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함께 남는 것
비 오는 날이면 처음 집을 나설 때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우비를 챙겨야 하고, 옷과 신발이 젖을까 걱정도 앞선다.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서면, 그 모든 망설임은 금세 옅어진다
밤새 내린 비로 대지는 깊게 젖어 있고,
보도블록 틈의 바랭이풀까지도 한층 짙은 숨결을 드러낸다.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강아지풀 한 포기마저도, 갑자기 제 존재를 드러내듯 눈길을 붙든다.
젖은 돌들은 살아난 듯 윤기를 머금고, 씻겨 내려간 먼지 위로 거리와 공기는 한층 맑아진다.
나는 특히 나뭇잎 끝에 매달린 빗방울을 오래 바라보곤 한다.
사람들은 비를 불편함이나 우울로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날이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비는 만물을 적시고, 잠시 잊혀 있던 생기를 다시 불러내는 듯하다.
잠시의 머뭇거림만 지나면,
비는 조용한 선물처럼 다가와 마음까지 가볍게 만든다.
오늘도 비 내리는 풍경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주 조용한 기쁨을 느낀다.
나는 이렇게 수시로,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글을 남긴다.
그 어떤 가치나 쓸모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나온 자리를 더듬는 방식일 뿐이다.
결국 이 글들은 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다만 그 안에는 내가 이런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 이런 풍경 앞에 서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다.
기록이라 부르기에도 부족한, 그저 낙서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어쩌면 삶이라는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었음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남겨지는 몇 줄의 흔적.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기쁘게, 또 때로는 이유 없이 마음이 흔들리며.
사라지는 것들을 적는 일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었음을 조용히 확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