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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올해도 8026만원 놓고 사라진 노송동 '기부 천사'는 누구일까

작성자애니그마|작성시간09.12.29|조회수215 목록 댓글 6

공터에 놓고 갑니다" 전화10년째
洞주민센터에 성금 "어머님이 아껴 모으신 돈" 천사의 편지 함께 동봉"…노송동사무소죠?"

점심 시간을 앞두고 한창 분주하던 28일 오전 11시 55분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허인회(50) 주사가 받은 수화기 너머로 40대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사무소 뒤편에 세탁소가 있는데, 거기 음료수 자판기 뒤편에 가면 '종이 박스'가 하나 있습니다."

"종이 박스"란 단어를 듣는 순간, 허 주사는 '얼굴 없는 천사'의 전화라는 걸 직감했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9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노송동주민센터에 8000만원이 넘는 성금을 익명으로 건넨 바로 그 기부자였다.

한일수 노송동장(오른쪽)과 이양섭 계장(가운데)이‘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박스를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박스안에 남겨 있던 편지. 편지에는“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노송동주민센터 제공

허 주사의 다급한 손짓에, 이양섭(49) 시민생활지원계장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얼굴 없는 천사'는 "우리세탁소 옆 공터에 돈을 놓고 가니까, 가져가세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발신자 번호를 일부러 감췄는지, 주민센터 전화기의 액정 화면에는 아무런 번호도 찍혀 있지 않았다. 상자를 놓고 간 위치가 조금 바뀌었을 뿐, 똑같은 방식이었다. 한일수 동장(54)과 직원들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이 계장이 입을 열었다. "천사가 오셨습니다!"

한 동장과 직원 3명이 주민센터 밖으로 뛰어갔다. 센터 정문에서 20m 떨어진 공터에 가로 30㎝, 세로 21㎝, 높이 26㎝ 크기의 복사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100장씩 묶은 5만원권이 10다발, 100장씩 묶은 1만원권이 30다발 있었다. 26만5920원 상당의 동전으로 가득 찬 돼지 저금통과 빵 모양의 저금통도 나왔다. 모두 합해 8026만5920원. 지난 9년 동안 그가 전달한 성금액(8109만7200원)과 맞먹는 액수다.

'얼굴 없는 천사'의 편지도 나왔다. A4 용지에 컴퓨터로 입력해 인쇄한 글이었다. '대한민국 모든 어머님들이 그러셨듯이/ 저희 어머님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으신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편지 말미에는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추신이 붙어 있었다.

한 동장은 "(그분이) 어머님이 물려주신 유산을 성금에 보탠 것 같다"고 했다. 주민센터 직원 유세창(37)씨는 "올해 경기가 나빠서 '천사'에게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주민센터 인근에서 신공알뜰마트를 운영하는 이길순(50)씨는 "그렇게 많은 액수를 두고 갔다니, 하늘이 도와서 그분 사업이 크게 잘 된 모양"이라고 얘기하며 웃었다.

돈이 든 박스를 놓고 간 사람을 본 주민도 있었다. 세탁소 맞은편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장모(76)씨는 "검은색 SUV 차량이 공터 앞에 멈췄는데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성이 종이 박스 1개를 내려놓았다"며 "휴대전화로 통화하더니 금세 차를 타고 떠나 자세히 볼 틈이 없었다"고 했다.

노송동주민센터는 귀한 성금을 은행에 전액 입금시켰다. 한 동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노송동 주민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며 "예년보다 액수가 많아 훨씬 많은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10만원씩 전달한다면 최대 800가구가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전주시는 '얼굴 없는 천사'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잠시 중단했던 기념사업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송하진(57) 전주시장은 "그분의 선행 덕분에 시민 전체의 마음이 따뜻해졌다"면서 "이제 우리가 작은 성의라도 보여야 할 때"라고 했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전주시가 제작한 표지석. 높이 1.2m, 너비 1.4m 크기의 오석(烏石)에 송하진 전주시장이 직접 붓글씨로 글을 썼다./노송동주민센터 제공

시는 현재 석재 공장에 보관 중인 '얼굴 없는 천사 기념 표지석'의 제막식을 다음 달 초 진행할 계획이다. 주민센터 앞 도로의 이름을 '얼굴 없는 천사로(路)'로 바꾸는 안(案)은 지난 22일 전주시 새주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지난 며칠 동안 남몰래 가슴 졸였던 한 동장은 "기다리던 '천사'가 나타나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오늘 편지를 보니 아무래도 그분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불우한 이웃에게 작은 정성을 나누어 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등 짧은 내용만 있었거든요. 그분 어머님도 아마 좋은 곳에 가셨을 거예요. 평소 어려운 이웃을 돕는 고운 마음씨를 갖도록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신 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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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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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v날쌘돌이v | 작성시간 09.12.29 올해도 놓았나요?ㅎㅎ 익명으로 10여년 동안 놓은걸로 알고 있고...이번에 언론에서 너무 떠들어되어서 부담되었을텐데...
  • 작성자Euphemism | 작성시간 09.12.29 고위험직에 종사하는 고소득자라면 이를 악물고 돈을 벌었겠군요. 그게 아니라 안정된 고소득 샐러리맨이라면, 다른 용도에 대한 유혹이 크기에 분명 어떠한 사연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여튼 1번도 힘든데 10년째 저러한 선행을 유지한다는게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 작성자맛있는oH플-pie | 작성시간 09.12.29 우와 내가사는 전주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다니...
  • 작성자새옹지마 | 작성시간 09.12.30 정말 저도 이런분처럼 많이벌어서 어려운이웃, 심지곧지만 형편어려운 고학생들에게 도움주고싶습니다.
  • 작성자이름없심 | 작성시간 10.01.03 이제 썌벼갈놈들 생기겠내... 이놈의 나라는 그게 걱정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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