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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에 관한 기록들

▣12. 외조진사김부군비갈(外祖進士金府君碑碣) -은거의 품격과 마음의 충만함-

작성자류시언|작성시간26.06.12|조회수90 목록 댓글 0

◈은거의 품격과 마음의 충만함

서애(西厓, 柳成龍) 선생의 「외조진사김부군비갈(外祖進士金府君碑碣)」은 단순한 묘갈문을 넘어, 조선 선비가 추구한 삶의 이상을 담아낸 인물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글 속의 외조부 김광수(金光粹) 공은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의성 북촌에 은거하며, 가난 속에서도 스스로 만족과 기쁨을 잃지 않은 인물로 형상화된다. 특히 “하루 종일 기쁘고 즐거워하여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終日欣欣 無一不適意)”라는 표현은 물질적 결핍과 정신적 충만이 대조되는 서애의 인간 이해를 잘 보여준다.

 

이 글의 핵심은 단순한 은둔의 미화에 있지 않다. 서애는 외조부의 삶에서 효우(孝友)와 안빈(安貧), 그리고 담박한 인격의 조화를 발견하고 이를 이상적 군자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재산을 늘리는 말 대신 옛 성현의 가르침만을 입에 올렸다는 대목은 조선 유학 사회가 지향한 도덕적 인간상의 본질을 드러낸다.

 

또한 비갈 말미에서 서애가 “잠덕유광(潛德幽光)이 후세에 묻힐까 두렵다”고 한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는 외조부 개인에 대한 애정을 넘어, 이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선한 삶의 가치를 역사 속에 남기고자 한 기록 정신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이 비갈문은 한 은자의 행적을 적은 글이면서 동시에, 삶의 참된 충만함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서애의 깊은 성찰이라 할 수 있다.

 

▣12. 외조진사김부군비갈(外祖進士金府君碑碣)

[전문]公諱光粹。字國華。金氏本新羅宗姓。而麗時諱方慶爲上洛府院君。樹大勳于世。公其後也。曾祖。咸吉道監牧官子瞻。祖司直孝溫。考諱克諧。登文科。官至知禮縣監。公天性恬淡。風神端潔。於富貴利達。泊然無所嗜。早以能詩。聞儕輩間。中弘治辛酉進士。旣而棄擧業。屛居義城之北村。不復有進取意。宅邊有矮松一株。靑翠蔥鬱。蔭可數畝。公愛之。日飮酒哦詩。偃仰於其下。自號松隱處士。家貧衣食不給。而公曠不以爲意。終日欣欣。無一不適意。時隣里賢愚少長。莫不敬慕而樂就焉。公孝友天至。知禮公早世。事先妣數十年。所以承顔順旨者無不至。一弟在安東。每約來則倚門以待。日晩不食。必與同餐。平生口不道營産事。惟古人嘉言善行。詠歌稱道之不輟。故婢僕亦習聞而能傳之。嗚呼。公可謂篤行君子矣。雖古之處約養高之士。何以加此。公先娶南氏。生一子溏。女一人。適金珣。後娶順天張氏密直副使弘之後僉正日新之女。生五女。長適申澤。次適金處善忠順衛。次適金溫。次適柳仲郢觀察使。次適李苓訓導。溏生一女權德麟。一子世佑。金珣生二子。生河,生溟。一女康汝湝。申澤生二子。大年,大有。三女。金牧,文希禎,趙希祖。忠順衛生三子。應夏,應商,應周。金溫生一子。命堅。觀察使生二子。雲龍,成龍。觀察使三女。李潤壽,金宗武,鄭好仁。訓導生一女。金坦。內外孫男女百餘人。張夫人賢有識慮。與公竆居食淡。而亦有以自樂無厭苦意。公生於成化戊子。終于嘉靖癸亥。享年九十六。臨終。沐浴隱几。屈指自語曰。足矣。有頃。倐然而逝。肌膚如生。張夫人先公數年於嘉靖己未卒。年八十八。葬于大谷山乾坐巽向之原。及公之歿。就其麓爲同域異塋之制焉。其後二十二年。外孫柳成龍承朝命按節南來。就省公墓而祭之。傷其墓道無刻。而大懼潛德幽光。因至泯沒于後。遂立短碣其前。略敍于陰如右。百歲之下。必有因此而得公之大槩者矣。

◉公諱光粹。字國華。金氏本新羅宗姓。而麗時諱方慶爲上洛府院君。樹大勳于世。公其後也。曾祖。咸吉道監牧官子瞻。祖司直孝溫。考諱克諧。登文科。官至知禮縣監。

○공(公)의 휘(諱, 이름)는 광수(光粹)요, 자(字)는 국화(國華)이다. 김씨(金氏)는 본래 신라(新羅)의 종성(宗姓)인데, 고려(高麗) 시절에 휘 방경(方慶)이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이 되어 세상에 큰 공훈을 세웠으니[樹大勳于世], 공은 그 후손이다. 증조(曾祖)는 함길도 감목관(監牧官) 자첨(子瞻)이요, 조부(祖)는 사직(司直) 효온(孝溫)이며, 돌아가신 아버지[考]의 휘는 극해(克諧)이니, 문과(文科)에 올라 관직이 지례현감(知禮縣監)에 이르렀도다.

 

◉公天性恬淡。風神端潔。於富貴利達。泊然無所嗜。早以能詩。聞儕輩間。中弘治辛酉進士。旣而棄擧業。屛居義城之北村。不復有進取意。

○공(公)은 천성이 염담(恬淡, 고요하고 맑음)하였고, 풍신(風神, 풍채와 정신)은 단정하고 깨끗하였다[風神端潔]. 부귀와 이욕의 영달[富貴利達]에 대해서는 담박하여 즐겨 탐하는 바가 없었으며[無所嗜], 일찍이 시(詩)에 능함으로써 또래들[儕輩] 사이에 명성이 들렸고, 홍치(弘治) 신유년(1501)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공부를 버리고 의성(義城)의 북촌에 은거하여[屛居], 다시는 나아가 취하려는 뜻[進取意]을 두지 않았다.

 

◉宅邊有矮松一株。靑翠蔥鬱。蔭可數畝。公愛之。日飮酒哦詩。偃仰於其下。自號松隱處士。家貧衣食不給。而公曠不以爲意。終日欣欣。無一不適意。時隣里賢愚少長。莫不敬慕而樂就焉。

○ 집 곁에 키 작은 소나무[矮松] 한 그루가 있었는데, 푸르고 울창하여 그 그늘[蔭]이 수 이랑[畝]에 이를 만하였다. 공이 이를 사랑하여, 날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며 그 아래에서 눕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하면서[偃仰], 스스로 호를 '송은처사(松隱處士)'라 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의식(衣食)이 넉넉히 공급되지 못하였으나[不給], 공은 소탈하여[曠] 마음에 두지 아니하고[不以爲意], 온종일 기뻐하고 기뻐하여 뜻에 맞지 않는 것[不適意]이 하나도 없었다. 당시 이웃 마을의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 젊은이와 어른[賢愚少長]을 막론하고 존경하고 사모하여 그에게 나아가기를 즐거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莫不敬慕而樂就焉].

 

◉公孝友天至。知禮公早世。事先妣數十年。所以承顔順旨者無不至。一弟在安東。每約來則倚門以待。日晩不食。必與同餐。平生口不道營産事。惟古人嘉言善行。詠歌稱道之不輟。故婢僕亦習聞而能傳之。嗚呼。公可謂篤行君子矣。雖古之處約養高之士。何以加此。

○공은 효성과 우애가 하늘에서 타고나 지극하였다. 지례공(知禮公, 父親)이 일찍 세상을 떠나시니, 돌아가신 어머니[先妣]를 수십 년 동안 모심에 얼굴빛을 받들고 뜻을 순종하는 바[承顔順旨者]가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다. 한 아우가 안동(安東)에 있었는데, 매번 오기로 약속하면 문에 기대어 기다렸고[倚門以待], 날이 저물어도 먹지 않다가 반드시 함께 식사하였다. 평생에 입으로는 재산을 경영하는 일[營産事]을 말하지 아니하였고, 오직 옛사람의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嘉言善行]만을 읊조리고 일컬어 칭송하기를 그치지 않았도다. 그러므로 비복(婢僕, 노비)들 또한 익히 들어 능히 그것을 전할 수 있었다. 아아[嗚呼]! 공은 참으로 덕행이 독실한 군자[篤行君子]라 이를 만하다. 비록 옛날의 검약하게 처신하여 고결함을 기르던 선비[處約養高之士]일지라도, 어찌 이보다 더하겠는가[何以加此]!

 

◉公先娶南氏。生一子溏。女一人。適金珣。後娶順天張氏密直副使弘之後僉正日新之女。生五女。長適申澤。次適金處善忠順衛。次適金溫。次適柳仲郢觀察使。次適李苓訓導。溏生一女權德麟。一子世佑。金珣生二子。生河,生溟。一女康汝湝。

○공(公)은 먼저 남씨(南氏)에게 장가들어 아들 당(溏)과 딸 한 사람을 낳았으니, [딸은] 김순(金珣)에게 시집갔다[適]. 뒤에 순천 장씨(順天張氏)에게 후취하였으니, 밀직부사(密直副使) 장홍(張弘)의 후손이요 첨정(僉正) 장일신(張日新)의 딸이다. [후처가] 다섯 딸을 낳았으니, 맏딸은 신택(申澤)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충순위(忠順衛) 김처선(金處善)에게 시집갔으며, 다음은 김온(金溫)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관찰사(觀察使) 류중영(柳仲郢)에게 시집갔으며, 다음은 훈도(訓導) 이령(李苓)에게 시집갔다. [아들] 당(溏)은 1녀 1남을 낳았으니 [딸은] 권덕린(權德麟)에게 [시집갔고] 아들은 세우(世佑)이며, 김순(金珣)은 두 아들 생하(生河)와 생명(生溟) 및 딸 한 사람을 낳았으니 [딸은] 강여해(康汝湝)에게 시집갔다.

 

◉申澤生二子。大年,大有。三女。金牧,文希禎,趙希祖。忠順衛生三子。應夏,應商,應周。金溫生一子。命堅。觀察使生二子。雲龍,成龍。觀察使三女。李潤壽,金宗武,鄭好仁。訓導生一女。金坦。內外孫男女百餘人。張夫人賢有識慮。與公竆居食淡。而亦有以自樂無厭苦意。

○ 신택(申澤)은 두 아들 대년(大年)과 대유(大有) 및 세 딸을 낳았으니, [세 사위는] 김목(金牧), 문희정(文希禎), 조희조(趙希祖)이다. 충순위(忠順衛, 金處善)는 세 아들 응하(應夏), 응상(應商), 응주(應周)를 낳았고, 김온(金溫)은 한 아들 명견(命堅)을 낳았다. 관찰사(觀察使, 柳仲郢)는 두 아들 운룡(雲龍)과 성룡(成龍)을 낳았고, 관찰사의 세 딸은 이윤수(李潤壽), 김종무(金宗武), 정호인(鄭好仁)에게 [시집갔다]. 훈도(訓導, 李苓)는 한 딸을 낳았으니 김탄(金坦)에게 시집갔다. 내외(內外)의 손자 자녀가 백여 명에 이르렀다. 장 부인(張夫人)은 어질고 식려(識慮, 식견과 사려)가 있어서, 공과 더불어 궁벽하게 살며 담박한 것을 먹으면서도[竆居食淡] 또한 그것으로써 스스로 즐거워하여 싫어하거나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었다[無厭苦意].

 

◉公生於成化戊子。終于嘉靖癸亥。享年九十六。臨終。沐浴隱几。屈指自語曰。足矣。有頃。倐然而逝。肌膚如生。張夫人先公數年於嘉靖己未卒。年八十八。葬于大谷山乾坐巽向之原。及公之歿。就其麓爲同域異塋之制焉。

○공(公)은 성화(成化) 무자년(1468)에 태어나 가정(嘉靖) 계해년(1563)에 세상을 마쳤으니[終], 향년(享年)이 96세였다. 임종(臨終)에 이르러 목욕하고 안석(案席, 기대는 방석)에 기대어[隱几], 손가락을 꼽으며 스스로 말하기를 "만족하다[足矣]!" 하였다. 조금 있다가 홀연히[倐然] 세상을 떠났는데, 살과 피부가 살아 있는 듯하였다[肌膚如生]. 장 부인(張夫人)은 공보다 몇 년 앞서 가정 기미년(1559)에 별세하였으니 나이는 88세였으며, 대곡산(大谷山) 건좌손향(乾坐巽向, 북서쪽을 등지고 남동쪽을 향함)의 언덕에 장사 지냈다. 공이 돌아가심에 이르러[及公之歿], 그 산기슭에 나아가 무덤 영역은 같이하되 봉분은 달리하는 법식[同域異塋之制]으로 하였다.

 

◉其後二十二年。外孫柳成龍承朝命按節南來。就省公墓而祭之。傷其墓道無刻。而大懼潛德幽光。因至泯沒于後。遂立短碣其前。略敍于陰如右。百歲之下。必有因此而得公之大槩者矣。

○ 그 뒤 22년에 외손(外孫) 류성룡(柳成龍)이 조정의 명을 받들어 절도사(관찰사)로서 남쪽으로 내려와[按節南來], 공의 묘소에 나아가 살피고 제사 지내다가, 그 묘도(墓道)에 글을 새긴 비석이 없음[無刻]을 슬퍼하고, 숨은 덕과 그윽한 빛[潛德幽光]이 이로 인해 후세에 아주 멸절되어 없어질까 크게 두려워하였다[大懼]. 마침내 그 묘 앞에 작은 비석[短碣]을 세우고, 비석 뒷면[陰]에 대략 위와 같이 서술하니, 백 세(百歲)의 뒤에라도[百歲之下] 반드시 이로 말미암아 공의 대개(大槩, 큰 지조와 행적)를 얻어 알 자가 있을 것이다.

 

2026. 6. 12.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1. 비문(碑文)의 구조 및 서사적 법도

*비갈(碑碣): 비갈(碑碣): 머릿돌(이수)을 얹은 큰 비석인 '비(碑)'와, 머릿돌 없이 윗부분을 둥글게 깎은 작은 비석인 '갈(碣)'의 통칭. 서애 선생이 '단갈(短碣)'이라 칭한 것은 외조부를 향한 지극한 겸양의 예법입니다.

*부군(府君) / 휘(諱): 가문에서 돌아가신 남성 조상을 극진히 높이는 도학적 호칭이며, 생전의 성함을 삼가 피하여 부르는 전통 사회의 엄격한 가묘(家廟) 예법입니다.

*음(陰): 비석의 뒷면. 전면에 대자(大字)로 주인공의 신원을 밝히고, 뒷면인 '음(陰)'에 구체적인 행장과 자손들의 번창함을 새겨 만세에 전하는 음기(陰記) 양식입니다.

 

2. 조선 전기 관직 및 과거 제도 고증

*진사(進士) / 거업(擧業): 고려·조선 시대에 국립대학인 성균관에 입학하거나 대과(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던 소과(小科) 시험의 합격자를 뜻합니다. *거업(擧業)은 이 진사시나 문과에 합격하기 위해 하던 '과거 공부'를 의미합니다.

*감목관(監牧官): 조선 시대 국가의 말(馬)을 기르던 목장을 관리하던 종육품(從六品) 관직입니다. 증조부 김자첨이 함길도에서 이 직책을 맡았습니다.

*사직(司直): 조선 시대 오위(五衛)에 소속된 정오품(正五品) 군직(軍職)입니다. 실제 근무를 하지 않아도 명예직으로 제수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첨정(僉正): 조선 시대 종사품(從四品) 관직으로, 주로 왕실의 사무나 조판 등을 담당하던 각 관청(종부시, 사옹원 등)의 부책임자 격입니다.

*충순위(忠順衛): 조선 전기 오위(五衛) 체제에서 양반 자제들로 구성된 국왕의 친위 부대 중 하나입니다.

*훈도(訓導): 조선 시대 지방의 향교(鄕校)에서 종교품(從九品)으로 임명되어 지방 학생들을 교육하던 교관(선생님)입니다.

 

3. 주자학적 예법 및 풍수 지리

*건좌손향(乾坐巽向): 묘지의 좌향(坐向). 술해(戌亥)와 신술(辛戌) 사이인 북서쪽(乾)을 등지고 앉아, 남동쪽(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전통 명당의 방위 배치입니다.

*동역이영(同域異塋):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엄격한 장제 법식. 부부의 유해를 한 구덩이에 묻는 합장을 피하고, 동일한 묘역(域) 안의 경사면에 나란히 자리를 잡되 봉분(塋)은 각각 따로 조성하여 음양의 법도를 지키는 방식입니다.

*안절(按節): 관찰사가 임금의 부절(符節)을 쥐고 지방을 순찰·통치한다는 뜻. 서애 선생이 선조 대에 경상도 순찰사가 되어 금의환향하여 외가를 참배한 서사적 배경입니다.

 

 

 

4. 성리학적 인물 덕행의 진면목

“안으로 본심(本心)이 서면 외물(外物)은 자연히 가벼워진다.”

*염담(恬淡) / 단결(端潔): 노장(老莊)의 허무주의가 아닌, 마음속에 사사로운 이욕(홍수)이 없어 맑고 깨끗하게 서 있는 주자학적 신독(愼獨)의 원형.

*승안순지(承顔順旨): 부모의 겉 안색[顔]을 살피고 내면의 뜻에 순종함. 일찍 아버지를 여읜 외조부가 홀어머니를 향해 실천한 지극한 효행의 극치.

*처약양고(處約養高): 물질적 궁핍함[約]에 처해서도 도리어 내면의 고결한 지조[高]를 기르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구체적 실천론.

*잠덕유광(潛德幽光): 평생 은거하여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덕[潛德]과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幽光]. 서애 선생이 이 갈문을 세운 궁극의 목적이며, 이 유광이 번창하여 훗날 풍산 류씨 가문의 두 거장(겸암·서애)을 낳는 도학적 자양분이 되었음을 선언함.

 

5. 비문과 관련 인물

*김광수(金光粹, 1468~1563): 비문의 주인공이자 서애 류성룡의 외조부입니다.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은(松隱)입니다. 연산군 7년(1501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의성 북촌에 은거하며 96세의 천수를 누렸습니다.

*김방경(金方慶, 1212~1300): 고려 시대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여·몽 연합군의 도원수로 일본 정벌을 이끈 명장입니다.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안동 김씨(상락 김씨)를 명문가의 반열에 올린 중시조입니다. 송은(松隱) 선생은 그의 후손입니다.

*김자첨(金子瞻) / 김효온(金孝溫): 송은(松隱) 선생의 증조부와 조부입니다. 증조부 자첨은 함길도 감목관을, 조부 효온은 사직(司直)을 지냈습니다.

*김극해(金克諧): 송은(松隱) 선생의 아버님입니다. 문과에 급제하여 지례현감(知禮縣監)을 지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조선 중기의 명재상.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냈으며 《징비록》의 저자이다. 이 글에서는 외손자의 입장에서 외조부의 숨어 있는 덕행을 후세에 남기고자 비갈문을 지었다.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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