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와 풍물굿의 신명
대중스타의 콘서트장에 가면 작정하고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단단히 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대개 젊은 사람들은 콘서트를 시작하자마자 스탠딩라운지에서 뛰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뜀을 통해 재미와 신명을 느낍니다. 무엇이 그들을 뛰게 할까요? 그곳에도 신명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런 물음을 던져 보게 됩니다. 과연 콘서트장에서 나타나는 저들의 신명과 풍물굿에서 나타나는 신명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빅 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콘서트장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립니다. 저마다 티켓을 쥐어들고 아이마냥 들떠 있습니다. 콘서트장에 들어서면 벌써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사람들은 북적이고 화려한 조명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드디어 시작을 알리면 환호성이 터집니다.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보여주는 듯 몸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빅 스타는 처음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게스트들이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사람들이 점점 열광하기 시작하면 스타가 출현합니다. 빅 스타가 나오면 사람들은 스타를 목청껏 외치며 좋아하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뜁니다. 이들은 이렇게 자신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러한 풀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콘서트장의 신명풀이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깔아놓은 문화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은 먼저 음악이지요.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팝송을 듣고 가수를 보고 자라왔습니다.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온 것이지요. 그래서 익숙합니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한 것이지요. 미디어를 통해 대중음악이라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대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에 아주 익숙합니다. 음악을 보여주는 양식인 콘서트도 오랜 세월동안 구축되고 발전하였지요. 이제는 미디어에서 나와 직접 관객과 만나는 콘서트가 더욱 매력적이 되었습니다. 미디어가 콘서트라는 상품을 다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미디어의 도움이 아니면 콘서트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돈이 있어야 합니다. 콘서트는 돈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입장권은 제법 비싸지요! 어쩌면 고급 문화상품인 겁니다. 빅 스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기업입니다. 그 스타를 모시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게 되고 그 비용은 다수의 구매자가 충당해 주어야 하지요. 그 뿐만이 아니죠. 이를 준비해 주는 기획사가 또 많은 이윤을 내야 하기 때문에 티켓 값은 더욱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스타는 실로 대단한 역할을 합니다. 수천 명의 관중을 한마디로 쥐었다 놓았다 합니다. 스타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주지요. 환상을 심어줍니다. 일탈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잠시 시간을 뺏어가는 사람입니다. 스타는 말 그대로 사람들을 집중시킵니다. 노래와 춤 그리고 현란한 무대매너와 철저한 무대준비로 사람들의 넋을 뺏어갑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스타가 깔아놓은 정서가 사람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교호할 때 사람들은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스타입니다. 스타는 돈과 명예를 얻고 그것에 동참한 사람은 풀이를 얻습니다. 꽤 괜찮은 거래죠.
콘서트가 가지는 매력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쉽습니다. 보고 즐기기만 하니 얼마나 쉽습니까! 돈만 지불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노래를 듣고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럭셔리한 문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은가요!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은 앉아서 감상하면 될 일입니다. 더 좋으면 뛰고 놀 일입니다. 자신은 소극적인 동참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효율적입니다. 몇 명의 사람으로 잠실실내체조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게 할 수 있습니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잘 훈련된 몇몇의 사람들이 수천 명의 심장을 벌렁이게 할 수 있습니다. 증폭된 음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계속 들쑤십니다. 참 효율적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에 연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뛰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잘 모릅니다. 뛰면 그러한 것이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함께 뛰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깊지는 않지만 나름의 소통을 가져와 줍니다.
사람들이 놀 준비를 하고 옵니다. 그 날을 위해 준비합니다. 비싼 티켓도 그렇고 바쁜 일정도 조정합니다. 데이트를 준비한 사람이라면 복장에도 더욱 신경을 씁니다.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놀지 못하면 본전생각 날 것이 뻔합니다. 기를 쓰고 놀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확실히 날려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콘서트가 가지는 매력을 풍물굿도 수용하여 발전했으면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풍물굿이나 콘서트나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깊이는 좀 다르지만... 옛날의 풍물굿이 지금의 콘서트 분위기가 아닐까요? 그랬을 겁니다. 밤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강한 음악 속에서 뛰고 놀았던 것이 풍물굿 아니던가요?
전에는 여러 사람이 한 마음으로 풍물을 쳐대야 그런 강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수가 기계음을 통해 그 성음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이 뛰는 것도 비슷합니다. 풍물에서는 마당에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지만 콘서트장에서는 제자리를 벗어나기 힘듭니다. 풍물에서의 뜀은 자유롭고 자기를 바라보고 뛰지만 콘서트장에서의 뜀은 가수를 향해 도열하듯 뜁니다. 획일적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뜀의 깊이가 다르다고나 할까! 존재를 건드는 힘이 풍물굿의 뜀에는 있습니다. 콘서트장의 뜀은 마치 가수를 위해 뛰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얇습니다.
종국에 만들어지는 신명의 질도 다른 것 같습니다. 콘서트는 스트레스 해소입니다. 콘서트장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지요.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콘서트장에서 받았던 신명이 내재화하여 삶의 동력으로 화하는 질은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풍물굿의 신명은 좀 다릅니다. 풍물굿은 바로 자신의 문제를 굿판에 던지고 자신이 무격이 되어 풀어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의 뜀은 깊이를 가집니다. 삶의 존재를 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풍물굿은 스트레스 해소의 목적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지요. 삶의 계기점을 만들어주는 어떤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체성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콘서트는 스타가 주인공 행세를 합니다. 물론 내가 그 스타를 돈으로 사서 내가 향유하는 것이어서 내가 주인공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해서 그 능동성이 검증되기에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스타의 능동성에 편승한 능동성이라고나 할까? 풍물굿은 확실히 능동적입니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소리를 낼 때 풍물굿은 가능합니다. 참 비효율적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체성을 얻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해서 하나의 큰 성음을 얻습니다. 손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동참한 주체들은 더 깊은 신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땀 흘린 농부에게 냉수 한 그릇이 꿀처럼 달듯이...
콘서트나 뮤지컬은 이 시대 문화의 정수리 같습니다. 그것은 많은 대중에게 읽혀지고 향유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배워서 배울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풍물굿이 문화의 정수리였을 것입니다. 시대는 변화하는 법. 풍물굿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라보고 갱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콘서트처럼 당대에 깔아놓은 정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중에게 익숙하지만 또한 새로운 무엇을 끊임없이 양산해야 할 것입니다. 콘서트라는 양식은 돈과 기획의 산물입니다. 풍물의 양식적인 접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스타를 키워내어 상품화 하듯이 이제는 집단연희 뿐만 아니라 개인연희도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개인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길로 우리의 풍물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풍물은 또 다른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고 실험하는 사람들에게 비판보다는 박수와 격려를 보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대중스타의 콘서트장에 가면 작정하고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단단히 놀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대개 젊은 사람들은 콘서트를 시작하자마자 스탠딩라운지에서 뛰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뜀을 통해 재미와 신명을 느낍니다. 무엇이 그들을 뛰게 할까요? 그곳에도 신명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런 물음을 던져 보게 됩니다. 과연 콘서트장에서 나타나는 저들의 신명과 풍물굿에서 나타나는 신명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
빅 콘서트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콘서트장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립니다. 저마다 티켓을 쥐어들고 아이마냥 들떠 있습니다. 콘서트장에 들어서면 벌써 분위기가 심상찮습니다. 사람들은 북적이고 화려한 조명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드디어 시작을 알리면 환호성이 터집니다.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무도 자세히 알고 있는 듯합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먼저 보여주는 듯 몸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빅 스타는 처음부터 나오지 않습니다. 게스트들이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사람들이 점점 열광하기 시작하면 스타가 출현합니다. 빅 스타가 나오면 사람들은 스타를 목청껏 외치며 좋아하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뜁니다. 이들은 이렇게 자신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러한 풀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콘서트장의 신명풀이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몇 가지 깔아놓은 문화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은 먼저 음악이지요.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팝송을 듣고 가수를 보고 자라왔습니다.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온 것이지요. 그래서 익숙합니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한 것이지요. 미디어를 통해 대중음악이라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대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에 아주 익숙합니다. 음악을 보여주는 양식인 콘서트도 오랜 세월동안 구축되고 발전하였지요. 이제는 미디어에서 나와 직접 관객과 만나는 콘서트가 더욱 매력적이 되었습니다. 미디어가 콘서트라는 상품을 다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미디어의 도움이 아니면 콘서트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돈이 있어야 합니다. 콘서트는 돈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입장권은 제법 비싸지요! 어쩌면 고급 문화상품인 겁니다. 빅 스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기업입니다. 그 스타를 모시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게 되고 그 비용은 다수의 구매자가 충당해 주어야 하지요. 그 뿐만이 아니죠. 이를 준비해 주는 기획사가 또 많은 이윤을 내야 하기 때문에 티켓 값은 더욱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스타는 실로 대단한 역할을 합니다. 수천 명의 관중을 한마디로 쥐었다 놓았다 합니다. 스타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러 일으켜주지요. 환상을 심어줍니다. 일탈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잠시 시간을 뺏어가는 사람입니다. 스타는 말 그대로 사람들을 집중시킵니다. 노래와 춤 그리고 현란한 무대매너와 철저한 무대준비로 사람들의 넋을 뺏어갑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스타가 깔아놓은 정서가 사람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 교호할 때 사람들은 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스타입니다. 스타는 돈과 명예를 얻고 그것에 동참한 사람은 풀이를 얻습니다. 꽤 괜찮은 거래죠.
콘서트가 가지는 매력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쉽습니다. 보고 즐기기만 하니 얼마나 쉽습니까! 돈만 지불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노래를 듣고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럭셔리한 문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은가요!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은 앉아서 감상하면 될 일입니다. 더 좋으면 뛰고 놀 일입니다. 자신은 소극적인 동참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쉽습니다.
효율적입니다. 몇 명의 사람으로 잠실실내체조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게 할 수 있습니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잘 훈련된 몇몇의 사람들이 수천 명의 심장을 벌렁이게 할 수 있습니다. 증폭된 음은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계속 들쑤십니다. 참 효율적입니다.
여러 명이 함께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에 연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뛰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그들은 서로를 잘 모릅니다. 뛰면 그러한 것이 중요해지지 않습니다. 함께 뛰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깊지는 않지만 나름의 소통을 가져와 줍니다.
사람들이 놀 준비를 하고 옵니다. 그 날을 위해 준비합니다. 비싼 티켓도 그렇고 바쁜 일정도 조정합니다. 데이트를 준비한 사람이라면 복장에도 더욱 신경을 씁니다. 여기까지 와서 제대로 놀지 못하면 본전생각 날 것이 뻔합니다. 기를 쓰고 놀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확실히 날려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콘서트가 가지는 매력을 풍물굿도 수용하여 발전했으면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풍물굿이나 콘서트나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깊이는 좀 다르지만... 옛날의 풍물굿이 지금의 콘서트 분위기가 아닐까요? 그랬을 겁니다. 밤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강한 음악 속에서 뛰고 놀았던 것이 풍물굿 아니던가요?
전에는 여러 사람이 한 마음으로 풍물을 쳐대야 그런 강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수가 기계음을 통해 그 성음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들이 뛰는 것도 비슷합니다. 풍물에서는 마당에서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지만 콘서트장에서는 제자리를 벗어나기 힘듭니다. 풍물에서의 뜀은 자유롭고 자기를 바라보고 뛰지만 콘서트장에서의 뜀은 가수를 향해 도열하듯 뜁니다. 획일적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뜀의 깊이가 다르다고나 할까! 존재를 건드는 힘이 풍물굿의 뜀에는 있습니다. 콘서트장의 뜀은 마치 가수를 위해 뛰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얇습니다.
종국에 만들어지는 신명의 질도 다른 것 같습니다. 콘서트는 스트레스 해소입니다. 콘서트장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지요.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갔을 때 콘서트장에서 받았던 신명이 내재화하여 삶의 동력으로 화하는 질은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풍물굿의 신명은 좀 다릅니다. 풍물굿은 바로 자신의 문제를 굿판에 던지고 자신이 무격이 되어 풀어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의 뜀은 깊이를 가집니다. 삶의 존재를 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풍물굿은 스트레스 해소의 목적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지요. 삶의 계기점을 만들어주는 어떤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체성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콘서트는 스타가 주인공 행세를 합니다. 물론 내가 그 스타를 돈으로 사서 내가 향유하는 것이어서 내가 주인공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해서 그 능동성이 검증되기에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스타의 능동성에 편승한 능동성이라고나 할까? 풍물굿은 확실히 능동적입니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입니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소리를 낼 때 풍물굿은 가능합니다. 참 비효율적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체성을 얻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해서 하나의 큰 성음을 얻습니다. 손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동참한 주체들은 더 깊은 신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땀 흘린 농부에게 냉수 한 그릇이 꿀처럼 달듯이...
콘서트나 뮤지컬은 이 시대 문화의 정수리 같습니다. 그것은 많은 대중에게 읽혀지고 향유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배워서 배울점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풍물굿이 문화의 정수리였을 것입니다. 시대는 변화하는 법. 풍물굿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라보고 갱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콘서트처럼 당대에 깔아놓은 정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중에게 익숙하지만 또한 새로운 무엇을 끊임없이 양산해야 할 것입니다. 콘서트라는 양식은 돈과 기획의 산물입니다. 풍물의 양식적인 접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스타를 키워내어 상품화 하듯이 이제는 집단연희 뿐만 아니라 개인연희도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개인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길로 우리의 풍물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풍물은 또 다른 세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하고 실험하는 사람들에게 비판보다는 박수와 격려를 보내 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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