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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유심 2025 여름호

작성자박언숙|작성시간25.06.25|조회수38 목록 댓글 0

나는 누구로서 말하는가 - 나는 거미불가사리로서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는 인간의 명제를 나는 다른 방식으로 선언하 지. 누가 나에게 눈도 없고 뇌도 없다고 말하는가. 피부가 천 개의 렌즈로 이루어진 나는 온몸이 눈이다. 바다 깊은 곳에서 포식자에게 쫓기면서도 그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지. 팔이 잘 .려나가면서도 비명 대신 빚을 내뿜지. 그래서 나는 거미불가 사리로서 이렇게 선언해. 나는 절단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니는 재생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무에서 져 나무로 건너뛰면서. 몸에서 거미줄을 뽑아내는 나는 거미로서 말한다. 이 벽에서 저 벽으로 몸을 던지고 이 순간 내 안에 출렁거리던 슬픔은 탄성이 강한 실이 되어 허공 을 궤매지. 어느날 저녁, 나무 사이를 걸어가던 그녀의 얼굴 위로 거미줄이 고스란히 덮였어. 그날 이후로 나는 그 거미여 자의 핏속에 습어들어 붉은 텍스트를 찌기 시작했어. 너무 밝 은 피나 녀무 어두운 피는 좋은 재료가 되지 못한다고 그녀는 말했지. 그러나 시를 쓰기에 적절한 피의 농도를 니는 알지 못 하지.
나는 아메바로서 말한다. 인간의 손보다는 부드러운 섬모가 좋다고, 구불구불 혜엄치는 무정형의 발이 좋다고. 발걸유으 로 옮길 때마다 매 순간 생겨니는 의족이 좋다고.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은 다시 내보내는 식포가 좋다고. 너무 많은 물은 머금 지 않는 수축포가 좋다고. 다 자라면 둘로 포개지는 가난한 영 토가 좋다고. 섬모와 섬모가 탕았던 태고의 기억을 아직도 지 니고 있다고. 인간에게도 자기 몸에 심긴 까마특한 본능과 기 억에 이끌려 잠시 순해지고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지.
나는 진덧물로서 말한다. 인간은 온갖 감로수를 찾아다녔지 만, 우리의 탈콤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개미들뿐이야. 우리 의 맛에 대해 궁금해하는 인간이 더러 있긴 하지만. 인간이 소 블 길러 우유를 얻듯이 개미는 우리를 길러 달콤한 즙을 엄지. 대신에 개미는 무당벌레나 거미에게서 우리를 지켜주지. 우리 또한 개미에 대헤 잘 알고 있어. 인간은 개미와 진덧률의 관계 를 공생이라 부르먹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지.
그러나 거미의 터듬이가 우리의 봄을 은밀하게 어루만질 매 이 또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닭으로서 발한다. 인류세의 지층에서 가창 많은 부분 을 차지할 동물로서. 우리는 수없이 털이 뽑힌 채 튀겨지고 삶 아지고 꼬치에 #어 구워지고 있어. 드불게 인간과 우정을 나 누기도 했지만, 그들은 대체로 작고 취약한 존재들이었지. 아 침에 일어나면 아빠의 양계장으로 달려가 갓 낳은 달갈을받 아먹던 아이를 기억해. 그 탈갈을 통해 삶의 온기를 배웠다고 아이는 어른이 되어 말했지. 수나우라 테일러는 빌거벗은자 신의 몸과 나의 몸을 나란히 그려주었어. 그녀가 그린 자화상 에는 인간과 닭과 해우뉴4가 비슷한 크기로 같은 부력 속에 나란히 떠 있지.
나는 지령이로서 말한다. 모든 생명체 중에서 지렁이를 특 변해 사랑했던 대원은 지렁이에 대한 체을 남기기도 했어.몸 을 깊이 숙여 우리를관찰하며 그는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빚을 비추어주기도 했지. 우리가 훔 '속에서 하는 작업이 얼마 나 중요하고 인간을 살리는 일인지블 그는 누구보다도 잘알 고 있었어. 우리가 진흙이나 돌을 먹고 배설한 분변토 덕분에 인류의 문명이 이어져왔다는 것을. 그는 우리의 행위가 정해 진 유전적 충동이 아니라 지성적이고 즉흥적인 행위였다고 말 한 최초의 인간이었어
나는 나커로서 말한다. 발람은 왜 나를 체찍으로 내리쳤는 가. 길을잘못든 주인에게 방항을 일려주었을 뿐인데, 그를 세 번이나 돌이켜 위험을 피하도록 도왔을 뿐인데, 왜 그는 오 랜 우정을 채적으로 다루는가. 나귀가 말율 한다는 것을 그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가. 내 눈에는 보이는 죽음의 천사가 왜그 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아기 예수의 구유 곁을 지킨 것도 소와 나귀였지. 그릿 시냇가에서 엘리야에게 음식을 날라주던 까마귀처럼 인간을 돌보는 게 인간만이 아니라는걸 왜 그는 알지 못하는가.
나는 새로서 말한다. 인간들이 깨어나기 전 우리는 바배날 아다니며 먹이를 찾아야 해. 작은 새들은 큰 새가 나타나기 전 에 더 서둘러야 하지. 작은 새들은 하나의 나무에 모여 여울처 럼울지. 초식의 새들은 밤에도 맹금류를 피해 잠자리를 만들 어야 해. 인간은 새가 노래한다고도 하고 새가 운다고도 하지 만, 사실 우리에게는 노래와 울음의 차이가 없어. 날개가 있다 는 이유로 새는 자유의 상징이 되곤 하지만, 며칠째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을 때도 있어.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만이 비상이 아니야. 누군가의 어두운 빗속에도 우리가 날아야 할 머나먼 하늘이 있어.
나는 버섯으로서 말한다. 인간은 죽은 니무를 잘라 구멍윤

내고 포자를 심지만. 우리는 인간보다 휠씬 오래 살아왔지. 김 포 은 숲속 그늘에서 소리 없이 번식하는 우리는 땅속에 균사들 로 이루어진 거대한 세제를 거느리고 있어. 정지와 난자 없이 도 무성 생식하는 우리는 이따금 도시의 아파트 4 베란다에서도 번져가지. 수많은 포자들이 폭죽처럼 터질 때 밤늦게 그미세 한소리에 커를 기울이는 인간이 있어. 어두운 베란다의 화분 앞에 오래 쪼그려 앉아 있는 그의 무료 위에도 몇 개의 포자가 내려앉았지 .
나는 장미로서 말한다. 꽃잎을 다 열기도 전에 악취를 내며 시들어가는 나를 누가 아름답다고 말하는가. 나비들은 다어 디로 갔는가. 시든 꽃잎들과 줄기들은 쓰레기통에 처박혀 신 음하고 있어. 릴케는 장미를 순수한 모순이라고 불렀지만, 나 는 더 이상 그의 고귀한 이상을 담을 수 없게 되었어. 오히려 나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꽃을 바라보던 오웰의 시선 을더 잡 기역해. 또는 그가 정원에 심었던 몇 그루 장미를
나는 퍼리카락으로서 말한다. 아무리 잘라네도 아무리 밀어 내도 우리는 풀처럼 무성하게 자라나지 인간이 잠든 사이에 도 끊임없이 자라고 빠지지. 아무리 닦아내도 바닥에 흩어져 있고 집 안구식구식에 잠복해 있는 머리카락들. 바람이 불면 우리는 깃발처럼 나부끼며 아우성치기도 하지 인간은 피부색 이나 머리카락으로 종을 나누고, 머리카락을 히잡이나 차도르 속에 가두기도 하지. 슬프게도 마흐사 아미니는 머리카락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맞아 죽었어. 그녀의 친구들은 누구도 짖 을 수 없는 머리카락 깃발을 만들었지. 허공에서 필럭이는 견 은 심장과도 같은 깃발을.
나는 모래로서 말한다. 모래의 개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 여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해변이나 사막의 수많은 모래가 아니라 하나의 개체로서 모래알이 유난히 크게 느껴질 때가 있지. 누군가의 신발에 흘러들어 발을 불편하게 하거나 어떤 기계에 끼어들어 비명을 지르는 모래. 세계를 버석거리게 하 고 덜켜거리게 하고 아주 작은 흠집을 남기며 때로는 멈추게 하는 모래. 하지만 그게 모래 몇 알 때문이라는 걷 누구도 인 정하고 싶지 않겠지.
나는 종이로서 말한다. 파열음과 마찰음을 내며 나는 젖어 졌지만 그 소리를 아무도 귀 기울여 들진 않았지. 나를 젖은 손은 누구의 것일까. 물과 기름은 찢어진 선울 따라 빠르게스 며들지. 그 길고 가느다란 선이 고통의 성감대라고 니는 믿는 편이야. 자신이 쓴 글을 젖는 사람의 마음에는 보다 높은 전실 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깃들어 있지. 거짓말도 고백도 하지 않 으면서 틸 부끄러운 어떤 말을 찾아가려는 충동 같은 것이 .
나는 유리로서 말한다. 현대의 도시는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져 있지. 시야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차단하는 유리 의 속성을 인간은 즐겨 활용했지.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찍기 좋아했던 사울 레이터는 유리의 물성을 잘 이해한 사람중 하 나였어. 투명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성에나 빗물에 흐려지기 쉬운 유리의 물성을. 그가 발견한 유리창 너머의 세계는 때로 다정하고 때로 무심했어. 유리창 밖으로 곁어 나갈 용기가 크 에게는 부족했던 것일까. 군이 유리창 밖의 세상과 부뒷칠 필 오를 느끼지 않았던 것일까.
니는 유리조각으로서 말한다. 유리에서 유리조각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제 아무도 나를 줍거나 눈여겨보지 않 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하루하루 무디어지는 동안 나는 투 명함에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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