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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山先生 이야기[Ⅳ]

작성자류현우|작성시간26.06.19|조회수15 목록 댓글 0

西山先生 이야기 [Ⅳ]

 

부자는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부자일수록 아끼고 절약한다. 그러면서도 써야 할 곳은 과감히 쓴다. 西山 손자인 김용환의 항일운동 방법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파락호(破落戶)로 위장한 그는 학봉종택에 내려오던 전 재산 전답 700두락 18만평(현시가 300억 원쯤 된다고 함)을 몽땅 독립자금으로 보낸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西山은 이름난 성리학자이지만 요즘 CEO로도 손색이 없는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근검절약을 앞세워 가정을 돌보고 선조의 얼을 받들며 가문을 이끌었다. 모름지기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에겐 이런 리드쉽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지도자는 아랫사람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지 않는다. 학문과 명예, 그리고 위엄을 갖춘 西山이 솔선수범했다. 그의 노력은 지손으로 하여금 진정어린 마음을 이끌어내 더 큰 화합으로 이어졌다. 족친들을 내 가족처럼 보살피고 지도하니 존경하며 따르지 않는 지손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退溪학통의 적전자로 학문의 경지가 높았다. 원근의 배움을 청하는 선비가 날로 늘어나니 문세가 번창했다. 그런 와중에도 산림처사들이 소홀하기 쉬운 집안일을 규모 있고 주밀하게 처리하며 문중이나 유림행사를 사심 없이 주관했다.

 

“무릇 민정은 순하면 따르고 역하면 뿌리치는 법이다. 모든 폐정을 고치게 할 터이니 그대들은 물러가서 기다리라”

 

1890년 안동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신임 안동부사가 백성들을 착취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민중이 난을 일으켰다. 민중의 봉기로 지역이 혼란에 빠졌을 때 그는 원로들의 추천으로 사태의 중재에 나섰다. 西山은 이 말 한 마디로 성난 민심을 제압했다. 그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민중을 구제하고 관료의 부정부패를 척결했다. 이렇듯 西山은 가문과 유림사회, 그리고 민중 모두가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西山이 타계한지 백여 년이 지났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은 점이나 의성김씨의 결속이 유난히 빛나는 것은 西山이 남긴 뚜렷한 발자취 때문이 아닐까.

문명이 발전할수록 선조들의 정신을 보존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현대인들은 자기와 가족으로 자아를 급속히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숭조사상과 문중을 잊은 지 오래다. 우리에게 공동체 붕괴는 인간 사회 전체의 파괴를 야기할 수도 있다. 西山선생의 명성에 묻혀 잊혀져가는 얘기들이, 물질만능의 세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큰 교훈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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