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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에 관한 기록들

▣14-2. 의빈부경력우공비명(儀賓府經歷禹公碑銘)◈청렴과 원칙의 관직 생활

작성자류시언|작성시간26.06.16|조회수83 목록 댓글 0

◈청렴과 원칙의 관직 생활

 

서애 선생은 이 부분에서 우언겸 선생의 벼슬살이를 연대순으로 기록하면서, 단순히 관직의 승진 과정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인품과 행정 능력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젊은 시절 우언겸은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학문을 닦았다. 당시 중종 말년의 사림 사회는 인물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지나치게 격렬하여 당파적 갈등이 심했는데, 그는 성균관의 장의(掌議)로 있으면서 온화하고 공정한 태도로 여론을 안정시켜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의금부 도사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법을 어기지 않으려는 강한 원칙 의식을 보여 주었다. 친족이 같은 관청에 재직하고 있을 때 자신에게 유리한 인사이동이 가능했음에도 사사로운 이익을 좇지 않고 스스로 다른 관직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한 일은 그의 청렴성과 공정성을 잘 보여 준다.

 

지방관으로 나아가서는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증산현감으로 재직할 때에는 창고 관리들의 횡령을 근절하고 곡식 출납을 엄정하게 감독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 주었다. 그 결과 고을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으며,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에는 많은 백성들이 수일 동안 수레를 따라가며 이별을 아쉬워할 정도였다.

 

서애 선생은 이러한 일화를 통해 우언겸 선생이 단순히 행정 능력이 뛰어난 관리가 아니라, 청렴과 공정함으로 백성의 신뢰를 얻은 목민관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14-2. 의빈부경력우공비명(儀賓府經歷禹公碑銘)

[원문2]公諱彦謙。字益之。事擧子業。中丁酉生員。中廟末年。士論頗激。臧否太刻。公爲掌議。以恬和鎭之。衆心安焉。庚戌。太學生以公名合薦于朝。授義禁府都事。移授歸厚署別提。七月。復爲都事。以問事敏給見推。辛亥。坐事免官。癸丑。復拜都事。有親族爲本府經歷者。公在法應避。銓曹惜公之稱職也。欲移經歷他司。公謂金吾於宦途爲捷。義不可。銓官嘉其意。遂移典艦司別提。丙辰親族去。又拜都事。陞經歷。轉敦寧府主簿,掌隷院司評兼推刷都監郞廳。不苛而事理。庚申拜繕工監判官。監造嘉禮都監儀物。冬。爲洪州判官。未赴。辛酉。通判安東府。有惠政。秩滿。入爲尙瑞院判官。丁卯冬。出守甑山縣。西民無蓄資。仰給官倉。典守者偸耗倉實。民糶食其半。而糴取盈焉。困甚。公廉知其弊。始大治府庫。高垣牆。固扃鐍。謹監視。自是姦偸屛跡。升斗無欠。一境盡歡。以爲萬世賜。其還也。攀車相隨者。或至數日而不忍去。癸酉。拜儀賓府都事。尋改宗廟署令。陞儀賓府經歷。移濟用監僉正。又爲經歷。是年十一月丁丑。以疾卒。享年六十五。明年甲戌二月庚午。葬于廣州中道大王里申坐寅向之原。從先塋也。

◉公諱彦謙。字益之。事擧子業。中丁酉生員。中廟末年。士論頗激。臧否太刻。公爲掌議。以恬和鎭之。衆心安焉。

○공의 휘는 언겸(彦謙)이며, 자는 익지(益之)이다. 과거 공부를[擧子] 업(業)으로 삼아 정유(丁酉, 1537)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중종(中宗) 말년, 사론(士論)이 자못 격렬하여 인물평론[臧否]이 너무도 가혹하였으나, 공(公)이 장의(掌議)가 되어 조용하고 온화함[恬和]으로써 이를 진정시키니 여러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庚戌。太學生以公名合薦于朝。授義禁府都事。七月。復爲都事。以問事敏給見推。辛亥。坐事免官。癸丑。復拜都事。

○경술(庚戌, 1550)년에 태학생(太學生)들이 공의 이름으로 조정에 합천(合薦)하니,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제수 받았다. 7월에 다시 도사(都事)가 되었는데, 국문(鞠問)하는 일이 민첩하고 시원스러워 추천(推薦)을 받았다. 신해(辛亥, 1551)년에 일에 연좌(緣坐)되어 면직되었고, 계축(癸丑)년에 다시 도사(都事)에 임명되었다.

[해설]시대 배경 설명
1. 중종 말년의 격렬한 사론(士論)과 공(公)의 덕망
공이 성균관 장의(掌議)로 활동하던 중종 말년은 사림 세력이 성장하는 가운데 정치적 긴장이 매우 높아지던 시기였다. 특히 1537년(정유년), 권신(權臣) 김안로(金安老)가 몰락한 뒤 사림 사회에서는 과거 정국에서의 인물 평가와 시비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선비들의 공론(公論)은 때로 지나치게 날카로워져, 인물의 잘잘못을 가리는 논의인 장부(臧否)가 지나치게 엄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외척 세력 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조정뿐 아니라 성균관 내부에서도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은 장의로서 한쪽의 격렬한 주장에 치우치기보다, 염화(恬和, 편안하고 온화한 태도)로써 유생들을 조율하였다. 서애가 “무리의 마음이 편안해졌다[衆心安焉]”라고 기록한 것은, 혼란한 시기에 공이 지닌 침착함과 균형 잡힌 덕망을 드러낸 것이다.
2. 계축년(1553)의 복직과 공의 신망
공은 신해년(1551)에 어떤 일에 연좌되어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에서 면직되었으나, 계축년(1553)에 다시 같은 관직에 임명되었다.
조선시대 관직 임명은 엄격한 심사를 거쳤으므로, 다시 의금부의 관직에 등용되었다는 사실은 공의 인품과 능력이 계속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서애가 “문사(問事)에 민첩하고 분명하여[問事敏給] 추천받았다”고 기록한 것은, 공이 사건을 처리하는 판단력과 행정 능력으로 조정의 신임을 얻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대목은 단순히 관직 이력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도 공이 온화한 품성과 뛰어난 실무 능력으로 신뢰받았던 인물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有親族爲本府經歷者。公在法應避。銓曹惜公之稱職也。欲移經歷他司。公謂金吾於宦途爲捷。義不可。銓官嘉其意。遂移典艦司別提。

○ 친족 중에 본부(本府)의 경력(經歷)이 된 자가 있었으니, 공이 법에따라 마땅히 상피(相避)해야 했다. 전조(銓曹)에서 공이 직임에 적합한 인물임을 아깝게 여겨, 경력(經歷)을 다른 관서로 옮기고자 하였다. 공이 이르기를, “금오(金吾, 義禁府)는 환도(宦途, 벼슬길)에서 벼슬이 오르는 지름길 자리이니, 의리상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전관(銓官)이 그 뜻을 가상히 여겨 마침내 전함사 별제(典艦司別提)로 옮겨 임명하였다.

 

◉丙辰親族去。又拜都事。陞經歷。轉敦寧府主簿,掌隷院司評兼推刷都監郞廳。不苛而事理。庚申拜繕工監判官。監造嘉禮都監儀物。冬。爲洪州判官。未赴。

○ 병진(丙辰, 1556)년에 친족이 관직을 떠나자, 다시 도사(都事)에 제수되었다가 경력(經歷)으로 승진하였다. 돈녕부 주부(敦寧府主簿)로 전직하였고, 장예원 사평(掌隷院司評)을 맡으면서 추쇄도감 낭청(推刷都監郞廳)을 겸임하였다. 가혹하지 않으면서도 사리(事理)에 맞게 다스렸다. 경신(庚申, 1560)년에 선공감 판관(繕工監判官)에 제수되어 가례도감(嘉禮都監)의 의물(儀物) 조성을 감독하였다. 겨울에 홍주판관(洪州判官)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했다.

 

◉辛酉。通判安東府。有惠政。秩滿。入爲尙瑞院判官。丁卯冬。出守甑山縣。西民無蓄資。仰給官倉。典守者偸耗倉實。民糶食其半。而糴取盈焉。困甚。

○ 신유(辛酉, 1561)년에 안동부 통판(安東府通判)이 되어 혜정(惠政)을 베풀었다. 만기가 되자 조정으로 들어와 상서원 판관(尙瑞院判官)이 되었고, 정묘(丁卯, 1567)년 겨울에 증산 현감(甑山縣監)으로 나갔다. 서쪽 지방의 백성(西民)들은 저축한 자산이 없어 관청 창고 곡식에 우러러 의지했는데, 창고를 맡은 자(典守)가 창고의 곡식(倉實)을 훔치고 축냈다(偸耗). 백성들이 관곡 쌀을 빌릴(糶) 때는 그 절반만 먹게 되면서도, 쌀을 갚을(糴) 때는 가득 채워 바쳐야 했으니 곤궁함이 심하였다.

 

◉公廉知其弊。始大治府庫。高垣牆。固扃鐍。謹監視。自是姦偸屛跡。升斗無欠。一境盡歡。以爲萬世賜。其還也。攀車相隨者。或至數日而不忍去。

○ 공이 그 폐단을 염지(廉知, 살피어 앎)하고는, 비로소 부고(府庫, 관청 창고)를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담장을 높였으며 자물쇠(扃鐍)를 단단히 하고 감독하여 보기를 근실(謹悉)하게 했다. 이로부터 간사한 도둑들이 자취를 감추어 한 되와 한 말(升斗)의 흠결(欠缺)도 없으니, 온 지경(一境)이 다 함께 기뻐하며 만대에 전할 은혜로 여겼다. 공이 돌아갈 때, 수레를 붙잡고 서로 따르는 백성들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여러 날에 이르도록 따라오며 차마 헤어지지 못하였다.

 

◉癸酉。拜儀賓府都事。尋改宗廟署令。陞儀賓府經歷。移濟用監僉正。又爲經歷。

○ 계유(癸酉)년에 의빈부 도사(儀賓府都事)에 제수되었다가, 얼마 후 종묘서 령(宗廟署令)으로 고쳐 임명되었고, 의빈부 경력(儀賓府經歷)으로 승진하였다. 제용감 첨정(濟用監僉正)으로 옮겼다가, 또다시 경력(經歷)이 되었다.

 

◉是年十一月丁丑。以疾卒。享年六十五。明年甲戌二月庚午。葬于廣州中道大王里申坐寅向之原。從先塋也。

○ 이 해 11월 정축(丁丑)일에 질병으로 별세하니, 향년은 65세였다. 이듬해 갑술(甲戌, 1574)년 2월 경오(庚午)일에 광주(廣州) 중도(中道) 대왕리(大王里) 신좌인향(申坐寅向)의 언덕에 장사지내니, 선영(先塋)을 따른 것이다.

 

[해설] 우언겸(禹彦謙, 1509~1573) 선생의 생애 흐름
*1509년 출생 → 1537년 생원합격 → 1550년 중앙관직진출 → 1561년 안동부 통판 → 1567년 증산현 선정 → 1573년 별세(65세) → 1574년 장례
己巳(기사) 1509 우언겸 출생
丁酉(정유) 1537 생원시 합격
庚戌(경술) 1550 태학생들의 추천으로 의금부 도사 임명
辛亥(신해) 1551 연좌되어 면관
癸丑(계축) 1553 다시 의금부 도사 임명
丙辰(병진) 1556 친족이 떠난 뒤 재임용·경력 승진
庚申(경신) 1560 선공감 판관 임명
辛酉(신유) 1561 안동부 통판 재임
丁卯(정묘) 1567 증산현 수령 부임
癸酉(계유) 1573 의빈부 도사·경력 역임
甲戌(갑술) 1574 장례 거행

 

2026. 6. 16.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우언겸(禹彦謙): 의빈부 경력을 지낸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익지(益之)이다.

*사거자업(事擧子業): 과거 공부를 업으로 삼다. '거자(擧子)'는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을 뜻한다.

*생원(生員):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 성균관 입학 자격을 얻었다.

*중묘(中廟): 조선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을 가리킨다.

*사론(士論): 사림(士林) 학자들의 여론이나 정치적 논의를 말한다.

*장부(臧否): 인물의 잘잘못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착함과 악함', '좋음과 나쁨'을 깎아내리고 칭찬하는 인물평론을 뜻한다.

*장의(掌議): 성균관 유생들의 대표 역할을 맡은 직책이다.

*태학생(太學生):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유생을 말한다.

*의금부(義禁府): 중죄인을 심문하고 국가의 중요 재판을 담당한 관청이다.

*도사(都事): 각 관청의 실무를 맡은 정7품 관직이다.

*귀후서(歸厚署): 장례와 관련된 물품 및 의례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별제(別提): 종6품 또는 종5품의 실무 관직이다.

*문사(問事): 죄인을 심문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업무를 말한다.

*경력(經歷): 관청의 행정 실무를 총괄하던 종4품 관직이다.

*전조(銓曹): 관리의 임명과 인사를 담당한 이조(吏曹)를 가리킨다.

*칭직(稱職): 맡은 직무를 잘 수행하여 직책에 적합함을 말한다.

*금오(金吾): 의금부의 별칭이다.

*전관(銓官): 이조에서 인사를 담당하던 관원을 말한다.

*전함사(典艦司): 선박과 수군 관련 업무를 맡은 관청이다.

*돈녕부(敦寧府): 왕실 외척과 종친의 사무를 담당한 관청이다.

*주부(主簿): 관청의 문서와 회계를 담당한 종6품 관직이다.

*장예원(掌隷院): 노비 관련 소송과 신분 문제를 관장한 관청이다.

*사평(司評): 장예원의 정6품 관직이다.

*추쇄도감(推刷都監): 도망 노비를 조사·색출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청이다.

*낭청(郞廳): 임시 관청의 실무 책임자를 말한다.

*선공감(繕工監): 궁궐과 관청의 건축·수리를 담당한 관청이다.

*판관(判官): 지방 관아나 중앙 관청의 실무를 맡은 종5품 관직이다.

*가례도감(嘉禮都監): 왕실의 혼례 등 국가적 길례(吉禮)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청이다.

*의물(儀物): 국가 의례에 사용하는 각종 기물과 장식물을 말한다.

*홍주(洪州): 현재의 충청남도 홍성 지역이다.

*통판(通判): 부(府)의 행정을 보좌하는 종5품 지방관이다.

*미부(未赴): 임명을 받았으나 '부임하지 않았다(혹은 못했다). 조선 시대 문집에서 '미부'는 개인의 변고, 가문의 상(喪), 혹은 곧바로 다른 요직으로 개차(改差)되는 등 여러 사정으로 부임하지 못했을 때 쓰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안동부(安東府):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행정구역이다.

*혜정(惠政): 백성을 이롭게 하는 선정을 말한다.

*질만(秩滿): 관직의 임기가 모두 끝남을 말한다.

*상서원(尙瑞院): 임금의 인장과 부신(符信)을 관리하던 관청이다.

*증산현(甑山縣): 평안도에 있던 현으로 오늘날 북한 평안남도 증산군 일대이다.

*관창(官倉): 국가가 운영하던 곡식 창고이다.

*전수자(典守者): 창고나 재물을 관리하던 담당자를 말한다.

*조(糶): 관청이 백성에게 곡식을 내어 주는 것을 말한다.

*적(糴): 백성이 관청에 곡식을 갚거나 바치는 것을 말한다.

*부고(府庫): 관청의 창고와 재정을 말한다.

*경혈(扃鐍): 창고의 빗장과 자물쇠를 말한다.

*승두(升斗): 곡식의 분량을 재는 되와 말을 말한다.

*만세사(萬世賜): 대대로 잊지 못할 은혜를 뜻한다.

*의빈부(儀賓府): 왕실의 부마(駙馬)와 관련된 사무를 담당한 관청이다.

*심개(尋改): 얼마 후 고쳐 임명되었다는 뜻이다. 당시 인사 행정에서 보직을 잠시 바꿀 때 쓰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종묘서(宗廟署): 종묘의 제사와 관리를 담당한 관청이다.

*령(令): 관청의 책임자인 종5품 또는 정5품 관직이다.

*제용감(濟用監): 왕실 의복과 직물·염색 업무를 담당한 관청이다.

*첨정(僉正): 정4품 관직이다.

*정축일(丁丑日): 육십갑자의 하나인 정축에 해당하는 날이다.

*향년(享年): 사람이 죽은 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광주(廣州):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를 말한다.

*신좌인향(申坐寅向): 묘가 서남쪽을 등지고 동북쪽을 향한 방위를 말한다.

*선영(先塋):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묘역을 말한다.

 

[종(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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