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사 권공 묘표와 선조 추숭의 의미
서애(西厓, 柳成龍) 선생의 「고려태사권공묘표」는 안동 권씨 시조인 권공(權公)의 묘소와 그 보존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단순히 한 인물의 공적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선조의 유업을 계승하려는 후손들의 노력과 역사의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권공은 신라 말 고창군을 지키며 고려 태조를 맞아들인 공으로 권씨 성을 하사받았고, 이후 안동 권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대대로 명문가의 지위를 이어 갔다. 서애 선생은 이러한 가문의 번성과 역사적 위상을 간략히 언급하면서도, 특히 오래도록 잊혀진 묘역을 찾아 복원하고 비석을 세워 온 후손들의 정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비석이 훼손되자 다시 새 돌을 마련하여 세우려는 과정은 조상에 대한 공경과 전통 보존의 책임감을 잘 보여 준다. 이는 단순한 혈연적 애착을 넘어 가문의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려는 유교적 가치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서애 선생은 족보에 기록된 ‘태사(太師)’칭호에 대하여, 옛 비문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함부로 덧붙이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역사 기록에 대한 엄정함과 실증적 자세와 학문적 성품을 잘 드러낸다.
결국 이 글은 묘표라는 형식을 빌려 선조의 공덕을 기리고, 후손이 이를 계승해야 할 책임을 일깨우며, 아울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중한 검증과 전통 계승의 가치를 함께 보여 주는 기록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3. 고려태사권공묘표(高麗太師權公墓表)
| [전문]安東府西十里而遠。有山曰天燈。其中坎坐离向之原。實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權公冠履所藏也。公諱幸。本新羅宗姓。羅末。公守古昌郡。以地迎麗祖有功。得賜姓權。金之爲權。自公始。其後子孫益大以蕃。歷麗以及我朝。冠冕不絶。世之數名宗巨閥。必以權氏爲首。其亦盛矣。始公旣葬。墓道闕顯刻。世道愈遠。兆域湮廢。無有知其處者。成化間。公十八代孫平昌郡守雍。乃極意求尋於墓傍。獲誌石。就加封樹。臨歿遺命。自祔葬其原。爲守護計。卽墓南第三塚是也。而雍之子裕,綽等。承雍之志。立石而標之。慵齋李公宗準識其陰。萬曆戊子。公遠孫今觀察使君克智。以㫌節鎭南服。巡到于此。展省松檟。合宗人之在一境者以祭之。旣卒事。役隷誤觸石仆地而壞。觀察使卽與宗人謀買石鐫治。將涓吉改樹。以成龍亦係公外派。屬記其事。余竊謂公之勳業載史策。嗣息具譜牒。惠澤在邦人。無容更贅。謹略具立石顚末。俾來者有考焉。按譜稱公爲大師。而舊刻無載。疑不敢加云。 |
본 묘표는 안동 권씨 시조 권행(權幸)의 공적과 가문의 역사적 위상이 후손들에 의해 충실히 계승·보존되어 온 과정을 보여준다. 권공의 공훈과 업적은 한 가문의 자긍심을 넘어 국가적 명예로 이어졌으며, 훼손된 비석을 복구하고 묘역을 보존하려는 후손들의 노력은 유교 사회에서 중시한 선조 추숭과 효의 실천을 잘 드러낸다. 또한 서애는 족보에 전하더라도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역사 기록에 대한 학문적 엄정성과 진실성을 보여 주었다. 이 글은 선조의 공덕을 기리고 후손의 책임을 일깨우는 역사적·도덕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효와 선비정신이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安東府西十里而遠。有山曰天燈。其中坎坐离向之原。實高麗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權公冠履所藏也。
○안동부 서쪽으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천등산(天燈山)이라는 산이 있다. 그 산 가운데 감좌이향(坎坐离向)의 언덕이 있으니, 이곳이 바로 고려의 삼한벽상삼중대광 아부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 亞父功臣) 권공(權公)의 묘소(墓所, 冠履所藏)가 있는 곳이다.
▸감좌이향(坎坐離向)이란 풍수지리(風水地理)에서, 북쪽의 감방(坎方)에 앉아 남쪽의 이방(離方)을 향하는 좌향(坐向)을 말한다. 즉 묘나 집의 뒤는 북쪽이고 앞은 남쪽인 형태이다. 감(坎)은 북(北)이고 오행으로는 수(水)이다. 이(離)는 남(南)이고 오행으로는 화(火)이다. 따라서 감좌(坎坐)는 북쪽을 등짐이고 이향(離向)은 남쪽을 바라봄이다.
▸원문에서 ‘관리소장(冠履所藏)’이라 한 것은 관과 신발이 묻힌 곳이라는 뜻으로, 선현의 무덤을 높여 이르는 표현이다.
◉公諱幸。本新羅宗姓。羅末。公守古昌郡。以地迎麗祖有功。得賜姓權。金之爲權。自公始。其後子孫益大以蕃。歷麗以及我朝。冠冕不絶。世之數名宗巨閥。必以權氏爲首。其亦盛矣。
○공의 휘(諱)는 행(幸)이며, 본래 신라 왕실의 성씨 계통이다. 신라 말기에 공은 고창군(古昌郡)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지역에서 고려 태조를 맞아들인 공으로 권(權) 성을 하사받았다. 김(金)씨가 권(權)씨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뒤 자손들은 날로 번성하여 고려(高麗)를 거쳐 우리 조선(朝鮮)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고관(高官)이 끊이지 않았으며, 세상에서 손꼽는 명문거족(名門巨族)을 말할 때면 반드시 권(權)씨를 으뜸으로 꼽았다. 그 가문의 번성과 영화가 참으로 성대하였다.
◉始公旣葬。墓道闕顯刻。世道愈遠。兆域湮廢。無有知其處者。成化間。公十八代孫平昌郡守雍。乃極意求尋於墓傍。獲誌石。就加封樹。
○처음 공을 장사지낸 뒤 묘도(墓道)에 무덤의 주인을 드러내는 비석이나 각문이 없었다. 세월이 더욱 흐르자 묘역은 묻히고 훼손되어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성화(成化) 연간에 공의 18대손인 평창군수 권옹(權雍)이 정성을 다하여 묘역 부근을 수소문하고 찾아다닌 끝에 지석(誌石)을 발견하였다. 이에 무덤을 다시 봉분하고 나무를 심어 정비하였다.
◉臨歿遺命。自祔葬其原。爲守護計。卽墓南第三塚是也。而雍之子裕,綽等。承雍之志。立石而標之。慵齋李公宗準識其陰。
○권옹은 임종에 이르러 유언하여 명하기를 자신도 그 언덕에 부장(祔葬)하여 묘를 지키게 하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묘 남쪽 세 번째 무덤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 권옹의 아들 권유(權裕)와 권작(權綽) 등이 선친의 뜻을 이어 비석을 세워 묘역을 표지하였다. 그리고 용재(慵齋) 이종준(李宗準) 공(公)이 그 비석의 음면(陰面)에 글을 지었다.
◉萬曆戊子。公遠孫今觀察使君克智。以㫌節鎭南服。巡到于此。展省松檟。合宗人之在一境者以祭之。
○만력(萬曆) 무자년(1588)에 공의 먼 후손인 당시 관찰사(觀察使) 권극지(權克智)가 관찰사의 부절(符節)을 받들고 남방(南方, 南服)을 진수(鎭守)하다가 순행하여 이곳에 이르렀다. 이에 선영(先塋, 松檟)을 살피고 배알하였으며, 한 지역에 거주하는 종인(宗人)들을 모아 제사를 지냈다.
▸이 대목은 단순한 지방 순시가 아니라, 관찰사가 된 후손 권극지가 시조묘를 찾아 종친들과 향사(享祀)를 올린 사건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핵심은 관찰사 부임 → 시조묘 참배 → 종중 제향의 흐름에 있습니다.
◉旣卒事。役隷誤觸石仆地而壞。觀察使卽與宗人謀買石鐫治。將涓吉改樹。以成龍亦係公外派。屬記其事。
○제사가 끝난 뒤 역졸(役卒)이 잘못하여 비석을 건드리는 바람에 땅에 쓰러져 파손되었다. 관찰사(觀察使)는 즉시 종인(宗人)들과 상의하여 새 돌을 구입해 글자를 새기고 수리하기로 하였으며, 장차 길일을 택하여(涓吉) 다시 세우고자 하였다. 나(柳成龍) 또한 공의 외파(外派)에 속한 까닭에, 이 일의 기록을 맡아 쓰게 되었다.
◉余竊謂公之勳業載史策。嗣息具譜牒。惠澤在邦人。無容更贅。謹略具立石顚末。俾來者有考焉。按譜稱公爲大師。而舊刻無載。疑不敢加云。
○나는 가만히 생각하여 이르건대, 공의 공훈과 업적은 이미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고, 후손들의 계통 또한 족보에 자세히 갖추어져 있으며, 그 은택은 지금도 고을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를 다시 장황하게 덧붙여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에 삼가 비석을 세우게 된 전말(顚末)만을 간략히 적어 후세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살펴보건대 족보에는 공을 태사(太師)라 기록하고 있으나, 옛 비석의 글에는 그러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아 감히 이를 덧붙여 쓰지 않았다.
▸이 글의 핵심 인물은 권행(權幸) → 권옹(權雍) → 권극지(權克智) → 류성룡(柳成龍)으로 이어지며, 내용 역시 시조의 공적 → 묘소의 실전 → 묘소의 복원 → 비석 재건과 묘표 작성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2026. 6. 13.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안동부(安東府): 조선시대 안동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대이다.
*천등산(天燈山):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산. 안동 권씨 시조 권행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감좌이향(坎坐离向): 풍수지리 용어. 북쪽(坎)에 앉아 남쪽(離)을 바라보는 묘역의 방향을 말한다.
*권공(權公):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 고려 초 최고위 공신에게 내려진 훈호. 권행의 공훈을 기리는 칭호이다.
*권행(權幸): 안동 권씨의 시조. 신라 말 고창군을 지키다가 고려 태조 왕건을 맞아들인 공으로 권씨 성을 하사받았다.
*고창군(古昌郡): 현재의 안동 지역. 후삼국 시대에 중요한 전략 거점이었다.
*여조(麗祖):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가리킨다.
*사성(賜姓): 임금이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성씨를 내려 주는 일이다.
*관면부절(冠冕不絶): 대대로 높은 벼슬아치가 끊이지 않았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명종거벌(名宗巨閥): 이름난 명문가이자 큰 문벌이다.
*세도(世道): 세대의 계승, 대대(代代)의 흐름. 여기서 세(世)는 세대(世代)이고 도(道)는 차례나 대수(代數)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성화(成化):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1465~1487)이다.
*권옹(權雍): 권행의 18대손. 실전된 시조 묘를 찾아 복원한 인물이다.
*지석(誌石): 무덤 안에 묻어 두는 돌판 형태의 기록물. 묘의 주인과 내력을 적는다.
*봉수(封樹): 무덤에 흙을 더해 봉분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묘역을 정비하는 일이다.
*부장(祔葬): 선조의 무덤 가까이에 함께 장사 지내는 일이다.
*권유(權裕): 권옹의 아들. 부친의 뜻을 이어 시조 묘를 정비하였다.
*권작(權綽): 권옹의 아들. 형제들과 함께 묘역 보존 사업에 참여하였다.
*용재 이종준(慵齋 李宗準): 용재는 조선전기의 학자 이종준의 호(號). 권씨 시조 묘 비석의 음기(陰記)를 작성했다.
*만력(萬曆): 명나라 신종(神宗)의 연호(1573~1620)이다.
*무자년(戊子年): 만력 16년(1588)을 가리킨다.
*권극지(權克智): 안동 권씨 후손. 당시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며 시조 묘를 참배하였다.
*정절(旌節): 관찰사나 절도사에게 지급된 부절(符節)과 의장(儀仗)을 말한다.
*남복(南服): 조선 남부 지방을 가리키는 옛 표현이다.
*전성(展省):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 살피고 배알하는 것을 뜻한다. 즉 성묘하거나 선영을 살펴봄을 말한다.
*송가(松檟): 묘역에 심은 소나무와 가래나무. 비문에서는 선영(先塋) 자체를 상징한다.
*종인(宗人): 같은 성씨와 본관을 가진 일족(一族)을 말한다.
*역례(役隷): 잡역이나 심부름을 맡은 사람이다.
*전치(鐫治): 비석의 글자를 새기고 수리하는 일이다.
*연길(涓吉): 길일(吉日)을 가려 정함을 말한다.
*개수(改樹): 비석이나 표석을 다시 세움을 말한다.
*류성룡(柳成龍): 조선 중기의 명재상. 권행의 외손 계통 후손으로 이 묘표를 작성하였다.
*외파(外派): 직계 종손이 아닌 외손 계통의 후예를을 말한다.
*사책(史策): 역사서와 역사 기록을 말한다.
*사식(嗣息): 후손, 자손을 말한다.
*보첩(譜牒): 족보와 가계 기록을 말한다.
*방인(邦人): 그 지역의 백성이나 주민을 말한다.
*전말(顚末): 어떤 일이 시작되어 마무리되기까지의 경위를 말한다.
*태사(太師): 고려·조선시대의 최고위 명예 관직. 원로 공신에게 추증되기도 하였다.
*구각(舊刻): 옛 비석이나 옛 비문에 새겨진 기록을 말한다.
*묘표(墓表): 무덤 앞에 세워 묘의 주인과 내력을 기록한 비석 또는 그 글을 말한다.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