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에 우뚝 선 위기지학(爲己之學)
《남처사묘표》의 전반부는 서른여덟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처사 남의중의 청고한 삶을 통해, 성리학의 수기(修己) 학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준엄한 도덕적 기상을 보여준다.
남처사는 과거의 영달[曁晩]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내면을 바르게 하는 ‘위기지학’과 ‘독서궁리’에 매진하였다. 바람과 비도 가리지 못하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처자가 굶주릴지라도 단연코 마음을 흔들지 않고, “마땅히 죽음으로써 스스로를 지킬 뿐[以死自守]”이라 선포하는 대목은 세속의 이욕(利欲)에 함몰된 인간 군상에게 서슬 퍼런 경종을 울린다.
특히 어머니와 형의 잇따른 상사(喪事) 속에서 몸이 극도로 파리해지면서도 가례(家禮)의 법도를 고수하고, 임종의 위기 앞에서도 편법[循權] 대신 의리[處正]를 택하는 결연함은 가히 눈부시다.
서애 선생의 처절하고도 담백한 필치를 통해 부활한 남처사의 삶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내면의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참된 주체성을 세우는 길[有所立]’이 어디에 있는지를 엄숙하게 되묻고 있다.
▣15-1. 남처사묘표(南處士墓表)
| [원문1]萬曆庚辰三月戊申。南君義仲卒。越閏四月庚申。朋友斂襚與賻。葬君于大峴之聽谷。其明年。又相與言曰。斯人也。旣不幸至此。又無以顯諸幽。無乃夷于纍纍者。以沈泯于後。於是。趙君宗道爲之購工治石。樹三尺之標于墓南。間以權生宇之狀屬余曰。願爲銘。余平日從君遊久。未嘗不敬服君志行之美。今君之亡也。悼惜之情。實有不得無言者。謹受而敍之曰。君諱致利。義仲其字也。其先寧海人。後徙安東。高祖諱貞貴。錄事昌德宮。曾祖諱敬彝。通贊通禮門。祖諱軾。訓導。考諱藎臣。妣草溪下氏。進士百源之女。君生八歲而孤。能辦志勵業。不待敎督。隣黨稱之。退溪李先生以道義訓後進。君甫踰冠。慨然登門。得先生獎許。先生歿而君愈感奮不懈。早以親故。事擧子業。再與鄕選。輒不利于省試。恬如也。曁晩。益專心爲己之學。其於正容謹節讀書竆理之功。日有所事。其進甚銳。同類皆自以不及。丁丑。遭卞夫人憂。情文俱備。雖甚瘠。猶執禮不變。足不出山門者三年。喪未闋而伯兄逝。君固已毁。至是又居兄喪次。葬而歸。病遂劇不能起。享年纔三十八。初君困於貧窶。薪水之供。或資隣比。居無以庇風雨。妻子苦寒餓。聞者皆動色。而君斷不以爲意。惟閉門讀誦而已。或愍慰之。輒曰。人惟畏死。故百事不得做。吾輩固應以死自守耳。君之病也。有女子笄而圖歸者。以兄喪未期止。所親以君病已危。勸且循權。君毅然不許。其制事處正如此。君配宜寧南氏。二男驥慶,虎慶。四女皆在室。 |
◉萬曆庚辰三月戊申。南君義仲卒。越閏四月庚申。朋友斂襚與賻。葬君于大峴之聽谷。
만력(萬曆) 경진년(庚辰, 1580) 3월 무신일(戊申日)에 남군(南君) 의중(義仲)이 세상을 떠났다. 윤 4월이 되어 경신일(庚申日)에 벗들이 염습할 옷[襚]과 부의[賻]를 마련하여 공을 대현(大峴) 청곡(聽谷)에 장사지냈다.
◉其明年。又相與言曰。斯人也。旣不幸至此。又無以顯諸幽。無乃夷于纍纍者。以沈泯于後。於是。趙君宗道爲之購工治石。樹三尺之標于墓南。間以權生宇之狀屬余曰。願爲銘。
그 이듬해에 벗들이 또 서로 의논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이미 불행하게도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숨은[幽] 덕을 드러낼 방법마저 없다면 수많은 무덤들[纍纍者]과 다를 바가 없이 되어[無乃夷] 후세에 묻혀 사라지고 말지 않겠는가.”이에 조군(趙君) 종도(宗道)가 그를 위하여 석공을 사서 비석을 다듬고 무덤 남쪽에 높이 세 자 되는 표석(標石)을 세웠다. 그 뒤에 권생(權生) 우(宇)가 지은 행장을 가지고 와 나에게 부탁하며 말하기를, “명문(銘文)을 지어 주시기 바랍니다.”하였다.
◉余平日從君遊久。未嘗不敬服君志行之美。今君之亡也。悼惜之情。實有不得無言者。謹受而敍之曰。
나는 평소 그와 오랫동안 교유하면서 그의 뜻과 행실의 아름다움에 경복(敬服)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나니 슬퍼하고 애석해하는 마음이 실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바가 있다. 이에 삼가 부탁을 받아 그의 행적을 서술한다.
◉君諱致利。義仲其字也。其先寧海人。後徙安東。高祖諱貞貴。錄事昌德宮。曾祖諱敬彝。通贊通禮門。祖諱軾。訓導。考諱藎臣。妣草溪下氏。進士百源之女。
공의 이름[諱]은 치리(致利)이고 의중(義仲)은 그의 자(字)이다. 선조(先祖)는 본래 영해(寧海) 사람이었으나 뒤에 안동(安東)으로 옮겨 살았다. 고조의 이름은 정귀(貞貴)로 창덕궁(昌德宮) 녹사(錄事)를 지냈고, 증조의 이름은 경이(敬彝)로 통례문(通禮門) 통찬(通贊)을 지냈다. 조부의 이름은 식(軾)으로 훈도(訓導)를 지냈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신신(藎臣)이다. 어머니는 초계 하씨(草溪下氏)로 진사(進士) 백원(百源)의 딸이다.
◉君生八歲而孤。能辦志勵業. 不待敎督。隣黨稱之。退溪李先生以道義訓後進。君甫踰冠。慨然登門。得先生獎許。
공은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나[孤] 스스로 뜻을 세워[辦志] 학업에 힘썼으며[勵業], 남의 가르침과 독려를 기다리지 않았다. 이에 이웃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였다. 당시 퇴계(退溪) 이선생께서 도의(道義)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공은 갓 스무 살을 넘기자마자[踰冠] 분발하여 그 문하에 나아가 마침내 선생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
◉先生歿而君愈感奮不懈。早以親故。事擧子業。再與鄕選。輒不利于省試。恬如也。曁晩。益專心爲己之學。其於正容謹節讀書竆理之功。日有所事。其進甚銳。同類皆自以不及。
선생께서 돌아가신 뒤에도 공은 더욱 감분(感奮)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찍이 집안의 사정으로 과거 공부[擧子業]에 종사하여 두 차례 향시(鄕試)에 선발되었으나, 번번이 회시(會試, 省試)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恬如]. 만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여,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예절을 삼가며 독서하고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正容謹節讀書竆理之功]에 날마다 힘쓰는 바가 있었다. 그 학문의 진보가 매우 빨라서 동류(同類)들은 모두 스스로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丁丑。遭卞夫人憂。情文俱備。雖甚瘠。猶執禮不變。足不出山門者三年。喪未闋而伯兄逝。君固已毁. 至是又居兄喪次。葬而歸。病遂劇不能起。享年纔三十八。
정축년(丁丑, 1577년)에 변부인(卞夫人,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는데, 슬픔과 예법을 모두 갖추었다[情文俱備]. 비록 몸이 몹시 수척해졌으나[瘠] 끝내 예를 지키는 데 변함이 없었으며, 삼 년 동안 한 번도 산문(山門)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상기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未闋] 맏형이 세상을 떠났다. 공은 본래 (상례로 인해) 이미 몸이 크게 쇠약해져 있었는데[毁], 이에 이르러 다시 형의 상을 치르게 되었다. 형을 장사지내고 돌아온 뒤 병세가 마침내 위중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으니, 향년은 겨우 서른여덟이었다.
◉初君困於貧窶。薪水之供。或資隣比。居無以庇風雨。妻子苦寒餓。聞者皆動色。而君斷不以爲意。惟閉門讀誦而已。或愍慰之。輒曰。人惟畏死。故百事不得做。吾輩固應以死自守耳。
처음에 공은 몹시 가난하여[貧窶] 땔감과 물을 마련하는 일조차 때로는 이웃의 도움에 의지하였다. 집은 비바람을 가릴 만하지 못하였고, 아내와 자식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으므로 이를 듣는 사람마다 안타까워하였다[動色]. 그러나 공은 이를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문을 닫고 독서하며 글을 읊조릴 뿐이었다. 혹 그를 가엾게 여겨 위로하는 사람이 있으면 번번이 말하였다. “사람은 오직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온갖 일을 이루지[做] 못하는 것이다. 우리 부류들은 진실로 마땅히 죽음을 각오하고 스스로의 지조를 지켜야 할 뿐이다[以死自守].”
◉君之病也。有女子笄而圖歸者。以兄喪未期止。所親以君病已危。勸且循權。君毅然不許。其制事處正如此。君配宜寧南氏。二男驥慶,虎慶。四女皆在室。
공이 병들었을 때, 계례(笄禮)를 치르고 출가를 앞둔 딸이 있었으나 형의 상이 아직 소상(小祥)을 지나지 않았으므로 혼인을 미루었다[止]. 가까운 친척들은 공의 병세가 이미 위독하다는 이유로 우선에 권도(權道)를 따라 순리대로 처리할 것을 권하였으나, 공은 단호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일을 처리하고 의리에 따라 처신함이 늘 이와 같았다. 공의 배위(配位)는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아들은 기경(驥慶)과 호경(虎慶) 둘이며, 딸 넷 모두가 아직 출가하지 않았다[在室].
2026. 6. 23.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현저유(顯諸幽): 죽은 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덕행과 공적을 드러내어 후세에 전함을 말한다. 묘표·묘갈명·행장 등에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누루자(纍纍者): 무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양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이름 없이 묻힌 수많은 무덤들’을 비유한다.
*침민(沈泯): 묻혀 사라져 자취를 알 수 없게 됨을 뜻한다.
*표(標): 무덤 앞에 세우는 작은 표석 또는 묘표를 말한다.
*명(銘): 비석이나 기물에 새기는 글. 여기서는 남치리의 덕행을 기리기 위한 명문(銘文)을 가리킨다.
*종유(從遊): 스승이나 벗을 따라 학문을 논하고 교유함을 말한다. 단순히 함께 어울려 지낸다는 뜻보다 학문적·인격적 교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경복(敬服): 공경하고 감복함을 뜻한다. 인품이나 덕행에 깊이 탄복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지행(志行): 뜻[志]과 행실[行]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한 사람의 내면적 지향과 실제 실천을 함께 평가할 때 사용한다.
*도석(悼惜): 죽음을 슬퍼함[悼]과 잃은 것을 애석하게 여김[惜]을 뜻한다. 묘표·제문·행장에서 자주 보이는 추모 표현이다.
*부득무언자(不得無言者):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바가 있다"는 뜻으로, 고인의 덕행이 뛰어나 기록으로 남겨야 함을 강조하는 겸양적 표현이다.
*휘(諱): 돌아가신 사람의 이름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행장·묘표·묘갈명 등에서는 보통 "공의 휘는 ○○이다[公諱○○]"의 형식으로 기록한다.
*자(字): 성인이 된 뒤에 본이름 외에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서로를 자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녹사(錄事): 조선시대 궁궐이나 관청의 문서·회계·행정 실무를 담당하던 관직이다.
*통찬(通贊): 통례원(通禮院)에 소속된 정7품 관직으로, 국가 의례와 조회의 진행을 보좌하였다.
*훈도(訓導): 향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종9품 교관직이다.
*고(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사람을 말한다. 유교 문헌에서는 대체로 부친상을 당한 경우를 가리킨다.
*판지(辦志): 스스로 뜻을 세우고 학문의 방향을 정함을 뜻한다.
*려업(勵業): 학업에 힘쓰고 부지런히 수업함을 말한다.
*인당(隣黨): 이웃 마을과 향리 사람들을 가리킨다.
*군보(君甫): '君'은 그대, 너를 말한다. 그리고 '甫'는 갓 성년이 된 사람, 즉 관례를 치른 청년이나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남자를 뜻한다.
*유관(踰冠): 관례(冠禮)를 지난 나이, 곧 스무 살을 넘긴 것을 뜻한다.
*등문(登門):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음을 말한다.
*장허(獎許): 칭찬하고 인정함을 뜻한다.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제자에게 스승이 내리는 높은 평가를 가리킨다.
*우(憂): 부모의 상(喪)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유교 문헌에서는 "遭憂"라 하여 부모상을 당한 것을 표현한다.
*정문구비(情文俱備): 진실한 슬픔과 정성[情], 그리고 예법과 절차[文]를 모두 갖추었음을 뜻한다. 상례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척(瘠): 몸이 여위고 수척해짐을 말한다. 상중의 과도한 슬픔과 애통함으로 쇠약해진 상태를 가리킨다.
*집례(執禮): 예법을 굳게 지키고 실천함을 뜻한다.
*훼(毁): 지나친 슬픔으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를 말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상차(喪次): 상중에 상주가 거처하는 여막(廬幕) 또는 상중 생활을 이르는 말이다.
*향년(享年): 고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빈루(貧窶): 매우 가난하고 궁핍함을 뜻한다.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궁핍한 상태를 가리킨다.
*인비(隣比): 이웃 사람이나 인근 마을 사람들을 말한다.
*동색(動色): 얼굴빛이 변할 정도로 놀라거나 안타까워함을 뜻한다.
*민위(愍慰): 가엾게 여기고 위로함을 말한다.
*이사자수(以死自守):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도리와 절개를 지킴을 뜻한다. 유학자들이 지조와 의리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계(笄): 여자가 열다섯 살이 되어 성인식을 행할 때 머리에 꽂는 비녀를 말한다. 전하여 성년이 된 여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귀(歸):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뜻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남자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사용하였다.
*기(期): 일주기(一周年)의 상기(喪期)를 말한다. 보통 소상(小祥)을 가리킨다.
*순권(循權): 예외적인 상황에 따라 권도(權道)를 따름을 뜻한다. 원칙보다 현실적 편의를 취하는 경우를 말한다.
*의연(毅然): 뜻이 굳세고 단호한 모양을 말한다.
*재실(在室): 아직 출가하지 않고 친정에 머물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