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폴쎄의 산문

조용한 대접

작성자폴쎄|작성시간26.06.16|조회수27 목록 댓글 0

조용한 대접

 

 

병원 접수하고 나오니 오전은 거의 지나가 있었다.

 

다음 주 검사를 예약했다는 사실 하나가
마음 한쪽에 가만히 남아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조금씩 번거로움을 건너는 일 같기도 하다.
그 건너는 동안 사람은 알지 못하게 늙어간다.

 

일은 없고,
이래저래 물렁한 하루가 펼쳐져 있다.

 

멀리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온다.
모습보다 소리가 먼저 도착한다.
한동안 공중을 맴도는 회전음.
그리고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멀어진다.

 

공원 확성기에서는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이라고 흘러나온다.
잠시 귀를 스친 뒤, 금세 사라진다.

 

저런 알림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면 되는 일을
우리는 너무 많은 숫자와 안내 속에서 대신 살아가고 있다.

 

 

어쩌다 마음이 동해 지인에게 글을 보내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비슷하다.

 

“시간 있을 때 읽어볼게요.”

 

정중한 말이다.
그러나 그 말 끝에서
잠시 나는 가만히 멈춰 서게 된다.

 

글은 말과 달리 남아 있다.
그리고 남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시간을 아주 조금은 빌려간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괜한 일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살아갈수록 알게 된다.
무탈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드물게 허락되는 상태인지.

 

병원 예약 하나,
별일 없는 오후 하나,
전화 한 통 오지 않는 시간 하나.

 

그 모든 것들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머문다.

 

오늘은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간다.
삶의 많은 날들은 원래 그렇게 지나간다.

 

별일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하루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조용한 대접일지 모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