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고전>2;1~16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육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믿음이 있는 척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에 속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반면 영에 속한 이들은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데
이들은 영에 속한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말씀 듣고 기도하며 찬양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 일을 예배할 때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혜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예배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말씀 듣고 기도하며 찬양가운데 있음으로
성령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역사하면
모든 질병은 물러가고, 길을 열리고 뚫리며
모든 꼬인 문제는
풀리어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말도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귀 있는 자들에게 전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듣게 되기를 당부드립니다.
1~5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오직 십자가의 그리스도만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철학과 수사학에 길들여진 사람들 앞에서
십자가를 전하는 일이었기에
어떤 조롱을 불러올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 전도의 미련한 것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지 알기에 담대함으로 전했습니다.
구원을 믿는 믿음은 사람의 설득력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에
성령의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전하는 나는 볼품없고
약할지라도
내가 가진 복음은 가장 강하고 강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저와 여러분이 잘 전해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너희 믿음의 사람이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아멘
따라서 내가 전해서
그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이
성령의 뜻과..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약함과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있었지만
오히려 약함 속에
선명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강험을 경험하면서
십자가의 주님만 증언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설교가 당시 인기를 누리던
웅변가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의 기대에 맞춰
온갖 그럴듯한 말로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미사려구를 섞거나
우리 말로 하면 영어나 한자 성어를 섞어서
자신의 유식함과
가방 끈이 긴 것을 은근하게 드러내 자랑하듯 하며
또 군중과 타협하거나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그런 말만을 골라
대중의 구미에 맞도록 설교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의 설교는 너무나 진지해서 재미도 없었으며
말솜씨도 없어
듣는 자들이 지루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복음의 내용에 집중했습니다
구원 받은 믿음은 전도자가 증언한 복음과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에서 바롯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간증이나
복음을 전할 때 혹은 말씀을 나눌 때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오직 십자가만 드러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6~9입니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해 감춰두신
하나님의 지혜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숨겨짐을 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계시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셨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에 감사하셨습니다
눅10;21입니다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아멘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면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계시의 말씀에 무지한 자가 되지 않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길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바울은 성숙한 이들에게 더 풍성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우리 영광을 위해 예비하신 일로
곧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과 영생과 영원히 계속될
하나님 나라의 삶에 관한 지식을 가리킵니다.
세속의 지혜를 고수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하거나 그 지혜를 들어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며 살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미숙한 그리스도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주저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를
아직 깨닫지 못한 까닭에 연단도 사건도 주십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은
듣지 못하고 들을 기회를 저버립니다.
그래서 연단은 길고 끝내는 징계의 수준까지
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니
속히 응답할 하나님을 원한다면
속히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것을 깨닫게 되기를 권면드립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겸손히 구하면 온유하게 가르쳐주실
주님 앞으로 나아가
성령의 사람들 모두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13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도록 가르치십니다.
이 지혜를 깨달은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만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
즉 육에 속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는
그들의 사상체계와
돌덩어리처럼 굳어진 생각과 마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호하고 이상한 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영에 사로잡혀
세속적이며 인간적인 것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아니 변화하려고
생각이나 마음조차 먹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육에 속한 자처럼 인간적 한계에 갇혀있지 않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5,16입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의 지식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소유한 하나님의 지혜가 온전함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한 우리는
이제 더는 세상 기준에 따라 세상과 지체를 판단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 더욱더 풍성한 천국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영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십자가의 주님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희생하는 일과
상관이 없다면
여전히 욕망을 따르는 육에 속한 사람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간단한 예를 들어 성령의 사람인가
육의 사람인가를 구별하는 방법은
물론 이 방법이 절대적이진 안겠지만 그래도 거의 정확한 것은
문제 앞에서 내 죄를 회개하며 말씀 알으로 나아가
기도하는 자인가
아니면 문제와 사건 앞에서 원망과 불평을 일삼고
세상으로 돌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을 환영하고
성령님을 맞아 들이세요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세요..성령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지혜 안에 머물러
오직 믿음의 주만 바라며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