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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기사]]샐러리맨의 덥고 배고픈 여름 (4) 호된 '인턴 시집살이'

작성자애니그마|작성시간09.08.13|조회수93 목록 댓글 0

지난 5월 말, K보험회사의 정모(26)씨는 새로 온 인턴사원을 맡으라는 과장의 지시에 당황했다. 이 회사는 인턴사원을 뽑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고, 전사(全社)를 통틀어 한 명밖에 없는 이상한 인턴이었기 때문이다.

자리로 돌아온 정씨에게 과장은 메신저로 “없는 제도 만들어서 온 인턴이야, 그럼 짐작하지?”라며 “RF(로얄 패밀리)인데, 방학 때 잠깐 들어왔다니까 두 달만 고생해”라고 했다. 정씨는 “그 때까지 가졌던 자부심이 일순간에 무너질 만큼 회사가 부끄러웠다”며 “그나마 성격도 싹싹하고, 일도 곧잘 했으니까 다행이지 아니면 완전 ‘상전(上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샐러리맨들의 여름은 ‘인턴 시집살이’의 계절이다. 업무를 위해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뽑는 ‘비정규직 인턴’과 함께 여름에는 회사 홍보와 인재 선점을 위한 2개월 이하의 ‘학생 인턴’도 집중 선발되기 때문이다. 한 취업포털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42개 기업의 인턴 경쟁률은 49:1이었고, 가장 치열했던 LG파워콤은 290:1을 기록했을 만큼 인턴 직원이 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이러한 인턴 사원들은 충성심과 헌신도가 높아 회사에는 활력소가 되지만, 정규직 직원들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K연구소의 김모(34)씨는 “세븐일레븐(오전 7시 출근, 오후 11시 퇴근)을 마다하지 않고, 회식 때도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며 “자기들은 몇 달 있다가 가면 그만이지만, 기대치만 높아진 상사들과 계속 일해야 하는 우리는 어쩌라는 것인지”라고 못마땅해 했다. ‘인턴들 하는 것 반만큼만 열심히 하라’는 인사 담당자들의 농담이 요즘 같은 시기에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때로는 의욕이 지나쳐 파문을 일으키는 인턴도 있다. 정부 모 부처의 이모(25)씨는 “회식 자리에서 한 인턴이 과장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며 ‘과장님, 정말 쿨(cool)하십니다!’라고 말해 진짜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 버렸다”며 “나중에 인턴 담당인 나만 괜히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고 선배들한테 잔소리를 들었다”고 억울해 했다.

고학력·고스펙(취업에 필요한 학점, 영어 성적 등이 매주 좋은) 인턴도 직장 초년생들에게는 스트레스를 준다. S전자의 박모(27)씨는 작년 여름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에 다닌다는 인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박씨의 업무 지시에 그는 사사건건 “미국에서는 요새 그런 것 안 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이러냐”며 “좀 어려운 과제를 달라”고 무시했다. 배치 일주일 만에 다른 부서로 옮겼던 그 인턴은 결국 계약 기간의 반도 지나기 전에 회사를 떠났다.

또 다른 정부 부처의 김모(29)씨는 미국 아이비 리그(ivy league) 대학 출신의 외국인 인턴과 하루에도 몇 번씩 언쟁을 벌인다. 한국어를 전혀 못 해서 영문 자료 제작을 주로 맡기는데 번번히 “내가 이런 일이나 하러 온 줄 아느냐”며 “난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내 일도 바쁜데 인턴과 싸우다가 하루가 다 간다”며 “자문위원 교수의 ‘낙하산’이라 과장님도 어떻게 못 한다”며 답답해 했다.

뜻하지 않은 스캔들도 회사를 곧 떠날 인턴은 물론 남아야 하는 샐러리맨에게 독이 된다. S그룹 계열사의 김모(26)씨는 “어릴 적부터 알던 친구 여동생이라 좀 챙겨줬더니 인턴들 사이에서 ‘작업남’으로 소문이 났다”며 “인턴들이 떠난 후에도 동료 여직원들에게 한동안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C은행의 전모(29)씨도 “이웃 부서에 학교 후배가 인턴으로 왔기에 점심 한 번 사줬는데 회사에서 ‘자기 후배만 챙긴다’고 뒷말이 무성했다”며 “이후로는 어쩌다 마주쳐도 눈 인사만 겨우 했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과 인턴 경험자들은 정규 직원과 인턴 직원 사이의 상호 이해와 존중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언론사에 입사한 A(26)씨는 “선배들이 알려주는 아이템 하나, 사 주는 밥 한끼가 시간적·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배려였는지 인턴 때는 미처 몰랐다”며 ”인턴은 어디까지나 손님이었고, 선배들은 주인으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고단한 입장이라는 것을 입사 후에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3년 반 경력의 기업 컨설턴트 B(27)씨는 “인턴으로 일할 때는 누구나 호기심과 의욕이 넘치지만 확실히 불안하고 시야도 좁아 다른 사람들의 입장까지는 헤아릴 수 없다”며 “스스로의 인턴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인턴들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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