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국가교육위원회의 중장기교육계획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 9월 25일 14시, 국가교육위원회는 출범 2주년 기념 대토론회를 통해 ‘출범 2주년 성과보고 및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주요 방향(안)’을 발표하였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출범했지만 지난 2년 동안 존재 이유를 의심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 이 날 발표된 중장기 교육발전계획 또한 출범 2주년을 기념하며 성과를 보고한다는 자화자찬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이 날 행사는 배달 음식 차려놓고 잔칫상이라고 홍보하는 꼴이었다. 내용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말들을 합쳐놓았을 뿐이고, 각 방향의 구체성은 결여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미래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기보다 기존 교육부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가교육위원회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은 언론에서 이미 '12개 주요 방향'의 세부 내용 중 논란이 되는 부분을 보도했음에도, 발표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숨기고 12개의 주요 방향만 언급하는데 그쳤다. '모두 함께 성장하며 희망을 키우는 학습사회'라는 비전은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간 논의되었다는 전문위원회의 세부 안건은 이와 정반대되는 내용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오히려 알려진 전문위원회의 내용은 과도한 경쟁을 문제점으로 지적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의 취지와 상반된다. 이 과정 역시 투명하지 못하고 밀실논의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전문위원회의 안건이 폐기된 것인지, 아니면 추후 반영될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현장성도 전문성도 없는 중장기교육계획
○ 국가교육위원회는 학교 현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여러 차례 대토론회와 심층토론회를 개최했지만, 참여자 대부분이 교수와 학자였고 현장 교원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학부모, 학생의 의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수용하고 반영해야 할 국가교육위원회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다.
○ 전문위원회 구성 또한 21명의 전문위원 중 현장 교원은 초등 교장 한 명뿐이었고,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그 결과, 전문위 보고서에는 지난 몇 년간 현장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전문위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고 마치 새로운 개편안인 것처럼 제시했다. 현장과 동떨어진 주장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 현장을 외면한 개혁 추진은 결국 교사들을 개혁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비추게 한다. 교사들은 교육개혁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난 서이초 이후 나타나듯 교육 현장의 재구성 필요성을 꾸준히 제시해 왔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위원회 본연의 거시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 국가교육위원회의 전문성도 의심스럽다. 이 날 발표한 내용 중‘1. 미래 사회의 전망’은 2022 개정교육과정의 총론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2. 우리 교육의 성과와 한계’는 12개 주요 방향과 매칭이 되지 않는다. 특히 한계로 지적된 부분들이 12개 주요 방향에서 어떻게 보완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오히려 격차를 심화하고, 경쟁을 과열하는 정책들이 엿보인다. ‘3. 교육의 변화와 국제사회의 대응’도 새로울 것 없는 뻔한 내용들이다. 한국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저출생, 인구 감소 및 지방 소멸, 기후 위기, 사교육 폭증, 학벌주의와 경쟁사회 등 국교위가 인식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경쟁 교육 완화하자며, 전문위 보고에는 경쟁 교육 방안들이 가득.
○ 전문위원회의 보고 전문 공개를 요구한다. 보도에 의해 알려진 전문위원회보고 문서 곳곳에는 경쟁교육 강화의 흔적이 나타난다.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고교평준화를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단기적으로 자공고 등 명문고 설립에 힘을 쓰고 있고, 장기적으로 자사고와 외고를 과학고와 영재고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면서 학교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것은 곧, 이명박 정부 때 실패했던 고교 서열화를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학력 향상도를 측정하여 우수학교 및 우수교사를 포상’하겠다는 계획도 교사와 학교를 더욱 경쟁 교육으로 몰아넣고 학교서열화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지필고사의 외부기관 평가도 있어서는 안 된다. 외부기관에서 운영하는 평가를 통해 고등학교 서열화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쌓아왔던 학교의 자율적 교육과정을 모두 무너뜨리는 조치다. 모든 평가가 획일화되어있다면 학교의 교육과정 역시 경직된다. 모든 고등학교가 한날한시에 수능시험 보듯 내신시험을 보게 된다. 지역이나 학교 특색에 따라 단원 순서를 바꿔 가르치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 대입제도 개편안은 죽음의 트라이 앵글을 부활하자는 것이다. 1회당 이틀간 시행하고 수능을 공통과목은 기존의 객관식 수능으로, 선택과목은 서논술형인 진로형 수능으로 보겠다는 계획은 결과적으로 수능과 논술을 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2008년에 경험했던 내신+수능+논술 ‘죽음의 트라이 앵글’을 다시 구성하자는 것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책임 회피하는 국가교육위원회는 반성하라.
○ ‘논의된 적 없다’는 국가교육위원회의 변명은 치졸하기까지 하다. 전문위가 제시한 안건을 기반으로 교육개발원에서 문서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교육위원회가 논의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러한 계획을 제대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미 2022 개정 교육과정, 2028 대입 개편안, 초등학교 1,2학년 체육교과 분리 등의 결정 과정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숙의 기구로서 작동하기보다 거수기로 기능함을 여러 차례 입증했다. 2년간 수립한 중장기교육계획에는 새로운 비전도 개혁 방안도 없다. 출범 2주년을 기념하고 성과를 보고하기 전에, 국가교육위원회 스스로 반성부터 해야 할 상황이다.
첫째, 중장기 교육발전계획의 구체적인 내용 공개하고 현장 의견 수렴하라. 12개 주요 방향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세부 내용과 이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한다.
둘째, 전문위원회 안건의 처리 과정 투명하게 공개하라. 전문위원회 안건의 폐기 여부 또는 추후 반영 계획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셋째, 경쟁 교육 강화 정책 폐기하라. 학력 향상 중심의 평가, 고교 서열화, 획일적인 외부 평가 등 경쟁 교육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넷째, 대입 제도 개편안 재검토하라. 수능과 논술을 병행하는 방안은 '죽음의 트라이앵글' 부활과 다름없다. 단순하고 공정한 대입 제도를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교육위원회의 실질적인 숙의 기구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라. 형식적인 논의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충분한 숙의를 거쳐 교육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2024. 9. 25.
실천교육교사모임,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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