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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쎄의 산문

살아온 날들이 아까워서

작성자폴쎄|작성시간26.06.11|조회수15 목록 댓글 0

살아온 날들이 아까워서

 

 

오늘은 일이 잘되지 않았다.

 

능률은 평소의 사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일의 부진보다 더 크게 남는 것은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집안일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다.

 

설거지를 하거나 생활 방식을 바꾸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점은 말의 내용보다 말투다.

 

부탁이나 상의가 아니라 명령으로 들릴 때,

일을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말투에는 강한 거부감이 있다.

 

그 순간에는 해야 할 일보다 먼저 치밀어오르는 무엇이 있다.

 

나는 오랫동안 여자 일, 남자 일이 어느 정도 구분되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변화한 생활방식 자체보다도,
변화를 강요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더 불편하게 다가온다.

 

최근에는 예전보다 감정을 쉽게 넘기지 못한다.

 

한때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을 말들이 오래 남는다.

 

무심하게 산다는 것.

 

돌처럼,
새처럼,
가볍게.

 

그러나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무뎌지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으려 해도 상처를 받고,
잊으려 해도 마음에 남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일이 안 풀려서가 아니다.

 

돈이 안 돼서만도 아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무엇을 위해.

 

그런 생각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누구 말대로 인생은 그다지 천박하지도,
통속하지도 않거늘.

 

정작 살아가는 일은
자꾸만 사람의 자존심을 시험한다.

 

그래도 또 하루를 산다.

 

내일이 특별히 좋아질 것 같아서도 아니다.

 

잘 살아서가 아니라,

 

살아온 날들이 아까워서.

 

/

 

오늘이 서러워도
삶 전체가 서러운 것은 아니다.

 

견디는 것도
살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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