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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쎄의 산문

조용한 혁명

작성자폴쎄|작성시간26.06.11|조회수12 목록 댓글 0

조용한 혁명

 

검은.

비닐 반바지를 입은 여자.

큰 검은 개.

 

여자는 목줄을 쥔 채
그 뒤를 따라간다.

 

하늘에는 헬리콥터 한 대가
털털거리며 지나가고,

 

꽁꼬투리를 수북이 단
박태기나무.

 

진홍빛 밥알 꽃들은 이미 졌다.

 

잎새 무성한 철쭉은
저 혼자 골똘하고,

 

가로수 이팝나무도
지긋하다.

 

저들이 나를 유심히 보는 것 같다.

 

아니,

뚫어져라.

참 희한한 물건을 관찰하듯.

 

신호등 위에서
까마귀가 운다.

 

생각 없는 것 같은 말뚝도
할 말은 있다는데,

 

미세먼지 등급은
보통 수준이라 한다.

 

자주 만나던 노랑선씀바귀가
사라졌다.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

 

휴대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경쾌하기를 강요한다.

 

평화교회라며
작은 물 휴지팩을 건네준다.

 

이걸 아름다운 풍경이라 해야 하나.

 

개망초꽃이
한켠을 하얗게 물들였다.

 

조용한 혁명.

 

세상은 대개
저렇게 운을 띤다.

 

/

 

풍경들은 대개 어수선하다.

 

검은 개와 헬리콥터,
까마귀와 미세먼지,
사라진 노랑선씀바귀까지.

 

저마다 다른 말을 하며
한 장면 안에 섞여 있다.

 

그런데 개망초가 운을 띠는 순간,
그 어수선함이 묘하게 정리된다.

 

풍경은 오래 본 사람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과 닮았다.

 

박태기나무는 떠들지 않으면서
풍경의 빛깔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제 자신이 계절을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은 스스로
은빛 기운을 드러내는 주체인 듯.

 

이것이 말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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