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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폴쎄 작성시간26.06.19 이 시는 “해독(解讀)”이라는 행위가 오히려 “해독(害毒)”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중심에 놓고, 현대 시의 난해함과 그것을 둘러싼 권위, 그리고 독자의 심리를 날카롭게 비틀고 있다.
겉으로 보면 한 후배 시인이 “잘 나가는 시”를 들고 와서 읽어보지만, 그 시는 이미 평론가의 찬사와 미디어의 포장을 거치며 하나의 권위가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기보다 “대문을 단 이름”, “금으로 새긴 이름표” 같은 외형적 가치다. 시는 이미 읽히기 전에 ‘평가된 상태’로 존재한다.
화자는 그 시를 읽으며 묘한 이중 감각에 놓인다. “잘 썼다”는 판단을 하면서도, 그것이 진정한 감동이라기보다 구조를 이해한 판단에 가깝다는 듯한 거리감이 남아 있다. 여기서 시는 감응의 대상이라기보다, 하나의 기술과 장치로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복효근 시인의 「난해 시 사랑」을 떠올리는 대목은 핵심이다.
“어려운 낱말”, “엉뚱한 문장”, “신조어의 꿰맴” 같은 표현은 난해함이 더 이상 사유의 깊이가 아니라, 일종의 기술이 되어버린 상태를 드러낸다. 즉, 이해를 막는 방식으로 오히려 권위를 생산하는 시.
그 순간 시인은 깨닫는다.
이것은 “이해해야 할 시”라기보다, “이해하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