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추천기사]]샐러리맨의 덥고 배고픈 여름 (2) 점심시간도 칼타임

작성자애니그마|작성시간09.07.24|조회수105 목록 댓글 1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기사목록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입력 : 2009.07.24 11:48 / 수정 : 2009.07.24 15:07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 근무하는 L모(27)씨는 얼마 전 과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책상에 ‘반성문’이 놓여 있었다.

미식가로 소문난 과장은 “점심 먹고 1시 15분에 들어오다가 청사 정문에서 걸렸다”며 “조심해, 절대 안 봐 주더라고...”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L씨는 “오후 1시가 많이 지나서 돌아오는 직원들을 단속하면서 이름을 적는 것은 봤지만 과장급에게 반성문까지 쓰게 할 줄은 몰랐다”며 “그렇잖아도 빠듯한 점심시간인데 더 빡빡해져서 밥도 허겁지겁 먹는다”고 하소연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각종 회사의 효율성 제고 바람이 샐러리맨들의 점심시간마저 위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유연했던 공직사회 역시 공무원들의 기강을 바로 세운다며 점심시간 준수 감독에 나섰다.

C모(26)씨는 “점심 먹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우고 이름을 적길래 무슨 일인가 했다”며 “다른 회사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도 ‘이름 적힐까봐 먼저 간다’고 말하고 나오다 보면 좀 창피한 생각도 든다”고 했다. H모(26)씨는 “헐레벌떡 밥 먹고 뛰다시피 돌아오면 완전히 땀 범벅이 된다”면서 “배짱 있는 동료들 중에는 아예 1시30분 넘어 돌아오면서 외근 다녀온 척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사기업체 역시 점심시간 단속을 업무 기강 확립의 방편으로 삼고 있는 곳이 많다. 종로의 S사는 지난 봄부터 1시간 남짓이었던 점심시간을 정확히 1시간으로 맞췄다. 직원들의 근무 태도 때문이었다. G모(28)씨는 “조근에 야근까지 하는 일과 중 유일한 낙이 점심시간이었다”며 “밥 먹으면서 그나마 직장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요새는 정신 없이 밥만 먹고 부리나케 돌아온다”고 했다. 지난달 한 취업·인사 포털 업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은 64분으로 대부분은 점심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종각에 있는 K보험회사 역시 이번 여름부터 ‘점심시간 12시~1시를 준수하라’는 지침이 전달됐다. J모(26)씨는 “누가 감독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때 누가 회사 눈 밖에 나려 하겠느냐”며 “걸어서 5분 이상 가야 하는 식당은 아예 안 간다”고 말했다.

서소문의 D회사에서 일하는 H모(27)씨도 “회사 차원은 아니지만 부장이 5분만 늦게 돌아와도 엄청 눈치를 준다”면서 “구내식당을 가려고 해도 부장이 맨날 혼자 식사 중이어서 불편해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S사 종로 사옥에서 일하는 K모(24)씨도 “상사가 말은 안 하는데 꼭 오전 회의를 12시까지 하고, 오후 미팅을 1시로 잡는다”며 “학창시절 시험 때나 입맛이 없을 때 먹던 샌드위치나 김밥을 요새는 하루 걸러 하루 ‘살기 위해’ 먹는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점심시간이 부족해지다 보니 도시락과 테이크아웃 메뉴가 샐러리맨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C은행 역삼지점의 C모(29)씨는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남동생과 밥을 먹는데 내가 먹는 속도가 더 빨라 충격을 받았다”면서 “여직원들은 아예 주먹밥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와 휴게실에서 먹는다”고 했다.

한편 수원의 S전자는 구내식당 아침식사 메뉴를 테이크 아웃 해 주고 있다. 이 회사 P모(27)씨는 “바쁜 아침시간에 굶지 말고 사무실 가져가서 먹으라는 직원 복지 차원이라고 한다”며 “하지만 몇몇 동료들은 ‘조만간 점심도 싸주면서 점심시간에도 사무실 가서 일하면서 먹으라고 할 지 모른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B컨설팅의 기업 혁신 담당자는 “점심시간을 5분 단축한다고 해서 실질적인 업무 효율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불황을 극복하려는 기업들이 직원들의 근무 자세를 쇄신하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봐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내과 전문의는 “소화 불량과 위 통증을 호소하는 20~30대 직장인들이 확실히 지난해보다 늘었다”며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을 것을 권하지만 나부터도 눈칫밥 먹는 월급쟁이로서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애니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24 이런 월급쟁이 공무원 할라구 목메는 여러분들이 불쌍하긴 하지만..그래도 한 번씩은 다 겪어야 하는 과정임..ㅋㅋㅋㅋ....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