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주일 예배
본문<사>65;1~7
제목; 심판의 이유
징계와 책망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 받는 데에도 그 만한 이유가 있고
매를 맞는 데에도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왜가 있을 수 있고
자기변명과
내로남불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하나님 앞에 서는 자는 왜입니까? 가 없어야 하고
[예]만 있고
[아니오]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의 숨은 뜻은 자기 잘못 자기 실수를
합리화하는 변명대신에
먼저 내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100% 죄인이요
되었다함도 없는
연약하고 한계뿐인 인생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사64;12절의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라는 갈급함과
간절한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인데 그 응답의 말씀은
너희가 심판을 받을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즉 오늘 본문 1절은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으시고
나를 향해 침묵하신 적도 외면한 적도 없으시며
내 손을 놓은 적이 없으시되
우리 각자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자신을 섬기는 백성은
구원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에 따른 잠언 말씀 한 구절을 소개하면
잠8;17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이어지는 말씀으로 18,19절은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아멘
그리고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시며 스스로 다가와 주십니다.
(사 61:6).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먼저 예배하는 백성이 되고,
그들을 통해 열방이 예배하기를 의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교도의 예배에 탐닉하고, 그에 속한 예배 정신을 배워서
예물과 예배로 하나님을 조종하고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방관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십니다.
즉 사단 마귀와 대적들이 걸어온 싸움의 선두에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으로
즉 심판과 함께
구원을 베푸시는 은총과 자비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으로 알고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남겨두십니다.
거역한 백성을 심판하시되 아주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질 낮은 포도송이가 있어도 버리지 않습니다.
포도즙을 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송이에 나쁜 포도가 많아도
맛좋은 포도가
한두 알 있기 마련입니다.
(마 13:28~29).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아멘
그래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뺄셈과 나눗셈의 정치는 나쁜 것이고
덧셈과 곱셈의 정치가 바르고 남은 것이 있는
좋은 정치라는 것입니다
비단 정치만이 아닙니다..우리네 삶의 이치도
그래야 함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내가 망하고
알콜 중독자라고 앞날이 뻔하다고 해서
나를 잘라 버렸다면 내가 어찌 지금 이렇게 살고
있겠습니까?
아마도 죽었을 것입니다..아니면 노숙자로 살거나
알콜 중독과
우울증을 치료하느라 정신 병원을 드나들었을 것입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잣대이고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하지도
내 잣대로 남을 판단하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자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성취합니다.
(사 6:13).나무를 베도 그 뿌리가 보존되면
다시 자라서
무성한 잎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악한 내 속의 극히 적은 선을 보시고
남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많은 단점 가운데서도 장점 하나로 나를
그리고 여러분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사용하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64;12절로 정리되는 이사야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절을 다시금 살펴 보고자 하는데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구하지 아니하던 자는
이방인이고 불신자요
찾지 아니하던 자는 유대인이면서 불순종하는 자를 말하는데
이들 모두가 하나님을 멀리 하여 찾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드러내시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스스로 나타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고 반복하여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다만 우리의 무지함으로 듣지 못했고
알지 못했으며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는 대개의 경우 한 두 번 혹은 몇 번은
하나님의 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콜을 수차례 받았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말씀도 몰랐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으며
세속에 빠져 뺀질거리며 살다가 매 맞고 돌아왔는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시며
말씀으로 계시하고 계심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1절은 64;7에서 왜 얼굴을 숨기시냐고
64;12절에서
왜 아직도 가만히, 잠잠히 계시냐고 탄원했지만
하나님은 언제든 자신을 찾는 자들을
만나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디계시냐고 물어달라고, 찾아 달라고,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시며
늘 우리를 기다리셨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오늘도 내가 여기 있노라 하시며
이미 곁에 계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영적 무지이고 나의 태만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1절의 마지막 구절 내가 여기 있노라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오늘도 그 음성에 반응하고 그 주님을 만나고 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랬습니다..
늘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늘 하고 사는 것이
바로 겸손이란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수없이 나를 찾으러 오셨고 만나주리라 하시며
다가 오셨지만
내가 스스로 멀리하며 불신가운데
불순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함으로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2절은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아멘
옳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오늘 구원은 받았으나 구원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에 서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역한 자들도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자들도
다함께 부르시는
자비와 은총을 베푸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다만 내가 말 안 듣고 안 찾았으며
기도도 안하면서
구원과 응답만을 소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계속해서
죄악의 길을 걷는데도
하루 종일 팔을 벌리고 손을 펴서
자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려 주시는 은혜가
사랑이요
자비요 은총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사63;17에서 이사야가 주여...돌아오시옵소서..하고 기도했지만
사실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셔야 할 만큼 떨어져 계신 적이 없으십니다
늘 가까이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항상 그들 앞에
저와 여러분의 앞에 늘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집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줄곧 기다리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만 골라서 하는
당신의 백성을 맞아주시려고 오늘도 문을 열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아버지의 팔에 안겨 평안을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갈망하는 자라면
누구나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십니다.
그랬더니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알고 찾을
이스라엘 대신에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묻고 찾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이 여기 있다고,
아무개야..내가 여기 있노라 하시며
그들이
찾기 쉽도록 말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 우리는 진심을 다하여
찾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남겨두신 백성입니다.
주를 구하고 그 안에 거하는 남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극명하게 대조하시며,
하나님의 종과 종이 아닌 자들을 선명하게 구분하십니다.
그 결과 의인은 복을 받을 것이고, 악인은 화를 입을 것입니다.
그 나라
하나님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셔서
우리가 그 세계의 백성이요 자녀라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우리는 이 확신으로 기도합시다.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온 마음을 다 모아봅시다.
만나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에벤에셀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롬8;39절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아멘
그러니까 죄악 가운데 있지 말고 회개로 돌이켜야 합니다
먼저 3절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과연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노를 불러올 정도의
큰 죄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은
우상숭배입니다
오늘날에도 그 우상은 우리 앞에서 버티고 있는데
그 우상의 대표는 맘몬신이요..배금주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3절을 보니까
그들이 한 일은 동산에서 제사했다는 것으로
이것은 우상 숭배의 하나로
동산 위의 나무에
무엇을 걸어놓고 제사했다는 것입니다
높은 낮은 산의 나무에 절을 하며 섬기는 일은
토템신앙으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이런 일들을 자행하는데
이런 일은
하나님 앞에서 노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듬지 않은 돌 위에서 분향하는 것을 포함하여
돌이나 바위 등에
분향하는 것도 우상 숭배라 지적합니다
4절의 무덤과 무덤 사이에 앉는 것은
죽은 자로부터
신내림을 받아 예언하는 미신적인 행위와
은밀한 처소에서 부정한 음식을 먹으며
이방 신상을 섬기고
이교도의 풍속에 빠져들고
이교의 점성술에 현혹되어 우상을 숭배하는 일들을 지적하여
바벨론 포로였던
이스라엘의 패역한 모습과
또 세속이나 세상의 문화에 속하여
온갖 우상에 빠져들었던 우리네 영적 상태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노를 발하시기에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5절은 하나님 외에는 거룩한 분이 없음에도
그들은 오만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 거룩한 척하였는데
그렇습니다..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자신이 신인양
스스로 바벨탑을 쌓는 이단들이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으로 하나님 자리에 앉아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과 그들의 행위 또한
우상 숭배에 이은 하나님의 노를 발하게 한
요인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라 하여
영원한 심판에 처해질 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지적합니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영벌이라 하여 활활 타오르는 지옥의 형벌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보응은
-6절입니다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
저와 여러분 기록으로 선포하시는 심판의 예언을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속히 회개하여 돌이킴으로 심판의 칼날을 면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하셨는데
품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마음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가해질 것입니다
마음은 양심을 말하고 양심에 심판이 가해지면
화인 맞은 자가되어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에 대한 찔림도 없이 죄를 저지르니
회개할 줄도 회개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7절은 네 열조의 죄악이라 말씀합니다
[너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아멘
여러분 여호와가 말씀하였다는 것은
심판도 언약으로
언약하신 여호와께서 반드시 지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열조의 죄악...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죄악과 저주
이것은 반드시 끊어내야 하는데
이를 끊어내는 영적인 방법은 보혈을 바르는 일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 대에서 그 저주를 끊어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이 모두를 끊어내야 합니다
집안에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불행한 것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찍 단명 한다던가..유전병이 가계를 통해 내려 온다던가
심지어는 극심한 가난까지도, 하는 일마다 불통인 것들
이런 것들은
내 조상의 지은 죄로 대대손손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니
예수를 믿어 그 보혈로 그것들을 다 끊어내야 하는데-
이미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뿌려주심으로 이 모든 문제를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믿는 자들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이미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후부터 저와 여러분의 믿음과
신앙생활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
오직 예수를 잘 믿으세요..잘 믿어야 살길이 생깁니다
저주도 끊어지고 꼬인 것은 풀어지며
막힌 것은 뚫리며
닫힌 것은 열리는 형통의 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신앙 생활은 버려야 합니다
이중 생활
양다리 걸침, 혼합주의의 죄악은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밤에 남몰래 무덤에 앉아
죽은 자에게 미래를 묻고
뒤에서는 은밀히 정결법을 위반하며
산에 들어가 슬금슬금 우상을 숭배하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남의 부정을 지적하며 정죄하며 판단했고
시기와 질투로 날밤을 새면서도
자신들은 거룩하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기에 거룩하다 하며
으스대며 살다가 심판의 매를 맞고
포로가 되었고
망함의 아픔도 겪게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네 삶 속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에
우리 모든 믿는 자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행위와 마음의 죄에
속지 않으십니다
아니 하나님 먼저 아시고 그들의 민낯을 기록해 두셨습니다
제가 예전
처음 하나님께로 유턴했을 때
기도굴에 들어가 눈을 감았을 때 내 앞에 환히 비추며
환등기가 돌아갔고
그 안에서 내 죄의 목록을 일일이 고발하는
하나님의 몰래 카메라를 환상으로 목격하고는
피를 토하듯
회개를 토해낸 적이 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선하고 착한 행실은 물론
저외 여러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비밀스럽게
몰래 감추어둔 죄의 진상까지도 다 기록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속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을 때
내 진짜 신앙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교회 안에서와 가정에서와 자녀 앞에서와
바깥에서의 내 신앙생활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의 내 신앙생활과 신앙행위는 어떠합니까?
여태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는 같아집시다..
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믿는 자다운 인격과 영성을 회복합시다..
세상말로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심판도 징계도
책망까지도 이유가 있고 들을만하니까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과 책망과 징계가 두렵다면
우리는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함으로 바른 신앙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심판에도 이유가 있지만 축복에도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축복받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시매
많은 축복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