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를 들으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감상해라..
안익태 (安益泰)<1906.12.5∼1965.9.16>
작곡가·지휘자. 평양(平壤) 출생.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퇴학당한 뒤 일본에 건너가 중학을 마치고 구니타치[國立]음악학교에 들어가 첼로를 배웠다.
1932년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학교에 입학,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제1첼로 주자로 활약하였다. 그 무렵 스토코프스키와 교분을 맺었으며 필라델피아의 카네기리사이틀홀 등에서 독주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34년 헝가리로 건너가 도야니에게 작곡을 배우며 민족주의정신과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 빈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주로 지휘법을 사사하고 36년에는 몇년 전 미국에서부터 착상해 왔던 <애국가>를 작곡했다. 40년까지 슈트라우스의 보조지휘자로 있다가 그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독자적 지휘활동를 하고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에스파냐 여인과 결혼, 에스파냐 국적을 얻고 마드리드 마욜카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며 영국·이탈리아·미국 등의 저명한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기도 하였다. 57년 귀국하여 자작곡 <강천성악(降天聖樂)> <한국환상곡> 등을 지휘하고 61년 다시 귀국하여 국제 음악제를 개최토록 하였으며 63년까지 3회에 걸쳐 주관하였다.
후기낭만파에 속하는 지휘자로서 베토벤, 브람스, 드보르자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작품을 즐겨 지휘했다. 65년 에스파냐에서 병사. 57년 문화포상을 받았으며 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애국가> <한국 환상곡> <강천성악> <애! 강산의 의기논개> <애국선열추도곡>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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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의 예절과 악보
애국가를 부를 때는 가사를 통해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리고, 국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해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부릅니다.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또는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 애국가의 존엄성을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보행 중에 애국가(주악도 마찬가지임)가 들려오면 걸음을 멈추고, 애국가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하여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물건을 손에 들었을 때에는 그 자리에 놓고 바로 서서 듣습니다.
옥내외 집회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참석자는 물론, 일반 관중도 다같이 힘차게 애국가를 제창토록 하며, 의식의 성격,여건 등으로 인하여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4절까지 제창하도록 합니다.
학생들은 애국가가 들려 오면 뛰어다니거나 장난을 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