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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

‘柳’字를 쓰는 마음

작성자류현우|작성시간26.06.05|조회수40 목록 댓글 2

‘柳’字를 쓰는 마음

류 현 우

 

  내 성(姓)은 ‘류’가(哥)다. 본관은 풍산(豐山)으로 쓴다. 시조 이래 25世를 이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물줄기가 바뀐 적이 없는 도도한 강물 같은 혈맥이다. 한자로는 ‘柳’字를 쓰고, 한글로는 ‘류’라고 적는다.

​  생각해보면 한때 이 간단한 이름 석 자를 두고 세상과 소리 없는 실랑이를 벌여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 행정망의 편의라는 명목 아래, 내 성의 첫 글자에서 두음법칙을 강요받아 ‘유’로 살아야 했다. 관공서에서 서류를 뗄 때마다 선고께서는 “조상이 물려준 성을 나라가 마음대로 고치느냐”며 혀를 차셨고, 우리는 내 옷이 아닌 남의 옷을 걸친 듯 늘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법원을 드나들고 정정 신청을 하는 번거로움을 거쳐 비로소 성씨의 두음(頭音)에 내리치던 거센 버드나무 가지처럼 힘 있는 ‘ㄹ’을 되찾았을 때,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이 뭐라든, 우리는 ‘유’가가 아니라 ‘류’가다. 그 흐려지지 않는 첫 발음 속에 우리 가문의 뼈대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거나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격언들이 서점의 매대 좋은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실제로 인간의 의지는 위대해서, 맨주먹으로 태어나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시골의 가난한 인재가 천운과 노력을 보태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우주선을 달로 보내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워 이기며, 인간은 스스로 운명의 개척자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력만 하면 하늘의 별도 따올 것 같은 기세로 세상은 매일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호걸이라 할지라도 결코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역이 존재한다. 바로 자신의 뿌리를 선택하는 일이다.

​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를 골라 태어날 수 없다. “저 집에 재산이 많으니 저분의 자식으로 태어나야지” 할 수 없고, “저 가문이 뼈대 있는 명문가이니 저곳에 내 탯줄을 묻어야겠다”고 결심할 수도 없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신의 영역이자 거대한 우주의 우연, 그리고 숙명이다.

  어디 그뿐인가. 내 몸을 거쳐 세상에 나올 후손들 역시 내 입맛대로 골라 받을 수 없다. 자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인간이 조상과 후손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사슬 속에서 한갓 나약한 연결고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돈 주고 살 수도 없고, 땀 흘려 바꿀 수도 없는 이 엄연한 한계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   나 역시 돌아보면 참으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늘 넉넉지 못한 살림과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성씨나 가문에 대해 단 한 번도 불만을 품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이를 먹고 세상의 풍파를 견딜수록, 단단한 성씨와 뚜렷한 가문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  우리에게는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낸 구심점, 즉 입암(立巖), 귀촌(龜村), 파산(巴山),겸암(謙菴), 서애(西厓), 수암(修巖)라는 우뚝한 선조가 계신다. 그리고 우천(愚川)과 하회(河回)에는 종가(宗家)가 있다. 조상들이 모여 살며 삶의 무늬를 만들어낸 거룩한 터전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급변하고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해도, 문중의 대사가 있을 때 찾아갈 고향이 있고, 그곳에서 같은 피를 나눈 이들과 한자리에서 머리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정신적 유산이다. 닻을 깊이 내리는 배는 거친 폭풍우가 몰아쳐도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 풍산류가라는 이름은 내게 삶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파제와 같았다.

​  더욱 자랑스러운 것은, 그 터전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손(支孫)들이 서로 마음을 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각자 양복을 입고 현대라는 시공간을 바쁘게 살아가지만, 수백 년 전 조상들이 약속했던 ‘충효(忠孝)’라는 가훈을 가슴에 품고 산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고리타분해 보이는 이 두 글자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행동 양식이다.

  서로의 슬픔을 내 슬픔처럼 위로하고, 서로의 기쁨을 가문의 영광으로 축하하며, 보이지 않는 질서 속에서 서로를 보듬는 족친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핏줄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신비로운 문장(紋章)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기에 더욱 고귀하고,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감사하기만 한 이 운명. 오늘도 나는 내 이름 석 자 앞에 당당히 자리 잡은 ‘류’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버드나무처럼 부드러우나 꺾이지 않는 강인함으로, 선조들이 걸어온 길을 더럽히지 않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징검다리가 되겠노라. 전설 같은 가문의 터전을 떠올리며 조용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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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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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石山 | 작성시간 26.06.06
    요즘 20 30 젊은이 들과 한 세대 더 많은 연륜을 가진 60 70 세대와는 현저한 차이는 씨족관념의 도외시다
    우리들이 자랄때는 동성동본 일가간은 백대도 지친이다,라는 이념하에 종족간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온 구세대 와는 현저히 다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고있다
    요즘 일가간 그리 소중히 생각하는 시대는 갔다고 보는 것이다
    앞으로 개인주의가 팽배하는 시대에는 종족본위를 근간삼든 시대는 한참 멀어저 가고 있음을 감지하여
    시대가 변하면 풍습도 변하고 사상도 변하고 모든 사조가 변화함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단지 부모자식 이외는 별볼일 없는 시대가 이미 닦쳤음을 지근지척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조상제사 제례문화 언제까지 유지보존
    될까요
    장담 못하지만 멀지않다고 봅니다
    주자가레 본거지인
    중국은 제사없습니다
    작금 이미 우리 한국도 제사타파가 절반이상이라 하는데
    반세기 안에 절사시대가 도래한다고 예상하는것이다



  • 답댓글 작성자류현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5 萬枝同根, 百代至親
    만개의 가지가 한 뿌리에서 나왔다.
    백대가 지나도 화목하게 지내라.
    풍산류씨 대구종회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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