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영혼 없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
실패 인정하고 전면 재검토하라.
2023년 6월 26일, 교육부는 진보 정권 5년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50.9%나 폭증했다는 비판을 바탕으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3월 14일, 통계청과 교육부가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27조 원을 넘어선 약 27조 1천억 원으로 전년도 약 26조 원에 비해 약 1조 2천억 원(4.5%)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등학교 12조 4천억 원(4.3%), 중학교 7조 2천억 원(1.0%), 고등학교 7조 5천억 원(8.2%) 증가하였다.
초·중·고 전체 학생 수는 약 521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7만 명(-1.3%) 감소했으나 오히려 사교육비는 모든 학교급에서 증가했다. 한 교원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사교육비 상승률(6%)은 2023년 물가상승률(3.9%)보다 높은 증가 추세를 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잡지 못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해 온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가 아니었던가. 교육부가 야심차게 내놓고 추진해 온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교육정책디자인 연구소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교육부가 사교육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정책을 펼쳐 왔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교육부가 진정성을 갖고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한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라고 쓰고 사교육을 권장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지난해에 내놓은 사교육 경감 1호 대책은 ‘대입 수능 킬러 문항 배제’였다. 2024학년도 대입 수능일을 불과 5개월도 남겨 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킬러문항 배제’라는 MSG는 당시 대입에 대한 대통령의 실언을 덮는 데에는 충분했지만, 개념도 실체도 불분명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의 대입 수능 킬러 문항 출제 배제 방침은 오히려 사교육 시장에는 호재가 되었다. 사교육은 대입 수능의 난이도가 아닌 수험생의 ‘불안감’과 정책의 ‘불확실성’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사교육’이라는 단어가 ‘시장’이라는 말과 찰떡 궁합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대통령과 교육부가 수면 위로 소환한 ‘킬러 문항’과 ‘사교육 카르텔’이라는 자극적인 표현들은 지난 1년 간 ‘담론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당해 연도 수능 뿐만 아니라 30년 넘게 이어져 온 수능의 신뢰도를 한 순간에 땅에 떨어 뜨린 것과 동시에 향후 수년 간 치러질 대입 수능의 불확실성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 셈이 되었다.
교육부가 내놓은 주요 교육 정책들은 사교육비 급증을 부추겼다.
2023년 10월 10일 교육부는 ‘2028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안’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고심 끝에 내놓은 개편안에서 현재 수능 중심의 대입 체제를 유지한 채 수능과 고교 내신 모두 상대평가 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을 1년 앞둔 상황에서 모든 과목(탐구 교과의 융합 선택과목 제외)의 석차 등급을 산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서울의 상위 16개 대학이 대입 정시에서 40% 이상을 선발하고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 반영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 제도 개편안은 내신과 수능 경쟁을 심화시키고 공교육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자사고․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이전 정부의 고교 체제 개혁안을 전면 백지화한 것도 현재의 교육부이다. 2023년 6월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에서 자사고와 특목고를 존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율형 공립고 2.0’ 사업을 통해 자사고에 준하는 공립고를 시도별로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교육계와 언론에서는 사교육비 경감 대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을 해 왔다. 하지만 이주호 장관은 자사고․국제고․외고의 존치와 자율형 공립고 추가 설립 등이 사교육을 추가적으로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의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수치가 나왔다. 통계에 따르면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초등·중학생의 사교육비는 66만 3000원으로 전년 대비 8%나 증가했으며 외고와 국제고 준비생은 전년 대비 각각 6.1%, 7.7%나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자율형 공립고를 준비한 학생에게도 동일했다. 특히 자사고에 진학하려는 초등학생의 월 평균 사교육비는 일반고 진학을 계획하고 있는 초등학생들에 비해 1.6배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금도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는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교육부가 2023년 12월 13일에 발표한 ‘2024.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 시행 계획’에서는 2024년부터 평가 대상을 초등학교 6학년에서 3․5․6학년으로, 중학교 3학년에서 중학교 1․3학년으로, 고등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1․2학년으로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계획서에서는 향후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평가 대상을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게다가 올해부터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책임 교육 학년으로 지정하고 해당 학년의 전체 학생이 평가에 참여하도록 시․도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광주․대구․충남․제주 등 5개 교육청은 학급 단위로 원하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치르게 되어 있는 맞춤형 학업 성취도 평가를 학년 전체가 응시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려 보냈으며 다른 시․도교육청도 학교들의 참여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단일한 평가 도구로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화 초읽기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초 학력 향상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맞춤형’ 성취도 평가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까지의 모든 학생에게 강요될 경우 개인별, 학급별 성취도가 공개되고 학교 간 비교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개인 및 학교 간 성적 서열화로 인한 학력 경쟁 심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사교육 경쟁 과열의 불쏘시개로 이어져 수많은 아동과 청소년들이 성적 스트레스 속에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경험을 우리 모두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의대 정원을 2,000명 이상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사교육 시장 활성화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어 버렸다. 지난 몇 년 간 의대 정원이 순차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N수생과 고등학교 자퇴 검정고시생 증가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이 ‘2,000’이라는 숫자만 각인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초등학교 교사와 대기업 회사원이 사표를 내고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 종합반을 다니고자 결심하는 데 톡톡히 기여하는 꼴이 되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의대 진학 입시반’까지 생겼다.
교육부는 역대급 사교육비 급증 사태의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인정하라.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교육부가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데 실패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교육부가 내놓은 사교육비 경감 정책은 오히려 사교육비 부담을 늘리는 정책임이 증명되고 있다. 또한 교육부와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사교육비 경감은 커념 오히려 이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사교육 경쟁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 같은 말과 정책들을 줄줄이 내놓음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정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국민 모두에게 사과해야 한다.
또한 지금이라도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사교육 지출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고 학교급, 학년에 맞는 사교육 유발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다.
끝으로 현재 추진 중인 자사고․외고․국제고 유지와 자율고 2.0 설립 정책, 맞춤형 학업 성취도 평가 확대 방향을 전면 수정하거나 재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시 위주의 대입 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를 내실 있게 운영하여 고교학점제의 성공적 안착, 일반 고등학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 계획 수립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4년 3월 18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