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혁명
검은.
비닐 반바지를 입은 여자.
큰 검은 개.
여자는 목줄을 쥔 채
그 뒤를 따라간다.
하늘에는 헬리콥터 한 대가
털털거리며 지나가고,
꽁꼬투리를 수북이 단
박태기나무.
진홍빛 밥알 꽃들은 이미 졌다.
잎새 무성한 철쭉은
저 혼자 골똘하고,
가로수 이팝나무도
지긋하다.
저들이 나를 유심히 보는 것 같다.
아니,
뚫어져라.
참 희한한 물건을 관찰하듯.
신호등 위에서
까마귀가 운다.
생각 없는 것 같은 말뚝도
할 말은 있다는데,
미세먼지 등급은
보통 수준이라 한다.
자주 만나던 노랑선씀바귀가
사라졌다.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
휴대폰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경쾌하기를 강요한다.
평화교회라며
작은 물 휴지팩을 건네준다.
이걸 아름다운 풍경이라 해야 하나.
개망초꽃이
한켠을 하얗게 물들였다.
조용한 혁명.
세상은 대개
저렇게 운을 띤다.
/
풍경들은 대개 어수선하다.
검은 개와 헬리콥터,
까마귀와 미세먼지,
사라진 노랑선씀바귀까지.
저마다 다른 말을 하며
한 장면 안에 섞여 있다.
그런데 개망초가 운을 띠는 순간,
그 어수선함이 묘하게 정리된다.
풍경은 오래 본 사람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과 닮았다.
박태기나무는 떠들지 않으면서
풍경의 빛깔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제 자신이 계절을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은 스스로
은빛 기운을 드러내는 주체인 듯.
이것이 말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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