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겸의 효성과 인간적인 면모
서애(西애) 류성룡(柳成龍)은 「의빈부경력우공비명(儀賓府經歷禹公碑銘)」을 찬하면서, 우언겸의 화려한 관직 경력보다 그의 천성적인 효성과 인간적인 품성을 가장 먼저 높이 평가하였다.
공은 나면서부터 순박하고 신중한 성품[純謹]이 남달랐다. 그리하여 평소 자신이 아무리 아끼고 즐기던 물건[玩好]일지라도 부모가 기뻐하지 않으면 곧바로 내버려 두고 다시는 가까이하지 않는 지극함을 보였다. 또한 여덟아홉 살의 어린 시절부터 마을에서 향약의 예절[鄕約禮]을 보고 진심으로 즐거워하였으며, 장성한 뒤에는 명망 높은 어른들[聞人長者]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에 힘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집안에 거할 때는 부모를 효성껏 섬기고 형제들과는 깊이 우애하였으며, 친족과 일가[族黨]에게도 늘 후한 정을 베풀었다. 특히 어머니께서 중풍[風疾]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셨을 때에는,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晨夜] 추위와 더위의 추이[寒暖之節]를 살피고 약과 음식[藥餌]을 손수 조제하였다. 공은 이 고단한 봉양을 단 한 번도 남에게 미루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은 정성으로 지속하였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신 뒤에는 상례[服喪]에서 슬픔을 다하고 제사[奉祭]에서 공경을 다하였다. 만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벼슬길에 올랐던 공은, 나라의 녹봉으로 부모를 살아생전 봉양하지 못한 것[祿不及養]을 평생의 가장 큰 아픔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옛사람의 "비록 효도하고자 하나 누구에게 효도하랴"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매번 목이 메어 피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서애 선생은 이 비명을 통해 우언겸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효행을 실천한 인물을 넘어, 부모에 대한 사랑과 공경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 평생을 실천했던 진정한 효자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14-3. 의빈부경력우공비명(儀賓府經歷禹公碑銘)
| [원문3]公生而有美質。純謹異常。凡所玩好。雖愛之甚。父母有不悅。輒棄去不復爲。八九歲。遊里閭。見有行鄕約禮者樂之。稍長。事聞人長者。爲學不倦。居家事親孝。與兄弟友。待族黨厚。母夫人患風疾。長在牀褥。公晨夜在。視寒暖之節。調其藥餌。未嘗委之人。積數十年不懈。服喪哀。奉祭謹。晩年得官。尤以祿不及養爲痛。每誦古人雖欲孝誰爲孝之語。輒嗚咽流涕。 |
◉公生而有美質。純謹異常。凡所玩好。雖愛之甚。父母有不悅。輒棄去不復爲。八九歲。遊里閭。見有行鄕約禮者樂之。
○공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자질을 지녔으니, 순박하고 조심스러움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다. 무릇 평소 좋아하여 즐기는 바가 비록 아무리 아끼는 것일지라도, 부모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면 곧바로 내버려 두고 다시는 하지 않았다. 여덟아홉 살 무렵에 마을에서 노닐다가 향약(鄕約)의 예법을 행하는 이들을 보고는 이를 마음으로 즐거워하였다.
◉稍長。事聞人長者。爲學不倦。居家事親孝。與兄弟友。待族黨厚。母夫人患風疾。長在牀褥。公晨夜在。視寒暖之節。調其藥餌。未嘗委之人。積數十年不懈。
○조금 자라서는 명망 높은 어른들을 섬기며 학문에 힘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집안에 거처할 때는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들과 우애하였으며, 일가친척을 후하게 대접하였다. 모부인(母夫人, 어머니)께서 중풍을 앓아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시자, 공은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춥고 따뜻한 절기를 살피고 약과 음식을 손수 조제하였다. 단 한 번도 이 일을 남에게 맡긴 적이 없었으며, 수십 년 동안 쌓이도록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服喪哀。奉祭謹。晩年得官。尤以祿不及養爲痛。每誦古人雖欲孝誰爲孝之語。輒嗚咽流涕。
○거상(居喪) 중에는 슬픔을 다했고 제사(祭祀)를 받듦에는 정성을 다했다. 만년(晩年)에야 비로소 벼슬을 얻었기에, 그 녹봉이 어버이 봉양에 미치지 못한 것을 더욱 뼈아프게 여겼다. 옛사람의 "비록 효도하고자 한들 이제 누구에게 효도하리오" 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마다, 매번 목이 메어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2026. 6. 17.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미질(美質): 타고난 훌륭한 자질과 아름다운 품성을 말한다.
*순근(純謹): 순박하고 삼가며 행동이 바른 성품을 말한다.
*완호(玩好): 즐기거나 아끼며 가까이하는 물건 또는 취미를 말한다.
*이려(里閭): 백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동네를 뜻한다.
*향약(鄕約): 조선 시대 향촌 사회의 자치 규약으로, 덕업상권(德業相勸)과 과실상규(過失相規) 등 유교적 예법과 실천을 바탕으로 한다.
*향약례(鄕約禮): 향약에서 정한 예절과 공동체 규범을 말한다.
*문인장자(聞人長者): 사회적으로 널리 명성이 자자하고 덕망이 높은 어른이나 선배 학자를 뜻한다.
*우(友): 형제간에 우애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덕목을 말한다.
*족당(族黨): 일가친척과 같은 성씨의 친족 무리를 말한다.
*후(厚): 후하게 대하고 정을 두텁게 베푸는 것을 뜻한다.
*모부인(母夫人):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비명(碑銘) 등에서 피장자의 어머니를 예우할 때 주로 쓴다.
*풍질(風疾): 중풍(中風, 腦卒中)이나 반신불수와 같은 마비성 질환을 말한다.
*상욕(牀褥): 침상과 요를 말하며 병상(病床)을 뜻한다.
*신야(晨夜): 아침부터 밤까지, 또는 밤낮으로를 뜻한다.
*한난지절(寒暖之節): 추위와 더위의 정도, 즉 생활 환경과 건강 상태를 세심히 살피는 일을 말한다.
*약이(藥餌):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과 병중에 먹는 보양 음식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불해(不懈):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힘쓰는 것을 뜻한다.
*복상(服喪):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상복을 입고 슬퍼하며 상례를 치르는 기간이나 행위를 말한다.
*봉제(奉祭): 조상에게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것을 말한다.
*녹(祿): 관리에게 지급되는 녹봉(봉급)을 말한다.
*녹불급양(祿不及養): 자식이 출세하여 나라의 녹봉(월급)을 받게 되었으나, 이미 부모가 세상을 떠나 그 녹봉으로 봉양할 수 없음을 한탄하는 사대부들의 대표적인 회한 표현하고 있다.
*수욕효수위효(雖欲孝誰爲孝): “비록 효도하고자 하나 이제 누구에게 효도하랴”라는 뜻의 고인(古人)의 말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고사로, 부모가 돌아가셔서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자식의 슬픔인 '풍수지탄(風樹之歎)'을 상징하는 명구이다.
*오열(嗚咽): 목이 메어 흐느끼는 것을 말한다.
*유체(流涕):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말한다.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