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지주석인 본심(本心)
서애(西厓) 선생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제4단락은 단순히 충절을 찬양하는 글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지켜야 하는가를 깊이 있게 밝힌 성리학적 수양론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욕망은 홍수이고 본심은 지주이다(利欲者。洪水也。本心者。砥柱也)”라는 구절이다. 거센 홍수가 모든 것을 휩쓸어 가듯 인간의 욕망 역시 사람의 의리와 양심을 무너뜨릴 수 있지만, 본심이 굳게 서 있으면 어떠한 유혹과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애 선생은 사람의 본심을 부모에게는 인(仁), 임금에게는 의(義)를 실천하게 하는 하늘의 도리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욕망이 그것을 가리게 되면 사람은 생명을 구하고 부귀를 얻기 위해 옳지 못한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본심을 세우고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지 학문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를 바로 세우는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특히 서애 선생은 야은 길재 선생의 절의를 단순한 개인의 기개가 아니라, 평소 본심을 굳게 지켜 온 결과라고 본다. 결국 큰 절개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평생의 수양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오늘날처럼 물질과 경쟁이 우선되는 시대에도 이 글은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 할 삶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11-4.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 [원문4]成龍曰。先生之節則高矣。兄之取譬則然矣。其欲以此爲敎者。何歟。侯喟然曰。天下之物。必先有以自守。然後能有以勝物。彼砥柱也。惟其高也堅也。故初不期於洪水而洪水不能以動之。志士仁人。惟其先審取舍之分於內而確乎不拔。故富貴貧賤威武。不能以撓之。吾欲以此風勵學者。成龍曰。近矣。願進此而畢其說。侯曰。人之所欲。莫甚於生。所惡莫甚於死。其所愛慕而必得者。莫甚於富貴。苟任其情而無有以制之。則凡可以避死趨生。求富貴者。何不爲耶。於是。賊倫悖理之習。遺君後親之風。充塞彌漫。如河決海潰。以至三網淪九法斁。人類化爲禽獸。聖人有憂之。敎人以先立其本心。本心者。何耶。仁之於父子。義之於君臣。命於天而則於物者也。斯吾之所固有。無待於外者。或不能盡其道者。欲蔽之也。去其蔽。復其初。則本心立矣而外物自輕。由是則生而有不爲也。死而有不避也。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曾何足以動其一髮乎。然則利欲者。洪水也。本心者。砥柱也。人豈有不能砥柱於己。而能砥柱於世者哉。故凡樹大節於危難之中而不變者。皆先立其本心於平日而不失者也。卽吉先生是已。 |
◉成龍曰。先生之節則高矣。兄之取譬則然矣。其欲以此爲敎者。何歟。
○성룡(成龍)이 말하였다. "[冶隱 吉再] 선생의 절개는 진실로 높으시고, 형님[兄, 兼巖 柳雲龍]께서 [황하의 지주를 들어] 비유를 취하신 것 또한 참으로 그러하십니다[則然矣]. 다만 [형님께서] 이것(砥柱中流)으로써 [세상과 후세에] 가르침을 삼고자 하시는 까닭은 어찌해서입니까?[何歟]"
◉侯喟然曰。天下之物。必先有以自守。然後能有以勝物。彼砥柱也。惟其高也堅也。故初不期於洪水而洪水不能以動之。志士仁人。惟其先審取舍之分於內而確乎不拔。故富貴貧賤威武。不能以撓之。吾欲以此風勵學者。
○ 후[侯, 兼巖 柳雲龍]께서 위연(喟然)히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천하의 사물은 반드시 먼저 스스로를 지키는 바가 있은 연후에야[然後] 능히 사물(事物, 外物)을 이길 수 있다. 저 지주(砥柱)는 오직 그것이 높고도 견고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홍수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홍수가 능히 그것을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오직 먼저 안으로 취하고 버리는 분수를 살펴서 확고하여 뽑히지 않기 때문에, 부귀와 빈천과 위무(威武)로서 능히 흔들지[撓] 못하는 것이니, 나는 이것으로써 배우는 자들을 풍려(風勵, 勉勵)하고자 한다."
| [해설]이 구절(故初不期於洪水而洪水不能以動之)의 속 뜻? 범인(凡人)들은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시대가 이 모양이라 어쩔 수 없다"라며 탁류에 몸을 던집니다. 즉, 환경(홍수)이 주인이 되고 내 마음(바위)은 객이 되어 휩쓸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암 선생은 "바위는 애초에 홍수가 오는지 마는지 기약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는다[初不期]"고 하셨습니다. 홍수가 나든 날이 개든, 바위는 오직 제 자리에서 스스로 높고 견고함을 유지할 뿐입니다. 세상의 혼란이나 시련이라는 외적 조건에 내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자수(自守).’의 속뜻입니다. 겸암 선생께서는 금오산 야은 사당을 찾는 후학들이 이 속뜻을 깨달아, 시대의 탓을 하기 전에 마음이 지주(砥柱)처럼 얼마나 높고 견고한지'를 먼저 돌아보기를 권면하신 것입니다. |
◉成龍曰。近矣。願進此而畢其說。侯曰。人之所欲。莫甚於生。所惡莫甚於死。其所愛慕而必得者。莫甚於富貴。苟任其情而無有以制之。則凡可以避死趨生。求富貴者。何不爲耶。
○성룡(成龍)이 말하였다. "[형님의 말씀이 의리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바라옵건대 여기에서 더 나아가[進此] 그 설명을 끝마쳐[畢] 주십시오." 후[侯, 兼巖 柳雲龍]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바라는 바는 삶보다 더한 것이 없고[莫甚於生], 싫어하는 바는 죽음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莫甚於死], 그들이 사랑하고 사모하여 반드시 얻고자 하는 바는 부귀보다 더한 것이 없다[莫甚於富貴]. 만약 그 정(情)을 마음대로 내버려 두고[苟任其情] 그것을 제어할 바가 없다면, 무릇 죽음을 피해 삶으로 나아가 부귀를 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언들 하지 않겠는가[何不爲耶]!"
◉於是。賊倫悖理之習。遺君後親之風。充塞彌漫。如河決海潰。以至三網淪九法斁。人類化爲禽獸。聖人有憂之。敎人以先立其本心。
○"이에[於是], 인륜을 해치고 이치를 거스르는 습속[賊倫悖理之習]과 임금을 버리고 어버이를 뒤로하는 풍조[遺君後親之風]가 가득 차고 넘쳐흘러, 마치 황하가 터지고 바다가 무너지는 것[河決海潰] 같다. 그리하여 삼강(三綱)이 침몰하고 구법(九法)이 무너지며[三網淪九法斁], 인류가 변하여 금수가 되는 데까지 이르니, 성인이 이를 근심하시어[聖人有憂之] 사람들에게 먼저 그 본심(本心)을 세우도록 가르치신 것이로다[敎人以先立其本心]."
◉本心者。何耶。仁之於父子。義之於君臣。命於天而則於物者也。斯吾之所固有。無待於外者。或不能盡其道者。欲蔽之也。去其蔽。復其初。則本心立矣而外物自輕。
○"본심(本心)이란 무엇인가? 부자(父子) 사이에 있어서의 인(仁)과 군신(君臣) 사이에 있어서의 의(義)이니, 하늘에서 명하여 사물에 법칙이 된 것이다[命於天而則於物者也]. 이것은 우리가 본래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바[吾之所固有]이므로 외부에서 기다릴 것이 없으니, 혹 능히 그 도(道)를 다하지 못하는 까닭은 물욕(物欲)이 그것을 가리기 때문이다[欲蔽之也]. 그 가려진 것을 제거하고 그 처음(본연의 상태)을 회복하면[復其初] 곧 본심이 서게 되고 외물(外物)은 자연히 가벼워진다[外物自輕]."
◉由是則生而有不爲也。死而有不避也。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曾何足以動其一髮乎。然則利欲者。洪水也。本心者。砥柱也。
○"이로 말미암으면[由是] 살 수 있을지라도 하지 않는 바가 있게 되고, 죽음에 이를지라도 피하지 않는 바가 있게 된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유하거나 또 귀한 것은, 나에게 있어 일어나는 부운(浮雲, 떠도는 구름)과 같으니[於我如浮雲], 어찌[曾何] 그것이 내 머리카락 한 올인들 능히 움직일 수 있겠는가[足以動其一髮乎]! 그러한즉 이익과 욕심[利欲]은 홍수(洪水)요, 본심(本心)은 지주(砥柱)로다."
◉人豈有不能砥柱於己。而能砥柱於世者哉。故凡樹大節於危難之中而不變者。皆先立其本心於平日而不失者也。卽吉先生是已。
○"사람이 어찌 자기 자신에게 지주(砥柱)가 되지 못하면서, 능히 세상에 지주가 될 수 있는 자가 있겠는가[者哉]? 그러므로 무릇 위태롭고 어려운 와중[危難之中]에서 큰 절개를 세우고[樹大節] 변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평일(平日, 평소)에 먼저 그 본심을 세워 잃지 않은 자들[先立其本心於平日而不失者]이니, 곧 길 선생(吉先生, 야은 길재)이 바로 그분이다[卽吉先生是已]."
2026. 6. 10.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지주(砥柱): 황하(黃河)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우뚝 서 있는 돌기둥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욕망과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의 절개와 본심(本心)을 비유합니다.
*자수(自守):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뜻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외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굳은 자세를 말합니다.
*승물(勝物): 외물(外物), 곧 재물·권세·욕망 같은 외적 유혹을 이겨낸다는 뜻입니다.
*지사인인(志士仁人): 뜻과 절개를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을 말합니다. 유교에서 도덕적 이상을 실천하는 인물을 가리킵니다.
*취사(取舍):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도덕적 선택을 의미합니다.
*확호불발(確乎不拔): 뜻이 굳고 단단하여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풍려(風勵): 바른 풍속과 정신으로 사람을 권면하고 격려한다는 뜻입니다.
*구생추생(苟任其情):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만 맡겨 둔다는 뜻입니다. 이성적 절제 없이 욕심을 따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적륜패리(賊倫悖理): 인간의 윤리와 천리를 해치는 행위를 말합니다. ‘윤리를 해치고 이치를 거스른다’는 뜻입니다.
*유군후친(遺君後親): 임금을 버리고 부모를 뒤로 한다는 뜻으로, 충(忠)과 효(孝)를 잃은 세태를 비판하는 표현입니다.
*삼강(三綱):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의 기본 윤리를 말합니다. 유교 사회의 핵심 질서입니다.
*구법(九法): 주 무왕(周武王)이 기자(箕子)에게 천도를 물을 때 기자가 진술했다는 아홉 가지 법으로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말합니다.
*본심(本心):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어진 선한 마음을 말합니다. 부모에게는 인(仁), 임금에게는 의(義)를 실천하게 하는 근원적 마음입니다.
*욕폐(欲蔽): 욕망이 본래의 선한 마음을 가리고 덮어 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거폐복초(去其蔽 復其初): 욕망의 가림을 제거하고 본래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성리학 수양론의 핵심 표현입니다.
*외물(外物): 인간 밖에 있는 재물·명예·권세 같은 외적 대상과 유혹을 말합니다.
*부운(浮雲): 뜬구름처럼 덧없고 가벼운 것을 비유합니다. 여기서는 부귀(富貴)의 허망함을 말합니다.
*이욕(利欲): 이익과 욕망을 말합니다. 서애는 이를 인간을 휩쓰는 ‘홍수(洪水)’에 비유하였습니다.
*수대절(樹大節): 큰 절개와 의리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위난 속에서도 도리를 굽히지 않는 자세를 말합니다.
*평일(平日): 특별한 위기 상황이 아닌 평소를 말합니다. 서애는 큰 절개란 평소의 수양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합니다.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