르지만
공부해 나아가는 도리는 다를 것이 없다. |
뒤떨어지든 뛰어나든 공부해가는 길은 같은 겁니다.
그 다음에 ‘네 가지 믿음과 수행’에 대해서 공부해 가겠습니다.
보통 우리 불교에서는 인과를 믿는 게 보편적입니다.
인과를 믿는다는 것은 굉장히 윤리적인 겁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선한 행동을 하면 선한 결과를 가져오고
악인악과(惡因惡果), 악한 원인을 지으면 악한 결과가 온다고 얘기를 하죠.
그래서 이것은 어떤 절대적 타자가 있어서
그 사람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운명은 절대적 타자와 전혀 관계가 없이
인과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행위에 의해서 고귀함과 천함이 나누어지는 것이지
태생부터 고귀함과 천함이 나눠지는 게 아니라는 거죠.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신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게 아닌 것이죠.
자기 행위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한 행을 하느냐 악한 행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겁니다.
보통 우리는 이 인과를 믿음으로해서 출발을 삼습니다.
그래서 계율을 잘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대승기신론」에서 기본적 믿음은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대한 믿음과
모든 존재의 본질인 진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믿음
(논 - 72)
何等信心이고 云何修行이오.
略說하면 信心에 有四種이니 云何爲四오.
무엇을 믿음이라 하고 어떻게 수행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믿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그 넷인가. |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 가지 믿음이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 네 가지 믿음에 대해서 소상하게 이해되지 않을 때는
수행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수행의 출발입니다.
믿음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항상 나아갈 때는 의심이 있죠.
그렇지만 수행해 가면서도 믿음이 생긴다고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시간이 다 됐는데,
다음 시간에 본격적으로 이 믿음과
다섯 가지 수행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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