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폴쎄의 산문

아침의 기도

작성자폴쎄|작성시간26.06.09|조회수23 목록 댓글 0

아침의 기도

 

다행히 눈을 뜨면
우선 샤워를 한다.

 

아침엔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밥을 먹고
당뇨약을 삼킨 뒤
곧바로 발에 무좀약을 바른다.

 

가려움과 습진, 피부염에 바르는
쎄레스틴도 찾는다.

 

눈에는 비가목을,
오 분쯤 지나
브로낙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누님이 주신 된장콩 환도
대여섯 알 삼킨다.

 

아내가 사 준 영양제도
잊지 않고 먹는다.

 

이 모든 것들은
책상 위,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자꾸 까먹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기도하듯
하나씩 챙기고 나면
그제야 하루가 시작된다.

 

/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은
예전보다 더 고마운 일이 되었다.

 

젊은 날에는 당연하게 맞이하던 아침이었지만,
이제는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하루를 선물처럼 받는 기분이 든다.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나면,
책상 위 약과 영양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당뇨약, 무좀약, 눈약, 된장콩 환, 그리고 아내가 챙겨 준 영양제들.
이름도 용도도 제각각이지만,
모두 오늘의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동반자들이다.

 

예전에는 이런 것 없이도
하루를 거뜬히 살아냈다.
그러나 세월은 몸에 흔적을 남기고,
사람은 그 흔적과 함께 살아간다.

 

약을 먹고 눈약을 넣는 일이
늙음의 흐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나를 돌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 물건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어버리는 것은
비단 약만이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건강의 소중함도,
가족의 정성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잊고 산다.

 

책상 위 작은 약통들은

그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듯 나를 툭 건드린다.

 

누님이 건네준 환을 삼킬 때,
아내가 사 준 영양제를 삼킬 때,
약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랑을 함께 삼키는 셈이다.

 

이 모든 의식 후에 비로소 하루가 열린다.
남들이 보기에는 번거로운 반복일지 몰라도,
내게는 아침 기도와도 같다.

 

오늘도 다행히 눈을 떴고,
오늘도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며,
오늘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생각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