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砥柱)가 가진 상징과 위엄
서애(류성룡) 선생의 「지주중류비」 둘째 단락은 자연의 광대함을 통해 인간의 충절과 절의를 환기하는 매우 뛰어난 비유적 글이다. 이 부분은 백형(伯兄, 柳雲龍)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격렬한 황하의 물결이 곤륜산을 흔들고 여량, 용문을 지나 전국을 뒤덮는 장면을 웅장하게 묘사한다.
산과 절벽조차 모두 홍수에 잠기지만, 오직 ‘지주(砥柱)’라는 거대한 바위만은 우뚝 서서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큰 물결에도 높음을 가릴 수 없다(洪波以汨之。不足以掩其高)”는 구절은 자연의 압도적 힘과 더불어 의로운 절개가 세월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불변성을 상징한다.
서애 선생은 단순한 경관 묘사를 넘어 이러한 자연 현상을 충신과 절사의 정신에 빗대어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자연의 거대한 ‘지주’가 혼란과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세속의 유혹과 난관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이상적 충절의 상징이다. 이로써 원문은 자연과 도덕성이 긴밀히 결합된 산문의 대표적 예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 단락은 유려한 문학적 표현과 함께, 자연의 이치와 인간사의 도리를 심오하게 연결시켜 조선 유교 사상의 핵심 정신인 충과 절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이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도덕적 각성과 정신적 지향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11-2.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 [원문2]成龍不敢辭。謹請砥柱之義。侯曰。四瀆之中。惟河爲大。方其橫流汎溢於天下也。蕩崑崙觸呂梁。蹴龍門呑伊洛。放于梁宋之郊。洶湧震激。日星晦昧。陵谷易置。浩浩湯湯。橫無際涯。崇山絶岸。盡爲所包。不敢以高大自見。擧萬物而靡然也。洶湧震激。日星晦昧。陵谷易置。浩浩湯湯。橫無際涯。崇山絶岸。盡爲所包。不敢以高大自見。擧萬物而靡然也。於此有石焉。兀乎孤峙。卓爾秀出。當噴薄衝擊之會。而捍其逆折崩潰之勢。沙石以嚙之。不足以動其堅。洪波以汨之。不足以掩其高。巍然截然。歷萬古而如一日。其名曰砥柱。夫物誠有之。人亦宜然。余嘗觀於古之忠烈士。特立於流俗而不變者。其類於是歟。 |
황하의 거센 물살 속에서 수천 년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 중류지주(中流砥柱)라 불리는 그 바위처럼, 혼탁한 세태 속에서도 사대부의 의리를 지켜낸 이들의 기개가 서애(西厓) 선생의 글속에서 오롯이 빛납니다.
◉成龍不敢辭。謹請砥柱之義。侯曰。四瀆之中。惟河爲大。方其橫流汎溢於天下也。蕩崑崙觸呂梁。蹴龍門呑伊洛。放于梁宋之郊。
성룡(成龍)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지주(砥柱)'의 뜻을 청하니, 류후(柳侯, 겸암)께서, "천하의 사독(四瀆, 長江ㆍ黃河ㆍ淮水ㆍ濟水) 가운데 오직 황하(河)가 가장 크다. 바야흐로 황하가 횡류(橫流)하며 천하에 넘쳐흐를 때에는, 곤륜산(崑崙山)을 뒤흔들고 여량(呂梁)을 부딪치며, 용문(龍門)을 휩쓸고 이수(伊水)ㆍ낙수(洛水)를 삼키며 양(梁)나라와 송(宋)나라의 들판으로 흘러간다" 하였다.
◉洶湧震激。日星晦昧。陵谷易置。浩浩湯湯。橫無際涯。崇山絶岸。盡爲所包。不敢以高大自見。擧萬物而靡然也。
○거센 물결이 세차게 솟구치고 진동하며 부딪치니, 해와 별이 어두워지고 언덕과 골짜기가 자리를 바꾸며, (물이) 넓고도 넓어 가로지르는 끝과 가가 없다. 높은 산과 끊어진 벼랑이 모두 둘러싸이는 바로 감히 높고 크더라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고, 온갖 만물이 휩쓸려 쓰러지고 만다.
◉於此有石焉。兀乎孤峙。卓爾秀出。當噴薄衝擊之會。而捍其逆折崩潰之勢。沙石以嚙之。不足以動其堅。洪波以汨之。不足以掩其高。
○ 여기에 한 바위가 있으니, 외로이 홀로 솟아 있기를 빼어나게 솟구쳐 있다. 거센 물결이 세차게 뿜어지고 부딪치는 길목을 가로막아, 거슬러 꺾이고 무너져 내리는 물길의 기세를 막아내니, 모래와 자갈이 갉아 침식하여도 그 견고함을 흔들지 못하고, 홍수로 물결이 밀려와 빠뜨릴지라도 그 높은 위용을 가리지 못하는구나.
◉巍然截然。歷萬古而如一日。其名曰砥柱。夫物誠有之。人亦宜然。余嘗觀於古之忠烈士。特立於流俗而不變者。其類於是歟。
○ 드높고 깎아지른듯하여 만고의 세월을 겪어도 한날한시 같으니, 그 이름을 지주(砥柱)라 부른다. 만물 중에 참으로 이러한 사물이 존재하니, 사람 또한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라. 내가 일찍이 옛 충신(忠臣)과 열사(烈士)들 가운데 홀로 꼿꼿이 탁류 같은 세속에서도 (절개를) 바꾸지 않은 자들을 보았는데, 그들이 바로 이 바위와 같은 부류가 아니겠는가.
2026. 6. 7.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지주(砥柱): 황하(黃河)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으로, 거센 물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아 충절과 절개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사독(四瀆): 중국의 네 큰 강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황하(黃河)·장강(長江)·회수(淮水)·제수(濟水)를 가리킵니다.
*하(河): 여기서는 황하(黃河)를 뜻하며, 중국 최대의 강으로 거대한 기세와 혼란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횡류범일(橫流汎溢): 물이 사방으로 넘쳐흐르는 모습으로,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진 상황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곤륜(崑崙): 곤륜산(崑崙山)을 말하며, 중국 신화와 고대 지리에서 천하 산맥의 근원으로 여겨진 신성한 산입니다.
*여량(呂梁): 황하의 험한 협곡 지대로, 물살이 매우 거세고 험한 곳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용문(龍門): 황하 상류의 험한 협곡으로, 잉어가 이곳을 뛰어넘어 용이 된다는 ‘등용문(登龍門)’ 고사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이락(伊洛):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를 함께 이르는 말로, 중국 낙양 일대의 중심 지역을 상징합니다.
*양송(梁宋): 중국의 옛 양(梁)나라와 송(宋)나라 지역을 말하며, 중원 일대를 가리킵니다.
*흉용진격(洶湧震激): 물결이 거세게 출렁이며 천지를 뒤흔드는 장대한 모습을 뜻합니다.
*일성회매(日星晦昧): 해와 별빛이 흐려질 정도로 세상이 어둡고 혼란스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능곡역치(陵谷易置): 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뒤바뀐다는 뜻으로, 세상이 크게 변하고 질서가 뒤흔들리는 상황을 비유합니다.
*호호탕탕(浩浩湯湯): 물이 넓고 크게 흘러가는 장엄한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제애(際涯): 끝과 경계를 뜻하며, ‘횡무제애(橫無際涯)’는 끝없이 펼쳐진 상태를 말합니다.
*숭산절안(崇山絶岸): 높고 큰 산과 깎아지른 절벽을 뜻합니다.
*미연(靡然): 모두 휩쓸리거나 무너져 따르게 되는 모습을 뜻합니다.
*올호고치(兀乎孤峙): 홀로 우뚝 솟아 서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탁이수출(卓爾秀出): 뛰어나게 높이 드러나 남달리 빼어난 모습을 뜻합니다.
*분박충격(噴薄衝擊): 거센 물결이 세차게 밀려와 부딪치는 모습을 말합니다.
*역절붕궤(逆折崩潰): 꺾이고 무너지며 붕괴되는 형세를 뜻합니다.
*설(嚙): 갉아먹거나 침식한다는 뜻으로, 모래와 돌이 바위를 깎아내리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골(汨): 흐리게 하거나 잠기게 한다는 뜻으로, 큰 물결이 뒤덮는 상황을 나타냅니다.
*외연절연(巍然截然): 높고 엄숙하게 우뚝 서 있는 장엄한 모습을 뜻합니다.
*역만고여일일(歷萬古而如一日): 만고의 세월이 지나도 하루처럼 변함없이 그대로임을 뜻합니다.
*충렬사(忠烈士): 충성과 절개를 끝까지 지킨 의로운 선비를 말합니다.
*특립(特立): 홀로 뜻을 세워 세속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뜻합니다.
*유속(流俗): 세속의 풍조와 일반 사람들의 흐름을 뜻합니다.
*기류어시여(其類於是歟): “바로 이러한 부류가 아니겠는가?”라는 뜻으로, 지주와 충절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결론적 표현입니다.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